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5,577자) · 1593년 3월 20일~24일, 웅천 앞바다
송도
이순신 · 네오
1593년 3월 20일 (음력 2월 18일) 맑음. 아침 일찍 군사를 몰아 웅천(창원 진해구 웅천동)에 이르니 적의 형세가 전과 같았다. 사도첨사를 복병장으로 정해 여도(고흥 점암면)만호, 녹도(고흥 도양읍 녹동)의 가장(만호 대신 세운 임시 장수), 좌우 별도장(본진 곁에 따로 둔 부대의 장수), 좌우 돌격장(앞서 들이치는 배의 장수), 광양 배 둘, 흥양(고흥)의 대장(현감 대신 나온 장수), 방답(여수 돌산읍) 배 둘을 거느리고 송도에 숨게 했다. 여러 배로 유인하니 적선 십여 척이 뒤를 밟아 나왔다. 경상도 복병 다섯 척이 가볍게 먼저 쫓는 사이에 숨은 배가 돌진해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쏘았다. 왜인 죽은 자가 그 수를 모른다.
유지가 왔다.
이틀 전 밤 이경(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신환과 김대복이 교서 둘과 부찰사의 관문을 가지고 왔다. 명나라 군사가 송도로 곧장 내려가 이달 초엿새에 한양의 적을 칠 것이라고 했다. 이튿날 선전관이 유지를 가지고 왔다. 급히 돌아갈 길로 가서 달아나는 적을 끊어 죽여라. 그 유지를 밤 사경(새벽 한 시에서 세 시 무렵)에 배 위에서 받았다. 선전관의 옷자락에서 뭍의 먼지 냄새가 났고, 횃불 아래 펼친 종이는 밤이슬을 먹어 끝이 눅눅하게 늘어져 있었다.
달아나는 적, 한양에서 쫓겨 내려오는 적이 부산에서 배를 타고 돌아가고 그 길목이 이 바다다. 유지가 말하는 것이 그것이었고, 지난가을 부산 앞에서 사백칠십 척을 두고 온 까닭도 그것이었다. 돌아갈 길을 끊으면 궁한 적이 된다. 이번에는 조정이 끊으라고 했고, 조정이 끊으라고 하면 끊는다. 명이 있는 일은 한다.
새벽에 웅천으로 갔다.
*
송도 뒤에 배를 숨겼다.
사도첨사 김완이 복병장이었다. 여도와 녹도의 가장과 좌우 별도장과 좌우 돌격장과 광양 둘과 흥양과 방답 둘, 열 척 남짓이 섬 뒤로 돌아 들어갔다. 섬 뒤는 포구에서 안 보이고, 안 보이는 데 배를 두면 밖에서 모른다. 어영담이 손바닥 위에 그려 보인 계책이 이것이었다. 노꾼들은 노를 물에 담근 채 젓지 않고 숨을 죽였고, 섬 그늘의 물은 아침 햇빛이 닿지 않아 검푸르고 찼다. 소나무 가지 끝이 뱃전 위로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앞에서 유인했다. 몇 척이 포구 앞을 오가니 저들이 열 척 남짓 뒤를 밟아 나왔다. 지난번처럼 잠깐이 아니라 이번에는 따라 나왔다. 여드레 동안 우리가 못 잡는 것을 보고 겁이 줄었다. 겁이 주는 적은 과녁이 된다. 여드레를 통분으로 보낸 값을 그날 받았다.
경상도의 복병 다섯 척이 먼저 쫓았다.
가볍게 먼저 쫓았고 약속에 없는 일이었다. 숨은 배가 나오기 전에 먼저 쫓으면 저들이 놀라 들어가는데, 놀라기 전에 송도 뒤의 배가 돌아 나왔다. 돌진해 둘러싸고 지자와 현자와 승자와 장편전과 철환을 여러 가지로 쏘았다. 포 소리가 섬 벼랑에 부딪쳐 되돌아와 한 방이 두 방으로 들렸고, 화약 연기가 물 위에 낮게 깔려 한동안 적의 뱃머리가 안 보였다. 왜인 죽은 자가 수를 모른다.
수를 모른다고 적었다. 셀 수 없어서가 아니라 세지 않았다. 포구 안에서 쏘았고 죽은 자가 물에 떨어졌고 저들이 끌어 들어갔는데, 끌어 들어간 것은 못 센다.
경상도 다섯 척이 먼저 쫓은 것은 가볍게 먼저 쫓았다는 여섯 자로 종이에 남겼다. 원균의 배였고, 그가 병으로 약속 자리에 안 온 값이 그 여섯 자였다. 약속을 못 들은 배는 약속대로 못 움직인다.
*
3월 21일 (2월 19일) 맑음. 서풍이 크게 일어 배를 띄울 수 없었다. 사화랑(창원 진해구 명동 앞)에 그대로 진을 쳤다. 남해가 와서 보았다. 고여우와 이효가도 와서 보았다.
바람이었다. 배를 바다로 미는 서풍이 크게 불어 오히려 못 나갔다. 나가면 배가 밀려 부딪친다. 닻줄이 밤새 팽팽하게 울었고, 뱃전에 묶어 둔 거적이 바람에 뒤집혀 몇 번이나 다시 동여맸다.
사화랑에 있었다. 어제 죽인 수를 모르는 왜를 생각하지 않고 대신 다른 것을 생각했다. 여드레 동안 통분이라는 말을 여섯 번 썼고 어제 하루에 그 통분이 갚아졌는데, 갚아졌는지는 모르고 갚는 것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대신 오늘 일기에는 통분이라는 말이 없었다. 없는 것을 세었다.
*
3월 22일 (2월 20일) 맑음. 새벽에 배를 띄우니 동풍이 잠깐 왔다. 적과 맞붙으려는데 큰바람이 문득 일어 배마다 서로 부딪쳐 깨졌다. 거의 배를 다룰 수 없었다. 곧 각립 신호를 올리고 초요기를 올려 싸움을 그치게 했다. 여러 배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소진포로 돌아와 밤을 지냈다. 이날 사슴 떼가 동서로 달렸다. 순천이 한 마리를 잡아 보내왔다.
바람이 적이었다.
동풍이 잠깐 오기에 띄웠다. 웅포(창원 진해구 웅천 앞 포구) 앞에 이르러 붙으려는데 바람이 문득 커졌다. 판옥선은 커서 바람을 받으면 옆으로 밀리고, 옆으로 밀린 배가 옆 배에 부딪쳤다. 뱃전끼리 맞닿는 순간 발밑 갑판이 통째로 튀어 올랐고, 격군들이 노를 놓치고 나뒹굴었다. 나무가 나무를 치는 소리가 났다. 적이 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치는 소리였다.
각립 신호를 올리고 초요기를 올렸다. 싸움을 그친다는 신호였고, 적 앞에서 싸움을 그치는 신호를 올리는 것이 내 손이었다. 젖은 깃발이 바람을 먹고 손목을 비틀듯 당겼지만 손이 안 떨렸고, 풀 때도 안 떨렸다. 신호 깃발은 풀 것이 없다.
배마다 다친 데가 있었는데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일기에는 다행히라고 썼다. 통분 다음에 다행이 왔고, 같은 붓이었다.
소진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사슴 떼가 산에서 동서로 달렸고 순천이 한 마리를 잡아 보내왔다. 바람 부는 날 배가 부딪쳐 돌아온 저녁에, 뱃전 화덕에서 기름이 떨어지며 타닥거리는 사슴 고기를 먹었다. 사슴은 사슴이다.
*
3월 24일 (2월 22일) 새벽에 구름이 어둡고 동풍이 크게 붊. 적을 칠 일이 급해 떠나 사화랑에 이르러 바람을 기다렸다. 바람이 자는 듯해 재촉해 웅천에 이르렀다. 두 승장과 성 의병을 제포(창원 진해구 제덕동)로 보내 뭍에 오르는 시늉을 하게 했다. 우도 여러 장수의 배 가운데 실하지 않은 것을 골라 동쪽으로 보내 역시 뭍에 오르는 모양을 하게 했다. 왜적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전선을 합쳐 곧장 들이치니 적의 형세가 나뉘고 힘이 약해져 거의 다 죽일 뻔했다. 그런데 발포(고흥 도화면) 배 둘과 가리포(완도) 배 둘이 돌입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얕고 좁은 데 걸려 적에게 습격당했다.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다.
양쪽에서 뭍에 오르는 시늉을 했다.
승병 두 부대와 의병을 제포로 보내 뭍에 오르려는 모양을 하게 하고, 우도 배 가운데 실하지 않은 것을 골라 동쪽으로 보내 역시 뭍에 오르려는 모양을 하게 했다. 제포 쪽 기슭에서 승병들이 징을 치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물을 건너왔고, 동쪽으로 간 낡은 배들은 일부러 노를 요란하게 물에 때리며 뭍으로 붙었다. 양쪽에서 오르는 모양을 하면 성 안의 적이 양쪽으로 나뉘고, 나뉘면 가운데가 약해진다. 약해진 가운데로 전선을 합쳐 곧장 들이쳤다.
계책대로 되었다. 적이 허둥거렸고 형세가 나뉘고 힘이 약해져, 거의 다 죽일 뻔했다.
뻔한 데서 멈췄다.
발포 배 둘과 가리포 배 둘이 돌입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앞다투어 들어갔다. 지난여름부터 이긴 기세를 타고 교만한 기운이 날마다 늘어 서로 앞을 다투었고, 뒤에 남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가볍게 적을 보면 반드시 진다고 두 번 세 번 일렀다. 일러도 안 됐다. 넷이 얕고 좁은 데 걸렸다. 걸린 배는 안 움직이고 안 움직이는 배는 성 아래 과녁이라, 적이 성에서 내려와 습격했다.
통선 하나가 뒤집혔다.
뒤집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판옥선이 뒤집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배 밑창이 하늘로 드러나며 거기 붙은 굴 껍데기와 물풀이 햇빛에 번들거렸고, 노 몇 자루가 물 위에 흩어져 떠올랐다. 열 달 동안 배를 하나도 잃지 않았고 잃지 않은 것을 장계마다 올렸는데, 오늘 올릴 것이 생겼다. 뒤집힌 배에서 사람이 물에 떨어졌고 떨어진 사람 위로 성에서 총을 쏘았다. 죽은 사람이 많았다. 몇인지 셌는데 여기 적지 않는다. 적으면 그 사람들이 생긴다.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적었다. 이번 통분은 적이 아니라 나를 향했다. 두 번 세 번 일렀는데 안 된 것은 이르는 사람의 잘못이다. 군사를 쓰는 것이 좋지 않았고 지휘가 어긋났다.
*
밤에 장계를 썼다.
신이 무상한 몸으로 외람되이 무거운 소임을 맡아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티끌만 한 보답을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 흉적이 독을 부려 물과 뭍으로 옮겨 범할 때 다행히 하늘이 도와 여러 번 이겼습니다. 거느린 군사가 이긴 기세를 타고 교만한 기운이 날마다 늘어 앞다투어 돌진해 싸우며 뒤에 남는 것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두 번 세 번 가볍게 적을 보면 반드시 진다는 이치로 타일렀는데 그래도 경계하지 않아 통선 한 척이 끝내 뒤집혀 죽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신이 군사를 쓰는 것이 좋지 않고 지휘가 어긋난 탓입니다. 지극히 황공하여 엎드려 거적을 깔고 죄를 기다립니다.
거적을 깔고 죄를 기다린다는 말은 죄를 달라는 말이다. 배 한 척 때문에, 사람 때문에. 열 달 동안 하나도 안 잃다가 하나를 잃었고, 하나를 잃은 사람이 죄를 기다린다고 적었다.
조정이 죄를 줄지 나는 몰랐다. 안 줄 것이다. 안 줄 줄 알면서도 그 줄을 지우지 않았다. 안 적으면 없던 일이 되고, 뒤집힌 배가 없던 일이 되면 물에 떨어진 사람들이 없던 사람이 된다.
등잔 심지가 짧아져 불꽃이 자꾸 흔들렸고, 선실 널벽 너머에서 파도가 배 옆구리를 치는 소리가 붓 소리보다 컸다. 붓을 놓은 군관이 손을 털었고 나도 손을 보았다. 신호 깃발을 올렸던 손인데 오늘은 안 올렸고, 안 올린 손이 통선 하나를 놓쳤다. 손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종이가 기억한다.
사료 · 2월 16일 밤 신환·김대복이 교서 둘과 부찰사 관문을 가지고 와 명군이 초엿새에 한양의 적을 친다고 한 것, 17일 밤 사경에 선전관이 가져온 「급히 돌아갈 길로 가 달아나는 적을 끊어 죽이라」는 유지를 배 위에서 받은 것 ― 난중일기 계사년 2월 16~17일(전서본) · 18일 사도첨사 김완을 복병장으로 송도에 열 척 남짓을 숨기고 유인하니 적선 십여 척이 따라 나왔고, 경상도 복병 다섯 척이 가볍게 먼저 쫓는 사이에 숨은 배가 돌진해 둘러싸 「왜인 죽은 자가 그 수를 모른다」 ― 난중일기 2월 18일 · 19일 서풍으로 사화랑에 머문 것, 20일 큰바람에 배들이 서로 부딪쳐 각립과 초요기로 싸움을 그친 것과 사슴 떼 ― 난중일기 2월 19~20일 · 22일 승장 둘과 의병을 제포로, 우도의 실하지 않은 배를 동쪽으로 보내 뭍에 오르는 시늉을 하게 하고 곧장 들이쳐 거의 다 죽일 뻔했으나 발포 배 둘과 가리포 배 둘이 명 없이 돌입하다 얕은 데 걸려 습격당한 것 ― 난중일기 2월 22일 · 통선 한 척이 뒤집혀 죽은 사람이 많았고 「군사가 이긴 기세로 교만해져 두 번 세 번 타일러도 경계하지 않았다, 신의 지휘가 어긋난 탓이니 거적을 깔고 죄를 기다린다」 ― 통선일소경복후대죄장(統船一艘傾覆後待罪狀), 이충무공전서 권3. 일기는 배가 뒤집힌 것을 적지 않고 장계만 적는다. 죽은 수는 장계에도 없다 · 유지가 말하는 「돌아갈 길」이 부산이라는 것, 여드레의 값, 신호 깃발을 올린 손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