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7,902자) · 1593년 2월~4월, 안주에서 파주까지

평양

이순신 · 네오

1593년 2월 8일 (음력 1월 8일), 평양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나아가 평양을 에워싸고 보통문과 칠성문을 쳤다. 적이 성 위에 올라 붉고 흰 기를 늘어세우고 막아 싸웠다. 명나라 군사가 대포와 불화살로 치니 포 소리가 땅을 흔들어 수십 리 사이 산악이 다 움직였다.

류성룡은 소매에서 지도를 꺼냈다.

안주(평안남도 안주)성 동헌이었다. 명나라 제독(원군을 거느린 총대장) 이여송이 그와 마주 앉아 있었다. 동헌 마루에 의자 둘을 놓고 마주 앉았는데, 조선 재상과 명나라 제독이 의자에 대등하게 앉는 것이 어떤 뜻인지 류성룡은 알고 앉았다. 화로의 숯이 빨갛게 달아 있었지만 마루 밑에서 올라오는 한겨울 냉기는 발끝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지도를 펴고 평양의 성과 문, 강과 길을 손가락으로 짚어 나갔다. 어느 길로 들어가야 하는지를 짚을 때마다 제독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제독이 붉은 붓을 들어, 류성룡의 손가락이 멈추는 자리마다 점을 찍었다. 보통문과 칠성문과 함구문에 붉은 점이 하나씩 늘었다. 류성룡은 저도 모르게 그 점을 세고 있었다. 남쪽 바다에서 올라오는 장계를 읽다가 옮은 버릇이었다.

제독이 말했다.

“왜는 조총만 믿는다. 우리는 대포를 쓴다. 대포는 다 오륙 리를 간다. 적이 어찌 당하겠는가?”

류성룡은 답하지 않았다. 대포 이야기라면 남쪽 장계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배 위에서 쏜다고 했다. 그 소리가 이제 뭍으로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뭍의 대포와 바다의 대포가 같은 물건인지는 몰랐지만, 소리는 같을 것이었다.

물러나오는데 제독이 부채에 시를 써서 보냈다. 군사를 이끌고 밤에 강을 건넌 것은 삼한의 나라가 편치 못하다고 해서이고, 밝은 임금이 날마다 깃발을 기다리니 미천한 신하가 밤에 술잔을 놓았다는 시였다. 류성룡은 먹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부채를 받아 천천히 접었다. 시는 접을 수 있었다. 대포는 접히지 않는다.

*

해가 바뀌어 정월 초하루가 되었다.

제독이 부총병 사대수를 순안(평양 순안구)으로 먼저 보내 왜에게 거짓말을 흘리게 했다. 명나라 조정이 이미 강화를 허락했고 심유경이 곧 온다는 말이었다. 왜는 그 말에 기뻐했다. 승려 겐소는 시를 지어 바쳤다. 부상(일본을 이르는 말)이 싸움을 그치고 중화에 복종하니 사해구주가 한집이라는 시였다.

한집이라는 그 시를 류성룡은 뒤에 보았다. 다 읽고 나서 그는 한동안 그 두 글자에 눈을 두었다가 종이를 접었다.

왜는 작은 장수 다이라노 요시칸에게 스무 명 남짓을 딸려 순안으로 심유경을 맞으러 보냈다. 사대수는 그들에게 술을 먹였다. 잔이 몇 순배 돌았을 때 복병이 일어나 요시칸을 사로잡고 따라온 왜를 거의 다 베었다. 셋이 빠져나가 얼어붙은 들을 가로질러 적진으로 달렸다. 그제야 적은 명나라 군사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강화를 미끼로 불러내어 벤 싸움이었다. 류성룡은 뒤에 그 일을 징비록에 속였다고 그대로 적었다. 옳았는지 글렀는지는 한 줄도 덧붙이지 않았다. 남쪽 바다의 그 사람은 물러가는 척해 적을 끌어냈다고 했다. 여기서는 강화하는 척해 끌어냈다. 끌어낸 것은 같았고, 무엇인 척했는지가 달랐다.

큰 군사가 숙천(평안남도 숙천)에 이르렀다. 날이 저물어 막 진을 치고 가마솥에 불을 넣을 무렵 순안의 보고가 들어왔다. 제독이 활을 당겨 시위를 한 번 울렸다. 팽팽한 시위 소리가 언 공기를 가르자 밥 짓던 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제독은 곧 몇 기만 거느리고 순안으로 말을 달렸고, 진들이 잇달아 그 뒤를 따랐다.

*

이튿날 아침 명나라 군사가 평양을 에워쌌다.

보통문과 칠성문을 쳤다. 적이 성 위에 올라 붉고 흰 기를 늘어세우고 막았다. 그 기를 류성룡은 남쪽 장계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옥포(거제 옥포동)에서는 붉은 기였고 사천에서는 흰 기였다고 했다. 평양 성 위에는 두 빛깔이 함께 펄럭였다.

명나라 군사가 대포와 불화살을 쏘았다. 포 소리가 땅을 흔들어 수십 리 사이의 산악이 다 움직였고, 불화살은 하늘에 베를 짜듯 줄을 그으며 퍼졌다.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성 안에 떨어진 불화살이 곳곳에 불을 놓아 마른 나무가 모두 탔고, 매운 연기가 얼어붙은 강 위까지 흘러내렸다.

낙상지와 오유충이 친병을 이끌고 개미처럼 성벽에 붙어 올라갔다. 앞사람이 떨어지면 뒷사람이 그 자리를 짚고 올랐고, 물러나는 자가 없었다. 성가퀴에는 적의 칼과 창이 고슴도치 털처럼 드리워 있었다. 명나라 군사가 더 힘써 싸우자 적이 버티지 못하고 안성(성 안의 작은 성)으로 물러났다. 베이고 불에 타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명나라 군사가 성에 들어가 안성을 쳤다. 적은 성 위에 흙벽을 쌓고 구멍을 벌집처럼 뚫어 두었다. 그 구멍마다 총알이 어지러이 튀어나와 명나라 군사가 많이 다쳤다. 제독은 궁지에 몰린 적이 죽기로 덤빌 것을 걱정해 군사를 성 밖으로 거두고, 적이 달아날 길을 열어 주었다.

류성룡은 그 소식을 안주에서 들었다. 들은 뒤 그는 등잔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남쪽 바다의 그 사람은 당항포(고성 회화면)에서 한쪽을 열어 적을 끌어냈다고 했다. 여기서는 한쪽을 열어 적을 보냈다. 같은 여는 수가 한쪽에서는 그물이 되고 한쪽에서는 문이 되었다.

그날 밤 적이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 달아났다.

류성룡은 미리 황해도 방어사 이시언과 김경로에게 은밀히 일러 두었다. 적이 돌아가는 길목에 두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적이 지나가면 뒤를 밟으라고 했다. 굶주리고 지쳐 싸울 뜻이 없는 적이니 다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이시언은 왔으나 김경로는 오지 않았다. 적의 무리는 얼어붙은 길을 따라 남으로 흘러갔다. 김경로가 오지 않은 일을 류성룡은 오래 곱씹었다.

*

명나라 군사가 평양을 되찾았다.

류성룡은 그 일을 크게 적지 않았다. 크게 적을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가 오래 붓을 댄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제독이 남으로 가면서 그에게 말했다. 대군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앞길에 군량이 없다고 한다, 의정은 대신이니 나라 일을 생각해 수고를 꺼리지 말고 급히 군량을 준비하라.

이번에 그에게 떨어진 것은 군량이었다. 남쪽 장계를 읽으며 그는 배를 세는 사람이 먹일 입도 함께 센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 일이 그에게 왔다. 배 대신 말이었고, 격군 대신 명나라 군사였다.

그는 밤을 도와 중화를 지나 황주(황해북도 황주)에 이르렀다. 삼경(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무렵)이었다. 적이 막 물러간 길이라 가는 곳마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고, 불에 탄 집의 서까래가 어둠 속에 검게 드러나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빈 마을 사이에서 되울렸다. 사람 없는 데서 군량을 내야 했다.

그는 황해감사 류영경에게 곡식을 급히 옮기라고 글을 보냈다. 평안감사 이원익에게는 싸움에 나가지 못하는 군사를 시켜 평양에서 짐을 지고 뒤따르게 하라고 글을 보냈다. 평안도 세 고을의 곡식은 청룡포에서 배에 실어 황해도로 나르게 했다. 미리 마련한 일이 아니라 갑자기 몰아쳐서 하는 일이었다. 대군이 뒤따라오는데 군량이 끊길까 봐 그는 마음을 졸이고 애를 태웠다. 먹이 얼어 붓끝이 자꾸 갈라졌고, 그는 입김으로 붓을 녹여 가며 글을 이었다.

류영경이 곡식을 꽤 쌓아 두고 있었다. 적이 무서워 산골짜기 여기저기에 흩어 숨겨 둔 것이었다. 백성을 독려해 그것을 길가로 날랐고, 군량은 끊어지지 않았다.

곡식을 진 것은 백성이었다. 류성룡은 안주에서 밥을 이고 가다 얼음길에 미끄러지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런 여자가 황해도의 길에도 있었다. 이름은 몰랐고, 이름을 몰라서 그 여자는 길 위의 모든 사람이었다.

*

정월 스무나흘에 적이 한양 백성을 다 죽였다.

평양에서 진 것을 분하게 여기고, 우리 백성이 안에서 호응할까 의심해서였다. 적은 한양 안의 백성을 다 죽이고 집을 다 태웠다. 서쪽 길에 늘어서 있던 적이 모두 한양으로 모여 명나라 군사를 막을 계책을 세웠다.

류성룡은 제독에게 빨리 나아가자고 잇달아 청했다. 제독은 며칠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파주에 이르렀다.

이튿날 부총병 사대수가 우리 장수 고언백과 수백 명을 거느리고 먼저 나가 살피다가, 벽제역 남쪽 여석령에서 적을 만나 백여 급을 베었다. 제독은 그 소식을 듣자 대군을 남겨 둔 채 집안 종 천여 기만 거느리고 달려갔다. 혜음령(고양과 파주 사이 고개)을 넘다가 말이 넘어져 땅에 떨어졌고, 아랫사람들이 붙들어 일으켰다. 그때 적은 큰 무리를 여석령 뒤에 숨기고 고개 위에는 수백만 두고 있었다. 제독이 그것을 바라보고 군사를 두 날개로 나누어 나아갔다.

두 날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류성룡은 남쪽 장계를 떠올렸다.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 그 사람이 바다 위에 편 날개였다. 그것이 여석령 아래에서 다시 펴졌다. 그런데 산 뒤에서 적 만여 명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명나라 군사가 그것을 바라보고 겁을 먹었지만 이미 칼을 맞대어 물러설 수 없었다. 제독이 거느린 것은 모두 북쪽 기병이어서, 화기가 없고 짧고 무딘 칼뿐이었다. 적은 보병이었고 칼이 모두 서너 자로 날카롭기 비할 데 없었다. 적이 좌우로 휘둘러 치니 사람과 말이 함께 쓰러져 당할 자가 없었다.

날개를 펴도 날개 안에 든 칼이 짧으면 소용이 없었다. 남쪽 사람의 날개 안에는 대포가 있었다. 여석령의 날개 안에는 짧은 칼이 있었다. 류성룡은 그날 그것을 배웠다.

제독이 뒷군을 불렀으나 뒷군이 닿기 전에 앞군이 무너졌다. 죽고 다친 자가 매우 많았다. 날이 저물어 제독은 파주로 돌아왔다. 진 것을 숨겼지만 기운은 몹시 꺾여 있었다. 그날 밤 제독이 아끼던 종의 죽음을 두고 통곡하는 소리가 장막 밖까지 새어 나왔다.

*

이튿날 제독이 동파로 물러나려 했다.

류성룡이 우의정 유홍과 도원수 김명원과 순변사 이빈과 함께 장막 아래로 갔다. 제독이 장막 밖으로 나와 섰고 장수들이 그 좌우에 늘어섰다. 비에 젖은 땅이 질척거려 신발 속까지 차가운 흙물이 스며들었다. 류성룡이 힘써 다투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늘 있는 일입니다. 형세를 보아 다시 나가야지 어찌 가볍게 움직이십니까?”

“우리 군사가 어제 적을 많이 죽였다. 불리한 것이 없다. 다만 이 땅이 비를 겪어 진창이라 군사를 두기 불편하다. 그래서 동파로 돌아가 군사를 쉬게 하고 나아가려는 것이다.”

류성룡과 여러 사람이 굳게 다투자 제독이 자기 주본(황제에게 올리는 글) 초고를 꺼내 보였다. 거기에는 적병이 도성에 이십여만이라 중과부적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신이 병이 심하니 다른 사람으로 소임을 대신하게 해 주소서.

류성룡이 놀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적병이 매우 적은데 어찌 이십만이 있겠습니까?”

“내가 어찌 알겠는가. 너희 나라 사람이 말한 것이다.”

핑계라는 것을 류성룡도 알았고, 알면서 더 다투었다. 장세작이 제독에게 물러나기를 더욱 권했다. 류성룡 일행이 굳게 버티며 물러나지 않자, 장세작은 발로 순변사 이빈을 차서 물리쳤다. 소리와 낯빛이 모두 사나웠다.

명나라 장수가 조선의 순변사를 발로 찼다. 진흙이 묻은 이빈의 옷자락이 한동안 류성룡의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뒤에 그 일을 징비록에 적었고, 적으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남기지 않았다.

큰비가 며칠 이어졌다. 적이 길가의 산을 모조리 태워 말 먹일 풀이 없었는데, 말 돌림병까지 겹쳐 며칠 사이에 쓰러진 말이 만 필에 가까웠다. 길가에 쓰러진 말들이 빗물을 맞으며 부풀어 올랐고, 그 냄새가 진 안까지 흘러들었다. 그날 세 진이 임진강을 도로 건너 동파역(파주 동파리) 앞에 진을 쳤다.

이튿날 제독은 동파에서 다시 개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류성룡이 또 힘써 다투었다. 대군이 한 번 물러나면 적의 기세가 더욱 교만해지고 원근이 놀라 임진강 이북도 지킬 수 없으니, 조금만 머물러 틈을 보아 움직이시라고 했다.

제독이 짐짓 허락했다. 류성룡이 물러나자 제독은 말을 타고 개성으로 돌아갔고, 진들도 다 물러났다.

류성룡은 홀로 동파에 남았다.

남아서 날마다 사람을 보내 다시 나아가기를 청했다. 제독은 날이 개고 길이 마르면 나가겠다고 대충 답했다. 나갈 뜻이 없는 답이었다. 빗물이 스민 장막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벼루 곁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고, 그는 그 옆에서 같은 청을 날마다 다시 썼다.

*

봄에 심유경이 다시 한양으로 들어갔다.

심유경은 강화를 내세워 적에게 물러나라고 꾀었다. 적이 강화할 뜻이 있다는 말이 전해지자 류성룡은 제독에게 글을 올려, 강화는 계책이 아니며 치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제독이 그 글 끝에 답을 적어 보였다. 이것이 내 마음과 같은 것을 먼저 얻었다. 그렇게 써 놓고, 제독은 듣지 않았다.

유격 주홍모가 적진으로 가는 길에 파주에서 류성룡을 만나 기패(황제의 명을 표시한 깃발)에 절하라고 했다. 적진으로 들고 들어갈 황제의 기패였다. 그 곁에는 송 시랑의 패문(명령을 적은 공문)이 있었다. 적을 죽이지 말라는 패문이었다. 누런 비단 기패가 바람에 흔들리며 깃대에 감겼다 풀렸다.

“이것은 왜의 진영으로 들어가는 기패입니다. 내가 어찌 절하겠습니까? 그리고 적을 죽이지 말라는 패문은 더욱 받들 수 없습니다.”

주홍모가 서너 번 강요했다. 류성룡은 답하지 않고 말을 타고 동파로 돌아왔다. 주홍모가 제독에게 사람을 보내 알리자 제독이 크게 노했다. 기패는 황명이고 오랑캐도 보면 절하는데 어찌 절하지 않는가 하는 노여움이었다.

그는 끝내 절하지 않았다. 그 일은 징비록에 남겼지만, 쓰면서 손이 떨렸는지는 남기지 않았다. 남쪽 사람은 활을 당길 때는 안 떨리고 풀 때 떨린다고 했다. 류성룡은 붓을 잡을 때는 안 떨리고 놓을 때 떨렸다. 놓을 때 떨리는 그 손을 그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적을 죽이지 말라는 패문은 남쪽 바다에도 내려갈 것이다. 류성룡은 그것을 알았고,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다. 막을 수 없는 일을 미리 아는 것이 재상의 자리였다. 남쪽 사람이 그 패문을 받으면 무엇이라 답할지는 몰랐다. 다만 답은 할 것이다. 두 줄로 답하리라는 것 하나만은 알았다.

사료 · 안주 동헌에서 제독 이여송과 의자를 놓고 마주 앉아 소매에서 평양 지도를 꺼내 길을 짚으니 제독이 붉은 붓으로 점을 찍은 것, 「왜는 조총만 믿고 우리 대포는 오륙 리를 간다」, 부채에 시를 써 보낸 것 ― 류성룡, 징비록 권1 · 정월 초하루 사대수가 순안에서 강화한다고 속여 요시칸을 잡고 따라온 왜를 벤 것, 겐소의 시, 제독이 활시위를 울리고 순안으로 달린 것, 이튿날 평양을 에워싸 보통문·칠성문을 치고 대포와 불화살로 산악이 움직인 것, 낙상지·오유충이 개미처럼 오른 것, 벌집 같은 흙벽, 궁한 적을 염려해 달아날 길을 열어 준 것, 밤에 적이 얼음을 타고 달아난 것, 이시언·김경로에게 귀로를 막게 했으나 김경로가 안 온 것 ― 징비록 · 제독이 군량을 급히 준비하라 한 것, 밤에 황주에 이르러 류영경·이원익에게 글을 보내고 세 고을 곡식을 배로 나르게 한 것, 「마음을 졸이고 애를 태웠다」 ― 징비록 · 정월 24일 적이 한양 백성을 다 죽이고 집을 태운 것, 벽제 여석령에서 사대수·고언백이 백여 급을 베고 제독이 천여 기로 달려가 혜음령에서 말에서 떨어진 것, 두 날개로 나가다 산 뒤에서 만여 명이 올라온 것, 북쪽 기병의 짧고 무딘 칼과 왜의 서너 자 칼, 제독이 밤에 아끼던 종을 통곡한 것 ― 징비록 · 이튿날 장막 아래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늘 있는 일」이라 다툰 것, 제독이 「적병 이십여만」과 「신이 병이 심하다」는 주본 초고를 보인 것, 「너희 나라 사람이 말한 것」, 장세작이 이빈을 발로 찬 것, 말 만 필이 쓰러진 것, 동파에서 다시 개성으로 물러난 것, 「날이 개면 나가겠다」 ― 징비록 · 심유경이 다시 한양에 들어간 것, 「강화는 계책이 아니다」라고 올리자 제독이 「내 마음과 같다」고 답하고 듣지 않은 것, 주홍모의 기패와 송 시랑의 「적을 죽이지 말라」는 패문에 절하지 않은 것, 제독이 노한 것 ― 징비록 · 류성룡이 붉은 점을 센 것, 남쪽 종이와 날개를 견준 것, 붓을 놓을 때 떨린 것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류성룡의 3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평양 싸움은 계사년 정월 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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