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67자) · 1592년 7월 12일~13일, 당포에서 당항포까지
당항포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92년 7월 12일 (음력 6월 4일) 맑음. 우수사가 오기를 바라보았다. 한낮에 우수사가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돛을 달고 왔다. 온 진의 장병이 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군사를 합치고 약속을 거듭 밝혔다. 착량(통영 판데목)에서 잤다.
이틀 동안 배를 뒤졌다. 추도(통영 산양읍 추도) 근처 섬들을 안팎으로 끼고 돌았는데 적의 자취가 없어서 고둔포(고성)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당포(통영 산양읍 삼덕리) 앞바다로 나왔다. 작은 배를 내어 망을 보게 했다. 망보는 배가 돌아오기 전에 산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당포 토병 강탁이라고 했다. 피난해 산에 올라가 있다가 우리 배를 멀리서 보고 기뻐하며 내려온 것인데, 그가 한 말이 이랬다. 그저께 당포 싸움 뒤에 왜인들이 죽은 왜의 목을 많이 베어 한데 모아 태우고 육로로 갔다. 가는 길에 우리 사람을 만나도 죽일 뜻이 없었고 통곡하며 갔다.
통곡하며 갔다.
나는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강탁의 입에서 듣고 한 번은 내 안에서 들었다. 저들이 제 죽은 사람의 목을 베어 태웠다. 우리가 벨까 봐 먼저 벤 것이다. 목이 종이에 적히는 것을 저들도 안다. 안 적히게 하려고 제 손으로 베었다. 그리고 우리 사람을 만나도 안 죽였다. 죽일 힘이 없었는지 뜻이 없었는지 강탁은 몰랐고 나도 몰랐다.
우는 것을 사천에서 들었고 태우는 것을 당포에서 들었다. 두 번이면 아는 것이다. 저들도 사람이다. 아는 것과 싸우는 것은 다른 일이고, 다른 일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아침에 정했다. 정하는 사람이 나다.
*
한낮에 돛이 보였다.
남쪽 바다 끝에 흰 것이 여럿 섰다. 세었다. 스물다섯이었다. 두 번 세었고 두 번 다 스물다섯이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였다.
배마다 소리가 났다. 뛰는 소리였다. 스물세 척의 격군과 사부가 갑판 위에서 뛰었다. 판옥선 갑판이 사람 뛰는 무게로 울렸고 그 울림이 물을 타고 내 배까지 왔다. 사흘을 싸우고 사흘을 지친 사람들이 외롭다고 생각하던 참에 구원병을 본 것이다. 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일어섰다. 뛰지는 않았다. 어깨가 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물셋과 스물다섯. 마흔여덟이다. 두 배가 넘는다. 배가 늘면 어깨가 가벼워지는지 알아보겠다고 했었다. 가벼워지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가벼워졌다. 등뼈였다. 등뼈의 무게가 반으로 줄었다. 반은 이억기의 배 스물다섯 척에 실려 갔다.
*
이억기는 늦었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믐날 배를 띄운다고 글을 보낸 것이 5월 그믐이 아니라 4월 그믐이었고, 그 뒤로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그는 우수영(해남 문내면)의 배를 모았다. 우수영은 좌수영보다 크다. 고을이 많고 진포가 많고 배가 많다. 많은 것은 모으는 데 오래 걸린다. 오래 걸리는 동안 좌수영(여수) 스물넷이 옥포(거제 옥포동)에서 마흔 척을 깨고 사천에서 열셋을 깨고 당포에서 스물하나를 깼다는 소식이 차례로 왔다. 소식이 올 때마다 그는 자기 배를 셌다. 셀수록 늦었다.
늦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많이 오는 것이다. 그는 스물다섯 척을 끌고 왔다. 좌수영 전체보다 한 척 많았다. 한 척 많은 것이 그가 한 달을 두고 온 값이었다. 값이 되는지 그는 몰랐다.
당포 앞바다에 닿아 좌수사의 배 옆에 댔을 때 그는 먼저 말하지 않았다. 늦은 사람은 먼저 말하지 않는다. 좌수사가 먼저 말했다.
“왔는가?”
“왔습니다. 늦었습니다.”
“배가 몇인가?”
“스물다섯입니다.”
좌수사가 그 수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의 예라는 것을 이억기는 뒤에 알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좌수사의 왼쪽 어깨가 이상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보았다. 왼팔이 몸에 붙어 있었다. 사천에서 총을 맞았다는 말은 들었는데 저렇게 서 있을 줄은 몰랐다.
“어깨는.”
“나갔다.”
“나갔다는 것은.”
“들어왔다가 나갔다. 중상은 아니다.”
그것으로 어깨 얘기가 끝났다. 이억기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이 사람에게 하는 예인 것을 그때 알았다.
둘이 적을 깰 계책을 의논했다. 의논이라기보다 좌수사가 말하고 이억기가 들었다. 당포에서 쫓겨 간 배들이 거제로 갔다. 내일 그리로 간다. 물때가 언제인지, 어느 물목이 좁은지 좌수사가 손바닥을 펴 보이며 말했다. 광양현감에게 배운 것이라고 했다. 이억기는 그 손바닥을 보았다. 손바닥에 경상도 바다가 있었다. 우수영에는 그 바다를 손바닥에 그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해가 저물어 두 수영이 함께 거제와 고성 사이 착량 바다로 옮겨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마흔여덟 척의 등불이 물 위에 떴다. 이억기는 그것을 세지 않았다. 세면 자기 스물다섯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알게 된다.
*
7월 13일 (6월 5일) 아침 안개가 사방을 막았다가 늦게 걷힘. 아침에 떠나 고성 당항포에 이르니 왜의 큰 배 한 척이 판옥선만 했고 배 위에 누각이 우뚝했으며 적장이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중선 열두 척과 소선 스무 척을 한꺼번에 깼다. 화살 맞아 죽은 자가 몇인지 모른다. 왜장 목 일곱을 베었다. 남은 왜는 뭍으로 달아났는데 남은 수가 아주 적었다. 군사의 소리가 크게 떨쳤다.
안개가 늦게 걷혔다. 걷히자 돛을 달고 거제로 나가려는데 작은 배 한 척이 다가왔다. 거제 사는 향화인 김모 등 일고여덟이 타고 있었다. 기뻐서 맞으러 왔다고 했다. 당포에서 쫓겨 간 왜선이 거제를 지나 고성 땅 당항포로 옮겨 갔다고 했다.
배를 돌렸다. 당항포 앞바다로 노를 재촉했다.
앞바다에 닿아 남쪽을 보니 진해성 밖 몇 리 들판에 갑옷 입은 군사 천여 기가 깃발을 세우고 진을 치고 있었다. 사람을 보내 물었다. 함안군수 유숭인이 군사 천백 기를 거느리고 적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뭍에도 우리 군사가 있었다. 뭍의 군사를 바다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천백 기가 들판에 서서 우리 배를 보고 있었고 우리는 배에서 그들을 보았다. 양쪽이 같은 적을 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배가 조금 가벼웠다.
당항포 물목을 물었다. 멀리는 십여 리, 넓이는 배가 들어갈 만하다고 했다. 전선 두세 척을 먼저 들여보내 지형을 살피게 했다. 적이 쫓아 나오면 물러나는 척해 끌어내라고 엄히 일렀다. 우리 배들은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들어간 배가 곧 물목을 돌아 나오며 신기전을 쏘았다. 있다는 것이었다. 급히 오라는 것이었다.
전선 네 척을 포구 입구에 남겨 복병으로 두고 노를 재촉해 들어갔다. 양쪽 산기슭이 강을 낀 채 이십여 리를 이어졌고 그 사이가 아주 좁지는 않아 싸울 만했다. 배들이 고기 꿰미처럼 나란히 나아가 머리와 꼬리가 이어졌다. 소소강(고성 마암면 앞 물길) 서쪽 기슭에 검은 칠을 한 왜선이 있었다. 판옥선만 한 것이 아홉, 중선이 넷, 소선이 열셋. 그 가운데 제일 큰 배 뱃머리에 삼층 판각을 따로 세웠는데 단청을 하고 벽을 희게 발라 절간 같았다. 앞에 푸른 일산이 서 있었다. 누각 아래에 검게 물들인 깁 장막을 드리웠고 장막에 흰 꽃무늬를 크게 그렸다. 장막 안에 왜인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안쪽 포구에서 큰 배 네 척이 더 나와 한데 모였다. 다 검은 기를 꽂았고 기마다 흰 글씨로 일곱 자를 썼다. 남무묘법연화경.
염불이었다. 기에 염불을 적고 싸우러 왔다. 저들의 부처가 저들을 지키는지 나는 몰랐다. 우리 부처와 같은 부처인지도 몰랐다. 같은 부처라면 누구를 지킬지 부처도 모를 것이다.
우리 위세를 보고 저들이 철환을 어지러이 쏘았다. 싸락눈 같고 우박 같았다.
*
배들이 둘러섰다. 거북선을 먼저 들여보냈다. 천자 지자 총통이 큰 배를 꿰뚫었다. 배들이 번갈아 드나들며 총통과 화살과 탄환을 바람과 우레처럼 쏘았다. 한참을 싸웠다. 싸울수록 위세가 올랐다.
그런데 물러가지 않았다.
저들이 형세가 궁하면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오를 것이고, 뭍으로 오르면 다 잡지 못한다. 다 잡으려면 물 가운데로 나오게 해야 한다. 나오게 하려면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물러나는 척하며 포위를 풀고 진을 물리면 저들이 그 틈에 배를 몰아 나올 것이고, 나오면 좌우에서 꼬리를 친다.
전령했다. 한쪽을 열었다.
층각선이 과연 열린 길로 나왔다. 검게 물들인 베 돛을 두 대나무에 다 올리고 다른 배들이 층각선을 양옆에서 끼고 물 가운데로 노를 재촉했다. 나왔다. 나온 것을 사면에서 둘러쌌다. 끼고 치는 것이 더 급해졌다.
돌격장이 탄 거북선이 다시 층각 아래로 들이받았다. 위로 총통을 쏘아 누각을 깼다. 배들이 불화살을 쏘아 비단 장막과 베 돛에 맞혔다. 불이 사납게 일었다. 누각 위에 앉았던 왜장이 화살에 맞아 떨어졌다.
나머지 큰 배 네 척이 그 어지러운 틈에 돛을 달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이억기와 내가 거느린 장수들이 나누어 싸우고 다시 다 둘러쌌다. 배 안의 적이 물에 뛰어들거나 기슭에 매달리거나 산으로 올라 북쪽으로 달아났다. 군사들이 창과 칼을 들고 활을 끼고 죽을힘을 다해 쫓았다. 목 마흔셋을 베었다.
배를 다 태우고 나서 한 척을 남겼다. 돌아갈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뭍으로 오른 왜는 저 배를 타고 나오려 할 것이고, 나오는 길목에 방답첨사가 있을 것이다. 날이 어두웠다. 이억기와 함께 어둠을 타고 포구 밖으로 나와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
밤에 배 위에서 마흔셋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흰 꽃무늬를 생각했다.
검은 장막에 흰 꽃. 그것을 그린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막을 태운 사람이 있었다. 나였다. 불화살을 쏘라고 한 것이 나였다. 그린 사람과 태운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등뼈가 반만 무거웠다. 반은 이억기 쪽에 있었다.
내일 새벽에 방답첨사가 그 한 척을 잡을 것이다. 잡으면 목이 또 몇 적힐 것이다. 나는 그것을 종이에 적을 사람이고, 적는 사람은 세는 사람이다. 세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밤이었다. 그만두지 않았다.
사료 · 6월 3일 추도 근처 수색과 고둔포의 밤, 6월 4일 당포 토병 강탁이 「왜인들이 죽은 왜의 목을 베어 모아 태우고 육로로 가며 우리 사람을 만나도 죽이지 않고 통곡하며 갔다」고 한 것, 이억기가 전선 스물다섯 척으로 온 것과 「장병이 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착량의 밤 ― 당포파왜병장, 이충무공전서 권2. 난중일기 6월 4일도 「한낮에 우수사가 돛을 달고 왔다」 · 6월 5일 아침 안개, 거제 향화인 김모 등이 당항포 소식을 전한 것, 진해성 밖 함안군수 유숭인의 천백 기, 당항포의 지형과 유인, 검은 왜선 스물여섯 척, 삼층 판각에 단청한 절간 같은 배와 푸른 일산과 흰 꽃무늬 장막, 「남무묘법연화경」 검은 기 ― 같은 장계 · 거북선 돌입, 한쪽을 열어 층각선을 끌어낸 것, 거북선이 층각 아래로 들이받고 불화살로 장막과 돛을 태운 것, 왜장이 화살에 떨어진 것, 목 마흔셋, 배 한 척을 남겨 귀로를 연 것 ― 같은 장계. 난중일기는 이날 「왜장 목 일곱」이라 적어 장계와 수가 다르다 · 이억기가 4월 30일 배를 띄운다고 글을 보냈던 것 ― 부원경상도장(三). 그가 한 달 동안 배를 모았다는 것과 좌수사와의 대화, 손바닥은 지어냈다 · 이억기의 장면은 3인칭, 나머지는 이순신의 1인칭이다 · 양력 날짜 ―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