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089자) · 1592년 8월 15일~17일, 안골포

안골포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92년 8월 15일 (음력 7월 9일) 일기를 쓰지 못했다. 7월 9일 가덕(부산 강서구 가덕도)으로 향하는데 안골포에 왜선 사십여 척이 머문다고 망보는 군사가 알렸다. 우수사와 경상우수사와 적을 칠 계책을 의논했다. 날이 이미 저물고 역풍이 크게 일어 나아가 싸울 수 없었다. 거제 온천도(거제 하청면 칠천도 곁)에서 밤을 지냈다.

한산도(통영 한산면)에서 사백이 굶는 동안 우리는 가덕으로 갔다.

가는 길에 망보는 군사가 왔다. 안골포에 왜선 마흔 척 남짓이 머문다고 했다. 마흔이라고 했다. 어제 일흔셋을 깨고 오늘 마흔을 듣는다. 깨면 오고 오면 깬다. 깨는 것과 오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끝나는지 나는 몰랐다. 끝나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억기와 원균을 불러 의논했다. 의논하는 사이에 해가 저물었고 바람이 거꾸로 크게 일었다. 역풍이었다. 역풍에는 못 나간다. 못 나가는 것도 정하는 것이다. 거제 온천도에 배를 대고 밤을 지냈다.

밤에 어깨를 짚어 보았다. 두꺼웠다. 두꺼운 것이 오늘은 조금 아팠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부는 것인지 몰랐다. 바람이 부는 것이었다. 비는 안 왔다.

*

8월 16일 (7월 10일) 일기를 쓰지 못했다. 7월 10일 새벽에 배를 띄웠다. 우수사는 안골포 바깥 바다 가덕 쪽에 진을 치고 우리가 싸우면 숨어 있다가 달려오기로 약속했다. 내가 수군을 거느리고 학익진으로 먼저 나아가고 경상우수사가 뒤를 이었다.

이억기는 가덕 쪽 바다에 있었다.

기다리는 자리였다. 좌수사가 먼저 들어가 싸우고 자기는 바깥에 숨어 있다가 달려간다. 그것이 약속이었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한 달을 늦었고 그 뒤로 한 번도 늦지 않았다. 늦지 않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것이 지키는 것이다.

스물다섯 척이 바다에 떠 있었다. 노를 젓지 않았다. 돛도 올리지 않았다. 떠 있기만 했다. 떠 있는 배는 흔들린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람은 말이 짧아진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안골포 쪽에서 소리가 났다. 포 소리였다. 소리가 물을 타고 왔다. 물을 타고 오는 소리는 땅을 타고 오는 소리보다 빠르다. 그는 그 소리를 세었다. 세는 것은 좌수사의 버릇인데 그 버릇이 옮았다. 하나, 둘, 셋. 세다가 그만두었다. 세어지지 않았다.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좌수사의 어깨를 생각했다. 굳은 왼쪽 어깨. 그 어깨로 활을 당긴다고 했다. 당길 때 안 떨리고 풀 때 떨린다고 했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그는 몰랐다. 좌수영(여수) 군관 누군가가 했을 것이다. 풀 때 떨리는 손으로 오늘도 당기고 있을 것이다. 저 포 소리 사이에.

복병을 정해 두었다. 정한 장수가 배마다 있었다. 그가 손을 들면 스물다섯이 움직인다. 손을 들 때가 언제인지 그가 정한다. 정하는 사람이 자기라는 것이 낯설었다. 늦은 사람은 정하지 않는다. 오늘은 늦지 않았다.

*

안골포는 얕다.

포구가 좁고 물이 얕아서 썰물이 지면 뭍이 된다. 판옥선은 쉽게 드나들 수 없다. 그것을 나는 들어가면서 알았다. 어영담이 손바닥을 펴 보였을 때 여기는 짚지 않았다. 짚을 데가 없었다. 얕은 데는 금이 없다.

선창을 바라보니 왜의 대선 스물하나, 중선 열다섯, 소선 여섯이 대어 있었다. 그 가운데 삼층으로 집을 얹은 대선이 하나, 이층 대선이 둘. 포구 입구를 향해 떠 있었다. 나머지는 비늘처럼 잇대어 대어 있었다.

어제처럼 끌어내려 했다.

두세 번 유인했다. 어제 견내량(거제와 통영 사이 좁은 물목)에서 그 선봉 쉰아홉 척을 한산도 바다로 끌어내 남김없이 태우고 죽인 것을 저들이 안다. 알아서 안 나왔다. 험한 데 기대어 배를 묶고 겁을 먹고 나오지 않았다. 형세가 궁하면 뭍으로 오를 셈이었다. 안 나오는 적은 끌어낼 수 없다. 끌어낼 수 없으면 들어가야 한다.

들어갔다. 얕은 데로 큰 배가 들어갔다. 한꺼번에 들어가면 걸린다. 번갈아 들어갔다. 장수들이 번갈아 드나들며 천자 지자 현자 총통과 여러 총통과 장편전을 비처럼 쏘았다.

그때 바깥에서 소리가 났다.

*

이억기가 손을 들었다.

포 소리가 한 번 유난히 컸을 때였다. 그것이 신호인지 아닌지 그는 몰랐다. 신호는 정하지 않았다. 싸우면 달려오라고만 했다. 싸우고 있었다. 달려갔다.

스물다섯의 노가 한꺼번에 물에 잠겼다. 배가 앞으로 쏠렸다. 쏠리는 것을 그는 뱃머리에서 받았다. 노 소리가 났다. 스물다섯 척의 노 소리가 한 박자로 났고 그 소리가 안골포 앞바다를 채웠다. 포구 안에서 싸우던 좌수영 배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소리로 오는 것이 배보다 먼저다.

포구에 들어섰다. 좌수사의 배가 보였다. 뱃머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 왼쪽 어깨가 굳어 있었다. 오른손에 활이 있었다. 그가 이쪽을 보지 않았다. 볼 틈이 없었다. 보지 않아도 알았을 것이다. 소리로 왔으니까.

합쳐 쳤다. 형세가 갑절이 됐다.

*

집을 얹은 대선과 이층 대선에 탄 왜가 거의 다 죽거나 다쳤다.

죽은 자와 다친 자를 저들이 하나씩 끌어냈다. 작은 배에 실어 냈다. 다른 배의 왜를 작은 배로 옮겨 층각 대선으로 합쳐 넣었다. 그것을 종일 했다. 죽으면 끌어내고 빈 자리에 사람을 넣었다. 넣으면 죽고 죽으면 끌어냈다. 우리도 종일 쏘았다. 종일 쏘아서 층각 대선도 거의 다 깼다.

남은 왜가 다 뭍으로 올랐다.

뭍으로 오른 왜를 다 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뭍에는 백성이 있었다.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백성이 아주 많았다. 배를 다 태우면 저들이 궁해진다. 궁한 적은 숨은 백성을 어육으로 만든다. 그것을 나는 알았다. 알아서 한 마디를 했다. 일 리쯤 물러난다.

물러났다. 밤을 지냈다.

밤에 이억기의 배가 옆에 왔다. 그가 건너오지 않았다. 배와 배 사이로 말을 건넸다.

“다 태우지 않으십니까?”

“백성이 있다.”

“적이 밤에 달아납니다.”

“달아나게 둔다.”

그가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이 사람에게 하는 예라는 것을 그는 이제 알았다. 배가 조금 멀어졌다. 멀어진 자리에 등불이 있었다. 스물다섯 척의 등불이 한산도 밤보다 가까이 있었다.

*

8월 17일 (7월 11일) 일기를 쓰지 못했다. 7월 11일 새벽에 다시 둘러싸니 적이 허둥지둥 닻줄을 끊고 밤을 타 달아났다. 어제 싸운 곳을 살펴보니 전사한 왜를 열두 곳에 모아 쌓아 태워 아직 타다 남은 뼈가 있고 손발이 어지러웠으며, 포구 성 안팎에 피가 땅에 가득해 곳곳이 붉었다.

새벽에 다시 갔다.

없었다. 닻줄을 끊고 갔다. 끊은 닻줄이 물속에 남아 있었다. 닻은 바다에 두고 배만 갔다. 달아나는 배는 닻을 안 거둔다. 거둘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는 것을 그만큼 알 수 있었다.

뭍에 내렸다. 어제 싸운 자리였다.

열두 곳이었다. 죽은 왜를 열두 곳에 모아 쌓아 태웠다. 태운 자리에 뼈가 남아 있었다. 다 타지 않은 뼈. 손발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어느 손이 어느 사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포구 성 안과 밖에 피가 땅에 가득했다. 땅이 붉었다. 곳곳이 붉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볼 일이었다. 보라고 온 것이었다. 세지 않았다. 셀 수 없는 것을 세지 않는 것도 정하는 것이다. 종이에는 「죽고 다친 적을 이루 셀 수 없다」고 적었다. 셀 수 없다는 말을 종이에 적는 것이 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다.

저들이 제 죽은 사람을 태웠다.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에서 강탁이 말한 것과 같았다. 목을 우리에게 안 주려고 태웠다. 열두 곳. 그 열두 곳을 나는 하나씩 보았다. 하나씩 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걸리는 시간을 썼다.

*

사시(아침 아홉 시에서 열한 시 무렵)에 양산강(낙동강 물금 쪽)과 김해포와 감동포를 뒤졌다. 적이 없었다. 가덕 바깥 몰운대(부산 사하구 다대동)까지 배를 늘어세워 군위를 보였다. 배를 늘어세우는 것은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 있다. 여기까지 왔다.

한산도에 사백이 있었다. 사흘째였다. 솔잎을 먹고 있을 것이다. 저들이 어떻게 되는지 나는 몰랐다. 조선 배 열 척이 섬을 돌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돌라고 한 것이 나다. 얼마나 돌게 할지도 내가 정한다. 정하는 사람이 나다. 그 말을 요즘 자주 한다. 자주 하는 말은 무거워진다.

이억기의 배가 옆에 있었다. 그가 스물다섯 척을 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는 버릇이 옮았다. 옮는 것이 있다. 등뼈의 무게도 옮는지는 몰랐다. 반은 그쪽에 있었다. 오늘은 반이 가벼웠다. 가벼운 것이 이상해서 짚어 보았다. 두꺼웠다.

돌아가는 길에 종이를 썼다. 견내량과 한산도와 안골포. 마흔일곱과 열둘과 마흔둘. 장수마다의 이름과 수. 열두 곳의 뼈. 백성 때문에 일 리를 물러난 것. 다 적었다. 적어야 남는다. 남는 것이 종이다.

여수가 가까워지자 노 소리가 가벼워졌다. 돌아가는 노는 가볍다. 그것을 나는 격군에게서 배웠다. 배운 것을 종이에는 적지 않았다.

사료 · 7월 9일 안골포에 왜선 사십여 척이 머문다는 보고, 역풍으로 나가지 못하고 온천도에서 밤을 지낸 것, 7월 10일 이억기가 가덕 쪽 바깥 바다에 복병으로 남고 이순신이 학익진으로 먼저 들어가고 원균이 뒤를 이은 것 ― 견내량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 안골포의 대선 스물하나·중선 열다섯·소선 여섯, 삼층 옥선 하나와 이층 대선 둘, 포구가 얕아 썰물이면 뭍이 되는 것, 두세 번 유인했으나 나오지 않은 것, 번갈아 드나들며 총통과 장편전을 비처럼 쏜 것, 이억기가 달려와 합공해 형세가 갑절이 된 것, 층각선의 왜가 거의 죽고 시체를 작은 배로 실어 낸 것, 남은 왜가 뭍으로 오른 것, 숨은 백성이 어육이 될까 봐 일 리쯤 물러나 밤을 지낸 것 ― 같은 장계 · 7월 11일 새벽 적이 닻줄을 끊고 달아난 것, 죽은 왜를 열두 곳에 모아 태워 뼈와 손발이 어지럽고 성 안팎이 피로 붉었던 것, 양산강·김해포·감동포 수색, 몰운대까지 배를 늘어세워 군위를 보인 것 ― 같은 장계 · 일본 쪽 기록은 안골포 싸움을 「날이 저물어 양군이 물러났다」고 적고 조선 배 가운데 「쇠로 덮은 배」가 있어 총이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 정한위략이 인용한 고려선전기. 구키의 배 돛대가 부러졌다는 것은 협판가전기 · 이억기가 기다리며 포 소리를 세고 손을 든 것, 밤의 대화, 어영담의 손바닥에 안골포가 없었다는 것, 끊긴 닻줄은 지어냈다 · 이억기의 장면은 3인칭, 나머지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이 무렵 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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