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5,605자) · 1905년 11월, 서울 정동 · 2편의 막간
서울, 1905
이순신 · 네오
1905년 11월, 서울 그리하여 그는 숨을 거두었다. 한국의 넬슨이라 불러 마땅한 사람이.
헐버트는 등불 아래 앉아 있었다.
서울 정동(서울 중구 정동), 미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있는 그의 집 서재였다. 석유 심지가 타는 냄새가 방 안에 얇게 깔렸고, 책상 위에는 「한국사」 원고가 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첫 권은 이미 책으로 나왔고 둘째 권은 같은 동네 감리교 출판사 인쇄소에 가 있었다. 원고가 골목 몇 개를 건너가 활자로 짜이고 잉크 냄새를 풍기는 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그는 이 나라에 와서 처음 보았다. 조선에서 종이는 늘 먼 데서 왔다. 삼백 년 전에는 더 먼 데서 왔다.
그가 쓰고 있는 것은 삼백 년 전 사람, 이순신이었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첫마디에는 펜대에 눌린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그 옆으로 잉크가 스며 거뭇하게 물들어 있었다. 저녁마다 비누로 문질러도 잘 빠지지 않았다.
*
한국 사람의 기록을 읽고 영어로 옮겼다. 옮기다 보니 이 기록들에는 각주가 없었다. 누가 무엇을 보고 썼는지 밝혀 둔 데가 없어서 그도 각주를 달지 않았다. 옆에 펼쳐 둔 한문 책은 오래된 닥종이라 손끝에 보풀이 일었고, 넘길 때마다 묵은 먹 냄새가 코끝에 올라왔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것을 흠으로 잡으리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누군가 먼저 옮겨야 다음 사람이 각주를 단다.
첫 권에는 이렇게 썼다. 왜의 배들이 가덕도(부산 강서구 가덕도) 앞바다에 몰려오자 원균은 그 많은 배를 보고 달아났다. 그때 누군가 왕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순신이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큰 장수가 될 재목이라고 아뢰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고 한국 기록도 밝히지 않았다. 류성룡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는데, 그때는 책이 이미 나와 있었다.
옥포(거제 옥포동) 싸움 대목에서는 이렇게 썼다. 이 승리가 이 전쟁의 결정적인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지점, decisive point. 그 두 단어를 쓰고 나서 그는 펜을 한동안 종이 위에 들고 있었다. 삼백 년 전 조선 남쪽 바다에서 스물네 척이 마흔 척을 태웠다. 그 뒤로 일본 군대는 바다로 군량을 받지 못했고, 군량이 끊긴 군대는 뭍에서 굶었다. 굶는 군대는 물러난다. 결정적이라는 말은 그 사슬의 첫 고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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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대목에 이르렀다.
이 배는 삼백 년 가까이 앞서 철갑 군함을 예고했다. 그렇게 쓰면서 아이언클래드라는 단어 앞에서 펜 끝이 잠깐 멈췄다. 정말 쇠로 덮은 배였는지 그는 몰랐다. 한국 기록은 등에 쇠 송곳을 꽂았다고 했는데, 송곳을 꽂은 등과 쇠를 입힌 갑판은 같은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을 같은 말로 묶었는지 뒤에 몇 번 생각했지만 고치지 않았다. 책은 이미 나갔다. 서가에 꽂힌 첫 권의 등이 등불을 받아 희미하게 번들거렸는데, 그쪽으로는 되도록 눈을 두지 않았다.
거북선을 본 사람이 있다고도 썼다. 1884년에 미국 해군의 포크 중위가 고성에서 그 배의 늑재를 보았다고 한다. 그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건너 들은 말이어서, 들은 말이라는 것을 문장에 그대로 두었다. 전언을 전언으로 두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정직이었다.
둘째 권에는 한국 사람이 철갑함과 박격포와 현수교, 세 가지를 세상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썼다. 셋을 늘어놓으면서 이 나라 사람들이 그걸 아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삼백 년 전 사람이 만든 것을 삼백 년 뒤 사람이 모르고, 미국 사람이 그걸 영어로 써 봤자 이 나라 사람은 영어를 읽지 않는다. 읽을 사람은 바다 건너에 있었다. 그들이 읽으면 무엇이 달라질지 그는 몰랐다. 달라지기를 바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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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학생이 왔었다.
그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열일곱 살 조선 아이였다. 찬 바깥에서 들어온 아이의 두루마기에서 서늘한 겨울 냄새가 났다. 아이가 책상 위 원고를 들여다보다가 선생님,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순신이라고 하자 아이는 안다고 했다. 무엇을 아느냐고 물으니 거북선이라고 했다. 거북선 말고는 몰랐다. 어디서 싸웠는지, 몇 번 이겼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이 나라 아이가 삼백 년 전 사람을 배 이름 하나로 알고 있었다.
헐버트는 원고를 아이 쪽으로 돌려 놓고, 손가락으로 줄을 짚어 가며 영어로 읽어 주었다. 옥포, 결정적인 지점. 아이가 그 말을 서툰 발음으로 따라 했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그 소리를 타고 삼백 년 전 조선 남쪽 바다가 잠깐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가 왜 우리 글로 된 것은 없느냐고 물었고, 헐버트는 답하지 못했다. 없지는 않았다. 한문으로 쓴 일기와 장계와 행록이 있었다. 그러나 한문을 읽는 사람만 그것을 읽었고, 이 아이는 한문보다 영어를 먼저 배우고 있었다. 그것이 이 나라의 지금이었다. 그는 지금을 책에 넣지 않았다. 책은 삼백 년 전에서 멈췄다.
아이가 돌아가면서 거북선을 그려 달라고 했다. 헐버트는 못 그린다고 했다. 그 배를 본 적이 없었고 본 사람도 없었다. 포크 중위가 보았다는 늑재는 배가 아니라 뼈였고, 뼈만 가지고 배를 그릴 수는 없다. 아이는 못 그린다는 말을 들고 문을 나섰다. 대문 밖 언 골목으로 멀어지는 짚신 소리가 한참 들리다 끊겼고, 아이가 앉았던 걸상에는 온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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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남해 설천면과 하동 사이 물목) 대목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숨을 거두었다. 한국의 넬슨이라 불러 마땅한 사람이. 그렇게 적었다.
넬슨은 트라팔가르에서 이기고 죽은 영국 사람이다. 그 이름을 삼백 년 전 조선 남쪽 바다에서 이기고 죽은 사람에게 붙이면서, 그는 이것이 무엇을 하는 일인지 알았다. 넬슨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영국 사람이 읽는다. 영국 사람이 읽으면 이 사람은 비로소 세상에 있게 된다. 이름 없는 사람에게 남의 이름을 입혀 내보내는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옳지 않아도 했다. 다른 길이 없었다.
유언을 옮겼다. 내가 죽은 것을 나머지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싸움을 망친다. 그 말을 영어로 옮기면서 한국 기록의 여덟 자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은 것을 삼가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여덟 자가 영어로는 열몇 마디가 되었다. 옮기면 는다. 느는 것이 옮기는 일의 값이었다.
진린의 말도 옮겼다. 그 대목에서는 펜이 느려졌고, 한 줄을 쓰고 한참 등불만 바라본 뒤에야 다음 줄로 넘어갔다. 나는 그가 나를 살리고 자기도 살 줄 알았는데 그가 여기 죽어 누웠으니 이제 한국에 군사가 없다. 명나라 장수가 조선 장수를 두고 한 말을 한국 기록이 받아 두었고, 그는 그것을 한 번 더 받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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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소리가 났다.
11월이었고, 서울의 11월은 춥다. 창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등불을 한쪽으로 눕혔다가 놓아주었고, 골목 쪽에서 가죽 군화가 언 땅을 찍는 소리가 고른 간격으로 지나갔다. 일본 군인이었다. 총 멘 사람 여럿이 발을 맞추는 소리라 창유리가 가늘게 떨렸다. 지난 열흘 사이 거리에 일본 군인이 부쩍 늘었지만 그는 그 수를 세지 않았다. 세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고 그의 일은 쓰는 것이었다. 쓰는 일과 세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그는 삼백 년 전 사람의 기록에서 배웠다. 그 사람은 둘 다 했다.
열이레 밤 궁궐에서 일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궁궐에 들어가 문서에 도장을 찍게 했고, 이 나라가 바깥 나라와 말할 권리인 외교권이 그 밤에 없어졌다. 그는 이튿날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듣고 나서 서재로 돌아와 삼백 년 전 사람의 마지막을 썼다. 난로에 석탄을 한 삽 더 넣었는데도 발밑이 시렸고, 펜을 쥔 손가락 마디가 굳어 몇 줄마다 입김을 불어 녹여야 했다.
삼백 년 전 사람이 막은 것은 바다였다. 바다를 막아 일본 배가 서해로 올라가지 못하게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삼백 년 뒤의 일본은 바다로 오지 않았다. 쓰시마 앞바다에서 러시아 배들을 부순 다음 종이를 들고 왔다. 종이는 바다를 건너지 않고 곧장 궁궐로 들어간다. 궁궐에는 거북선이 없다.
그는 그 이야기를 책에 넣지 않았다. 책은 삼백 년 전까지였고, 삼백 년 뒤는 책이 아니라 그가 몸으로 할 일이었다. 며칠 뒤면 황제의 편지를 품고 워싱턴으로 가는 배를 탈 것이다. 그 편지가 무엇을 바꿀지 그는 몰랐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리라는 것은 알았다. 알면서 갈 것이다. 아는 것과 가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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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지막 장을 넘겼다. 여러 번 고쳐 쓰느라 귀퉁이가 말려 올라간 종이였고, 손바닥으로 눌러 펴도 금세 다시 일어섰다.
1599년 조에 이렇게 써 두었다. 이순신. 한국의 구원 그 자체였던 사람. 그러나 싸움에서 죽음을 찾은 사람. 살아남으면 그를 헐뜯는 자들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죽음을 찾았다는 대목은 한국 기록에서 가져왔다. 공이 커서 용납되기 어려움을 스스로 알아 싸움에 임해 몸을 버렸다고 세상이 말한다는 문장이 거기 있었다. 그 말이 맞는지 그는 몰랐다. 삼백 년 전 사람이 죽으러 갔는지 싸우다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것을 세상이 말했고, 세상이 말한 것을 기록이 받았고, 기록이 받은 것을 그가 옮겼다. 옮기면서 모른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흠이었고, 그는 흠을 그대로 둔 채 원고를 인쇄소로 보냈다.
등불을 껐다. 심지에서 가는 연기가 한 줄 올라가 흩어지고 서재가 어두워졌다. 난로 속 석탄이 사그라지며 가끔 딱 하고 갈라지는 소리만 남았고, 유리창에는 그의 입김이 뿌옇게 번졌다가 천천히 걷혔다. 어둠 속에서 궁궐 쪽 창밖을 내다보니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창틀에 손을 얹은 채 없는 불을 오래 보았다.
한국 기록에는 삼백 년 전 사람이 뱃전에서 달을 보았다는 대목이 있었다. 달이 뱃전에 들어와 정신이 맑고 서늘하다. 그 문장은 옮기지 않았다. 싸움을 다루는 책에 달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옮기지 않은 문장이 제일 오래 남았다. 그는 그걸 알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사료 · 「누군가 왕에게 이순신이라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큰 장수가 될 재목이라고 말했다」, 「이 승리(옥포)가 이 전쟁의 결정적인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북선이 「삼백 년 가까이 앞서 철갑 군함을 예고했다」, 1884년 포크 중위가 고성에서 늑재를 보았다는 전언, 한국 사람이 철갑함·박격포·현수교를 처음 만들었다는 것 ― 헐버트, 한국사(1905) 1권 375~376쪽, 2권 앞부분 · 「그리하여 그는 숨을 거두었다. 한국의 넬슨이라 불러 마땅한 사람이」, 유언 「내가 죽은 것을 나머지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싸움을 망친다」, 진린의 탄식, 1599년 조의 「한국의 구원 그 자체였으나 싸움에서 죽음을 찾은 사람」 ― 같은 책 2권 49쪽과 1599년 조. 「공이 커서 용납되기 어려움을 알아 싸움에 임해 몸을 버렸다고 세상이 말한다」 ― 이여, 이충무공전서 부록 신구차 발문(1711) · 헐버트가 조선 기록을 각주 없이 옮긴 것, 순천 왜교성의 장수를 가토로 잘못 적은 것 ― 같은 책의 성격. 「한국의 넬슨」은 밸러드(1921)보다 열여섯 해 앞선다 · 1905년 11월 17일 밤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없어진 것, 헐버트가 그 뒤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간 것 ―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작품의 사료 폴더에는 없어 따로 출전을 대지 않는다 · 학생과의 대화, 헐버트의 서재와 등불, 인쇄소, 망설임, 창밖의 궁궐, 옮기지 않은 달의 문장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헐버트의 3인칭이다. 2편의 막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