40화(5,460자) · 1594년 12월 6일~31일, 한산도
잡혀가는 사람
이순신 · 네오
1594년 12월 6일 (음력 10월 25일) 맑으나 서풍이 크게 일어남. 남도와 영등(거제 장목면 구영리)이 와서 이야기했다. 전 낙안군수 신 첨지 호가 체찰사의 관문과 목화와 털벙거지와 정목 한 동을 가지고 왔다. 함께 의논하고 밤이 되어 물러갔다. 순천 권준이 잡혀갈 때에도 와서 보았다. 회포가 편치 않다.
권준이 금부에 잡혀갔다.
그는 순천부사였고, 좌수영(여수) 아래서 벼슬이 가장 높은 장수였다.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에서 왜장을 쏘아 떨어뜨렸고,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는 층각 대선을 잡아 왜장의 목을 베었다. 활을 당길 때 손이 안 떨린다던 사람이다. 두 해 전 내가 순천에 들렀을 때는 이 고을이 좋으니 나를 대신하겠는가 하고 뻐기기도 했다. 그 사람을 금부에서 내려온 사람이 데려갔다.
무슨 죄인지는 일기에 올리지 않았다. 올릴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죄를 종이에 적으면 그 죄는 종이 안에서 오래 산다. 순천 본부의 일이라고만 들었는데, 지난여름 진을 옮기던 날 그가 찾아와 형언할 수 없다고 하던 바로 그 본부의 일이었다. 군량이 모자라고 군사가 달아나고 백성이 굶는 일이다. 그것을 다스리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못했다고 누가 말했는지는 밖에서 보면 구별이 안 된다.
잡혀가기 전에 그가 나를 보러 왔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남기지 않고 회포가 편치 않다고만 썼다. 이 가을에 편치 않다는 말을 몇 번 썼는지는 세지 않았다.
그가 탄 배가 포구를 빠져나가는 것을 뱃전에서 지켜보았다. 서풍이 거세게 불어 돛이 한쪽으로 불룩하게 부풀었고, 노가 물을 떠밀 때마다 흰 거품이 줄지어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지난여름 회가 본영으로 가는 배를 보던 그 자리였다. 아들을 싣고 가던 배와 잡혀가는 장수를 싣고 가는 배가 같은 물길을 따라 멀어졌다.
*
그가 오기 전날 밤에 나는 알았다.
금부의 사람이 순천 가까이 이르러 이튿날 고을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령이 먼저 싣고 왔다. 그 말을 듣고도 권준에게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면 나는 미리 안 사람이 된다. 미리 안 사람에게는 그걸로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이 따라오고, 물음에는 답해야 한다. 내게는 댈 답이 없었다. 그날 밤 등잔 심지를 두 번 돋웠고, 두 번 다 끝까지 태웠다.
그는 스스로 왔다. 잡히기 전에 통제사를 찾아오는 것이 그가 아는 예였다. 배에서 올라와 운주당에 앉더니 물었다.
“순천은 누가 맡습니까?”
“조정이 정한다.”
“조정이 정할 때까지는.”
“대장이 맡는다. 유섭이 맡을 것이다.”
두 해 반 전 옥포에서 권준 대신 나갔던 순천 대장 유섭의 이름이 다시 나왔다. 권준은 그 이름을 받았는데 받는 얼굴에 아무것도 없었다. 무릎 위에 얹은 두 손도 가만히 있었다. 손이 안 떨리는 사람은 얼굴도 안 떨린다는 것을 나는 그날 알았다.
“본부의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들었다. 형언할 수 없다고 했다.”
“형언하겠습니다. 한양에서.”
“하라.”
그것으로 끝났다. 더 할 말이 없었고, 없는 말을 지어내지 않는 것이 우리 둘의 예였다. 그가 일어서 나갔다. 문을 나서는 그의 등이 등불을 가려 방 안이 잠깐 어두워졌다. 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그가 잡혀갔다.
*
신호가 왔다.
전 낙안군수 신호는 벼슬이 올라 첨지가 된 사람이다. 두 해 반 전 진해루의 젖은 마루에서 옳은지 모르겠다고 하던 사람, 배 위에서 군호를 입속으로 작게 외우던 사람, 옥포(거제 옥포동)에서 처음으로 왜의 목을 벤 사람이었다. 그가 체찰사의 관문을 들고 왔고, 목화와 털벙거지와 정목 한 동을 함께 싣고 왔다. 짐을 부리는 군사들의 입김이 서풍에 날려 흩어졌고, 새끼줄로 묶은 꾸러미가 선창 판자 위에 부려질 때마다 둔한 소리가 났다.
목화는 솜이고, 옷을 짓는 데 쓴다. 지난겨울 옷 없는 군사들이 거북처럼 움츠리고 떨었는데 올겨울에는 솜이 왔다. 머리에 쓰는 털벙거지와 베 정목 한 동도 체찰사에게서 왔다. 지난겨울에 없던 것이 올겨울에 온 것이다. 솜이 몇 근인지, 벙거지가 몇 개인지 하나하나 세었다. 그 수는 여기 남기지 않는다. 적으면 안 받은 사람이 생긴다.
체찰사의 관문도 읽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남기지 않고 함께 의논했다고만 썼다. 두 해 반 전 옳은지 모르겠다고 하던 사람과 밤이 이슥하도록 마주 앉았다. 그때 그는 자리를 보고 있었고 오늘은 나를 보고 있었다. 보는 데가 바뀌어 있었다.
그가 말했다.
“권준이 잡혀갔습니다.”
“보았다.”
“다음은 누구입니까?”
나는 답하지 않았다.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서였다. 그 답을 입 밖에 내면 그 사람이 생긴다. 신호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은 그가 두 해 반 동안 배운 예였고, 그는 배운 것을 오늘 썼다. 화로의 숯이 사그라드는 소리가 둘 사이를 한참 채웠다.
*
신호가 간 뒤에 솜을 보았다.
한 동을 풀어 헤치니 흰 것이 뭉쳐 있었다. 손을 넣어 보니 가벼웠고, 손가락 사이로 밀려드는 것이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 가벼운 것이 겨울을 막는다. 갑옷은 무겁고 추위를 못 막는데 솜은 가볍고 막는다. 그걸 손으로 알았다. 손으로 아는 것이 종이로 아는 것보다 먼저다. 솜 부스러기가 손등에 달라붙어 한참을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옷을 몇 벌이나 지을 수 있는지 셈해 보았다. 배가 백 척이 넘고 사람이 몇천인데 한 동으로 몇 벌이 나오는지, 셈이 서지 않았다. 서지 않는 셈은 그대로 두고 누구에게 먼저 줄지를 헤아렸다. 옷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병방이 안다. 병방에게 세어 오라고 일렀다. 세는 일을 남에게 맡긴 것은 처음이었다. 맡겨야 하는 셈도 있다.
*
12월 7일 (10월 26일) 맑음. 일기는 「맑음」 한 마디다.
원균이 자기 장계를 따로 올린다고 했다. 지난달 열이틀에 들은 말이다. 장문포(거제 장목면)의 일을 통제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아뢰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라고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붓을 먹에 적셨다가 한참 벼루 가장자리에 걸쳐 두고서야 첫 글자를 썼다.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않았다. 막으면 그 사람이 종이 안에서 죽고, 종이 안에서 죽은 사람은 배 위에서도 죽는다. 아직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순무어사 서성이 지난달 열엿새에 왔었다. 이억기와 원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튿날 어사가 따로 와서 원균이 속인 일을 조용히 여럿 늘어놓았다. 지극히 놀랍다고 썼다. 원균을 두고 놀랍다는 말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흉험, 흉휼, 가소, 흉, 그리고 놀랍다. 다섯 번째 말이었다. 어사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남기지 않았다. 그 말을 종이에 올리면 종이 안에서 산다. 어사는 조정에 가서 말할 것이고, 조정이 어떻게 들을지는 조정의 일이다.
원균에게서 항복한 왜 셋이 지난달 스무하루에 건너와 조사를 받았다. 셋 다 맨머리에 홑옷 차림이라 뜰에 꿇어앉은 채 이를 부딪쳤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남기지 않았다. 원균에게서 오는 것은 다 믿을 수 없다고 지난겨울에 썼다. 믿을 수 없는 것과 거짓인 것은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 믿지 않았다.
*
12월 31일 (11월 20일) 맑음. 원 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원균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일기에는 그 일곱 자만 남겼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올리지 않았다. 올릴 것이 없었고, 올릴 것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적었다. 와서 보고 돌아갔다.
그가 충청병사로 간다는 말이 돌았다. 배를 떠나 뭍의 병사가 된다는 말을 그가 직접 했는지 다른 데서 들었는지는 남기지 않았다. 그는 갈 것이고, 가면 이 바다에 그가 없다. 그가 없는 바다가 어떤 것인지 나는 몰랐다. 두 해 반 동안 그는 늘 있었고 나는 있는 것만 알았다.
그가 자기 배로 건너갈 때 나는 뱃전에 서서 그 등을 보았다. 겨울바람에 도포 자락이 한쪽으로 쏠렸고, 그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등은 늘 아무 말도 안 한다. 두 해 반 동안 그 등을 몇 번 보았는지는 세지 않았다. 세면 그 등이 종이 안에 산다.
*
밤에 운주당에 앉았다.
계책을 짜는 집이다. 한산도에 지어 장수들과 둘러앉던 그 집에 오늘은 혼자 앉았다. 화로의 숯은 거의 재가 되었고, 판자벽 틈으로 바닷바람이 새어 들어 등잔불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혼자 앉아 두 해 반을 세었다. 옥포에서 장문포까지 배는 스물넷에서 백 척이 넘게 늘었다. 늘어난 것을 세고 나서 다른 것을 세었다. 정운, 어영담, 권준, 원균. 죽은 사람 둘과 잡혀간 사람 하나와 떠날 사람 하나가 이 바다에서 빠진다. 빠지는 것을 세는 것이 이 겨울의 셈이었다.
정운의 자리에는 새 만호가 왔다. 어영담의 자리에는 아무도 오지 못한다. 물길을 아는 사람은 새로 오지 않는다. 권준의 자리에 누가 올지는 몰랐는데, 순천은 큰 고을이라 조정이 정한다. 원균의 자리에는 배설이 온다고 했다. 배설이라는 이름을 나는 잘 몰랐고, 모르는 이름이 온다는 것만 알았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한 겨울에 함께 왔다.
배는 백 척이 넘는데 사람은 넷이 줄었다. 배는 나무로 짓지만 사람은 나무로 못 짓는다. 지난겨울 배 뼈대 앞에서 한 그 말을 올겨울에는 운주당에서 다시 했다. 같은 말을 두 번 하면 닳는다. 닳아도 했다. 다른 말이 없었다.
권준이 지금 어디쯤 갔을지 생각했다. 이 바람이면 뭍길도 얼어 있을 것이다. 한양까지는 며칠이 걸리고, 한양에서는 무엇을 물을 것인가. 순천 본부의 일, 형언할 수 없다고 하던 그 일을 이제 한양에서 형언해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일이 되었다. 손이 안 떨리는 사람이 말은 떨릴지 나는 몰랐다. 떨리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렇다.
솜이 왔으니 옷을 짓게 했다. 옷을 짓는 일은 세는 일이 아니라 만드는 일이다. 지난겨울에는 배를 만들었고 올겨울에는 옷을 만든다. 만드는 것이 바뀌었고, 나는 그 바뀐 것까지 세고 있었다. 세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밤이었다. 그만두지 않았다. 세는 사람이 나다.
사료 · 10월 25일 남도·영등이 온 것, 전 낙안군수 신호가 체찰사의 관문과 목화·털벙거지·정목 한 동을 가지고 와 밤이 되도록 의논한 것, 「순천 권준이 잡혀갈 때에도 와서 보았다. 회포가 편치 않다」 ― 난중일기 갑오년 10월 25일(전서본). 권준이 무슨 죄로 잡혀갔는지는 일기에 없다 · 10월 12일 원균이 장문포의 일을 직접 아뢰겠다 하여 공문을 만들어 보낸 것, 16일 순무어사 서성이 와서 이억기·원균과 이야기한 것, 17일 어사가 「원 수사가 속인 일을 많이 말했다, 지극히 놀랍다」, 21일 원균에게서 항복한 왜 셋이 온 것 ― 난중일기 10월 12~21일 · 11월 20일 「원 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 난중일기 11월 20일. 원균이 이듬해 봄 충청병사로 가고 배설이 경상우수사로 온 것 ― 난중일기 을미년 2월 27일 · 권준이 당포에서 왜장을 쏘고 한산도에서 층각 대선을 잡은 것 ― 당포파왜병장·견내량파왜병장. 신호가 옥포에서 처음 목을 벤 것 ― 옥포파왜병장 · 권준이 잡혀가기 전날 밤의 전령과 운주당의 대화, 유섭이 대신 맡는다는 것, 신호와의 대화, 솜과 벙거지의 수, 운주당의 밤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