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6,025자) · 1593년 3월 25일~4월 8일, 웅천에서 한산도까지

사천 여인

이순신 · 네오

1593년 3월 25일 (음력 2월 23일) 흐림. 원 수사가 와서 보았다. 그 흉험함이 형언할 수 없다. 최천보가 양화에서 내려와 명나라 군사의 소식을 자세히 전하고 조도어사의 편지도 전했다.

원균이 내 배로 건너왔다.

뒤집힌 배 이튿날이었다. 그는 선창에 앉자마자 어제 일을 꺼냈다. 발포(고흥 도화면)와 가리포(완도)의 배 넷이 명도 없이 들어갔다가 일이 났다고 했고, 그 배들이 좌수영(여수)과 우수영(해남 문내면) 배라는 것을 두 번 말했으며, 자기 배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저께 송도 앞에서 제 배 다섯이 약속도 없이 먼저 적을 쫓아 나간 일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가 빼놓은 대목을 나는 들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날 같으면 그것이 그를 대하는 예였겠지만, 오늘은 참고 있었다. 무릎 위에 올린 손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고, 나는 그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폈다. 밖에서 보면 똑같은 침묵이었다.

그날 밤 일기에 그 흉험함이 형언할 수 없다고 적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한 줄도 옮기지 않았다. 남겨 둘 만한 말이 아니었다.

최천보가 양화에서 내려와 명나라 군사의 소식을 전했다. 이여송이 평양을 되찾고 남으로 내려오다 벽제(고양 벽제)에서 졌고, 그래서 개성으로 물러났다는 것이었다. 그는 되찾았다는 말은 목청을 돋워 했고, 졌다는 말과 물러났다는 말은 목소리를 낮추어 삼켰다. 먼 길을 온 그의 짚신은 앞코가 다 해져 발가락이 드러나 있었다. 조도어사의 편지도 그 손에서 건네받았다. 사람은 이긴 일을 크게 말하고 진 일을 작게 말하지만, 장계의 글자는 둘 다 같은 크기다.

*

3월 26일 (2월 24일) 맑음. 새벽에 온아의 편지와 집에 보낼 편지를 써서 보냈다. 아침에 떠나 영등(거제 장목면 구영리) 앞바다에 이르니 비가 크게 와서 곧장 가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려 칠천량(거제 하청면 칠천도 앞)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집으로 보낼 편지를 썼다.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였다. 어머니는 아산(충남 아산)에 계셨고, 아우 여필이 지난봄에 떠난 뒤로 어머니 소식은 편지로만 왔다. 나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으면 다 읽고 나서 늘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뒤집어 보았다. 선창 안은 아직 어두워서 등잔 심지를 조금 돋우고 먹을 갈았다. 벼루에 부은 물이 차가워 먹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고, 먹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식었다.

무엇을 썼는지는 일기에 옮기지 않았다. 집에 보낼 편지를 썼다고 한 줄만 남겼다. 편지는 봉해져 아산으로 가고, 일기는 이 배에 남았다. 같은 새벽에 쓴 두 장의 종이가 서로 다른 길로 갔다.

아침에 영등 앞바다까지 나갔으나 비가 크게 쏟아져 뱃머리를 돌렸다. 빗줄기가 돛폭을 두드리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요란했고, 갑판에 고인 물이 격군들의 발목을 적셨다. 배는 칠천량으로 돌아왔다. 열흘 사이에 이렇게 돌아온 것이 몇 번째인지는 헤아리지 않았다.

*

3월 30일 (2월 28일) 맑고 바람 없음. 새벽에 떠나 가덕(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이르니 웅천(창원 진해구 웅천동)의 적은 움츠러들어 나와 맞설 계책이 조금도 없었다. 우리 배가 곧장 김해강(낙동강 하구) 아래쪽 독사리목(부산 강서구 명지 앞 물목)으로 향했다. 우부에서 변고를 알려 여러 배가 돛을 펴고 급히 가서 작은 섬을 둘러싸니 경상수사의 군관과 가덕첨사의 사후선 두 척이 섬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다. 그 꼴이 황당했다. 묶어서 원 수사에게 보냈더니 수사가 크게 노했다. 그 본뜻은 군관을 보내 고기 잡는 사람의 목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

작은 섬 사이에 배 두 척이 숨어 있었다.

우부에서 변고를 알리는 신호가 와서 우리는 적선인 줄 알았다. 여러 배가 돛을 펴고 급히 달려가 섬을 에워쌌다. 가까이 가 보니 우리 배였다. 경상수사의 군관이 탄 배와 가덕첨사의 사후선(적을 살피는 작은 배) 둘이 섬과 섬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라 물이 거울처럼 잔잔했고, 에워싸인 배의 노꾼들은 노를 멈춘 채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곧 드러났다. 그들은 고기 잡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피난하지 못하고 바다에 나와 고기를 잡는 우리나라 사람의 목을 베어, 왜의 목이라고 올리려던 참이었다. 목은 장계에 수로 적혀 조정에 올라가고, 조정은 그 수를 센다. 누구의 목인지는 세지 않는다.

그들을 묶어 원균에게 보냈다. 원균이 크게 노했다. 제 군관이 잡혀서 노한 것이 아니었다. 그 군관을 보낸 사람이 원균 자신이었다. 나는 그날 일기에, 그 본뜻은 군관을 보내 고기 잡는 사람의 목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고 적었다. 그 한 줄은 남겨 두어야 했다.

부산 앞바다에서 원균의 군관이 이전과 오수가 벤 목 하나를 빼앗아 간 일이 있었다. 그때는 일기에 올리지 않았다. 셋 가운데 하나였고, 왜의 목이었다. 오늘은 달랐다. 그들이 노린 것은 우리 사람의 목이었다.

고기 잡던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끝내 몰랐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우리가 섬을 에워싼 것이 먼저였는지 군관의 칼이 먼저였는지도 몰랐다. 물 빠진 섬 기슭에는 갯바위가 드러나 굴 껍데기가 하얗게 말라 있었고, 사람이 머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두었다. 그날은 그것이 가장 무거웠다.

*

4월 2일 (3월 2일) 종일 비. 봉창 아래 웅크리고 앉았다. 온갖 생각이 가슴을 쳐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왔다. 원 영공의 도리에 어긋난 일을 듣고 탄식하고 한탄했다.

비가 종일 왔다. 배 위에는 방이 없어서 나는 봉창 아래 웅크리고 앉았다. 짚으로 엮은 봉창은 비는 막아 주었으나 바람까지는 막지 못했고, 틈으로 든 바람이 목덜미를 핥고 지나갔다. 젖은 짚 냄새와 바다 냄새가 그 아래 고여 빠지지 않았다. 무릎을 끌어안은 팔이 저려 와도 자세를 풀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가슴을 쳐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지난가을 서풍 부는 밤에 처음 일기에 올린 마음이라는 말을 오늘 두 번째로 썼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붓이 쉽게 나갔다. 쉬워진 것이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일기에 쓰지 않았다. 뒤집힌 배, 물에 떨어진 사람들, 거적을 깔고 기다리는 죄, 고기 잡던 사람의 목, 원균의 배 다섯, 나오지 않는 적, 개성으로 물러난 명나라 군사, 그리고 어머니. 백 가지가 아니라 여덟 가지였다. 여덟 가지가 백 가지처럼 번갈아 가슴을 쳤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찾아왔다. 둘 다 원균 아래 있는 사람이었다. 지난봄 원균이 배 넉 척을 끌고 곤양(사천 곤양면)으로 달아나려 할 때 그를 말린 사람이 이영남이라는 말을 나는 뒤에 들었다. 그가 빗물 떨어지는 도롱이를 벗어 놓고, 제 상관이 도리에 어긋나게 한 일을 낮은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나는 들으며 탄식하고 한탄했다. 아랫사람이 비를 무릅쓰고 남의 배까지 와서 제 상관 이야기를 한다. 그 진의 형편이 그랬다.

*

4월 6일 (3월 6일) 맑음. 새벽에 떠나 웅천에 이르니 적의 무리가 뭍으로 달아나 산허리에 진을 쳤다. 군관들이 철환과 편전을 비처럼 어지러이 쏘아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잡혀갔던 사천 여인 하나를 빼앗아 돌아왔다. 칠천량(거제 하청면 칠천도 앞)에서 잤다.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저들이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갔다.

웅포(창원 진해구 웅천 앞 포구)에 이르니 배들이 비어 있었다. 적은 뭍으로 올라가 성 안이 아니라 산허리에 진을 쳤다. 성 안에 틀어박힌 적에게는 화살이 닿지 않지만 산허리의 적은 쏠 수 있다. 군관들이 철환과 편전(통에 넣어 쏘는 짧은 화살)을 비처럼 어지러이 쏘았고, 산비탈에서 사람이 굴러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일기에는 수를 대지 않고 매우 많다고만 썼다. 산허리의 목은 벨 수 없었고, 수를 올리면 조정은 그 수를 목으로 읽는다.

빈 배 한 척에 사람이 있었다.

여인이었고, 사천 사람이라고 했다. 지난여름 사천 선창(사천 용현면 선진리)에서 잡혀갔을 것이다. 내가 열두 척을 깨고 어깨에 탄환을 맞던 그날, 그 선창 어딘가에 이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날 내 눈에는 배와 산, 붉고 흰 깃발만 들어왔다. 그 아래 어디에 이 사람이 있었다.

여인을 내 배로 데려왔다. 여인은 말을 하지 못했다.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몰라서 나는 묻지 않았다. 여인은 갑판 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누가 건넨 겉옷을 두 손으로 여민 채 놓지 않았다. 사천에서 웅천까지 적의 배 밑에서 보낸 아홉 달을 이 배 위에서 다시 꺼내게 할 수는 없었다.

여인을 사천으로 돌려보내라고 일렀다. 돌아갈 집이 남아 있는지는 몰랐다. 사천 선창은 지난여름 우리가 불태운 자리다. 우리가 태운 그 자리로 그 사람을 돌려보낸다. 그것이 옳은지 모르는 채로 일렀다.

일기에는 잡혀갔던 사천 여인 하나를 빼앗아 돌아왔다고 적었다. 죽은 왜는 매우 많다고 쓰고, 여인은 하나라고 썼다. 그날 내가 수를 댄 것은 그 하나뿐이었다.

*

4월 8일 (3월 8일) 맑음. 한산도(통영 한산면)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은 뒤 광양과 낙안(순천 낙안면)과 방답(여수 돌산읍)이 왔다. 방답과 광양은 술과 음식을 갖추어 왔다. 우수백도 왔다. 어란(해남 송지면 어란)도 도림의 물건 몇 가지를 보내왔다. 저녁에 비.

배를 돌려 한산도로 돌아왔다.

지난여름 왜 사백이 솔잎을 씹으며 버티던 섬이었다. 그 앞바다에 배를 대니 섬은 그대로였다. 비탈마다 소나무가 빽빽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송진 냄새가 물 위까지 내려왔다. 열사흘 동안 그 솔잎을 먹던 사람들만 없었다.

아침을 먹은 뒤 광양현감 어영담과 낙안군수와 방답첨사가 왔다. 방답첨사와 어영담은 술과 음식을 갖추어 왔다. 한 달 만에 보는 술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통분하다는 말을 여섯 번 일기에 썼고, 배 한 척을 잃었고, 여인 하나를 빼앗아 왔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한 달이었고, 그 끝에 술동이가 놓였다.

방답첨사가 말했다.

“이번에는 문서가 제대로 왔습니다.”

“무엇이?”

“거적을 깔고 죄를 기다린다는 장계 말입니다. 조정에서 답이 왔답니다. 죄가 없답니다.”

“누가 그러던가?”

“탐후선이. 오면서 들었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술을 한 잔 받았다. 죄가 없다는 것은 장계를 올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알면서 죄를 기다린다고 써 올렸고, 그 위로 죄가 없다는 답이 왔다. 뒤집힌 배는 여전히 뒤집혀 있고 물에 떨어진 사람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답은 종이로 왔고, 종이는 배를 도로 세우지 못한다. 잔을 비우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우수사 이억기도 건너왔다. 어란만호가 도림의 물건 몇 가지를 보내왔다. 저녁이 되자 비가 내려 봉창 아래로 자리를 옮겨 마셨다. 엿새 전 웅크리고 앉아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짚 냄새도 빗소리도 같았는데, 앉아 있는 사람이 달랐다.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나를 나는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돌아가는 노가 가벼웠다. 여수까지는 아직 멀었다.

사료 · 2월 23일 원균이 와서 「그 흉험함이 형언할 수 없다」, 최천보가 명군 소식과 조도어사 편지를 전한 것, 24일 새벽 집에 편지를 쓰고 비로 칠천량에 돌아온 것 ― 난중일기 계사년 2월 23~24일(전서본) · 28일 김해강 독사리목에서 작은 섬을 둘러싸니 경상수사 군관과 가덕첨사의 사후선이 드나들고 있어 묶어 보냈더니 원균이 크게 노했고 「그 본뜻은 군관을 보내 고기 잡는 사람의 목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 ― 난중일기 2월 28일 · 3월 2일 종일 비에 「봉창 아래 웅크리고 앉아 온갖 생각이 가슴을 쳐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영남·이여념이 와서 원균의 도리에 어긋난 일을 전한 것 ― 난중일기 3월 2일. 이영남이 원균을 말렸다는 것 ― 징비록 · 3월 6일 웅천의 적이 산허리로 올라가 철환과 편전을 비처럼 쏘아 죽은 자가 매우 많았고 잡혀갔던 사천 여인 하나를 빼앗아 온 것, 8일 한산도로 돌아와 광양·낙안·방답이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온 것 ― 난중일기 3월 6~8일 · 이여송이 평양을 되찾고 벽제에서 져 개성으로 물러난 것 ― 징비록 권2 · 대죄 장계에 조정이 답한 내용은 사료에 없다. 방답첨사의 말은 지어냈다. 원균이 건너와서 한 말, 여덟 가지 생각, 봉창 아래의 냄새, 사천 여인을 돌려보내라 한 것도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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