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5,582자) · 1592년 8월 14일~27일, 김해와 한산도
솔잎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92년 8월 14일 (음력 7월 8일) ~ 8월 27일 (7월 21일)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번선이 좁은 목을 지나 넓은 데로 나가자 일제히 키를 돌려 큰 배를 키 모양으로 벌리고 아군 배를 에워쌌다. 적은 큰 배, 아군은 작은 배.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화살을 세지 않았다.
갑옷에 박힌 화살이었다. 몇 대인지 세지 않았다. 세면 그만큼 죽은 것이 된다. 그는 죽지 않았다. 열에 아홉이 죽는 자리에서 하나로 살았다. 십사일생. 그 말을 뒤에 가전에 적게 했다. 적게 한 것은 그였고 적은 것은 가신이었다. 가신은 죽은 가신이 아니라 산 가신이었다.
노가 많은 배를 탄 것이 살린 것이었다. 큰 배는 느리고 작은 배는 빠르다. 조선 배는 크고 자기 배는 작았다. 작은 것이 싸움에서는 죄고 도망에서는 복이었다. 그는 작은 배에서 큰 배를 올려다보았다. 큰 배 옆구리에서 불이 나왔다. 대포였다. 대포가 배를 깬다는 것을 그는 그날 알았다. 일본에서는 대포로 배를 깨지 않는다. 배에 올라타서 칼로 싸운다. 올라탈 배가 없었다. 조선 배가 높았다. 높은 것은 올라탈 수 없다.
김해로 갔다. 작은 배가 김해까지 가는 동안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면 연기가 있었다. 연기 아래 자기 배들이 있었다. 배 아래 자기 가신들이 있었다. 와키자카 사헤에. 와타나베 시치에몬.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그 연기 아래 있었다. 그는 이름을 불렀다. 소리를 내지 않고 불렀다. 소리를 내면 노 젓는 사람들이 듣는다.
*
싸움 전날 그는 혼자 가기로 했다.
구키 요시타카와 가토 요시아키가 배를 손보고 있었다. 함께 가자고 했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은 늦는 것이고 늦는 사람에게는 공이 없다. 용인에서 그랬다. 6월에 조선 군사 수만이 자기 성을 에워쌌을 때 그는 서울에서 밤을 새워 달려와 깨뜨렸다. 목 천여 급. 사로잡은 자 이백. 태합이 주인장을 내려 칭찬했다. 그것이 혼자 가서 얻은 것이었다. 혼자 가는 것이 그의 법이었다.
7월 7일에 자기 군사만 데리고 당도(거제, 일본 기록의 이름) 쪽으로 나갔다. 번선 너덧 척이 보였다. 쫓았다. 삼 리쯤 쫓았다. 번선이 좁은 목을 지나 넓은 데로 나갔다. 따라 나갔다.
거기서 번선이 일제히 키를 돌렸다.
큰 배들이 키 모양으로 벌어졌다. 곡식을 까부르는 키. 양쪽이 나오고 가운데가 들어간 모양. 그 안에 자기가 있었다. 들어가고 나서 알았다. 알았을 때는 늦었다. 늦은 사람에게는 공이 없고, 늦은 사람에게는 목숨도 없다.
적은 큰 배고 아군은 작은 배였다. 작은 배가 큰 배에 붙으려 했다. 붙어서 올라타려 했다. 올라탈 수 없었다. 큰 배에서 불덩이가 날아왔다. 배가 탔다. 타는 배에서 사람이 물에 뛰어들었다. 뛰어든 사람 위로 화살이 왔다. 그것을 그는 보았고, 보고 나서 자기 배를 돌렸다. 돌리라고 했다. 돌리는 것이 죄인지 그는 몰랐다. 살아서 돌아가면 죄가 아니라고 그는 뒤에 정했다.
*
김해에 닿았을 때 살아 온 배를 세었다.
세지 않으려 했는데 세었다. 세는 것은 버릇이다. 몇 척이었는지 가전에 적지 않게 했다. 적지 않은 것도 정하는 것이다.
마나베 사마노조가 왔다. 선장이었다. 배를 태워 먹은 사람이었다. 그가 무릎을 꿇었다. 배를 잃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와키자카는 말리지 않았다. 말리면 배를 잃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면 죽은 가신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마나베가 배를 갈랐다. 와키자카는 그 자리에 있었다.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예였다. 마나베가 죽고 나서 그는 처음으로 갑옷을 벗었다. 화살이 몇 대인지 그때 알았다. 세지 않았는데 알았다. 알게 되는 것은 세는 것과 다르다.
*
섬에는 이백 남짓이 있었다.
당도 앞바다의 그 섬. 조선 사람들은 한산도(통영 한산면)라고 불렀다. 배가 깨지고 배가 타고 물에 뛰어든 사람 가운데 헤엄쳐 섬에 오른 것이 이백 남짓이었다. 오르고 나서 알았다. 이 섬은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사방이 바다였고 바다에는 번선이 있었다. 열 척쯤이 밤낮으로 섬을 둘러쌌다.
먹을 것이 없었다.
솔잎을 먹었다. 소나무가 있어서 솔잎이 있었다. 솔잎은 쓰고 질기다. 씹으면 즙이 나오고 즙은 쓰다. 쓴 것을 삼키면 배가 조금 찬다. 찬 것 같다. 바위에 미역이 있었다. 미역을 먹었다. 날것으로 먹었다. 짜고 미끄러웠다. 짠 것을 먹으면 물이 마시고 싶은데 물이 없었다. 비가 올 때 바위 웅덩이에 고인 것을 마셨다.
하루가 갔다. 이틀이 갔다. 열흘이 갔다.
밤에 번선의 등불이 보였다. 등불이 섬을 돌았다. 도는 것이 보였다. 낮에는 배가 보였다. 큰 배였다. 높았다. 저 배에 올라탈 수 없다는 것을 섬에서 다시 알았다. 이제 올라탈 배도 없었다.
*
열사흘째에 뗏목을 엮었다.
나무판을 엮었다. 배에서 떠내려온 판자와 섬의 나무를 엮었다. 밧줄이 없어서 옷을 찢어 묶었다. 이백 남짓이 탈 수 있는 뗏목이 아니었다. 몇 개를 엮었다. 밤에 띄웠다.
번선이 보았다. 어떻게 보았는지 몰랐다. 밤이었다. 달이 있었을 것이다. 화살이 왔다. 열 명쯤이 물에 떨어졌다. 나머지는 노를 저었다. 노가 아니라 판자였다. 판자로 물을 밀었다. 밀리는 만큼 갔다.
김해에 닿았다. 이백 남짓이었다. 이백 남짓이 갔고 열이 줄어 이백 남짓이 왔다. 그것을 와키자카는 세지 않았다. 세지 않고 알았다.
돌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솔잎을 먹은 얼굴이었다. 열사흘 동안 솔잎과 미역을 먹은 얼굴은 색이 다르다. 푸르다. 푸른 얼굴들이 그의 앞에 늘어섰다. 그는 그들에게 밥을 먹이라고 했다. 밥이었다. 흰 밥. 그들이 밥을 먹는 것을 그는 보았다. 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예였다.
*
태합의 편지가 왔다.
7월 14일자였다. 당도 입구에서 큰 배들이 불탄 것은 어쩔 수 없다. 몸은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그 두 줄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나무라는 말이 아니고 용서하는 말도 아니다.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을 그는 오래 보았다. 볼 일이 아닌데 보았다.
그 아래 명이 있었다. 도도 다카토라를 보내 거제에 성을 쌓고 셋이서 함께 지켜라. 셋은 자기와 구키와 가토였다. 함께 지켜라. 혼자 가지 말라는 말이었다. 혼자 가는 것이 그의 법이었는데 그 법이 편지 한 장으로 끝났다.
구키와 가토는 안골포(창원 진해구 안골동)로 물러났다가 거기서도 졌다고 했다. 번선이 쫓아와서 해 질 때까지 포구 안에서 싸웠고, 구키의 배는 돛대가 부러졌다고 했다. 부러진 돛대를 그는 보지 못했다. 자기 배들은 돛대째 탔다. 부러진 것과 탄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 그는 몰랐다.
*
도도 다카토라가 왔다.
태합이 보낸 사람이었다. 거제에 성을 쌓으라는 명을 가지고 왔고 성을 쌓을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와키자카와 구키와 가토가 그를 맞았다. 셋이 나란히 서서 넷이 되었다. 넷이 바다를 보았다. 거제 앞바다였다. 그 너머 어딘가에 당도가 있고 당도 앞바다에 그 섬이 있었다.
구키가 부러진 돛대 얘기를 했다. 안골포에서 번선이 쫓아 들어와 해 질 때까지 포구 안에서 싸웠다. 저들은 큰 배로 번갈아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들어올 때 쏘고 나갈 때 쏘았다. 그러다가 돛대에 맞았다. 큰 쇳덩이였다. 돛대가 부러지면서 돛이 갑판에 내려앉았고 그 아래 사람이 있었다. 구키는 그 얘기를 짧게 했다. 짧게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예였다.
가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골포에서 밤에 닻줄을 끊고 나온 것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넷이 다 알았다. 닻을 바다에 두고 온 것을 다 알았다.
도도가 물었다. 저들의 배는 몇 척인가. 와키자카가 답했다. 쉰이 넘는다. 도도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답이 없는 것이 답이었다. 배는 세면 느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와키자카는 몰랐다. 조선 쪽 말인 것 같았다. 조선 쪽 말이 김해까지 어떻게 왔는지 몰랐다. 잡은 사람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성을 쌓기 시작했다. 돌을 나르는 소리가 났다. 배를 만드는 소리가 아니었다. 태합의 편지가 그렇게 시켰다. 배로 나가지 말고 성을 지켜라. 바다에서 진 사람들이 뭍에 성을 쌓았다. 쌓으면서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여전히 저들 것이었다.
*
그는 조선 수사의 이름을 몰랐다.
큰 배들을 키 모양으로 벌린 사람. 좁은 목에서 넓은 데로 끌어낸 사람.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김해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조선 사람을 잡아 물어도 답이 갈렸다. 전라도 수사라고도 하고 경상도 수사라고도 했다.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이름이 없는 사람에게 진 것이었다.
그는 그 사람의 얼굴을 생각했다. 생각할 얼굴이 없었다. 없는 얼굴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것을 그는 열사흘 동안 했다. 섬의 이백이 솔잎을 먹는 동안 그는 김해에서 없는 얼굴을 생각했다.
다음에는 그 얼굴을 볼 것이다. 볼 때는 자기가 큰 배를 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했다. 정하는 사람이 자기라고 그는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편지가 왔다. 함께 지켜라. 정하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었다.
갑옷은 고치지 않았다. 화살 구멍이 난 채로 두었다. 두는 것도 정하는 것이었다. 그것 하나는 자기가 정했다.
사료 ·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구키 요시타카·가토 요시아키가 배를 손보는 동안 혼자 제 병력만으로 7월 7일 당도 쪽으로 나가 번선 너덧 척을 삼 리쯤 쫓았고, 번선이 좁은 목을 지나 넓은 데로 나가자 일제히 키를 돌려 큰 배를 키 모양(箕手)으로 벌려 에워쌌으며, 「적은 큰 배, 아군은 작은 배」였고, 불덩이(焙烙火矢)에 배가 탔고, 가신 와키자카 사헤에·와타나베 시치에몬 등이 죽었고, 노가 많은 빠른 배로 겨우 김해로 빠져나갔으며 갑옷에 화살이 여럿 박혀 「십사일생」이었다는 것 ― 협판가전기(脇坂家傳記), 사적집람 제15책. 일본 쪽은 날짜를 7월 7일로 적는다. 조선 기록은 7월 8일이다 · 살아남은 이백여 명이 섬에 올라 열사흘 동안 솔잎과 해초를 먹으며 버텼고 번선 열 척쯤이 밤낮으로 둘러쌌으며 나무판 뗏목으로 빠져나가다 열 명쯤 화살에 맞고 이백 남짓이 김해로 돌아온 것, 선장 마나베 사마노조가 배를 태운 책임으로 할복한 것 ― 같은 책 · 구키·가토가 안골포로 물러났으나 번선이 쫓아와 해 질 때까지 포구 안에서 싸워 졌고 구키 배의 돛대가 부러진 것 ― 같은 책 · 히데요시의 7월 14일자 주인장 「당도 입구에서 큰 배들이 불탄 것은 어쩔 수 없다, 몸은 무사하다니 다행」과 도도 다카토라를 보내 거제에 성을 쌓고 셋이 함께 지키라는 명 ― 같은 책 · 6월 용인에서 와키자카가 조선 군사 수만을 깨고 목 천여 급을 벤 것 ― 같은 책. 조선 쪽 기록(징비록)은 이 싸움을 삼도 근왕군의 패전으로 적는다 · 「안치는 겨우 면하여 김해로 돌아갔다」 ― 정한위략이 인용한 하야시 라잔의 와키자카 안치 비음 · 협판가전기는 OCR 원문이어서 이름 표기에 오독이 있을 수 있다. 여기 적은 이름은 그 정리본을 따랐다 · 도도 다카토라가 온 뒤 넷이 바다를 본 것과 그 대화, 와키자카가 화살을 세지 않은 것, 마나베의 할복 자리에 있었던 것, 솔잎과 미역의 맛, 푸른 얼굴, 갑옷을 고치지 않은 것, 조선 수사의 이름을 몰랐다는 것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전부 와키자카의 3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열사흘은 일본 쪽 기록의 날수를 그대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