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5,851자) · 1905년 5월 27일, 진해만 · 1편의 막간
진해만
이순신 · 네오
1905년 5월 27일, 진해만(창원과 거제 사이 바다) 반도 고금의 명장 이순신은 한산도(통영 한산면)에 웅거하여 우리 수군을 제압하고, 풍신수길의 크나큰 웅도를 물거품으로 돌렸다.
새벽 다섯 시 오 분에 종이가 왔다.
종이가 아니라 전신이었다. 무선전신, 바다 저쪽에서 소리 없이 오는 것이었고 시나노마루가 쳤다. 적함 보임, 이백삼 지점, 그 여섯 마디였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그것을 읽고 종이를 뒤집어 보지 않았다. 뒤집을 것이 없었다. 전신은 뒷면이 없다.
미카사의 함교에서 바다를 보았다. 진해만, 가덕(부산 강서구 가덕도) 수도였다. 새벽 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있었고, 굴뚝에서 밤새 올라간 석탄 연기가 그 안개에 섞여 만 안에 무겁게 고여 있었다. 발밑 철판으로 기관이 데워지는 떨림이 조금씩 올라왔다. 두 달 반을 여기 있었고 함대를 이 만 안에 숨겨 두고 러시아 함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이 지키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다. 조선 사람이었을 것이고 삼백 년 전 사람이었을 것이다.
난간에 맺힌 이슬이 장갑 끝을 적셨다. 닻을 올리라고 했다.
*
두 달 반 동안 이 만을 보았다.
만은 깊고 입이 좁았다. 입이 좁은 만은 안이 안 보이고, 안 보이는 데 함대를 두면 밖에서 모른다. 그것을 그는 여섯 해 전 사세보(일본 나가사키 사세보) 진수부 사령장관으로 왔을 때 알았다. 조선 남쪽 바다를 조사했다. 대한해협에서 대만 쪽까지 날씨와 바람과 물살과 안개의 철을 조사하고, 그다음에 진해만과 마산포가 있는 조선 남안을 조사했다. 그 조사를 하다가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만났다.
조선 사람이었고 삼백 년 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이 만에서 가까운 한산도라는 섬에 웅거해 일본 수군을 눌렀고, 눌러서 풍신수길이 명나라로 가려던 큰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조사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가 그 줄을 오래 보았다는 것은 뒤에 전기를 쓴 사람이 남겼는데, 그 사람은 줄 옆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 진해만이 훗날 일본해 해전을 앞두고 도고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반년 가까이 함대를 숨겨 두고 러시아 함대를 기다린 중요한 지점이다.
같은 자리였다. 삼백 년 사이로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일본 배를 막았고 한 사람은 일본 배를 숨겼다. 막은 사람과 숨긴 사람이 같은 바다를 보았다. 도고는 그것을 함교에서 생각했고 생각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
여섯 해 전 사세보의 밤을 그는 기억했다.
조사서가 책상에 있었다. 석유 등잔의 심지를 낮춰 두어서 불빛이 책상 한가운데만 누렇게 비추었고, 창밖 항구에서는 정박한 배들이 물결에 삐걱대는 소리가 이따금 들어왔다. 해도가 펼쳐져 있고 해도 위에 만과 섬과 물목이 있었다. 진해만과 거제 사이의 좁은 물목에 누가 연필로 작은 표를 해 두었다. 견내량(거제와 통영 사이 좁은 물목)이었고 그 옆에 한산도가 있었다. 조사를 한 참모가 그 표를 짚으며 말했다. 삼백 년 전에 여기서 일본 수군이 졌습니다.
도고는 그 표를 보았다. 작은 표였고 연필로 그은 표는 지우면 없어지는데, 그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삼백 년이 있었다.
“누가 이겼는가?”
“조선 수사입니다. 이순신이라고 합니다.”
“배는.”
“조선 쪽 기록으로 쉰 남짓. 우리는 일흔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적은 쪽이 이겼다. 그것을 그는 오래 보았다. 해군 장수는 배를 세고 세어서 많은 쪽이 이긴다고 배우는데, 이 표 밑에서는 적은 쪽이 이겼다. 어떻게 이겼는지 참모가 말했다. 좁은 데서 넓은 데로 끌어내 날개를 펴서 둘러쌌습니다.
날개라는 그 말을 그는 받아 두었다. 받아 둔 말은 언젠가 쓸 데가 생기고, 여섯 해 뒤에 썼다. 쓰시마에서 함대를 크게 돌려 러시아 함대의 앞을 가로막았고 그것을 뒤에 사람들이 정자 전법이라고 불렀다. 그가 그날 밤 사세보에서 받아 둔 말과 그것이 같은 것인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한쪽이 생긴다.
조사서를 덮었다. 덮은 표지에 조선 남안이라고 적혀 있었고, 남의 나라 남쪽 바다를 조사한 책이었다. 그 바다가 여섯 해 뒤에 자기 함대가 숨을 자리가 될 것을 그는 그날 밤 몰랐다. 몰랐다고 뒤에 말했다.
*
참모 사토 뎃타로가 이 함대에 있었다. 미카사가 아니라 제2함대의 참모였고, 같은 만 안 다른 배였다.
그는 책을 읽는 사람이었고 참모 가운데 제일 많이 읽었다. 조선 남안을 조사할 때 삼백 년 전 기록을 뒤진 것이 그였고, 일본 쪽 기록을 뒤졌고 조선 쪽 기록도 뒤졌다. 그중 징비록이라는 책에 한산도가 있었다. 좁은 목에서 넓은 데로 끌어내 큰 배를 키 모양으로 벌린 사람, 거북 등에 송곳을 박은 배, 어깨에 탄환을 맞고 싸움이 끝난 뒤에 칼끝으로 살을 갈라 꺼낸 사람이 거기 있었다.
그가 펼친 징비록은 종이가 누렇게 바래 모서리가 부슬부슬 일어나 있었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오래된 먹과 곰팡이 냄새가 퍼졌다. 그는 빽빽한 글줄 사이에 붉은 먹으로 작은 점을 찍어 가며 읽었다.
사토는 뒤에 책을 썼고 그 책에 이렇게 적었다.
해군 장수로서 보자면 동양에서는 조선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넬슨을 먼저 꼽아야 한다. 이순신은 참으로 세상을 덮는 해장이다. 불행히 조선에 태어났기에 용명도 지명도 서양에 전해지지 않았다. 불완전하나마 정한에 관한 기록을 보면 참으로 훌륭한 해장이다. 넬슨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서 도저히 견줄 수 없다. 이 장군은 참으로 장갑함의 창조자다. 삼백 년 전에 이미.
그것은 사토의 말이었고 도고의 말이 아니었다. 뒤에 사람들이 그 말을 도고의 말로 옮겨, 도고가 연설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조선의 잡지가 실었다. 도고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도고의 공인 전기에 이순신은 두 번 나오는데 두 번 다 진해만을 설명하는 자리의 지리 설명이다. 도고가 이순신을 어떻게 여겼는지는 전기에 없다.
이 새벽에 사토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남아 있지 않다. 없는 말을 지어내지 않고, 그가 같은 만 안 다른 배의 함교에서 같은 안개를 보고 있었다는 것만 둔다.
*
여섯 시 오 분에 미카사가 닻을 올렸다.
닻줄이 양묘기에 감겨 올라오는 쇳소리가 뱃머리에서 길게 울렸고, 감겨 오른 닻에서 만 바닥의 검은 뻘이 떨어져 갑판에 튀었다. 만을 나갔다. 좁은 입을 빠져나가면 넓은 바다이고 넓은 바다에서 큰 배는 큰 배답다. 그것을 삼백 년 전 사람이 알았고 그 사람은 적을 좁은 데서 넓은 데로 끌어냈다. 오늘 러시아 함대는 끌어낼 필요가 없었다. 저들이 스스로 넓은 데로 오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면 대한해협을 지나야 하고 지나는 길목에 그가 있었다.
대본영으로 전신을 쳤다. 적함 보인다는 경보에 접하여 연합함대는 곧 출동하여 이를 격멸하려 함. 본일 날씨 맑으나 파도 높음.
날씨 맑으나 파도 높음. 그 한 줄을 그가 넣었는지 참모가 넣었는지 뒤에 사람들이 오래 다투었고, 다투는 것을 그는 살아서 보았다.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씨가 맑았고 파도가 높았다. 함교의 유리창에 물보라가 부딪쳐 흘러내리고 그 너머로 회색 물마루가 잇달아 일어섰다. 뱃머리가 물마루에 올라탔다가 떨어질 때마다 함교 난간이 손바닥 안에서 차갑게 울렸고, 짠물이 소매 깃으로 스몄다. 삼백 년 전 사천에서 물이 빠져 판옥선이 못 들어갔던 것을 그는 몰랐지만 몰랐어도 같았을 것이다. 바다는 삼백 년 동안 같은 바다였다. 맑았고 파도가 높았다.
*
이날 하루 만에 러시아 함대가 없어졌다.
없어졌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서른여덟 척 가운데 스물한 척이 가라앉고 여섯 척이 잡히고 나머지가 흩어졌다. 흩어진 것 가운데 셋만 블라디보스토크에 닿았다. 일본 쪽은 어뢰정 세 척을 잃었다. 해가 진 뒤에도 바다에는 기름이 넓게 번져 물결이 무디게 눌려 있었고, 화약 연기가 걷히지 않아 함교에서 숨을 쉬면 목 안쪽이 매캐하게 따끔거렸다. 부서진 널빤지와 구명대가 뱃전을 스치며 흘러갔다. 그 수를 도고는 세지 않았고 참모가 세었고 센 것을 그가 읽었다.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하고 읽는 것은 자기가 한다. 삼백 년 전 사람은 자기가 세었다고, 배를 두 번 세었다고 했는데 그것을 도고는 몰랐다. 사토의 책에도 없었고 그 사람이 쓴 일기에 있었다. 일기는 조선에 있었고 조선은 이 싸움이 끝나고 여섯 달 뒤에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
이 승리의 값을 치른 것은 이긴 쪽이 아니었다.
*
네 해 뒤에 도고는 다시 진해만에 왔다.
황태자를 모시고 순양함으로 왔다. 이번에는 안개도 석탄 연기도 없이 만 안이 바닥까지 비칠 듯 맑았고, 갈매기 몇 마리가 뱃고물을 따라 낮게 돌았다. 만 안을 돌면서 누군가 설명했다. 이 만은 한국 남안 제일의 좋은 항구로, 옛날 문록의 역에는 조선의 명장 이순신이 이 근처에 출몰하여 우리 수군을 괴롭혔고, 가까이는 일본해 해전 전에 도고 대장이 여기 있으면서 러시아의 증파 함대를 기다렸으며, 적함 보인다는 경보에 접하여 하는 보고를 발신한 곳입니다.
같은 문장 안에 두 이름이 있었다. 이순신과 도고, 같은 만을 설명하는 데 두 이름이 필요했고 하나는 괴롭힌 사람이고 하나는 기다린 사람이었다.
도고는 그 설명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태자가 만을 보았다. 만은 삼백 년 전과 같이 깊고 입이 좁았다. 입이 좁은 만은 안이 안 보이고, 안 보이는 데서 삼백 년 전 사람이 배를 두 번 세었다. 기슭의 솔숲이 물에 거꾸로 비쳐 흔들렸고, 뱃전을 치는 물소리는 네 해 전 새벽보다 훨씬 낮았다.
그 사람의 이름을 도고는 알았다. 얼굴은 몰랐고, 얼굴을 아는 사람은 삼백 년 전에 다 죽어 이름만 남았다. 이름만 남은 사람과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서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예였는지 그는 몰랐지만 난간을 잡은 채 만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만 밖으로 배가 나갔다. 좁은 입을 빠져나가니 넓은 바다였다.
사료 · 도고 헤이하치로가 1899년 사세보 진수부 사령장관으로 부임해 조선 남안을 조사한 것, 그 대목에서 「반도 고금의 명장 이순신은 한산도에 웅거해 우리 수군을 제압하고 풍신수길의 웅도를 물거품으로 돌렸다」, 진해만이 「일본해 해전 전에 도고 사령장관이 반년 가까이 함대를 숨겨 두고 러시아 함대를 기다린 지점」이라는 것 ― 오가사와라 나가나리, 도고 원수 전기(국립국회도서관 소장본). 1909년 황태자 순행 때 진해만을 설명하며 「이순신이 이 근처에 출몰하여 우리 수군을 괴롭혔고, 도고 대장이 여기서 러시아 함대를 기다렸으며 적함 보인다는 보고를 발신한 곳」이라 한 것 ― 같은 전기 · 도고의 공인 전기 네 판본에 이순신은 위 두 번, 지리 설명으로만 나온다. 도고 본인이 이순신을 어떻게 말했는지는 전기에 없다. 「나를 넬슨에 견주는 것은 좋으나 이순신에 견주지 말라」는 말은 도고의 것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 「동양에서는 이순신, 서양에서는 넬슨. 넬슨은 인격에서 견줄 수 없다. 이 장군은 장갑함의 창조자다」 ― 사토 뎃타로, 제국국방사론(1908). 사토는 러일전쟁 때 연합함대 제2함대의 참모였다. 1935년 조선 잡지 삼천리가 이 말을 도고의 연설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 회차는 사토의 말을 사토의 말로 두었다 · 1905년 5월 27일 새벽 시나노마루의 「적함 보임」 전신, 미카사가 진해만에서 출항한 것, 「본일 날씨 맑으나 파도 높음」 전문, 쓰시마 해전의 결과(러시아 서른여덟 척 가운데 스물한 척 침몰·여섯 척 나포·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세 척, 일본 어뢰정 세 척 손실) ―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작품의 사료 폴더에는 없어 따로 출전을 대지 않는다. 그 한 줄을 누가 넣었는지의 논란도 같다 · 사세보의 밤과 해도 위의 연필 표와 참모와의 대화, 도고가 함교에서 이순신을 생각한 것, 함교 유리창의 물보라, 황태자 순행 때의 도고의 침묵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도고의 3인칭이다. 1편의 막간이다. 이순신의 일기는 여기 없다 · 1905년 11월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없어진 것 ―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