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6,170자) · 1594년 4월 22일~24일, 한산도에서 당항포까지

서른한 장수

이순신 · 네오

1594년 4월 22일 (음력 3월 3일) 맑음. 아침에 전문에 절한 뒤 사정에 앉았다. 경상우후 이의득이 와서 수군을 많이 잡아 오지 못한 일로 그 수사에게 곤장을 맞았고 또 발바닥을 치려 했다고 말했다. 놀랍고 놀랍다. 유시(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무렵)에 벽방(고성 거류면 벽방산) 망장이 달려와 왜선 여섯 척이 오리량(창원 진해구 앞 물목)과 당항 등지에 나뉘어 대었다고 알렸다. 곧 전령해 배를 모았다. 대군은 흉도(거제 사등면 앞 섬) 앞바다에 진을 치고 정예선 서른 척을 뽑았다.

아침에 이의득이 왔다.

경상우후는 경상우수사 밑의 버금 장수니, 원균의 아랫사람이다. 그는 사정 마루 끝에 엉거주춤 앉아 한쪽 엉덩이를 들고 있었다. 수군을 많이 잡아 오지 못했다고 수사에게 곤장을 맞았고, 그다음에는 발바닥까지 치려 했다고 말했다. 곤장은 볼기를 치고 발바닥은 걷지 못하게 친다. 걷지 못하는 우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놀랍고 놀랍다고 두 번 썼다. 지난겨울 원균의 진에서 사부와 격군이 거의 다 굶어 죽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면 수군을 잡아 와야 한다는 것이 그 진의 말이었다. 잡아 오지 못하면 우후를 친다. 우후를 친다고 수군이 오는가? 오지 않는다. 오는 것은 도망뿐이다.

유시에 벽방 망장 제한국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 왜선 여섯 척이 오리량과 당항포(고성 회화면)에 대었다고 알렸다. 당항포는 두 해 전 남무묘법연화경(법화경에 목숨을 바쳐 따른다는 일본 일련종의 염불)을 쓴 검은 기가 펄럭이던 곳이고, 층각선을 바깥으로 끌어내 불화살로 흰 꽃무늬 장막을 태운 곳이다. 거기에 다시 왜선이 왔다.

곧 전령을 돌려 배를 모았다. 대군은 흉도 앞바다에 두고, 백이 넘는 배 가운데 날랜 배 서른 척을 골랐다. 고르는 일은 세는 일과 같았다. 세는 것이 내 일이다.

*

밤에 배 위에서 서른한 장수를 불렀다.

어영담을 조방장으로 세웠다. 조방장은 대장을 도와 싸움을 거드는 장수다. 광양현감이던 그가 조방장이 되어 있었고, 물길을 아는 사람이 앞장을 맡았다. 그 아래로 좌도 열셋, 우도 열셋, 경상 아홉, 모두 서른하나였다. 뱃전마다 횃불을 꽂게 하고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다.

좌척후장 사도첨사 김완. 일령장 노천기. 이령장 조장우. 좌별도장 전첨사 배경남. 판관 이설. 좌위좌부장 녹도(고흥 도양읍 녹동)만호 송여종. 보주통장 최도전. 우척후장 여도(고흥 점암면)만호 김인영. 일령장 윤붕. 거북선 돌격장 주부 이언량.

이름이 불리면 그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갑판은 낮 동안 볕에 말라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대신 송진 타는 냄새 속에서 횃불 그림자가 판자 위에 일렁였고, 그 그림자 사이로 네,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하나씩 떨어졌다. 이름을 받는 소리였다.

우도 응양별도장 우후 이정충. 좌응양장 어란(해남 송지면 어란)만호 정담수. 정담수는 지난봄 웅포(창원 진해구 웅천 앞 포구) 앞에서 약속을 정하는 자리에 술에 취해 망발하던 사람인데, 그 사람을 오늘 좌응양장으로 불렀다. 취한 날의 그와 오늘의 그는 다른 사람이라고 내가 정했다. 우응양장 남도포만호 강응표도 불렀다. 그날 같이 마시던 사람이다.

조전통장 배윤. 전부장 해남현감 위대기. 중부장 진도군수 김만수. 좌부장 금갑도만호 이정표. 통장 곽호신. 우위중부장 강진현감 유해. 좌부장 목포만호 전희광. 우부장 주부 김남준.

그다음은 경상우도였다. 미조항첨사 김승룡. 좌유격장 남해현령 기효근. 기효근은 두 해 전 봄에 남해 성(남해읍)을 비우고 달아났던 사람인데, 그 사람도 불렀다. 우돌격도장 사량(통영 사량도)만호 이여념. 좌척후장 고성현령 조응도. 선봉장 사천현감 기직남. 우척후장 웅천현감 이운룡. 이운룡은 일곱 해 전 녹둔도(두만강 어귀, 지금은 러시아 땅)에서 나와 함께 끌려간 백성 예순 남짓을 되찾아 온 사람이다. 그가 웅천현감이 되어 오늘 우척후장으로 불렸다. 좌돌격장 평산포(남해 남면 평산리)만호 김축. 유격장 하동현감 성천유. 좌선봉장 소비포권관 이영남. 중위우부장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만호 하종해.

서른하나였다. 두 번 세었고 두 번 다 같았다.

*

부르고 나서 나는 그 이름들을 한 번 더 훑었다.

취했던 사람이 둘, 달아났던 사람이 하나, 녹둔도의 사람이 하나, 정운의 자리에 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두 해 전 옥포(거제 옥포동)에서 처음 앞장섰던 사람도 셋이었다. 서른하나 안에 그런 날들이 다 들어 있었고, 나는 그 사람들을 빠짐없이 불렀다. 취한 날은 셈에 넣지 않고 오늘만 넣었다.

원균의 이름은 거기 없었다. 그는 이억기와 함께 대군을 이끌고 흉도 앞바다에 남았다. 세 수사가 큰 배들을 거느리고 바깥에서 날개를 펴고, 서른하나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번의 그물이었다. 밖에서 막고 안에서 잡는다. 두 해 전 견내량(거제와 통영 사이 좁은 물목)에서는 안의 적을 밖으로 끌어내 잡았으니 이번에는 그물을 뒤집은 셈이다. 뒤집어도 그물은 그물이었다.

술시(저녁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에 세 도의 배가 한산도(통영 한산면) 바다를 떠났다. 어둠을 타고 몰래 나아가 이경(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거제 안쪽 지도(거제 사등면 지도) 바다에서 밤을 지냈다. 몰래 가는 배는 등불을 켜지 않는다. 불 꺼진 백여 척이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만 낮게 내며 검은 물 위에 엎드려 있었고, 뱃머리마다 찬 물보라가 얼굴에 튀었다. 그 배들은 세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셀 수가 없었다.

*

4월 23일 (3월 4일) 맑음. 진해 앞바다에 이르러 왜선 여섯 척을 쫓아 잡아 태웠다. 저도(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저도)에서 두 척을 태웠다. 소소강(고성 마암면 앞 물길)에 열네 척이 들어와 대었다고 하여 조방장과 원 수사에게 나아가 치라고 전령했다. 고성 땅 아자음포(고성 동해면)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새벽에 견내량에 전선 스무 척 남짓을 남겨 뜻밖의 일에 대비했다. 두 해 전 왜선이 버티고 있던 그 물목에, 오늘은 우리 배가 서 있었다.

나와 이억기와 원균은 대군을 거느리고 영등(거제 장목면 구영리)과 장문의 적진 앞, 증도(창원 진해구 앞 시루섬) 바다에 학익진을 벌여 바다 하나를 가로질러 막았다. 앞으로는 군사의 위엄을 보이고 뒤로는 적의 길을 끊는 진이었다. 날개를 폈지만 이번의 날개는 그물이었다. 날개 안으로 끌어들일 적은 없었고, 적은 밖에 있었다. 밖의 적이 나오지 못하게 막는 날개였다.

왜선 열 척이 진해 선창에서 나와 기슭을 따라 기어갔다. 어영담이 거느린 장수들이 한꺼번에 돌진해 좌우에서 끼고 쳤다. 여섯 척은 진해 읍전포(창원 진해구)에서, 두 척은 고성 어선포에서, 두 척은 진해 시구질포(창원 진해구)에서 배를 버리고 뭍으로 기어올랐다. 남은 배는 남김없이 깨고 태웠고, 기슭마다 검은 연기가 한참 동안 낮게 끌렸다.

송여종이 잡혀갔던 사람들을 빼앗아 왔다. 고성 정병 심거원, 진해 관비 공금, 함안 양녀 남월, 그 세 이름을 적었다. 잡혀갔던 두 사람은 왜가 목을 베어 버리고 달아났는데, 그 둘은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이름 없는 둘도 수로나마 셈에 넣었다.

당항포에 들어와 댄 왜선 스물한 척은 연기를 바라보고 기가 꺾여 뭍에 내려 진을 쳤다. 뭍의 적은 뭍의 군사가 와야 잡는다. 순변사 이빈에게 다시 재촉하는 글을 보내고, 어영담에게는 곧장 당항포로 가게 했다. 그러나 썰물이 이미 빠지고 해가 저물어 나아가 치지 못했다. 당항포 어귀를 막고 밤을 지냈다.

물이 빠졌다. 물은 사람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고 두 해 전에 어영담이 말했는데, 오늘은 그가 그 말을 다시 겪었다. 그가 어귀를 막고 서 있는 것을 나는 대군에서 바라보았다. 멀어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배만 보였다. 배가 있으면 사람도 있다.

*

4월 24일 (3월 5일) 맑음. 겸사복을 당항포로 보내 적선을 깨고 태운 것을 살피게 했다. 우조방장 어영담이 달려와 알렸다. 적의 무리가 우리 군사의 위엄을 겁내어 밤을 타 달아나고 빈 배 열일곱 척을 남김없이 태웠다고 했다. 경상수사의 보고도 같았다. 이날 아침 순변사에게도 글을 보내 치기를 재촉했다. 원 수사가 배에 왔다. 장수들이 저마다 돌아갔다. 저녁에 광양의 새 배가 들어왔다.

새벽에 나와 이억기는 큰 바다에 진을 치고 바깥의 변고에 대비했다. 어영담이 장수들을 거느리고 당항포로 곧장 들어갔다.

미시(낮 한 시에서 세 시 무렵)에 어영담의 보고가 왔다. 적은 다 달아났고, 왜선 스물한 척이 기와와 왕대를 가득 싣고 줄지어 대어 있었으며, 그것을 남김없이 깨고 태웠다고 했다.

기와와 굵은 왕대를 실었다는 대목에서 눈이 멈추었다. 기와를 실어다 성 안에 집을 올리고 왕대로 무언가를 엮는다는 것은 오래 머물겠다는 뜻이다. 두 해 전에는 재물과 소와 말을 실었는데 이번에는 기와를 실었다. 실은 것이 바뀌었고, 그 바뀐 것을 조정에 올리면 조정도 안다. 오래 있으려는 적과 돌아가려는 적은 다른 적이다.

빈 배는 열일곱 척이었다. 어제의 열 척과 저도의 두 척과 오늘의 열일곱을 더하면, 서른한 척이 서른한 장수에게 깨졌다. 그 수가 같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고, 알고도 일기에 넣지 않았다. 넣으면 우연이 우연 아닌 것이 된다.

배는 다 태웠는데 사람은 잡지 못했다. 물과 뭍이 함께 쳤어야 했는데 뭍의 군사와 거리가 멀어 기별이 빨리 통하지 못했고, 새장 안의 적을 다 잡지 못했다. 지극히 통분하다고 썼다. 지난봄 웅포 이후 오랜만에 쓰는 말이었는데, 이긴 날 그 말을 썼다. 이긴 것과 다 잡은 것은 다르다.

같은 날 수군 전체가 힘을 모아 큰 바다를 가득 메웠다. 포 소리가 하늘을 흔들었고, 배들은 동서로 진을 바꾸며 당장이라도 들이칠 듯한 모양을 보였다. 영등과 장문과 제포(창원 진해구 제덕동)와 웅천과 안골포(창원 진해구 안골동)와 가덕(부산 강서구 가덕도)과 천성(부산 강서구 천성동), 그 일곱 곳에 웅거한 적이 우리가 곧장 들이칠까 두려워했다. 저들은 복병을 숨겨 두던 막사를 스스로 다 태우고 굴 속에 움츠려 자취를 끊었다.

일곱 곳이 제 손으로 불을 놓았다. 우리가 태운 것은 서른한 척이었고 저들이 태운 것이 얼마인지는 몰랐다. 세지 못한 것은 남기지 않았다.

원균이 배에 왔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쓰지 않고 왔다는 것만 썼다. 저녁에 광양의 새 배가 들어왔다. 겨울에 짓던 배 가운데 하나로, 늑골 사이로 달이 보이던 그 배가 오늘은 새 판자를 입고 왔다. 뱃전에서 아직 대패질한 소나무 냄새가 났다. 백서른을 채웠느냐고 물으니 채웠다고 했고, 어디서 채웠는지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 사람들이 생긴다. 돌산도(여수 돌산읍)의 사람들이거나 잡혀 온 사람들이거나,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이틀에 서른한 척이었고, 앞장은 어영담이었다. 물길을 아는 사람이 물길로 들어가 서른한 척을 태웠다. 그가 앓고 있다는 것을 그때 나는 몰랐고 아무도 몰랐다. 어영담 자신은 알았을 것이다. 아는 것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의 예였다.

사료 · 3월 3일 경상우후 이의득이 수군을 많이 잡아 오지 못해 원균에게 곤장을 맞고 발바닥까지 치려 했다고 한 것, 유시에 벽방 망장이 왜선 여섯 척을 알린 것, 대군은 흉도에 두고 정예선 서른 척을 뽑은 것 ― 난중일기 갑오년 3월 3일(전서본) · 서른한 장수의 이름과 직책, 어영담을 조방장으로 세운 것, 술시 출발과 이경에 지도 바다에서 밤을 지낸 것, 견내량에 스무 척을 남긴 것, 증도 바다의 학익진으로 「바다 하나를 가로질러 앞으로 위엄을 보이고 뒤로 적의 길을 막은」 것, 왜선 열 척을 읍전포·어선포·시구질포에서 태운 것, 송여종이 심거원·공금·남월을 빼앗아 온 것, 당항포의 스물한 척, 썰물로 나아가지 못한 것, 5일 어영담이 「기와와 왕대를 가득 실은」 빈 배 열일곱 척을 태운 것, 일곱 곳의 적이 복병 가막을 스스로 태운 것, 「새장 속의 적을 다 잡지 못해 지극히 통분하다」 ― 당항포파왜병장(唐項浦破倭兵狀), 이충무공전서 권4 · 3월 4일 진해 앞바다 여섯 척, 저도 두 척, 소소강의 열네 척, 아자음포의 밤과 5일 어영담의 보고, 원균이 배에 온 것, 광양 새 배 ― 난중일기 3월 4~5일 · 기효근이 남해에서 달아났던 것 ― 부원경상도장. 이운룡이 녹둔도에서 함께 되찾아 온 것 ― 이충무공행록. 정담수·강응표가 웅포 앞에서 술을 마신 것 ― 난중일기 계사년 2월 14일 · 이름을 부르는 장면, 서른하나와 서른한 척이 같다는 셈, 광양 새 배에 대한 물음은 지어냈다. 어영담이 이 무렵 이미 앓았는지는 사료에 없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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