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118자) · 1592년 7월 여수 · 1583년 함경도 건원보
건원보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83년 (선조 16년) 겨울, 함경도 건원보 계미년 겨울에 건원권관이 되었다. 그때 오랑캐 울지내가 변방의 큰 근심이라 조정이 걱정하면서도 잡지 못했다. 공이 부임하여 계책을 세워 울지내를 꾀어내니 번호와 함께 왔다. 공이 복병을 두어 잡았다.
여수로 돌아온 이레 동안 나는 그물을 생각했다.
고기잡이의 그물이 아니다. 사람을 잡는 그물이다. 사천에서 물러가는 척해 이백을 끌어냈고 당항포(고성 회화면)에서 한쪽을 열어 층각선을 끌어냈다. 두 번 다 되었다. 되는 것을 두 번 보면 세 번째를 생각하게 된다. 세 번째는 어디인가. 어영담의 손바닥에서 제일 좁은 금이 어디인가.
끌어내는 것은 내가 처음 한 일이 아니다. 아홉 해 전에 한 번 했다. 그때는 바다가 아니라 눈밭이었고 배가 아니라 말이었고 왜가 아니라 오랑캐였다. 되는 것은 같았다. 되는 것이 같다는 것을 나는 그때 배웠고 지금 쓴다.
*
서른아홉이었다.
발포(고흥 도화면)에서 파직된 지 두 해 만에 다시 벼슬이 났다. 남병사 이용이 그를 군관으로 청했다. 발포에서 그를 미워해 불시에 군사를 점고하고 성적을 하로 매기려 했던 그 이용이었다. 이용은 그때 알아보지 못한 것을 깊이 뉘우쳐서 이번에는 그를 곁에 두려 했다. 만나자 매우 기뻐했고, 다른 사람보다 갑절로 친밀하게 대했다. 크고 작은 군무를 반드시 의논했다.
이순신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미워하던 사람이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워한 것은 몰라서였고 곁에 두는 것은 알아서다. 알고 나면 미워할 것이 없다. 그것을 그는 이용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이용이 부끄러워한다.
어느 날 병사가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는데 병방군관인 그가 군사를 서문으로 냈다. 병사가 크게 노했다. 나는 서문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어째서 서문으로 냈는가.
“서쪽은 금방입니다. 지금은 가을이고 가을은 숙살을 맡습니다. 그래서 서쪽으로 냈습니다.”
병사가 크게 기뻐했다.
그 말이 맞는지 이순신은 몰랐다. 서문이 북쪽으로 가기에 가까웠고 그래서 서문으로 냈다. 이유는 나중에 붙였다. 붙인 이유가 병사를 기쁘게 했다. 기쁘게 하는 것이 그의 일은 아니었는데 그날은 그것이 그의 일이었다. 사람에게는 그런 날이 있다.
*
그해 겨울에 건원보 권관이 되었다.
건원보는 두만강 가의 작은 보다. 보는 진보다 작고 권관은 만호보다 낮다. 병사의 군관에서 권관으로 간 것은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보에는 보의 일이 있었다. 오랑캐 울지내가 있었다.
울지내는 번호의 우두머리였다. 번호는 강 건너에 살면서 우리 조정을 섬기는 오랑캐다. 섬기다가 배반하고 배반하다가 다시 섬긴다. 울지내는 배반한 쪽이었다. 몇 해 동안 변방을 괴롭혔고 조정이 근심했고 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 잡으려면 강을 건너야 하고 강을 건너면 그쪽 땅이다. 그쪽 땅에서는 그가 우리를 잡는다.
이순신은 강을 건너지 않기로 했다.
건너게 하기로 했다. 그것이 계책이었다. 어떻게 꾀어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그 겨울 건원보에서 무엇을 주고 무엇을 약속하고 누구를 보냈는지 아무도 적지 않았다. 적히지 않은 것은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있었는데 적히지 않았다.
지어내자면 이렇다.
번호 가운데 울지내와 척을 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척을 진 사람에게 소금과 쇠를 주었을 것이다. 소금과 쇠는 강 건너에 없고 강 이쪽에 있다. 없는 것을 주면 사람이 온다. 온 사람에게 울지내를 데려오면 더 준다고 했을 것이다. 울지내에게는 다른 말이 갔을 것이다. 건원보 권관이 새로 왔는데 젊고 모르는 사람이라 화친을 바란다. 화친하러 오면 소와 베를 준다. 그 말이 강을 건너갔을 것이다.
울지내가 왔다. 번호들과 함께 왔다. 눈밭을 건너 왔다. 두만강은 겨울에 언다. 언 강 위로 말이 건넌다. 건너오는 말들이 눈을 차는 것이 보 위에서 보였다. 몇 마리인지 이순신은 셌다. 두 번 셌다. 두 번 다 같았다.
복병이 있었다. 보 아래 골짜기에 군사를 숨겨 두었다. 울지내가 보 앞에 이르렀을 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골짜기에서 군사가 나왔다. 화살이 먼저 나갔다. 울지내는 활을 잡기 전에 잡혔다. 묶어서 병영으로 보냈다. 병영에서 목을 베었다. 오랑캐의 근심이 그쳤다.
이순신은 울지내의 얼굴을 보았다. 묶인 사람의 얼굴이었다. 묶이기 전에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몰랐다. 화친하러 온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 얼굴을 자기가 만들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만들었다는 것과 잡았다는 것이 같은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같은 일을 다른 말로 부르는 것을 그는 좋아하지 않았다.
*
병사 김우서가 그것을 미워했다.
큰 공을 혼자 세운 것을 시기했다. 주장에게 아뢰지 않고 멋대로 큰일을 벌였다고 장계를 올렸다. 조정은 큰 상을 주려던 참이었다. 주장의 장계를 보고 상을 멈췄다.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멈춘 것이었고, 멈춘 것은 다시 가지 않았다.
이순신은 그 장계를 보지 못했다. 보았어도 같았을 것이다. 발포에서 이용이 그랬고 건원에서 김우서가 그랬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사람의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것을 그는 두 번 겪었고 두 번이면 아는 것이다. 아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다른 일이고, 다른 일이라는 것을 그는 그 겨울에 정했다.
건원에서 훈련원(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운동장 자리) 근무 햇수가 차서 참군으로 올랐다. 이름은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벼슬을 얻으러 다니지 않았고, 다니지 않아서 옆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것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아까워하지 않았다. 아까워하면 그 사람이 생긴다.
*
그해 11월 15일에 아버지가 아산(충남 아산)에서 돌아가셨다.
소식은 이듬해 정월에야 왔다. 두 달이 걸렸다. 함경도에서 충청도까지 종이가 오는 데 두 달이 걸린다. 그 두 달 동안 그는 아버지가 살아 계신 줄 알고 살았다. 죽은 사람을 산 줄 알고 산 두 달. 그 두 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그는 몰랐다.
함경도 순찰사 정언신이 그가 상을 당해 달려간다는 말을 듣고 몸이 상할까 걱정해 여러 번 길에 사람을 보냈다. 성복을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성복은 상복을 입는 것이고 상복을 입으려면 사흘을 머물러야 한다. 그는 한시도 늦출 수 없다고 했다. 집에 이르러 성복했다.
눈밭을 건너 남쪽으로 갔다. 언 강을 건넜다. 건너면서 울지내가 건너던 강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을 골랐다. 그 강은 그 강이고 이 강은 이 강이다.
*
상을 마친 것은 두 해 뒤 정월이었다.
삼년상은 만 두 해가 조금 넘는다. 그 두 해 동안 그는 벼슬이 없었다. 벼슬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다. 정하지 않는 두 해를 그는 아산에서 보냈다. 아버지의 무덤이 있고 넘어졌던 석인이 서 있는 자리였다. 석인은 그가 등으로 져서 세운 뒤로 넘어지지 않았다.
상복을 벗자 곧 사복시 주부가 났다. 말을 맡는 벼슬이었다. 열엿새를 했다. 열엿새 만에 조산(함경북도 경흥 조산)만호 자리가 비었다. 조산은 두만강 어귀의 진이다. 건원보보다 더 끝이다. 그때 오랑캐의 난이 한창이라 조정이 조산은 오랑캐 땅에 바짝 붙어 있으니 사람을 골라 보내야 한다고 했고, 그를 골랐다. 고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하지 않는다. 건원보에서 울지내를 잡은 것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상이 멈춘 것을 아는 사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말을 맡은 지 열엿새 만에 다시 눈밭으로 갔다.
가면서 생각했다. 잡아서 얻은 것이 상이 아니라 자리였다. 더 끝의 자리. 잘하면 더 끝으로 간다. 그것이 이 나라가 무인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받았다. 받는 것도 정하는 것이다. 더 끝에서 무엇을 잡게 될지 그는 몰랐다. 녹둔도(두만강 어귀, 지금은 러시아 땅)가 거기 있었다. 그것은 아직 그의 일이 아니었다.
*
여수의 이레가 끝났다.
그물을 생각하던 이레였다. 어영담이 손바닥의 제일 좁은 금을 짚었다. 견내량(거제와 통영 사이 좁은 물목)이라고 했다. 거제와 고성 사이. 물목이 좁고 섬이 많아 판옥선이 서로 부딪친다고 했다. 거기 적이 들어오면 거기서 싸우면 안 되고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어디로 끌어내는가. 그가 손바닥 가운데를 짚었다. 한산도(통영 한산면) 앞바다. 넓고 사방에 헤엄쳐 나갈 길이 없는 섬.
나는 그 손바닥을 보았다. 아홉 해 전 눈밭이 거기 있었다. 언 강 위로 건너오던 말들이 거기 있었다. 묶인 얼굴이 거기 있었다.
같은 일을 다른 말로 부르지 않는다. 끌어내는 것은 끌어내는 것이다.
이억기에게 글을 보냈다. 7월 4일 저녁까지 앞바다로 오라고 했다. 늦은 사람은 많이 온다. 그것을 나는 이제 안다.
사료 · 1583년 남병사 이용이 발포 시절을 뉘우쳐 군관으로 청하고 갑절로 친밀하게 대한 것, 서문으로 군사를 낸 것을 「서쪽은 금방이고 가을은 숙살을 맡는다」고 답해 병사가 기뻐한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 그해 겨울 건원보 권관이 되어 변방의 근심이던 오랑캐 울지내를 계책으로 꾀어내 번호와 함께 오게 하고 복병으로 잡은 것, 병사 김우서가 공을 시기해 「주장에게 아뢰지 않고 멋대로 큰일을 벌였다」고 장계를 올려 조정의 큰 상이 멈춘 것 ― 같은 행록. 징비록은 「계책으로 배반한 오랑캐 울지내를 꾀어내 병영으로 묶어 보내 베니 오랑캐의 근심이 그쳤다」고 적는다 · 어떻게 꾀어냈는지는 어느 사료에도 없다. 소금과 쇠와 화친의 말은 지어냈고, 본문에 지어냈다고 적었다 · 훈련원 근무 햇수가 차서 참군으로 오른 것, 벼슬을 얻으러 다니지 않아 옆으로 나가지 못했고 사람들이 아까워한 것 ― 같은 행록 · 1583년 11월 15일 아버지 덕연군이 아산에서 별세하고 이듬해 정월에야 들은 것, 함경도 순찰사 정언신이 길에 여러 번 사람을 보내 성복하고 가기를 청했으나 한시도 늦출 수 없다며 집에 이르러 성복한 것 ― 같은 행록 · 1586년 정월 상을 마치고 사복시 주부가 되어 열엿새 만에, 오랑캐의 난이 한창이라 조정이 사람을 골라 보내야 한다 하여 조산만호로 천거된 것 ― 이충무공행록 · 견내량이 좁고 섬이 많아 판옥선이 부딪치며 한산도 앞바다는 넓고 헤엄쳐 나갈 길이 없다는 것, 이억기와 7월 4일 저녁에 만나기로 한 것 ― 견내량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어영담의 손바닥과 여수의 이레는 지어냈다 · 여수의 장면은 1인칭이고 1583년은 3인칭이다. 1583년의 나이 서른아홉은 1545년생으로 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