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5,592자) · 1593년 3월 8일~16일, 여수에서 웅포까지
웅포
이순신 · 네오
1593년 3월 8일 (음력 2월 6일) 아침 흐리고 늦게 갬. 동틀 무렵 배를 띄워 돛을 달았다. 오시(낮 열한 시에서 한 시 무렵)에 맞바람이 잠깐 왔다. 저물어 사량(통영 사량도)에 이르러 잤다.
겨울에 지은 배가 봄에 떴다.
늑골 사이로 달이 보이던 배가 판자를 입고 물에 내려앉았다. 선소 모래밭에 통나무를 깔고 백 명 넘는 사람이 밧줄을 당기자, 배 밑이 통나무를 타고 구르며 삐걱거리다가 물머리에 닿아 한 번 크게 기우뚱했다. 갓 칠한 기름 냄새와 짠물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무못이 불어서 굳었고 목수 말대로였는데 나은지는 아직 몰랐다. 나을 때까지 노를 저어야 안다.
정월 그믐에 앞바다에 모이라고 했다. 초하루에 종일 비가 왔고 비 속에서 발포(고흥 도화면)와 여도(고흥 점암면)와 순천이 왔다. 발포 진무 최이가 두 번째 군율을 어겨서 형을 집행했다. 한 번은 봐줄 수 있고 두 번은 봐줄 수 없는데, 봐줄 수 없는 것을 봐주면 세 번째가 생긴다. 비 속에서 형을 집행했다. 곤장이 젖은 등에 떨어지는 소리는 빗소리에 눌려 멀리 가지 않았다. 비 속의 소리는 짧다.
사흘에 다 모였는데 보성이 못 왔다. 술시(저녁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부터 비바람이 크게 일어 배마다 간신히 건졌고 나흘에 성 동쪽 아홉 발이 무너졌다. 닷새에 경칩이라 둑제를 지내는 중에 보성군수가 밤을 무릅쓰고 뭍으로 달려왔다. 잡아들여 늦은 죄를 물었고 그 대장을 다스렸는데 군수는 다스리지 않았다. 밤을 무릅쓰고 온 사람을 다스리면 다음에는 밤을 무릅쓰지 않는다.
엿새 아침에 떴다.
*
3월 9일 (2월 7일) 맑음. 새벽에 떠나 곧장 견내량(거제와 통영 사이 좁은 물목)에 이르렀다. 우수사 원평중이 이미 먼저 와 있었다. 기숙흠이 와서 보았다. 이영남과 이여념도 왔다.
견내량이었다. 지난여름 일흔셋이 들어와 있던 물목인데 이번에는 원균이 먼저 와 있었다. 먼저 온 것을 나는 종이에 적었다. 적어 두면 종이 안에서 그는 먼저 온 사람으로 남는다. 내가 그에게 차릴 수 있는 예는 그만큼이었다.
기숙흠이 왔다. 남해현령이고, 지난봄 남해 성(남해읍)이 비었을 때 달아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달아났다가 돌아와 현령으로 있었다. 나는 그를 보았는데 달아난 얼굴이 아니라 돌아온 얼굴이었다. 얼굴은 달아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종이가 기억한다.
*
3월 10일 (2월 8일) 맑음. 아침에 영남우수백이 배에 와서 전라우수백이 때를 어긴 잘못을 극구 말하고 지금 곧 먼저 떠나자고 했다. 내가 힘써 말리고 기다렸다. 오늘 한낮에 이를 것이라고 약속했다. 오시(낮 열한 시에서 한 시 무렵)에 과연 돛을 펴고 왔다. 온 진이 바라보고 기뻐 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신시(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무렵)에 배를 띄워 초경(밤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에 온천도(거제 하청면 칠천도 곁)에 이르렀다.
원균이 내 배로 건너왔다.
건너온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여름 내내 뱃전 너머로 말했는데 이번에는 널판을 밟고 건너왔다. 그는 갑판에 내려서자마자 젖은 신을 털지도 않고 이억기를 나무랐다. 때를 어겼다. 기다릴 것 없다. 지금 먼저 가자.
나는 힘써 말렸다. 이억기는 오고 늦은 사람은 많이 오고 오늘 한낮이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나는 지난여름에 받았고 여름 내내 지켜지는 것을 보았는데, 원균은 뒤에 있어서 그것을 못 보았다.
“한낮이다. 한낮에 온다.”
“한낮에 안 오면.”
“온다.”
원균이 내 배에 앉아서 한낮을 기다렸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그에게는 낯선 일이었고, 낯선 일을 하는 얼굴을 나는 보지 않았다. 안 보는 것이 예였다.
오시(낮 열한 시에서 한 시 무렵)에 돛이 보였다. 스물다섯이 넘었고 겨울에 우수영(해남 문내면)도 배를 지은 것이었다. 온 진이 뛰었다. 원균이 뛰지 않고 대신 일어섰다. 일어서서 제 배로 건너갔고 건너가는 등을 나는 보았다. 등은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
3월 12일 (2월 10일) 아침 흐리고 늦게 갬. 묘시(새벽 다섯 시에서 일곱 시 무렵)에 배를 띄워 곧장 웅천 웅포(창원 진해구 웅천 앞 포구)에 이르니 적선이 줄지어 대어 있었다. 두 번 유인했으나 전에 우리 군사를 겁내어 잠깐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서 끝내 잡아 없애지 못했다. 통분하고 통분하다. 이경(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영등(거제 장목면 구영리) 뒤 소진포로 돌아와 대고 밤을 지냈다.
웅포(창원 진해구 웅천동 앞 포구)였다.
웅천 앞의 좁은 포구 안에 적선이 줄지어 있었다. 지난여름에 마흔둘을 깬 안골포(창원 진해구 안골동)에서 멀지 않았는데, 저들은 그 뒤로 배를 포구 안에 묶고 성을 쌓았다. 태합이 시킨 것이라고 뒤에 들었다. 배로 나가지 말고 성을 지켜라. 지키는 적은 안 나온다.
유인했다. 배 몇 척으로 포구 앞을 지나며 형세를 보이니 저들이 잠깐 나왔다가 우리 뒤에 큰 배가 있는 것을 보고 도로 들어갔다. 다시 유인했다. 다시 잠깐 나왔다가 들어갔다.
저들은 지난여름의 우리 배를 겁내고 있었다. 겁내는 적은 과녁이라고 나는 여름에 생각했었다. 틀렸다. 겁내는 적이 안 나오면 과녁이 아니고, 성 안의 과녁은 못 쏜다.
통분했다. 그 말을 일기에 두 번 겹쳐 썼다. 한 번으로 모자라서 두 번 썼는데, 써도 저들은 안 나온다.
이경(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소진포로 돌아왔다. 포구 쪽 성 위에서 한 번씩 오르던 총 연기가 저물녘까지 흩어지지 않고 산허리에 걸려 있었고, 그 매캐한 냄새가 돌아오는 뱃길 절반까지 따라왔다. 돌아오는 노가 무거웠다. 이기고 돌아오는 노가 가볍다는 것을 격군에게 배웠는데 이번에는 이기지도 지지도 않았고, 이기지도 지지도 않은 노는 그냥 무겁다.
*
3월 14일 (2월 12일) 아침 흐리고 늦게 갬. 세 도가 한꺼번에 새벽에 떠나 곧장 웅천 웅포에 이르니 적의 무리가 어제와 같았다. 나아갔다 물러났다 유인해도 끝내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두 번 쫓아갔으나 다 잡아 없애지 못했다. 통분하고 통분하다. 초경(밤 일곱 시에서 아홉 시 무렵)에 칠천도에 이르렀다. 비가 크게 와서 밤새 그치지 않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였다.
같은 포구에 같은 배가 있었다. 나아갔다 물러났다 하니 저들이 나왔다 들어갔고 우리가 두 번 쫓았는데 두 번 다 포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포구 안은 얕고 좁아 판옥선이 못 들어간다. 안골포에서는 얕아도 들어갔지만 여기는 성이 있었고 성에서 총을 쏜다. 얕은 데서 성 아래 배를 대면 위에서 쏘고 아래서 못 쏜다.
그날도 통분을 두 번 겹쳐 적어서, 이틀 사이에 그 말이 네 번이 되었다. 적는 것이 세는 것이고 세는 것이 내 일인데, 오늘 센 것은 통분뿐이었다.
칠천도에서 비가 밤새 왔다. 거적 지붕을 친 자리에서도 빗물이 널 틈으로 새어 무릎에 떨어졌고, 젖은 철릭이 어깨를 눌러 몸이 저절로 앞으로 굽었다. 비 오는 뱃전에 앉아 있었는데 뱃전에는 벽이 없어서 통분을 넣을 데가 없었다. 넣을 데 없는 것이 뱃전 위에 그대로 있었다.
*
3월 15일 (2월 13일) 비가 퍼붓듯 옴. 적을 칠 일을 의논하려고 순천과 광양과 방답(여수 돌산읍)을 불러 이야기했다. 정담수가 와서 보았다.
권준과 어영담과 방답첨사를 불렀다. 넷이 비를 맞으며 앉았고 앉은 자리에 물이 배었다. 빗줄기가 굵어서 서로의 말이 한 번에 안 들렸고, 어영담은 말을 할 때마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지난봄 진해루의 젖은 마루 같았는데, 그때는 나갈 것인가를 의논했고 오늘은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의논했다.
어영담이 손바닥을 폈다. 웅포 앞에 송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 뒤에 배를 숨기고 앞에 몇 척으로 유인한다. 저들이 쫓아 나오면 숨긴 배가 돌아 나와 둘러싼다. 한산도(통영 한산면)의 날개를 작게 접은 것이었다. 큰 날개는 넓은 바다에서 펴고 작은 날개는 섬 뒤에 숨긴다.
“나올까?”
“두 번 나왔습니다. 잠깐씩 나왔습니다. 잠깐 나온 것을 잡으면 됩니다.”
“잠깐으로 되는가?”
“잠깐이면 됩니다. 물이 맞으면.”
물은 사람이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그는 하지 않았다. 지난여름에 두 번 했으니 이제 안 해도 나는 안다.
*
3월 16일 (2월 14일) 맑음. 아침 일찍 본영의 탐후선이 왔다. 아침을 먹은 뒤 세 도가 약속을 합쳤다. 영남수백은 병으로 오지 않았다. 홀로 전라좌우도의 장수들과 약속했다. 다만 우후가 술을 부려 망령된 말을 했다. 그 무의미한 것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어란(해남 송지면 어란)만호 정담수와 남도만호 강응표도 그랬다. 큰 적을 치기로 약속하는 자리에서 어지럽게 마시는 것이 이 지경이니 그 사람됨이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다. 가덕첨사 전응린이 와서 보았다.
원균이 안 왔다. 병이라고 했다.
병인지 아닌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병이 생기므로 이억기와 좌우도 장수들만으로 약속을 정했다. 송도 뒤에 숨는 배와 앞에서 유인하는 배를 나누고 물때를 맞추었다. 정하는 사람이 나다.
그 자리에서 우후 이몽구가 술을 마시고 나서 망령된 말을 했다. 무슨 말이었는지 나는 일기에 적지 않았다. 적을 가치가 없는 말이라 그 무의미한 것을 어찌 다 말하겠느냐고만 남겼다. 큰 적을 치기로 약속하는 자리에서 정담수와 강응표가 따라 마셨다.
이몽구는 부산에서 대선 한 척을 깨고 왼쪽 귀 없는 왜장의 목을 벤 사람인데 그 사람이 오늘 술을 마셨다. 사람은 하나인데 날이 다르고, 날이 다르면 사람이 다르다. 알면서도 통분했다. 통분이라는 말을 이 며칠 몇 번 적었는지 세지 않았다. 세면 그 말이 가벼워진다.
가덕첨사 전응린이 왔다. 사흘 퍼붓던 비가 걷힌 뒤라 갑판 널이 햇볕에 김을 올리고 있었고, 그는 그 김 속을 걸어와 허리를 굽혔다. 지난봄 첫 종이를 쓴 사람이었다. 왜선 구십여 척, 까닭을 모르겠다. 그 손바닥만 한 종이를 쓴 사람이 열 달 만에 내 배에 왔고 그 얘기를 나는 하지 않았다. 하면 그 종이가 생긴다. 이미 생긴 종이인데 다시 생긴다.
사료 · 2월 1일 발포 진무 최이가 두 번째 군율을 어겨 형을 집행한 것, 3~4일 비바람에 배를 간신히 건지고 성이 아홉 발 무너진 것, 5일 둑제와 보성군수의 늦은 죄를 그 대장에게 물은 것, 6일 출항과 사량의 밤 ― 난중일기 계사년 2월 1~6일(전서본) · 7일 견내량에서 원균이 먼저 와 있던 것, 기숙흠·이영남·이여념이 온 것, 8일 원균이 배에 와서 이억기의 늦음을 극구 말하며 먼저 가자고 한 것을 힘써 말리고 한낮에 온다고 약속한 것, 오시에 돛을 펴고 와서 온 진이 뛴 것 ― 난중일기 2월 7~8일 · 10일과 12일 웅포에서 두 번씩 유인했으나 적이 겁을 내어 잠깐 나왔다 들어가 「통분하고 통분하다」, 13일 비 속에 순천·광양·방답과 칠 일을 의논한 것, 14일 원균이 병으로 안 와 좌우도만으로 약속하고 우후 이몽구와 정담수·강응표가 술을 마셔 「그 사람됨이 통분하다」, 가덕첨사 전응린이 온 것 ― 난중일기 2월 10~14일 · 웅천의 적이 배를 포구에 묶고 성을 지키며 나오지 않은 것이 히데요시의 「배로 나가지 말고 성을 지켜라」는 명 때문이라는 것 ― 협판가전기 · 기숙흠이 지난봄 남해에서 달아난 사람이라는 것 ― 부원경상도장(二). 원균이 배에 앉아 기다린 것, 어영담의 손바닥과 송도의 계책을 의논한 장면은 지어냈다. 송도 복병은 18일 실제로 행한 것을 앞당겨 의논하게 했다 · 이 회차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