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5,378자) · 1594년 3월, 여수 돌산도
돌산도
이순신 · 네오
1594년 3월 (음력 2월), 여수 돌산도(여수 돌산읍)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썼으나 이 섬의 일은 적지 않았다. 영남의 피난민이 본영 경내에 흘러들어 이백여 호에 이르렀는데, 저마다 임시로 붙여 살며 겨우 겨울을 났다. 당장 구제할 밑천이 백에 하나도 없다.
순덕은 소금을 지고 바다를 건넜다.
돌산도는 여수 앞바다의 큰 섬이다. 본영과 방답(여수 돌산읍) 사이에 있어 산이 겹겹이 둘러싸고 적이 오는 길이 사방으로 막혔으며 땅이 넓고 흙이 기름지다고, 장군이 그렇게 조정에 적었다는 말을 군관에게 들었다. 그 섬에 피난민을 넣어 밭을 갈게 하고, 절반은 나라가 갖고 절반은 갈아 먹은 사람이 갖는다는 것이었다.
장생포(여수 신월동)의 이백이 겨울을 지나 돌산도로 갔다. 이백이 아니었다. 겨울 동안 줄었고 얼마나 줄었는지 순덕은 세지 않았는데, 세는 것은 장군이 하는 일이었다. 줄어든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섬으로 갔다. 갈 수 있는 사람이 갔다.
소금을 지고 그 뒤를 따랐다. 가마니 새로 소금물이 배어 나와 등에 닿은 삼베가 금세 뻣뻣해졌고, 배가 물살에 기울 때마다 짐이 한쪽 어깨로 쏠려 끈이 살을 파고들었다. 소금이 있어야 밭을 갈고, 밭을 갈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 소금이 든다. 소금 굽는 사람은 그것을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안다.
*
섬에 밭이 없었다.
밭이 될 땅은 있었다. 오래 묵어 거칠어진 땅에 돌이 많고 나무뿌리가 얽혀 있어, 밭으로 만들려면 돌을 골라내고 뿌리를 캐고 갈아엎어야 했다. 갈아엎을 소가 없었다. 소는 지난가을 적진포(고성 거류면)에서 왜가 잡아먹었고 남은 소는 여수에도 몇 마리 없었다. 사람이 소 대신 갈았다. 두 사람이 쟁기 줄을 어깨에 걸고 앞에서 끌면 한 사람이 뒤에서 자루를 눌렀는데, 몇 걸음 못 가 보습이 뿌리에 걸려 멈추면 끄는 사람들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언 흙이 녹은 자리는 신발에 무겁게 달라붙었다.
억만이 있었다. 동래(부산 동래구) 아이, 머리가 조금 더 자라 열넷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돌을 골라 밭 가장자리에 쌓았고 쌓은 돌이 담이 되었다. 담 안이 밭이 된다는 것을 아이가 알았는지 순덕은 몰랐다. 알든 모르든 골랐다.
“밥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반입니다.”
“반이라니.”
“하루에 반. 아침에 먹고 저녁에 안 먹습니다. 봄이 되면 온다고 했습니다.”
봄이 되면 온다는 말을 누가 했는지 순덕은 몰랐다. 군관이 했을 것이고, 군관은 장군이 한 말을 옮기고, 장군은 조정이 한 말을 옮긴다. 조정이 봄에 무엇을 보낼지 순덕은 몰랐다. 봄에 오는 것은 봄뿐이다. 그것을 아이에게 말하지 않고 대신 소금을 한 줌 쥐여 주었다. 두 번째였다. 지난번 것을 다 썼느냐고 물으니 다 썼다고 했고, 무엇에 썼느냐고 물으니 답을 못 했다. 아이는 그 소금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
역병이 돌았다.
겨울 끝이었다.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 시작해 여수로 왔다고 했는데, 한산도에서 이백열네 구를 묻었다고 끝동이 말했다. 끝동은 살아 있었다. 그 배에서 몇이 죽었는지 끝동은 말하지 않았다. 여섯째 노에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 몇인지 순덕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남매의 예였다.
돌산도에도 왔다. 거적을 이어 댄 움막 안은 낮에도 어두웠고, 앓는 사람의 더운 숨과 젖은 짚 냄새가 뒤섞여 들어서면 목이 먼저 막혔다. 밤이면 움막 여기저기서 물 달라는 소리가 번갈아 났다. 밭을 갈던 사람이 누우면 사흘이었다. 사흘째에 열이 오르고 나흘째에 없었고, 없는 사람을 섬 뒤편에 묻으면 묻는 사람이 다음 날 누웠다. 그렇게 갔다.
순덕은 소금을 풀었다.
소금물로 손을 씻고 입을 헹구게 했다. 그것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몰랐다. 소금 굽는 사람이 아는 것은 소금이 썩는 것을 막는다는 것뿐이고, 사람이 썩는 것도 막는지는 몰랐다. 모르는 채로 풀었다. 갈라 터진 손마다 짠물이 스며 사람들이 이를 악물었고, 헹군 물을 뱉은 자리의 흙이 하얗게 말랐다.
김숙련의 아내가 왔다. 지난가을 남편의 시신 옆에 소금 종이를 놓았던 사람이 아이 둘을 데리고 돌산도에 밭을 갈러 왔다. 사공의 아내가 밭을 갈고, 바다에서 살던 사람이 흙을 판다.
“소금 굽는 사람 말이 그렇지.”
아내가 그 말을 또 했다. 지난가을에는 웃으며 한 말을 이번에는 웃지 않고 했고, 웃지 않고 하니 다른 말이 되었다. 순덕은 그 말을 받고 소금물을 나누어 주었다. 열이 넘은 큰아이가 받았다. 작은아이는 없었다. 순덕은 묻지 않았다. 없는 것을 세지 않는 것도 예였다.
*
봄이 왔다.
봄에 온 것은 봄이었고 조정에서 온 것은 종이였다. 종이에 둔전이 허락되었다고 적혀 있었지만 허락은 쌀이 아니다. 대신 씨앗이 본영 창고에서 나왔다. 장군이 영의 둔전 스무 섬지기를 늙고 병든 군사에게 갈게 해서 거둔 벼 오백 섬을 씨앗으로 두었다고 했고, 그 씨앗이 돌산도에 왔다.
돌을 골라낸 담 안의 땅에 씨앗을 뿌렸다. 억만이 뿌리고 김숙련의 큰아이가 뿌리고 순덕도 뿌렸다. 볍씨는 창고에서 겨울을 나며 묵은 냄새를 품고 있었고, 손바닥에 쥐면 까끄라기가 살갗을 따끔하게 찔렀다. 소금 굽는 사람이 씨를 뿌리니 손이 달랐다. 소금은 긁어 모으고 씨는 흩어 뿌린다. 같은 손이 모으다가 뿌린다.
뿌린 것이 나는 데 열흘이 걸렸고 열흘 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다. 순덕은 세지 않는 사람인데 아무도 안 죽은 그 열흘은 세었다. 역병이 그친 것인지 죽을 사람이 다 죽은 것인지 몰랐다. 몰라도 열흘은 열흘이었다.
*
밤에 억만이 바다 쪽에 앉아 있었다.
낮에 자기가 쌓은 돌담 위였다. 그 위에 앉아 동쪽을 보고 있었는데, 동쪽에 동래가 있고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이는 것을 보는 얼굴이었다. 순덕은 그 옆에 앉지 않았다. 옆에 앉으면 물어야 하니 조금 떨어져 앉았다. 낮의 볕을 먹은 돌이 아직 미지근했고, 바다 쪽에서 올라오는 바람에는 갯벌이 드러난 뒤의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이가 먼저 말했다.
“형이 있었습니다.”
“동래에.”
“성이 떨어지던 날 잃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면 산 것으로 칩니다. 그렇게 치기로 했습니다.”
모르면 산 것으로 친다. 순덕은 그 말을 받았다. 어제까지 산 사람은 오늘도 산 것으로 치는 자기 셈과 같았는데, 열넷이 그 셈을 혼자 정했다.
“밭이 되면 형이 옵니까?”
“밭이 되면 밥이 된다. 밥이 되면 배가 뜬다. 배가 뜨면 동래까지 간다고 하더라. 장군이.”
“동래까지 가면.”
“가서 찾는다고는 안 하더라.”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무엇을 알겠다는 것인지 순덕은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 형이 생긴다. 이 담 위에 그 형이 생기면 안 된다.
아이가 낮에 받은 소금 종이를 꺼냈다. 아직 안 먹은 것이었다. 순덕이 그것을 보고 먹으라고도 먹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더니, 아이가 종이를 도로 넣었다. 오늘은 안 먹고, 내일 밥이 반이면 먹을 것이다.
*
군관이 왔다.
배에서 내린 그의 바짓가랑이가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 한산도에서 장군의 말을 가지고 온 사람이었다. 돌산도 사람들이 가꾼 것의 절반은 나라 몫이고, 나라 몫이 군량이 된다. 군량이 되면 배가 뜨고, 배가 뜨면 적이 못 오고, 적이 못 오면 여기 밭이 남는다. 그것이 절반의 까닭이라고 했다.
순덕은 그 말을 들었다. 갈아 먹은 사람이 절반, 나라가 절반인데, 갈아 먹은 사람이 다 죽고 나라만 남으면 절반은 누가 갖는가. 그것을 묻지 않았다. 물으면 군관이 곤란해진다. 군관은 말을 옮기는 사람이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장군은 어떠십니까?”
“앓으십니다.”
“무슨 병.”
“모릅니다. 봄부터 앓으십니다. 그래도 사정에 나오십니다. 활을 쏘십니다.”
앓으면서 활을 쏜다. 아파도 소금을 굽는 것과 같다고 순덕은 생각했다. 굽지 않으면 소금이 없는데, 쏘지 않으면 무엇이 없는지는 몰랐다.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군관이 소금을 얼마나 구웠느냐고 물어 두 가마라고 했고, 나무가 왔느냐고 물어 왔다고 했다. 배 짓고 남은 것이 아니라 돌산도 나무였다. 밭을 만들며 캐낸 뿌리와 벤 나무를 땠으니, 밭이 되는 땅에서 나온 것으로 소금을 구웠다. 같은 섬에서 씨와 소금이 나왔다.
*
김숙련의 아내가 담 위의 소금 종이를 보았다.
억만이 밭으로 가면서 담 위에 두고 간 것이었다. 아내가 그것을 집어 순덕에게 가져왔고, 아이 것이라고 순덕이 말하니 도로 담 위에 놓았다. 놓으면서 말했다. 우리 작은애도 소금을 먹었네. 겨울에, 밥 대신에, 그러다 갔네. 그 말을 하고 밭으로 갔다. 밭으로 가는 등을 순덕은 보았다. 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금이 밥 대신이 되는 겨울이 있었다는 것을 소금 굽는 사람은 몰랐던 것이 아니다. 굽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구웠다. 다음 겨울에는 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 밭이 되어야 한다. 셈이 맞는지는 가을이 되어야 안다.
*
저녁에 바다를 보았다.
돌산도에서 보면 한산도는 멀어서 안 보인다. 그 먼 데에 배가 백이 넘게 있고 그 배에 여섯째 노의 셋째 끝동이 있다고 했다. 오늘도 살아 있는지는 몰랐지만 어제까지는 살아 있었다. 어제까지 산 사람은 오늘도 살아 있다고 여기는 것이 누이의 셈이었다.
해가 넘어가자 섬 뒤편 산그늘이 먼저 밭으로 내려왔고, 물 빠진 갯바위에서 따개비 사이로 바닷물이 새는 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밭에서 싹이 올라와 있었다. 열흘째, 푸른 것이 담 안에 줄지어 있었는데 세지 않았다. 세면 하나가 안 난 자리가 보인다. 안 난 자리는 안 보는 것이 좋았다.
소금 가마에 불을 넣었다. 생나무 뿌리가 타면서 매운 연기가 눈을 찔렀고, 가마 속 바닷물이 끓어오르며 짠 김이 얼굴에 끼쳤다. 졸아든 자리에 흰 것이 남으면 긁어 모을 것이다. 절반은 나라 몫이다. 소금도 그런지 순덕은 몰랐고, 아직 아무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료 · 영남 피난민이 본영 경내에 이백여 호 흘러들어 겨우 겨울을 났고 구제할 밑천이 없는 것, 돌산도가 본영과 방답 사이에 있어 산이 겹겹이고 적이 오는 길이 사방으로 막혔으며 땅이 넓고 기름지다는 것, 피난민을 들여 봄에 밭을 갈게 하려 한 것, 목장이라 마정에 방해된다고 막혔던 것 ― 청령유민입접돌산도경종장(請令流民入接突山島耕種狀), 이충무공전서 권3 · 순천·흥양의 유방군을 농군으로 쓰고 피난민에게 갈게 하여 절반을 나라가 거두는 것, 영의 둔전 스무 섬지기를 늙고 병든 군사에게 갈게 해 정조 오백 섬을 거두어 씨앗으로 둔 것 ― 청설둔전장(請設屯田狀) · 한산도에서 병사자 이백열네 구를 묻은 것 ― 난중일기 갑오년 1월 21일. 이 무렵 이순신이 봄부터 앓으며 사정에 나가 활을 쏜 것 ― 난중일기 갑오년 3월 · 돌산도에서 실제로 밭을 간 사람이 누구였고 몇이 죽었는지는 사료에 없다. 순덕·끝동·억만·김숙련의 아내와 아이, 소금물, 열흘, 돌담, 억만의 형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순덕의 3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이 무렵 일기는 있으나 돌산도의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