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5,747자) · 1593년 9월 10일~10월 9일, 한산도

통제사

이순신 · 네오

1593년 9월 10일 (음력 8월 15일) 맑음. 이날이 추석이다. 우수백, 충청수백, 순천, 광양, 낙안(순천 낙안면), 방답(여수 돌산읍), 사도(고흥 영남면), 흥양(고흥), 녹도(고흥 도양읍 녹동), 이응화, 이홍명, 좌우 도령공이 함께 모여 이야기했다. 저녁에 회가 본영으로 갔다.

추석에 다 모였다.

이억기와 정걸과 권준과 어영담과 신호와 방답첨사와 김완과 배흥립과 녹도의 새 만호와 이응화와 이홍명, 모두 열둘이었다. 나는 그 열둘을 세었다. 열둘이 한산도(통영 한산면) 배 위에 둘러앉았고, 뱃전 아래로 물이 느리게 밀렸다 빠지는 소리가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누가 구워 온 전어 냄새가 선창 가득 번져서, 싸움 이야기를 하던 입들이 잠깐씩 멎었다.

지난해 추석에는 세지 않았다. 그때는 부산으로 가기 전이었고 정운이 살아 있었는데, 오늘은 정운이 앉던 자리에 녹도의 새 만호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자리는 그대로인데 사람이 바뀌었다. 나는 그 바뀐 것까지 셈에 넣었다.

원균은 오지 않았다. 병이 났다는 기별도 없이 그냥 오지 않았다. 일기에는 안 온 사람을 쓰지 않고 온 사람만 이름을 늘어놓았는데, 온 사람의 이름이 길어질수록 빠진 한 사람이 도드라졌다. 읽는 사람은 그 빈자리를 본다.

저녁에 둘째 아들 회가 본영으로 갔다. 이 진에 와 있다가 여수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들이 탄 배가 붉게 식어 가는 저녁 물빛 속으로 점점 작아지는 것을, 나는 뱃전 난간을 쥔 채 오래 보았다. 일기에는 회가 본영으로 갔다는 한 줄만 남겼다. 그 한 줄 안에 오래 본 것이 들어 있는지는 읽는 사람이 모르고, 나만 안다.

*

9월 14일 (8월 19일) 맑음. 아침을 먹은 뒤 원 수사가 있는 데로 가서 내 배로 옮겨 타기를 청했다. 우수백과 정 수사도 왔다. 원연도 함께 이야기했다. 원공 형제가 옮겨 간 뒤에 서로 진에 이르렀다. 우수사, 정 수사와 함께 앉아 자세히 이야기했다.

원균에게 갔다.

그의 배로 내가 건너갔다. 뱃전 너머로 소리쳐 부르지 않고, 두 배 사이에 걸친 널판을 밟고 건너가서 아침 이슬에 미끄러운 갑판 위에 섰다. 널판이 발밑에서 두 번 휘청였다. 그리고 청했다. 내 배로 옮겨 타 주십시오. 함께 이야기합시다.

왜 청했는지는 일기에 쓰지 않았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조정에서 곧 종이 한 장이 내려온다는 기별이 있었고, 나는 그 종이가 진에 닿기 전에 먼저 청하고 싶었다. 종이가 온 뒤에 청하면 종이 때문에 청한 것이 되고, 오기 전에 청하면 그냥 청한 것이 된다. 그가 그 차이를 알아챘는지는 모른다. 아마 알았을 것이다. 그는 종이의 앞뒤를 읽는 사람이다.

그가 동생 원연을 데리고 왔고 이억기와 정걸도 와서 다섯이 한자리에 앉았다.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남기지 않았다. 원공 형제가 옮겨 간 뒤에 우수사, 정 수사와 자세히 이야기했다고만 적었다. 형제가 있는 동안에는 자세한 이야기가 없었다.

*

9월 21일 (8월 26일) 비 오다 개다 함. 원 수사가 왔다. 얼마 뒤 우수사와 정 수사가 함께 모였다. 순천과 광양과 가리포(완도)는 곧 돌아갔다. 흥양이 와서 신 것을 대접했다. 원공이 술을 마시려 해서 조금 대접했더니 진흙처럼 취해 망발했다. 우습다. 낙안이 보내온 수길이 황제에게 올린 글을 보았다.

종이가 왔다.

교서였다. 비에 젖지 않게 기름종이로 두 겹 싼 것을 풀자 먹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임금의 글이 나왔다. 왕은 이르노라로 시작했고, 삼군을 맡기는 것은 사서에서 수레바퀴를 미는 무거움이라 했다는 말로 첫머리를 열었다. 그다음이 이렇게 이어졌다. 경은 한 생을 괴로운 절개로 만리장성이 되어 남은 군사를 모아 전라와 경상의 요해에서 강한 적을 맞아 쳐 한산과 당항의 기이한 공을 아뢰었다. 그런데 병가가 깊이 미워하는 것은 통어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저마다 형편을 차지하고 서로 관섭하지 못해 나중에 와서 먼저 달아나는 것을 면치 못했다. 이제 경에게 본직으로 전라·충청·경상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한다. 곤수 이하 명을 안 따르는 자는 경이 군법으로 시행하라.

삼도수군통제사, 그 여섯 자를 나는 종이 위에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세 도의 수사가 서로 다스리지 못해 뒤에 와서 먼저 달아난다는 것이 조정이 본 그림이었다. 뒤에 와서 먼저 달아난 사람이 누구인지 종이는 이름을 대지 않았다. 대지 않아도 원균이 이 종이를 읽으면 그것이 자기라는 것을 알 것이다.

곤수 이하 명을 안 따르는 자는 군법으로 시행하라. 곤수는 한 도의 수군을 맡은 수사다. 원균은 수사니, 원균이 명을 따르지 않으면 내가 군법으로 다스리라는 말이었다. 그 줄은 조정이 썼는데 무게는 내 손으로 넘어왔다. 나는 그것을 받았고, 받기로 한 것도 나였다.

종이가 온 뒤에 원균이 와서 앉았다. 흥양현감 배흥립이 신 것을 내놓자 모두 얼굴을 찡그리며 한 점씩 집었다. 원균이 술을 찾기에 조금 대접했더니, 그는 잔을 거푸 비우고 진흙처럼 취해 망발했다.

무슨 망발인지는 쓰지 않고 우습다고만 썼다. 지난봄에는 흉하고 험하다고 썼고 지난달에는 흉하고 간사하다고 썼는데, 오늘은 우습다였다. 세 계절에 세 마디가 험한 데서 간사한 데로, 간사한 데서 우스운 데로 내려왔다. 우스운 자리가 가장 낮고, 나는 그를 거기에 두었다.

취한 사람의 말은 종이에 옮기지 않는다. 옮기면 술이 종이 안에서 산다. 대신 낙안이 보내온 글을 읽었는데, 풍신수길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이었다. 원균은 뱃바닥에 모로 누워 코를 골았고, 그 곁에서 나는 태합의 글을 한 줄씩 짚어 내려갔다. 비가 그쳤다가 다시 뜸 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코 고는 소리와 빗소리와 적장의 글이 한 배 위에 같이 있었다.

*

9월 25일 (8월 30일) 맑음. 원 수사가 왔다. 영등(거제 장목면 구영리)으로 가라고 독촉했다. 흉하다 할 만하다. 그가 거느린 스물다섯 척은 다 내보내고 홀로 일고여덟 척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 마음 씀과 일하는 것이 다 이런 식이다.

원균이 영등으로 가라고 했다.

영등포의 적을 치러 지금 당장 가자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먼저 가자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여름 내내 뒤에 처져 있던 사람이 앞장서겠다고 하니, 나는 대답보다 먼저 그의 배부터 세었다. 스물다섯 척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일고여덟 척이 떠 있었고, 나머지를 어디로 보냈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군량을 구하러, 사람을 모으러 고을로 보냈을 것이다. 배가 없는 사람이 배가 있는 사람더러 가라고 재촉했다.

흉하다 할 만하다고 썼다. 우습다 다음에 흉하다니 자리가 도로 올라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스운 것과 흉한 것은 같은 사람 안에 함께 있었고, 나는 그 둘을 날을 달리해 따로 썼을 뿐이다.

통제사 교서가 온 지 나흘이었다.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리라는 줄이 손에 있었지만 꺼내 쓰지 않았다. 종이 위에서 그 사람을 죽이면 배 위에서도 죽이게 된다. 그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그 마음 씀과 일하는 것이 다 이런 식이라고 쓰고 붓을 놓았다. 붓이 벼루 가장자리에 부딪혀 작게 딱 소리를 냈다. 놓을 때 손이 떨렸는지는 모르겠다. 종이는 손을 남기지 않는다.

*

9월 28일 (9월 3일) 맑음. 아침에 조카 봉이 들어왔다. 어머니가 평안하신 것을 알았다. 또 본영의 일을 들었다. 순찰사의 관문이 왔다. 모든 군사의 일족은 일절 침해하지 말라고 했다. 새로 와서 살피지 못한 것이다.

일족을 침해하지 말라는 관문이 또 왔다.

새로 부임한 순찰사가 보낸 공문이었다. 도망한 군사의 빈자리를 그 일가붙이에게 채우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겨울 조정에 그 금령을 잠시 멈추어 달라고 청했더니 체찰사가 두 가지에 다 편한 길을 찾으라고 답했고, 나는 찾는 시늉만 했다. 이제 새 순찰사가 와서 같은 말을 또 했다. 새로 와서 살피지 못한 것이라고 썼다. 살피지 못한 사람에게 살피게 하는 것도 내 일이니 같은 글을 한 번 더 써야 한다.

조카 봉이 와서 어머니가 평안하시다고 전했다. 먼 길에 해진 짚신을 벗으며 한 첫마디가 그 말이었다. 그 말이 공문보다 먼저 닿았다. 사람이 종이보다 빠른 날이 있다.

*

10월 9일 (9월 14일) 맑음. 정철총통이 싸움에 제일 긴요한데 우리나라 사람이 그 만드는 묘법을 자세히 몰랐다. 이제 백방으로 궁리해 만들어 냈다. 조총이 왜의 총보다 제일 묘하다. 명나라 사람이 진에 와서 시험해 쏘고 좋다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그 묘법을 얻었다.

총을 만들었다.

정철총통은 쇠를 두드려 만든 총이다. 왜의 조총과 같은 것, 열넉 달 동안 판자에 탕탕 박히던 그 소리를 내는 물건인데 우리나라 사람은 만드는 법을 몰랐다. 백방으로 궁리했다. 대장장이를 불러 왜의 총을 뜯고 다시 붙였고, 붙인 것이 안 되면 다시 뜯었다. 그동안 대장간의 숯 냄새와 비릿한 쇳내가 옷에 배어서 저녁마다 물가에 나가 소매를 털었다. 몇 번을 뜯었는지는 세지 않았다. 세면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러다 마침내 되었다. 우리 조총이 왜의 조총보다 묘했다. 명나라 사람들이 진에 와서 어깨에 대고 쏘아 보더니, 매운 화약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좋다고 소리쳤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말을 일기에 옮기다가 칭찬을 쓰는 것이 참 오랜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분하다와 흉하다와 우습다와 다행이다 사이에 칭찬이 하나 끼어들었다.

그 총을 만드는 법과 함께 조정에 올렸다. 조정이 각 도에 그것을 만들게 할지는 모른다. 만들면 뭍의 군사도 총을 쏘고, 뭍의 군사가 총을 쏘면 진주 같은 데서 성이 덜 떨어진다. 그 생각까지는 일기에 넣지 않았다. 넣으면 진주가 종이 안에 다시 생긴다.

통제사가 된 지 한 달이었다. 한 달 동안 한 일이 총 하나였다. 배는 늘지 않았고, 원균은 그대로였고, 일족 관문은 또 왔다. 그래도 늘어난 것은 늘어난 것이어서, 나는 그 총 하나를 셈에 넣었다.

사료 · 8월 15일 추석에 우수백·충청수백·순천·광양·낙안·방답·사도·흥양·녹도·이응화·이홍명·좌우 도령공이 모인 것과 회가 본영으로 간 것 ― 난중일기 계사년 8월 15일(전서본) · 8월 19일 원균에게 가서 내 배로 옮겨 타기를 청한 것, 원연과 함께 온 것, 형제가 간 뒤에 우수사·정 수사와 자세히 이야기한 것 ― 난중일기 8월 19일 · 「삼도의 수사가 서로 관섭하지 못해 뒤에 와서 먼저 달아나는 것을 면치 못했다, 본직으로 전라·충청·경상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한다, 곤수 이하 명을 안 따르는 자는 군법으로 시행하라」 ― 수삼도통제사 교서(授三道統制使敎書), 이충무공전서 권수. 행록은 「8월에 조정이 삼도 수사가 서로 통섭하지 못하니 주장이 있어야 한다 하여 공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했다」고 적는다. 교서가 진에 닿은 날은 일기에 없어 8월 26일 앞으로 잡았다 · 8월 26일 원균이 술을 마시고 「진흙처럼 취해 망발했다, 우습다」, 낙안이 보내온 수길이 황제에게 올린 글을 본 것 ― 난중일기 8월 26일 · 8월 30일 원균이 영등으로 가자고 독촉하며 「거느린 스물다섯 척은 다 내보내고 홀로 일고여덟 척으로 이렇게 말한다」, 「흉하다 할 만하다」 ― 난중일기 8월 30일 · 9월 3일 조카 봉이 와서 어머니의 평안을 알린 것, 순찰사의 「일족 일절 물침」 관문과 「새로 와서 살피지 못한 것」 ― 난중일기 9월 3일 · 9월 14일 정철총통을 백방으로 궁리해 만들어 명나라 사람이 시험해 쏘고 칭찬한 것 ― 난중일기 9월 14일. 봉진화포장(封進火砲狀)에 그 총을 올린 일이 있다 · 종이가 오기 전에 청했다는 셈, 원균의 자리를 세 마디로 센 것, 총을 뜯고 붙인 횟수, 통제사 한 달의 셈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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