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171자) · 1592년 8월 13일~14일, 당포에서 한산도 앞바다까지
견내량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92년 8월 13일 (음력 7월 7일) 일기를 쓰지 못했다. 7월 7일 동풍이 크게 불어 배를 몰 수 없었다. 고성 땅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에 이르러 해가 저물어 나무하고 물을 긷는데, 피난해 산에 오른 그 섬의 목자 김천손이 우리 배를 바라보고 달려와 알렸다. 적선 대·중·소 합쳐 칠십여 척이 이날 미시(낮 한 시에서 세 시 무렵)에 영등포(거제 장목면 구영리) 앞바다에서 거제와 고성 지경 견내량에 와서 대었다.
이억기가 저녁에 왔다.
7월 4일 저녁이었다. 약속한 때에 약속한 자리로 왔다. 늦은 사람은 많이 오고, 한 번 늦은 사람은 다음에 늦지 않는다. 그것을 나는 그날 배웠다. 이튿날 약속을 정하고 그다음 날 배를 띄웠다. 좌수영(여수)과 우수영(해남 문내면)을 합쳐 마흔여덟이었다. 두 번 셌다.
노량(남해 설천면과 하동 사이 물목)에 이르니 원균이 있었다. 배가 일곱이었다. 부서진 전선을 고쳐 끌고 온 것이었다. 부서진 배는 고치면 배가 된다. 세 척이 일곱이 된 것을 나는 세었고, 어떻게 넷이 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 사람이 생긴다. 쉰다섯이었다.
바다 가운데서 다 모여 약속을 두 번 세 번 밝혔다. 그러고 나서 진주 땅 창신도(남해 창선도)에서 해가 저물어 밤을 지냈다.
*
7월 7일에 동풍이 크게 불었다.
동풍은 맞바람이다. 견내량은 동쪽에 있다. 동쪽으로 가려는데 동쪽에서 바람이 오면 배가 못 간다. 노로 가면 가지만 노로 가면 격군이 죽는다. 격군이 죽으면 싸움터에 닿아서 싸울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안 가는 것도 정하는 것이다.
고성 땅 당포에 배를 댔다. 지난달에 누각선의 왜장을 쏘아 떨어뜨린 그 당포다. 성 안이 아직 검었다. 타고 남은 것은 검고 검은 것은 한 달이 지나도 검다. 해가 저물어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다.
그때 산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
김천손은 말 치는 사람이다.
당포 섬의 목자였다. 나라의 말을 섬에 풀어 기르는 것이 그의 일이었고, 말을 세는 것이 그의 일이었고, 말이 몇 마리인지 해마다 종이에 적어 올리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왜가 온 뒤로 말은 없어졌다. 왜가 잡아먹었거나 산으로 흩어졌다. 그는 산으로 올라갔다. 말이 흩어진 산으로 사람도 흩어졌다.
산꼭대기에서 바다가 보였다. 영등포 앞바다가 보이고 견내량 물목이 보였다. 그는 날마다 그것을 보았다. 볼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보면서 세었다. 세는 것이 버릇인 사람은 무엇이든 센다.
이날 미시(낮 한 시에서 세 시 무렵)에 배가 왔다.
영등포 앞바다에서 견내량 쪽으로 배가 줄지어 갔다. 그는 세었다.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일흔 남짓이었다. 일흔이 넘는 것을 세는 데 시간이 걸렸고 세는 동안 배가 계속 왔다. 다 세고 나서 한 번 더 세었다. 일흔셋이었다. 그 배들이 견내량에 들어가 닻을 내렸다.
그리고 해 질 무렵에 당포 쪽에서 다른 배가 왔다.
우리 배였다. 판옥선이었다. 세었다. 쉰이 넘었다. 쉰이 넘는 판옥선을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그것이 당포 앞에 대고 사람들이 뭍에 내려 나무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산을 내려갔다. 뛰었다. 뛰면서 일흔셋을 잊지 않으려고 입 안에서 되풀이했다. 일흔셋 견내량 미시(낮 한 시에서 세 시 무렵). 일흔셋 견내량 미시(낮 한 시에서 세 시 무렵). 산을 내려가는 데 한 식경이 걸렸고 한 식경 동안 그 여섯 마디를 놓지 않았다.
판옥선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숨이 차서 말을 못 했다. 군사가 그를 막았다. 그가 손을 들어 동쪽을 가리켰다. 그러고 나서 손가락을 폈다. 일곱 번 폈다. 그다음에 세 개를 폈다. 군사가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일흔셋. 견내량. 미시(낮 한 시에서 세 시 무렵).”
군사가 위로 뛰어 올라갔다.
*
김천손을 내 배로 불렀다.
작은 사람이었다. 말을 치는 사람의 손이었다. 손바닥에 고삐 자국이 굳어 있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대선과 중선과 소선을 합쳐 일흔셋. 오늘 미시(낮 한 시에서 세 시 무렵)에 영등포 앞바다에서 견내량으로 들어와 대었다. 두 번 셌다고 했다.
“두 번 셌는가?”
“두 번 셌습니다. 두 번 다 일흔셋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오래 보았다. 볼 일이 아닌데 보았다. 산꼭대기에서 배를 세는 사람이 있었다. 세는 것이 일인 사람이 나 말고도 있었다. 그 사람이 산을 뛰어 내려와 여섯 마디를 놓지 않고 왔다.
“말은 몇 마리였는가?”
그가 무슨 말인지 몰라 나를 보았다.
“왜가 오기 전에. 이 섬의 말이.”
“백여든넷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없다고 했다. 백여든넷이 없다고 했다. 세는 사람은 없어진 것도 센다. 나는 그에게 쌀을 주라고 했다. 왜선에서 얻은 쌀이었다. 그가 받고 산으로 돌아갔다. 산꼭대기에서 내일 싸움을 볼 것이다. 세면서 볼 것이다.
장수들에게 다시 일렀다. 내일 아침이다.
*
8월 14일 (7월 8일) 일기를 쓰지 못했다. 7월 8일 이른 아침에 적선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바다 가운데 이르러 바라보니 왜의 대선 한 척과 중선 한 척이 선봉으로 나와 우리 군사를 살펴보고 저들이 진 친 곳으로 돌아 들어갔다. 쫓아가 이르니 대선 서른여섯 척, 중선 스물네 척, 소선 열세 척이 진을 벌여 대어 있었다.
이른 아침에 견내량으로 갔다.
바다 가운데서 배 두 척이 보였다. 큰 것 하나와 중간 것 하나. 우리를 보러 나온 것이었다. 보고 나서 돌아갔다. 보러 온 배는 쫓지 않는다. 보고 돌아가서 말하게 둔다. 저들이 우리를 보았으니 우리 수를 알 것이다. 쉰다섯. 저들은 일흔셋. 저들이 더 많다. 더 많은 쪽이 쫓아온다.
쫓아 들어가 보니 진을 벌이고 있었다. 김천손이 센 그대로였다. 서른여섯과 스물넷과 열셋. 나는 세지 않았다. 센 사람이 있었다.
견내량은 좁다. 어영담의 손바닥에서 제일 좁은 금이다. 물목이 좁고 물속에 숨은 바위가 많다. 판옥선이 들어가면 서로 부딪친다. 부딪치면 싸움이 안 된다. 그리고 적이 형세가 궁하면 기슭에 배를 대고 뭍으로 오른다. 뭍으로 오르면 다 못 잡는다. 사천에서 그랬고 당항포(고성 회화면)에서 그랬다.
끌어낸다.
한산도(통영 한산면) 앞바다로 끌어낸다. 한산도는 거제와 고성 사이에 있다. 사방에 헤엄쳐 나갈 길이 없다. 뭍으로 올라도 굶어 죽는다. 거기서 다 잡는다. 어영담이 손바닥 가운데를 짚었던 그 자리다. 아홉 해 전 눈밭이 그 자리다.
판옥선 대여섯 척을 먼저 보냈다.
선봉의 적선을 쫓는 시늉을 하고 들이칠 형세를 보이라고 했다. 보이기만 하라고 했다. 저들이 일제히 돛을 달고 쫓아오면 거짓 물러나 돌아오라고 했다. 물러나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돌아보면 물러나는 것이 거짓인지 참인지 저들이 안다.
대여섯 척이 들어갔다.
*
들어간 배가 저들의 선봉을 쫓았다. 저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돛이 올라갔다. 일흔셋의 돛이 한꺼번에 올라가는 것을 나는 바다 가운데서 보았다. 흰 돛이 견내량을 메웠다. 돛을 달고 쫓아왔다. 우리 배가 물러났다. 돌아보지 않고 물러났다. 저들이 쫓기를 그치지 않았다.
물목을 빠져나왔다. 바다 가운데였다.
넓었다. 한산도 앞바다는 넓었고 물이 깊었고 바위가 없었다. 여기서는 판옥선이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여기서는 큰 배가 큰 배답다.
여러 장수에게 명했다.
학익진.
학이 날개를 펴는 모양이다. 가운데가 뒤로 물러나고 양쪽이 앞으로 나간다. 쫓아오는 적이 가운데로 들어오면 양쪽 날개가 감싼다. 쉰다섯 척이 날개를 폈다.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가 벌어지는 것을 나는 가운데서 보았다. 노 소리가 양쪽에서 났다. 좌수영과 우수영과 경상우수영(거제 오비)의 노가 한 박자로 났다.
저들이 들어왔다. 날개 사이로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알았을 것이다. 알았을 때는 늦었다. 늦은 사람은 많이 오지 못한다.
지자와 현자와 승자 총통을 한꺼번에 놓았다.
먼저 두세 척이 깨졌다. 깨지는 것을 저들이 보았다. 보고 나서 기세가 꺾였다. 꺾이는 것이 배에서 보인다. 노가 흐트러진다. 흐트러진 노는 배를 한쪽으로 돌린다. 돌아선 배는 옆을 보인다.
장수들이 이겼다고 뛰었다. 앞다투어 돌진했다. 화살과 탄환이 오갔다. 바람과 우레 같았다.
나는 뱃전을 잡고 서 있었다. 왼쪽 어깨는 앞이 붙고 뒤가 붙었다. 붙은 자리가 두꺼웠다. 두꺼운 것은 비 오기 전에 안다. 오늘은 비가 안 왔다. 배가 한 뼘 밀렸다가 돌아왔다. 그 한 뼘을 뱃전에서 느꼈다. 넉 달 전 앞바다에서 처음 느낀 그 한 뼘이었다.
*
산꼭대기에서 김천손이 그것을 보았다.
날개가 펴지는 것을 보았다. 흰 돛들이 날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다음에 연기가 올랐다. 연기가 오르고 나서 소리가 왔다. 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소리였다.
그는 세었다. 연기 기둥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세다가 그만두었다. 연기가 한데 섞여서 세어지지 않았다. 세어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말은 늘 세어졌다. 백여든넷까지 세어졌다. 이것은 세어지지 않았다.
그는 앉았다. 앉아서 보았다. 해가 높이 뜰 때까지 보고, 해가 기울 때까지 보았다. 그동안 연기가 그치지 않았다.
사료 · 7월 4일 저녁 이억기가 약속한 자리에 온 것, 6일 노량에서 원균이 부서진 전선 일곱 척을 고쳐 끌고 온 것, 창신도의 밤, 7일 동풍이 크게 불어 배를 몰지 못하고 당포에서 나무하고 물 길은 것, 목자 김천손이 산에서 달려 내려와 「적선 칠십여 척이 미시에 영등포 앞바다에서 견내량에 와서 대었다」고 알린 것 ― 견내량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 8일 이른 아침 왜 대선 한 척과 중선 한 척이 선봉으로 나와 살피고 돌아간 것, 대선 서른여섯·중선 스물넷·소선 열셋, 견내량이 좁고 암초가 많아 판옥선이 서로 부딪치며 적이 궁하면 뭍으로 오를 것을 염려한 것, 한산도는 사방에 헤엄쳐 나갈 길이 없어 뭍으로 올라도 굶어 죽는다는 것, 판옥선 대여섯 척으로 유인한 것, 학익진, 지자·현자·승자 총통으로 먼저 두세 척을 깬 것 ― 같은 장계 · 김천손이 말 치는 사람이고 산꼭대기에서 배를 세었다는 것, 백여든네 마리, 이순신과의 대화, 산 위에서 연기를 센 것은 지어냈다. 장계에는 그가 「피난하여 산에 오른 그 섬의 목자」로만 나온다 · 원균의 배가 세 척에서 일곱 척으로 는 까닭은 사료에 없다. 장계는 「부서진 전선 일곱 척을 고쳐」라고만 적는다 · 김천손의 장면은 3인칭, 나머지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 이 무렵 일기는 없다(전서본 6월 11일부터 8월 23일까지 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