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5,306자) · 1592년 10월, 여수
소금
이순신 · 네오
1592년 10월 (음력 9월), 여수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죽은 사람은 시신을 배에 실어 돌아가 장사 지내고 그 처자에게는 다른 예에 따라 휼전을 베풀라 했다.
순덕은 소금을 굽는다.
바닷물을 가마에 붓고 불을 땐다. 물이 졸아들 때까지 때고, 졸아들면 흰 것이 남고, 그 흰 것을 긁어 모은다. 하루에 한 가마이고 나무가 있으면 두 가마인데 요즘은 나무가 없어서 한 가마였다. 나무는 다 배로 갔다. 배를 고치는 데 나무가 들고 배를 새로 짓는 데 나무가 더 들어서, 소금 굽는 나무가 배가 되었다.
배가 돌아온 날 순덕은 포구에 나가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나갔다. 동생의 손을 보러 나갔고, 손이 노 모양으로 굽어 있었고, 마른 소금을 쥐여 주었다. 이번에는 안 나갔다. 나가면 안 되는 날이라는 것을 포구가 먼저 알았고 순덕도 알았다. 배에 죽은 사람이 실려 오는 날 산 사람의 누이는 포구에 안 나간다. 나가면 산 것이 죄가 된다.
대신 가마 앞에 앉아 불을 보았다. 가마 밑에서 젖은 솔가지가 터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 사이로 포구 쪽의 사람 소리가 바람을 타고 왔다가 끊겼다가 했다. 불은 세지 않아도 된다.
*
김숙련의 집은 순덕의 집에서 세 집 건너였다.
포작이었다. 고기를 잡고 전복을 따고 배를 몰다가 수군에 뽑혀 사공이 되었다. 사공은 노를 젓지 않고 키를 잡고, 키를 잡는 사람은 갑판 위에 있고, 갑판 위는 판자가 없다. 판자 두께만큼 살아 있는 것이 격군이라면 사공은 그 두께가 없다.
부산에서 탄환에 맞았다.
그 소식이 포구에서 세 집 건너 순덕의 집을 지나 김숙련의 집으로 갔다. 소식이 지나가는 것을 순덕은 가마 앞에서 발소리로 들었다. 발소리가 세 집 건너에서 멈추고 그다음에 소리가 났다. 김숙련의 아내의 소리였고, 한 번 나고 그쳤다. 그친 것이 더 크게 들렸다.
순덕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면 가는 것이 되고 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어서 없는 말을 하러 가지 않았다. 대신 소금을 한 줌 종이에 쌌다. 쌀 때 손이 떨렸다. 소금 굽는 사람의 손은 안 떨리는 법이다. 종이 밖으로 흩어진 알갱이를 순덕은 손끝으로 하나씩 다시 모았다.
*
저녁에 끝동이 왔다.
살아서 왔고 손이 굽어 있었는데 지난번보다 덜 굽어 있었다. 세 번째 싸움부터는 손이 안다고 했다. 무엇을 아느냐고 순덕이 물었더니 끝동은 답 대신 굽은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했다.
“숙련이 형이.”
“들었다.”
“키를 잡고 있었어. 절영도(부산 영도) 앞에서. 큰 쇳덩이가 왔어. 모과만 한 거. 형이 키를 놓지 않았어. 놓으면 배가 돈다고. 배가 돌면 노가 헛돈다고. 그래서 안 놓았어.”
“그래서.”
“맞았어. 키를 잡은 채로.”
끝동이 그 얘기를 더 하지 않았고 순덕도 더 묻지 않았다. 남매는 가마 앞에 나란히 앉아 불만 보았고, 솔가지 하나가 터지면서 재가 둘 사이로 날렸다.
“장군이 배마다 건너다녔대. 죽은 사람 있는 배마다. 장군은 배를 안 건너는 사람인데.”
“건넜어?”
“녹도(고흥 도양읍 녹동) 배부터 건넜대. 녹도만호가 죽었어. 맨 앞에 서는 사람. 그다음에 우리 배에도 왔어. 판자 밑에는 안 내려왔어. 갑판에서 이름을 불렀어. 숙련이 형 이름도 불렀어.”
“이름을.”
“하나씩. 다 불렀어. 부르고 나서 적었대.”
순덕은 그 말을 받아 두었다. 이름을 부르고 적었고 적힌 이름이 조정으로 간다. 조정이 그 이름을 읽는지 순덕은 몰랐지만, 읽든 안 읽든 불린 것은 불린 것이다.
끝동에게 마른 종이에 싼 소금을 주었다. 끝동이 받으면서 지난번 것은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 다 썼다고 했다. 여수 사람 손바닥이 찢어져서 물에 풀 틈이 없어 그냥 놓았더니 아리다고 소리를 냈다고 했다. 순덕은 그 얘기를 듣고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아린 것이 살아 있는 것이라는 말을 남에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끝동이 안 했다고, 이상해서 안 했다고 했다.
“그 말은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 거야.”
순덕이 그렇게 말했다. 끝동이 알아들었는지는 몰랐지만 알아듣지 못해도 손은 알았을 것이다.
*
이튿날 김숙련의 집에 갔다.
소금을 가지고 갔고 할 말은 없었고 없는 채로 갔다. 갈 때 세 집을 세지 않았다. 세면 멀어진다.
마당에 시신이 있었다.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배에서 내린 대로였고 아내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울지 않았다. 어제 한 번 울고 그친 얼굴이었는데, 그친 얼굴은 운 얼굴보다 보기 어렵다.
순덕은 소금을 내밀었다. 아내가 받으면서 물었다.
“이것으로 뭘.”
“절이면 오래 갑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순덕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 시신을 절인다는 말이었다. 장사 지낼 때까지 며칠이 걸리고 가을이라도 며칠이면 상하고 소금이 있으면 덜 상한다. 그 뜻으로 한 말인데, 하고 나니 무거웠다.
아내가 그 말을 받았다. 받고 나서 처음으로 소리를 냈는데 우는 소리가 아니라 웃는 소리였고, 짧았다.
“소금 굽는 사람 말이 그렇지.”
“예.”
“고맙네.”
아내가 소금 종이를 시신 옆에 놓았다. 천 밖으로 손이 나와 있었다. 키 잡던 손이었고 손가락이 굽어 있었고, 키를 잡은 채로 굳은 것이었다. 순덕은 그 손을 오래 보았다. 손톱 밑에 키 자루의 검은 때가 그대로 끼어 있었다.
*
관에서 사람이 왔다.
군관이었고 종이를 들고 있었고 종이에 이름이 있었다. 김숙련. 사공. 포작. 부산 접전 시 중환 치사. 처자에게 휼전을 시행할 것. 군관이 그것을 읽고 나서 쌀을 내렸다. 왜선에서 얻은 쌀이라고 했다. 적이 훔친 우리 쌀을 적의 배에서 꺼내 죽은 사람의 아내에게 준다. 아내가 받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쌀자루를 안은 두 팔이 자루 무게에 조금 내려갔을 뿐이었다.
군관이 순덕을 보고 소금 굽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군관이 말했다. 본영에서 소금을 더 굽게 할 것이다. 피난 온 사람이 이백이 넘게 들어와 장생포(여수 신월동)에 나누어 두었고, 먹일 입이 늘었고, 먹일 입이 늘면 소금이 든다. 나무를 대 줄 테니 두 가마를 구워라.
“나무가 있습니까?”
“배 짓고 남은 것을 준다.”
“배 짓고 남는 나무가 있습니까?”
군관이 답을 못 했다. 답을 못 하는 것이 답이었다. 순덕은 두 가마를 굽겠다고 했다. 나무가 오면 두 가마, 안 오면 한 가마였다. 그 수는 순덕이 아니라 나무가 정했다.
*
정운의 상여가 흥양(고흥)으로 갔다.
녹도는 흥양 땅이라 녹도만호의 시신이 여수를 떠나 흥양으로 가는 길에 포구를 지났다. 장군이 정해 준 차사원이 앞에 섰고 상여 뒤에 녹도의 군사들이 따랐다. 젖은 짚신이 아니라 마른 길이었고, 마른 길에 자국은 안 난다.
순덕은 가마 앞에서 그것을 보았다. 상여가 지나가는 동안 불을 안 땠다. 불을 안 때는 것이 소금 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예였다.
김숙련의 상여는 상여가 아니라 지게였다. 포작의 시신은 지게에 실려 뒷산으로 갔고 아내가 앞에 가고 아이 둘이 뒤에 갔다. 아이 둘은 세 집 건너 살면서 순덕이 처음 보았다. 큰아이가 열쯤 되어 보였고 작은아이가 대여섯이었는데, 작은아이가 뒤를 돌아보아 순덕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쳤다고 순덕은 생각했다. 아이가 뭘 보았는지는 몰랐다.
두 상여가 같은 날 다른 길로 갔다. 하나는 흥양으로 하나는 뒷산으로 갔고, 같은 탄환이 다른 길을 냈다. 그것을 순덕은 세지 않았다. 세는 것은 장군이 하고 소금 굽는 사람은 불을 본다.
*
며칠 뒤에 소금을 지고 장생포에 갔다.
관에서 시킨 일이었다. 피난 온 이백이 그 포구에 나뉘어 있었다. 남해 동쪽의 웅천(창원 진해구 웅천동)과 진해와 고성에서 온 사람들로, 배가 지나갈 때 산골짜기에서 손을 흔들던 사람들이라고 끝동이 말했다. 돌아올 때 데려가겠다고 장군이 말했고 데려왔다. 데려온 사람에게 먹일 것이 있어야 하고 소금이 그 하나였다.
포구 언덕에 움집이 늘어서 있었다. 새로 지은 것이라 나무가 여기로도 갔구나 하고 순덕은 생각했다. 배로 가고 움집으로 가고 소금 가마로는 안 왔다.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탓할 데가 없었다.
소금을 내리는데 아이 하나가 와서 보았다. 머리가 짧았고, 깎였다가 자라는 중이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동래(부산 동래구)라고 했고 이름을 물으니 억만이라고 했고 열셋이라고 했다. 왜의 배 밑에 갇혀 있다가 녹도 배가 건져 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얼굴에 아무것도 없었고, 없는 것이 순덕은 제일 어려웠다.
“밥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무슨 밥.”
“쌀밥입니다. 모래 없는.”
순덕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몰라서 소금을 한 줌 쥐여 주었다. 아이가 받은 손이 작았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었다. 노를 젓지 않은 손이 배 밑에 있었다. 아이는 받은 소금을 두 손으로 오므려 쥐고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언덕을 돌아보았다. 움집이 스물 남짓이었다. 지붕을 이은 솔가지가 아직 푸르렀고, 굴뚝마다 연기가 가늘게 올라 바람에 한쪽으로 쏠렸다. 이백을 스물에 나누면 하나에 열이고, 열이 한 움집에서 겨울을 난다. 소금이 얼마나 들지 순덕은 셈했다. 셈이 안 됐다. 안 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걸었다.
*
밤에 나무가 왔다.
배 짓고 남은 나무였고 얼마 안 됐다. 한 가마 반이었다. 순덕은 그것을 세었다. 세지 않는 사람인데 세었다. 한 가마 반은 두 가마도 한 가마도 아닌 수였고, 그 수로 내일 소금을 굽는다.
가마에 불을 넣고 불이 붙는 것을 보았다. 배 짓던 나무가 타면서 송진 냄새가 났고, 가마의 바닷물이 가장자리부터 졸아들었다. 졸아든 자리에 흰 것이 남을 것이고, 순덕은 그것을 긁어 모을 것이다. 긁어 모은 것이 이백의 입으로 가고 끝동의 손으로 가고 세 집 건너의 시신 옆에 놓인다.
같은 소금이 다른 데로 간다. 어디로 갈지는 소금이 정하지 않는다. 순덕은 밤새 불 앞을 떠나지 않고 구웠다.
사료 · 부산 싸움에서 사공 포작 김숙련이 탄환에 맞아 죽은 것, 죽은 사람의 시신을 배에 실어 돌아가 장사 지내고 처자에게 휼전을 베풀라 한 것, 정운의 상을 지킬 차사원을 정한 것, 왜선에서 얻은 쌀과 베를 나누어 준 것 ― 부산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 향화인과 포작 이백여 명이 본영으로 들어와 장생포 등에 나누어 둔 것 ― 당포파왜병장 · 녹도가 흥양 땅인 것 ― 임진장초·전서의 진포 이름. 정운의 상여가 흥양으로 갔다는 것은 지어냈다 · 억만이 장생포에 있었다는 것은 지어냈다. 장계는 그가 정운의 배에서 잡혀 진술한 것까지만 적는다 · 순덕·끝동은 지어낸 인물이다. 김숙련의 집과 아내와 아이들, 소금 가마, 배 짓고 남은 나무, 군관의 말은 지어냈다. 장계에 김숙련은 이름과 「사공 포작」이라는 것밖에 없다 · 이 회차는 순덕의 3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이 무렵 일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