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5,628자) · 1592년 8월 말, 평안도 안주와 의주
안주
이순신 · 네오
1592년 8월 말 (음력 7월 하순), 평안도 안주(평안남도 안주) 이 무렵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과 거제 바다에서 적병을 크게 깼다.
류성룡은 비를 맞고 있었다.
안주성 밖 들판이었다. 명나라 군사가 천막이 없어서 들판에 널려 있었다. 이레째 밤낮으로 비가 와서 갑옷과 옷이 다 젖었고, 군사들은 젖은 채로 땅에 누워 있었다. 들판에는 젖은 짚과 말똥과 식은 재 냄새가 한데 섞여 낮게 깔렸고, 빗소리 사이로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부총병 조승훈의 군사 삼천이었고, 평양을 치러 갔다가 진 군사였다.
조승훈은 밤중에 안주성 밖에 말을 세우고 역관 박의검을 불러 말했다. 우리 군사가 오늘 적을 많이 죽였는데 불행히 사 유격이 다쳐 죽었고,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큰비에 진창이 되어 적을 다 죽이지 못했다. 군사를 더해 다시 올 것이니 너희 재상에게 말해 움직이지 말고 부교도 걷지 말라 하라. 말을 마치고 두 강을 건너 공강정에 군사를 세웠다. 진 사람이 물러날 길부터 챙겼다. 류성룡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서도 종사관을 보내 위로하고 군량과 반찬을 실어 보냈다.
명군이 이틀을 공강정에 머무는 동안 비가 그치지 않았고 군사들이 다 조승훈을 원망했다. 원망하던 군사들은 결국 요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류성룡은 그것을 말리지 못했고, 대신 사람의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워 안주에 남게 해 달라고 아뢰었다. 흔들리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백성이었다.
그 비 속에서 남쪽 종이가 왔다.
*
종이는 역자가 젖은 채로 가지고 왔다. 남쪽에서 안주까지 오는 종이는 적이 먼저 읽는다고 그는 생각했었는데, 이 종이는 적이 읽지 않았다. 적이 없는 길로 왔다. 그 길이 어디인지 그는 몰랐다. 서해 바다로 배를 타고 왔을 것이다. 기름 먹인 종이로 두 겹 싸 왔다는데도 겉장은 물을 먹어 흐물거렸고, 역자의 손끝은 불어서 하얗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장계였다.
비 속에서 읽었다. 종이가 젖어서 글자가 번졌고 번진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었다. 거제 바다 견내량(거제와 통영 사이 좁은 물목)에 왜선 일흔셋, 좁은 목에서 넓은 바다로 끌어냄, 학익진, 마흔일곱을 깨고 열둘을 잡고 열넷이 달아남, 안골포(창원 진해구 안골동)에서 다시 마흔둘, 왜 사백여 명이 섬에 올라 굶음.
그는 두 번 읽었고 두 번째는 숫자를 세며 읽었다. 그 사람은 무엇이든 센다고 들었는데, 그 버릇이 종이를 타고 옮아왔다.
읽고 나서 그는 비를 맞으며 서 있다가 종이를 품에 넣었다. 젖은 종이를 젖은 품에 넣으면 더 젖는데 그래도 넣었고, 넣은 자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옷 너머로 종이가 가슴에 차갑게 붙었다.
건천동(서울 중구 인현동) 골목이 생각났다. 넷으로 여덟 앞에 서던 아이, 당길 때 안 떨리고 풀 때 떨리던 손. 그 손이 쉰다섯으로 일흔셋 앞에 섰다. 넷이면 넷으로 한다고 했으니 쉰다섯이면 쉰다섯으로 했다.
그는 비 속에서 웃었다. 열다섯이 열둘을 보고 웃던 웃음이었는데, 그 웃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몰랐다. 곁에 있던 종사관이 그를 보았다. 좌상이 웃는 것을 그 종사관은 안주에 온 뒤로 처음 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남쪽에서 이겼다.”
“어디서.”
“바다에서.”
종사관이 무슨 바다냐고 물었는데 류성룡은 답하지 않고 명군의 천막 없는 들판을 보았다. 빗물이 갓 끝에서 모여 떨어지며 목덜미로 흘러들었다. 젖은 군사 삼천이 있었다. 저들은 뭍에서 졌고 남쪽 사람은 바다에서 이겼고, 뭍과 바다가 같은 나라에 있었다. 그것을 그는 임금에게 어떻게 아뢸지 생각했다.
*
임금은 의주(평안북도 의주)에 있었다.
압록강 가였고 강을 건너면 명나라였다. 건너는 것을 두고 조정이 갈렸었다. 건너자는 사람과 건너면 나라가 없어진다는 사람이 있었고 류성룡은 건너면 안 된다는 쪽이었다. 아직 안 건넜다. 안 건넌 채로 강가에 머무는 것이 임금에게 남은 마지막 버팀이었다.
장계가 의주에 닿았다. 류성룡이 보낸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곧장 올린 것이어서 안주를 거치지 않고 갔다. 임금이 먼저 읽고 류성룡이 나중에 읽었는지 그 반대인지 그는 몰랐다. 종이가 두 장이어서 한 장은 안주로, 한 장은 의주로 갔다. 꼼꼼한 사람은 종이도 두 장 쓴다.
임금이 그 종이를 읽었다는 말을 뒤에 들었고, 읽고 나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들었다. 전한 사람의 말이라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래도 들었다.
이순신이 누구인가.
그 말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정읍(전북 정읍)현감을 일곱 계단 뛰어 전라좌수사로 올린 그 사람입니다. 누가 그렇게 답했는지 몰랐다. 임금이 다시 물었다고 했다. 누가 천거했는가. 류성룡입니다.
류성룡은 그 말을 안주에서 듣고 나서 오래 말이 없었다. 천거한 것이 죄가 될지 공이 될지 그는 그때 몰랐고 지금은 공이었다. 공은 언제 죄가 되는지 모른다. 그 말을 그는 종사관에게 하지 않았다. 등잔 심지가 젖은 공기에 자꾸 치직거렸고, 그는 그것을 손톱으로 두어 번 돋우고 말았다.
*
같은 종이를 원균도 올렸다.
그것을 류성룡은 나중에 알았다. 경상우수사 원균의 장계가 따로 와서 같은 싸움이 다른 종이에 적혀 있었고, 종이마다 자기가 앞에 있었다. 이순신의 종이에는 이순신이 앞장서 학익진을 폈고 원균이 뒤를 따랐다. 원균의 종이에는 원균이 그 바다를 알아 길을 잡았고 목을 많이 베었다.
두 종이를 나란히 놓으면 어느 쪽이 무거운지 류성룡은 알았는데, 아는 것과 조정이 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조정은 목을 세는 데가 있었고 목은 원균 쪽이 많았다. 이순신은 쏘아 죽이는 데 힘쓰고 목은 뒤로 미룬다고 종이에 적어 놓았다. 그 한 줄을 조정이 읽을지 그는 몰랐다.
뒤에 그는 징비록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 적이 뭍에 오르자 원균은 적의 형세가 큰 것을 보고 감히 나가 치지 못하고 전선 백여 척과 화포와 군기를 다 바다에 가라앉혔다. 홀로 수하 비장 이영남과 이운룡 등과 배 넉 척을 타고 곤양(사천 곤양면) 바다 어귀로 달아나 뭍에 내려 적을 피하려 했다. 수군 만여 명이 다 흩어졌다. 이영남이 말렸다. 공은 명을 받아 수군절도사가 되었는데 이제 군사를 버리고 뭍에 내리면 뒷날 조정이 죄를 물을 때 무엇으로 변명하겠습니까. 전라도에 군사를 청해 적과 한 번 싸우고 이기지 못한 뒤에 달아나도 늦지 않습니다. 원균이 그렇게 여겨 이영남을 이순신에게 보내 구원을 청했다. 이순신은 각각 경계가 있으니 조정의 명이 아니면 어찌 멋대로 경계를 넘겠는가 하고 거절했다. 원균이 다시 보냈다. 오가기를 대여섯 번 했다. 이영남이 돌아올 때마다 원균은 뱃머리에 앉아 바라보며 통곡했다.
그 대목을 쓸 때 그는 원균의 종이도 이순신의 종이도 옆에 두지 않았다. 들은 것만으로 썼다. 들은 것은 종이와 다르다. 종이에는 이순신이 먼저 가겠다고 조정에 아뢰었다고 되어 있고, 들은 것에는 이순신이 대여섯 번 거절했다고 되어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 그는 뒤에도 몰랐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썼고, 쓴 것이 남았다.
*
명군이 머무는 동안 안주 백성이 밥을 지었다.
삼천이 먹는 밥이었다. 성 안의 솥이 다 나왔고 성 밖의 솥이 다 나왔다. 젖은 장작이 잘 붙지 않아 솥마다 매운 연기가 옆으로 누웠고, 여자들은 눈을 비비며 부지깽이로 불을 쑤셨다. 여자들이 밥을 지어 비를 맞으며 들판으로 날랐고, 젖은 밥을 젖은 군사가 먹었다. 진 군사가 먹는 밥이었다. 이긴 군사의 밥과 진 군사의 밥이 같은 쌀이었다.
류성룡은 그것을 성 위에서 보았다. 밥을 이고 가는 여자 하나가 들판 가운데서 미끄러져 밥이 진창에 쏟아졌고, 여자는 그것을 손으로 주워 담았다. 흙이 섞인 밥알을 한 줌씩 떠서 광주리에 도로 넣는 손이 빨갛게 얼어 있었고, 그 손은 쌀 한 톨도 남기지 않으려고 진창을 두 번 세 번 훑었다. 그 손은 이 나라의 겨울을 담고 있었다.
품에 든 종이를 생각했다. 그 종이의 사람은 배를 세고 군량을 센다고 했으니 세는 사람은 먹일 입도 셀 것이다. 남쪽에 먹일 입이 이백이 늘었다는 것을 그는 아직 몰랐고 알았어도 같았을 것이다. 안주에도 먹일 입이 삼천이었다. 삼천이 요동으로 돌아가면 안주는 조금 가벼워지는데, 가벼워지는 것이 이기는 것인지 그는 몰랐다.
종사관이 옆에 와서 명군이 내일 떠난다고 했고 그가 알았다고 했다. 그 말밖에 할 것이 없었다. 남쪽 사람은 그 말을 어떻게 하는지 그는 몰랐다. 종이에는 그 말이 없었다.
*
비가 그쳤다.
그친 들판에서 명군이 요동으로 떠나는 것을 그는 성 위에서 보았다. 삼천이 북쪽으로 갔다. 북쪽으로 가는 군사의 등은 남쪽으로 가는 군사의 등과 달랐다. 젖은 깃발이 창끝에 감긴 채 풀리지 않았고, 진창에 빠진 수레바퀴를 여럿이 밀어 올리는 소리가 성 위까지 올라왔다.
품에 종이가 있었다. 젖었다가 마른 종이였고 마른 종이는 구겨진다. 구겨진 것을 그는 펴지 않았다. 펴면 찢어진다.
거기 바다가 있었다. 견내량, 한산도(통영 한산면), 안골포. 그는 그 바다를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가 볼 길이 없었다. 가 보지 못한 바다를 종이로 보았는데, 종이로 보는 바다는 넓었다. 일흔셋의 돛이 좁은 목을 빠져나와 넓은 데로 나가고 쉰다섯이 날개를 편다. 그는 그것을 안주 성 위에서 보이지 않는 채로 보았다.
남쪽에 배가 있고 그 배들이 서해로 오르는 길을 막고 있다. 막고 있어서 평양의 적이 바다로 군량을 못 받고, 못 받으면 겨울에 굶고, 굶는 적은 물러난다. 그것을 그는 계산했다. 계산이 맞는지는 겨울이 되어야 안다.
겨울까지 안주에 있을 것이다. 정한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되는 대로 두는 것도 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은 남쪽 사람의 말이었다.
사료 · 조승훈이 평양에서 지고 밤중에 안주성 밖에서 역관 박의검에게 「군사를 더해 다시 오겠다, 부교를 걷지 말라」 하고 두 강을 건너 공강정에 머문 것, 이레 동안 큰비에 군사가 들판에서 젖은 채 조승훈을 원망하다 요동으로 돌아간 것, 류성룡이 종사관을 보내 위로하고 군량을 보낸 것, 인심이 흔들릴까 안주에 남기를 아뢴 것 ― 류성룡, 징비록 권1 ·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과 거제 바다에서 적병을 크게 깼다」, 원균이 전선 백여 척을 가라앉히고 배 넉 척으로 곤양으로 달아나려 한 것, 이영남이 말리고 이순신에게 대여섯 번 구원을 청한 것, 이순신이 「조정의 명이 아니면 경계를 넘을 수 없다」고 거절한 것, 원균이 뱃머리에서 통곡한 것, 판옥선 마흔 척, 견내량에서 「이 바다는 좁고 얕아 돌기 어려우니 물러나는 척해 넓은 데로 끌어내자」, 원균이 곧장 치려 하자 「공은 병법을 모른다」 한 것, 거북선의 생김 ― 징비록. 징비록의 「판옥선 마흔 척」 「전선 백여 척 자침」은 이순신의 장계와 다르다. 장계는 좌수영 스물넷·우수영 스물다섯·경상 일곱을 적는다 · 한산 승첩 장계가 의주에 닿아 임금이 읽은 것, 「이순신이 누구인가」 물었다는 것, 원균이 따로 장계를 올렸다는 것은 선조실록에 기대야 하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 임금의 말과 종사관의 물음은 지어냈다 · 류성룡이 안주에서 비 속에 장계를 읽은 것, 웃은 것, 밥을 이고 가다 미끄러진 여자, 겨울의 계산은 지어냈다 · 이 회차는 류성룡의 3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장계가 안주에 닿은 날은 사료에 없어 7월 하순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