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523자) · 1592년 8월 14일, 한산도 앞바다
한산도
이순신 · 네오
1592년 8월 14일 (음력 7월 8일) 이날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여러 장수와 군사와 아전이 이긴 기세를 타고 뛰며 앞다투어 돌진하여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쏘니 형세가 바람과 우레 같았다. 배를 태우고 적을 죽이기를 한꺼번에 거의 다 했다.
끝동은 날개 끝에 있었다.
여섯째 노에서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노 구멍으로 보이는 것은 옆 배뿐인데 옆 배가 없었고, 왼쪽 노 구멍에 바다만 있었다. 배가 줄의 맨 끝에 있다는 것을 그는 그것으로 알았다. 맨 끝은 날개 끝이고, 날개 끝이 제일 멀리 가고 제일 나중에 닿는다.
노 자리는 갑판 아래라 어둡고 낮았다. 허리를 다 펴면 머리가 들보에 닿았고, 한여름 볕에 달궈진 위 판자에서 내려오는 열기와 스무 사람 넘는 격군의 땀 냄새가 한데 고여 숨을 쉴 때마다 짠맛이 목에 걸렸다. 노 손잡이는 수없는 손에 닳아 반들반들했는데, 그 반들한 데가 젖으면 미끄러워서 끝동은 손바닥을 바짓가랑이에 한 번씩 문질러 가며 잡았다.
북이 빨랐다. 견내량(거제와 통영 사이 좁은 물목)에서 물러날 때는 느렸는데, 느린 북에 맞춰 젓는 것은 힘들다. 힘을 다 못 쓰고 남기면 남은 힘이 팔뚝에서 떨고, 그 떨림을 한 식경 참았다. 그러다가 북이 바뀌었다. 한 번 울리고 한 번 당기고 그 사이에 숨이 없었다. 배가 돌면서 왼쪽 노가 물에 잠기고 오른쪽 노가 들렸고, 돌아서면서 그는 알았다. 이제 물러나는 것이 아니다.
돌쇠가 노를 당기며 말했다.
“학이라던데.”
“뭐가?”
“진 이름이. 학 날개.”
“학 봤어?”
“못 봤지. 순천에 학이 어딨어.”
말 없는 쪽이 노를 젓는 채로 말했다.
“우리가 날개 끝이다. 학은 날개 끝이 제일 빠르다.”
돌쇠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는데 말 없는 쪽이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이 답이었다.
*
포가 먼저 터졌다.
가운데서 터져서 날개 끝에서는 소리가 늦게 왔고, 소리가 오기 전에 물이 먼저 왔다. 포가 터지면 물이 밀리고 밀린 물이 옆 배를 밀고 옆 배가 옆 배를 밀어 날개 끝까지 온다. 배가 한 뼘 밀렸다가 돌아왔다. 끝동의 손이 먼저 버텼다. 세 번째 싸움이었고 세 번이면 손이 안다.
그다음에 소리가 왔다. 지자와 현자와 승자, 세 가지 소리가 잇달아 왔고 잇달아 왔던 것이 한데 섞여 하나가 되었다. 그 하나 속에서 큰 나무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배가 깨지는 소리는 나무 깨지는 소리고, 사람 소리는 그 뒤에 온다. 조금 뒤에는 매캐한 화약 연기가 노 구멍으로 밀려 들어와 어둑한 노 자리를 더 어둡게 했고, 앞사람의 등이 연기 속에서 흐려졌다.
위에서 누가 붙여라, 하고 외쳤다.
날개가 닫히고 있었는데 끝동은 그것을 몰랐다. 아는 것은 노가 오른쪽으로 계속 잠긴다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잠기면 배가 왼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면서 앞으로 간다. 날개 끝이 안으로 감기고 있었다. 그것을 위에서 보면 학이 날개를 접는 것이고 노 자리에서 보면 오른쪽 노가 잠기는 것이다.
적의 총 소리가 났다. 짧고 마른 소리, 판자에 박히는 소리였는데 옥포보다 많았고 사천보다 많았다. 판자 위에 우박이 오는 것 같았다. 판자가 있어서 아래로는 안 내려왔다. 판자 두께만큼 살아 있었다. 세 번째로 그것을 생각했다.
*
노 구멍으로 배가 보였다.
적의 배였고 가까웠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는데 노 구멍으로는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검은 배였고 옆구리에 꽃인지 짐승인지 모를 그림이 있었고, 그 그림 위로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배 위에서 아래를 보고 있었다. 노 구멍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마주쳤다고 끝동은 생각했다. 노 구멍은 작고 어두워서 밖에서 보면 안이 안 보이니, 그 사람이 노 구멍을 본 것이지 끝동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눈이 마주쳤다. 마주쳤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는 막지 못했다.
그 사람이 총을 들어 노 구멍을 겨눴다. 끝동은 노를 놓지 않았다. 놓으면 넷이 무거워진다. 놓지 않고 눈을 감았다.
총 소리가 나고 판자에 박혔다. 노 구멍 바로 위, 판자 두께만큼 비껴간 자리였다.
눈을 떴을 때 그 사람이 없었다. 배가 돌아서 있었고, 검은 배의 옆구리가 지나갔고, 그림이 지나갔고, 그다음에 불이 지나갔다. 그 배가 타고 있었다. 언제 불이 붙었는지 몰랐고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는 다시 노를 저었다. 손이 젖어 있었는데 물인지 땀인지 몰랐다.
*
싸움은 해가 기울 때까지 갔다.
병방이 내려오지 않았다. 내려올 틈이 없었다. 위에서 뛰는 소리와 부르는 소리와 활줄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노를 젓고 멈추고 돌리고 젓는 것을 북이 다 말했다. 북 치는 사람이 누구인지 끝동은 몰랐다. 얼굴을 본 적이 없고 소리만 알았다. 그에게는 그 소리가 곧 사람이었다.
한 번 배가 크게 흔들렸다. 우리 배가 무언가를 들이받았다. 들이받으면 뱃머리가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노가 물에서 떴다가 잠기는데, 그 순간에 노를 놓친 사람이 있었다. 앞의 여수 사람이었다. 노가 손에서 빠져나가 물에 잠겼다가 떠올랐고, 떠오른 노를 넷이 잡았고, 놓친 사람이 다시 잡았다. 손이 피투성이였다. 빠져나가던 노가 손바닥을 찢어 놓았는데, 그 손으로 다시 잡았다. 놓으면 넷이 무거워진다.
*
해가 기울고 북이 멈췄다.
노를 담근 채로 배가 미끄러졌다. 위에서 소리가 잦아들고 대신 다른 소리가 왔다. 사방에서 타는 소리였다. 옥포보다 컸고 사천보다 컸다. 노 구멍으로 보이는 바다가 저녁 해와 불빛을 한꺼번에 받아 붉게 번들거렸고, 물 위에는 부서진 판자와 검게 탄 돛 조각이 느린 물살을 따라 천천히 돌았다.
병방이 내려와 노 자리마다 다니며 말했는데 말이 길었다. 순천부사가 층각 대선 한 척을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잡고 왜장과 열 명의 목을 베었다. 광양현감이 층각 대선 한 척을 잡고 왜장을 쏘아 맞혀 묶어 왔는데 화살이 깊어 말을 못 해 곧 베었다. 사도첨사가 대선 한 척에 열여섯, 흥양(고흥)현감이 한 척에 여덟이었다. 방답첨사는 한 척에 넷인데, 쏘아 죽이는 데 힘쓰고 목은 힘쓰지 않았으며 또 두 척을 쫓아가 깼다. 녹도(고흥 도양읍 녹동)만호가 층각 대선 두 척, 낙안군수 한 척에 일곱, 여도권관 한 척에 셋, 발포(고흥 도화면)만호 층각선 한 척. 그 밖의 대선 스물과 중선 열일곱과 소선 다섯을 좌우도 장수들이 힘을 합쳐 태우고 깼다. 화살 맞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셀 수 없다.
병방이 숨을 쉬고 나서 말했다.
왜 사백여 명이 힘이 다해 배를 버리고 한산도(통영 한산면)로 올라갔다. 대선 하나 중선 일곱 소선 여섯이 뒤에 처져 있다가 노를 재촉해 달아났다. 종일 싸워 장수와 군사가 지쳤고 날이 어두워 끝까지 쫓지 못했다.
돌쇠가 노에 턱을 괴고 물었다.
“그래서 몇 척인데.”
병방이 손가락으로 세어 마흔일곱이라고 했다. 마흔일곱을 깼고 열넷이 달아났고, 열둘은 사람이 뭍으로 오르고 배는 남았다.
돌쇠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병방이 답하지 않고 다음 노 자리로 갔다.
*
앞의 여수 사람이 찢어진 손바닥을 보고 있었다. 피가 굳고 있었다. 끝동이 제 소금을 꺼냈다. 순덕이 새로 준 마른 종이의 소금이었고, 종이를 펴니 마른 소금이었다. 물이 없었고, 병방이 물을 돌리기 전이었다.
그는 소금을 물에 풀지 않고 그냥 그 손바닥에 놓았다. 여수 사람이 아리다고 소리를 냈다. 아린 것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끝동은 말하지 않았다. 순덕이 한 말을 남에게 하는 것은 이상했다. 대신 소금 놓은 손을 자기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병방이 물을 돌릴 때까지. 감싼 손 안에서 남의 손이 떨다가 차츰 잦아들었고, 소금 알갱이가 피에 녹아 끈적하게 두 손바닥 사이에 붙었다.
노 구멍 밖에 한산도가 있었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는 섬이었다. 나무 사이에 사람이 있을 것이고 사백이 있을 것이다. 사방에 헤엄쳐 나갈 길이 없다고 했고 굶어 죽는다고 했다. 굶는 것이 어떤 것인지 끝동은 알았다. 여수 어부는 굶어 본 적이 있다.
그 사백이 저 산에서 굶을 것이다. 저 산에 소나무가 있을 것이니 솔잎을 먹을 것이고, 바위에 미역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먹을 것이다. 얼마나 갈까. 끝동은 그것을 세지 않았다. 세는 것은 장군이 한다. 격군은 노를 놓지 않는다.
배가 견내량 안쪽으로 들어가 밤을 지냈다. 노를 거두어 들이자 팔이 제 것 같지 않게 떨렸다.
*
밤에 나는 세었다.
마흔일곱과 열넷과 열둘과 사백. 세는 것이 내 일이다. 장수마다 몇 척을 깼고 몇 급을 베었는지 군관이 받아 두었는데 방답첨사는 넷이었다. 쏘아 죽이는 데 힘쓰고 목은 뒤로 미룬다. 그것을 나는 장수들에게 약속시켰다. 목 하나를 벨 때 화살 여러 대를 쏠 수 있으니 목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맞히는 것을 먼저 하라, 힘껏 싸웠는지는 내가 눈으로 본다. 방답첨사가 그것을 지켰다. 넷이라고 올리면 조정은 넷으로 볼 것이고, 나는 넷이 아닌 것을 안다. 그 앎을 수로 옮길 수가 없어서 「쏘아 죽이는 데 힘쓰고 목은 힘쓰지 않았다」는 한 줄을 더 적었다. 그 한 줄이 조정에 닿는지는 모른다.
어영담이 쏘아 맞힌 왜장을 나는 보았다. 내 배에 묶여 왔고 죄를 물으려 했는데 화살이 깊어 말이 통하지 않았다. 통하지 않는 것이 말인지 화살인지 몰랐다. 곧 베었는데, 베라고 한 것이 나였다.
한산도에 사백이 있고 굶을 것이다. 굶어 죽으라고 거기로 끌어냈다. 아홉 해 전 눈밭에서 묶인 얼굴을 보았고 오늘 바다에서 묶인 얼굴을 보았다. 같은 일을 다른 말로 부르지 않는다.
견내량 안쪽 물은 바람이 없어 잔잔했고, 멀리 한산도 쪽에서 타다 남은 배의 불빛이 밤새 꺼졌다 살았다 했다. 앞이 붙고 뒤가 붙은 어깨가 오늘은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해서 손으로 짚어 보았더니 두꺼웠다. 두꺼운 것은 비 오기 전에 안다. 내일 비가 오는지 나는 몰랐다.
사료 · 장수와 군사가 이긴 기세를 타고 돌진해 화살과 탄환이 바람과 우레 같았던 것, 장수마다의 전과(권준 층각대선 한 척과 왜장 등 열 급, 어영담 층각대선 한 척과 왜장을 쏘아 묶어 왔으나 화살이 깊어 말을 못 해 곧 벤 것, 김완 열여섯 급, 배흥립 여덟 급, 방답첨사 이순신 네 급과 「쏘아 죽이는 데 힘쓰고 목은 힘쓰지 않았다」, 정운 층각대선 두 척, 신호 일곱 급, 김인영 세 급, 발포만호 황정록 층각선 한 척), 그 밖에 대선 스물·중선 열일곱·소선 다섯을 좌우도 장수가 합력해 깬 것, 왜 사백여 명이 한산도로 오른 것, 대선 하나·중선 일곱·소선 여섯이 달아난 것, 견내량 안쪽에서 밤을 지낸 것 ― 견내량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 「목 하나를 벨 때 화살 여러 대를 쏠 수 있다, 목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맞히는 것을 먼저 하라, 힘껏 싸웠는지는 내가 본다」고 장수들과 약속한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 한산도가 사방에 헤엄쳐 나갈 길이 없어 뭍으로 올라도 굶어 죽는다는 것 ― 견내량파왜병장. 섬에 오른 왜가 솔잎과 해초를 먹으며 버텼다는 것은 일본 쪽 기록 협판가전기에 있다(다음 회차) · 끝동·돌쇠는 지어낸 인물이다. 날개 끝의 노 자리, 노 구멍으로 마주친 눈, 노를 놓친 손, 소금은 지어냈다 · 격군의 장면은 3인칭, 밤의 장면은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이날 일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