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5,155자) · 1594년 5월 29일, 한산도 두을포 언덕

손바닥

이순신 · 네오

1594년 5월 29일 (음력 4월 10일) 흐림. 이날 이순신은 일기를 썼다. 순무어사가 진에 이른다는 선문이 왔다.

끝동은 어영담을 세 번 보았다.

첫 번째는 두 해 전 옥포(거제 옥포동) 앞바다에서 노 구멍으로 본 것이었다. 옆 배의 뱃머리에 서서 손바닥을 펴고 검지로 긋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무엇을 긋는지 몰랐고 물길이라고 뒤에 들었다. 손바닥에 물길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두 번째는 지난봄 웅포(창원 진해구 웅천 앞 포구) 앞에서였다. 비 오는 날 장군의 배에 넷이 앉았을 때 끝동은 그 배의 노 자리에 있었고, 위에서 소리가 판자를 뚫고 내려왔다.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 앞은 넓습니다. 판옥선이 나란히 설 수 있습니다. 물은 사람이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낮고 마른 목소리였고 노 자리의 다섯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 돌쇠가 누구냐고 물으니 말 없는 쪽이 답했다. 광양, 물길 아는 사람.

세 번째는 어제, 뭍에서였다.

*

한산도(통영 한산면) 두을포(통영 한산면 두억리) 뒤편 언덕이었다.

역병으로 죽은 사람을 묻는 데, 겨울에 이백열넷을 묻은 데였다. 그 옆에 새로 판 자리가 있었고 거기에 조방장이 들어갔다. 광양현감에서 조방장이 된 사람, 서른한 장수를 거느리고 당항포(고성 회화면)로 들어가 서른한 척을 태운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갔다.

끝동은 그 자리를 팠다. 격군이 파는 것이고, 노를 젓는 손이 삽을 잡는 것인데 삽은 노보다 짧고 짧은 것이 더 무겁다. 힘을 줄 데가 가까워서 그렇다. 사월 흙은 겉만 말라 있고 한 뼘 아래부터 차고 검어서, 삽날이 들어갈 때마다 비린 냄새가 올라왔고 겨울에 판 자리의 흙과 같은 냄새였다. 여섯째 노에서 셋이 왔다. 겨울 뒤로 다섯이 아니라 셋이었고, 돌쇠가 없었고 말 없는 쪽이 없었다. 순천에서 온 둘이 겨울에 갔고 이백열넷 안에 그 둘이 있었다. 끝동은 그 둘을 이 언덕에 자기 손으로 묻었고, 그 옆을 오늘 다시 팠다.

천으로 덮인 시신이 들것에 실려 왔고, 들것을 멘 두 사람의 발이 비탈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그 뒤로 장군이 왔다. 앓던 사람이 걷는 것이 힘든 얼굴로 걸어와서 자리 옆에 섰고,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천 밖으로 왼손이 나와 펴져 있었다. 죽은 사람의 손은 오므라든다고 했는데 이 손은 펴져 있었고, 누가 편 것인지 원래 펴진 것인지 끝동은 몰랐다. 펴진 손바닥이 흐린 하늘을 보고 있었고 거기 손금이 있었다. 손금이 있을 뿐이었다. 물길은 없었다.

장군이 그 손을 오래 보았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는 얼굴이었고, 그 얼굴을 끝동은 전에 한 번 보았다. 부산에서 정운의 배로 건너갈 때였다. 두 해가 지나도 사람의 얼굴은 같은 것 앞에서 같아졌다.

장군이 굽히는 것이 힘든 몸으로 허리를 굽혀 그 손을 잡았다. 잡고 나서 손가락을 하나씩 다섯을 접었고, 접힌 손이 주먹이 되었다. 주먹 안에 바다가 들어갔다고 누가 말했다고 끝동은 뒤에 들었다. 접힌 손바닥 안에 경상도 바다가 들어간다는 것은 흥양(고흥)현감이 두 해 전에 한 말이라고 했다. 그때는 웃으며 한 말이었다.

장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예였고, 끝동은 삽을 들고 서 있었다. 삽자루에 묻은 흙이 손바닥의 땀과 섞여 끈적했고, 그 손을 바지에 닦지 않고 그대로 쥐고 있었다.

*

흙을 덮었다.

여섯째 노의 셋이 노를 젓는 박자로 덮었다. 한 번 뜨고 한 번 던지고. 북소리는 없어도 박자가 났다. 삼 년을 같은 박자로 저은 손이었다. 흙이 천 위에 떨어질 때는 둔하게 퍽 하는 소리가 났고, 천이 다 가려진 뒤로는 흙이 흙 위에 떨어져 소리가 가벼워졌다. 그 소리가 바뀌는 자리에서 끝동은 한 번 삽을 멈추었다가 다시 떴다.

덮는 동안 장군이 서 있었다. 다 덮을 때까지 서 있다가 다 덮고 나서 그가 말했다. 격군에게 직접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여섯째 노인가?”

“예.”

“셋인가?”

“예. 겨울에 둘이 갔습니다.”

“여기 있는가?”

“옆에 있습니다.”

장군이 옆을 보았다. 겨울에 묻은 자리, 이백열넷 가운데 둘이 있는 자리인데 표가 없었다. 표가 있는 것은 오늘 묻은 자리뿐이었다. 장군이 그 표 없는 자리를 오래 보고 나서 말했다.

“이름이 무엇인가?”

“돌쇠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이름을 몰랐습니다.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순천 사람입니다.”

“말이 없는 사람.”

“예. 호라고 하면 적이라고 한 사람입니다.”

장군이 그 말을 받았다.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이다. 용호, 산수, 호라고 하면, 두 해 전 옥포로 가는 배 밑에서 한 군호 얘기를 장군이 알 리 없었다. 모르는 말을 모르는 채로 받았다.

“적었는가?”

“무엇을요?”

“그 둘의 이름을. 종이에.”

끝동은 답을 못 했다. 격군은 종이가 없고 종이는 장군에게 있는데, 장군이 이백열넷을 수로 적고 이름은 안 적었다. 장군도 그것을 알고 물었다.

“적겠다.”

그 한 마디를 하고 장군이 돌아섰다. 돌아서는 등이 앓는 등이었고, 그 등이 비탈의 마른 풀을 헤치며 언덕을 내려가는 것을 끝동은 끝까지 보았다. 보는 것이 격군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돌쇠와 말 없는 쪽을 끝동은 생각했다.

겨울이었고 옷이 없었고 배마다 거북이처럼 움츠렸다. 돌쇠가 먼저 노 자리에서 누웠는데 사흘째에 열이 오르고 나흘째에 없었다. 누웠던 자리의 판자에 몸 모양으로 땀자국이 남았고, 그 자국은 겨울이 다 가도록 마르지 않았다. 말 없는 쪽이 그다음이었다. 누우면서 처음으로 긴 말을 했다. 순천에 아내가 있고 아이는 없다고 했고, 이름을 말했다. 끝동이 들었는데 잊었다. 잊은 것이 부끄러워서 장군에게 이름을 몰랐다고 했다. 몰랐던 것이 아니라 잊은 것이었다. 잊은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른데, 끝동은 그 둘을 같다고 말해 버렸다.

부끄러운 것을 순덕에게 말할 것이다. 순덕은 그 말을 받고 소금을 줄 것이다. 소금은 잊은 것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래도 줄 것이다. 순덕의 손은 늘 소금기에 터서 손가락 마디마다 허옇게 갈라져 있었다.

*

밤에 노 자리에서 잤다.

셋이었고 둘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빈 자리에 돌산도(여수 돌산읍) 사람이거나 잡혀 온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이 올 것이고, 오면 다섯이 된다. 다섯이 되면 노가 다시 물을 민다. 셋으로는 첫날처럼 노만 밀린다.

배 밑에 고인 물이 배가 흔들릴 때마다 판자 사이에서 찰박거렸고, 노 자리 판자에는 겨울 내내 밴 땀과 송진 냄새가 봄이 되어도 빠지지 않았다. 노 구멍으로 언덕 쪽을 보았다. 밤이라 안 보였는데, 안 보이는 데에 조방장이 있고 그 옆에 돌쇠가 있고 말 없는 쪽이 있다. 물길을 아는 사람이 물길을 모르는 둘 옆에 같은 흙에 있다.

장군이 적겠다고 했다. 적으면 남고, 격군의 이름이 장군의 종이에 남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끝동은 몰랐다. 모르는 채로 노를 베고 잤는데, 노가 셋이 젓기에는 무거웠다. 무거운 것을 베고 잤다.

*

이튿날 둘이 왔다.

빈 자리에 올 사람을 병방이 데리고 내려왔다. 하나는 돌산도에서 밭을 갈다 온 사람이었다. 나이가 마흔은 되어 보였고 손이 흙 손이었는데, 손톱 밑에 흙이 검게 끼어 있고 손바닥이 두껍기만 하지 물에 불어 본 적이 없는 손이었다. 흙 손은 노를 잡으면 물집이 첫날 잡힌다. 끝동이 그것을 알아서 아무 말도 안 했다. 하나는 웅천에서 잡혀갔다 도망쳐 온 스물쯤 되는 사람이었다. 왜의 배 밑에서 노를 저었다고 했고, 저쪽 노는 이쪽 노와 다르다고 했다. 어떻게 다르냐고 끝동이 물으니 답을 못 했다. 다르다는 것만 알고 어떻게 다른지는 몰랐다. 배 밑에서 삼 년을 산 사람이 그랬다.

다섯이 되었다.

노를 잡았다. 흙 손과 왜의 노를 젓던 손이 여수 손 셋 사이에 끼었다. 진에 있는 날은 북이 없어서 끝동이 박자를 냈다. 하나, 둘. 노가 물을 밀었고 밀렸다. 첫날처럼 노만 밀린 것이 아니라 물이 밀렸다. 셋이 삼 년을 저은 박자에 둘이 붙는 데 한 식경이 걸렸고, 한 식경 뒤에 다섯이 한 몸이 되었다. 한 몸이 되는 것을 끝동은 세 번째로 보았다. 옥포로 가던 배에서, 한산도 날개 끝에서, 그리고 오늘 진 안에서.

돌쇠의 자리에 흙 손이 앉았고 말 없는 쪽의 자리에 왜의 노를 젓던 손이 앉았다. 자리는 그대로고 사람이 둘 바뀌었다. 세는 일은 장군이 하는 것인데 오늘은 끝동이 셌다. 장군이 적겠다고 했으니 세는 것쯤은 끝동이 해도 되었다.

흙 손이 물었다.

“군호가 있다던데.”

“용호. 용이라고 하면 호.”

“산이라고 하면.”

“수.”

“호라고 하면.”

끝동이 답하지 않았다. 답을 한 사람은 언덕에 있고, 언덕에 있는 사람의 답을 끝동이 대신 하지 않았다. 대신 하면 그 사람이 없어진다. 흙 손이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새로 온 사람의 예였다. 왜의 노를 젓던 손이 작게 말했다. 호라고 하면 적입니다. 저쪽에서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흙 손이 첫날 노를 놓고 손바닥을 보았다. 엄지 밑과 손가락 뿌리마다 물집이 하나씩 부풀어 투명하게 번들거렸다. 끝동이 순덕이 지난가을에 준 마른 소금 종이를 꺼내 반을 덜어 흙 손에게 주고, 물에 풀어 담그라고 하고, 아리다고 하면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고 나서 이상했다. 순덕의 말을, 하지 않기로 한 말을 남에게 했다. 한 번은 해도 되는 것 같았다. 흙 손이 받았고 받은 손에 물집이 있었다. 물집은 첫날 잡히고 나흘째에 터진다는 것을 끝동은 말하지 않았다. 나흘째가 되면 안다.

끝동이 왜의 노를 젓던 사람을 보았다. 배 밑에서 삼 년을 산 사람이 같은 말을 했고, 저쪽에서도 같은 말이었다. 같은 말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고 끝동은 온 것을 받았다. 받는 것이 여섯째 노의 예였다.

이튿날 순무어사가 온다는 선문이 왔다. 무엇을 살피러 오는지 끝동은 몰랐다. 살피는 사람은 살피고 젓는 사람은 젓는다. 저을 사람이 다섯이었다.

사료 · 어영담이 갑오년 4월 9일 세상을 버린 것 ― 난중일기 갑오년 4월 9일(전서본). 4월 10일 순무어사의 선문이 온 것 ― 같은 일기 4월 10일 · 그가 광양현감으로 물길을 알아 조방장이 된 것, 당항포에서 서른한 장수를 거느린 것 ― 당항포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4 · 겨울에 병사자 이백열네 구를 묻은 것 ― 난중일기 갑오년 1월 21일 · 어영담의 장례가 어디서 어떻게 치러졌는지는 사료에 없다. 언덕과 삽과 접은 손, 장군의 물음과 「적겠다」는 말, 끝동·돌쇠·말 없는 사람, 새로 온 둘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끝동의 3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3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