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141자) · 이오 · 4월 1일
삼 년 뒤 일월 구일
겨울 정거장의 편지 · 서지오
3월 30일 오후, 정선군청은 설운역 행정대집행을 취소했다. 연지석 주무관이 직접 공문을 들고 올라와 대합실 문에 붙어 있던 옛 공고를 떼고 새 종이를 붙였다. 테이프 네 귀를 반듯하게 붙인 것은 그도 도재혁과 같았다. 주민 동의 가운데 스물여섯 건이 본인 날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동의율이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대집행 계획을 취소한다.
도재혁은 그 전날 사문서위조 혐의로 체포됐다. 반석환은 위조 교사와 우편물 은닉 혐의로 입건됐고, 2019년 산사태는 허가 없는 절토에 따른 업무상과실치사로 다시 수사가 시작됐다. 연지석 주무관은 그 얘기를 공문 읽듯 차례대로 전해 주었다. 다 전하고 나서 그는 우편함 벽을 한참 봤다.
“저희 과 통계로는 설운리가 십오 년 안에 빈다고 나옵니다.”
“압니다.”
“통계는 안 바뀝니다. 함이 백마흔 개라도요.”
“함이 백마흔이면 편지도 백마흔 사람한테 옵니다.”
그는 대답 대신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고는 모자를 쓰며 한 마디를 보탰다.
“내일 우편취급국 개국하시면 저도 편지 한 통 부치러 오겠습니다. 군청 앞 우체통보다 여기가 빠르다면서요.”
같은 날 저녁 허만길 국장님이 올라왔다. 국장님은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는 강원지방우정청의 우편취급국 지정 통지서였다. 관할 국장 의견란에는 찬성이라는 두 글자 옆에 국장님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다른 하나는 국장님이 십칠 년 동안 서랍에 넣어 두었던 그 봉투였다.
국장님은 그 봉투를 난로 불빛에 대 보였다. 거의 백지였던 봉투에 글씨가 돌아와 있었다. 수신 허만길, 발신일은 내일인 2027년 3월 31일이었다.
“뜯으시겠습니까?”
“내일 뜯는다. 내일 날짜 편지를 오늘 뜯으면 반칙이지.”
국장님은 봉투를 도로 품에 넣고, 가방에서 설운 우편취급국이라고 새긴 둥근 날짜 도장을 꺼내 매표 창구 선반에 올려놓았다. 도장 테두리의 쇠가 새것이라 번쩍였다.
“내일부터다. 첫 소인은 네가 찍어.”
*
3월 31일, 대집행이 있을 뻔했던 날 아침, 굴착기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올라왔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홉 시쯤 되자 대합실이 찼다. 봉례 할머니가 식혜를 한 들통 끓여 왔고, 박두칠 씨가 종이컵을 돌렸다. 박두칠 씨는 이제 막걸리 대신 식혜를 들고 다녔다. 간 수치가 백까지 내려왔다고, 다섯 해 뒤의 자기한테 이긴 거라고 했다.
열한 시에 검은 SUV가 올라왔다. 반석환이 혼자 내렸다. 불구속 수사라서 집에 있을 수 있다고 반하람이 전날 말했었다. 그는 대합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승강장 끝에 서서 녹슨 선로를 봤다. 처음 여기 왔던 날처럼, 산모퉁이까지 두 줄로 누운 레일을 끝에서 끝까지 눈으로 따라갔다.
반하람이 코트를 여미고 승강장으로 나갔다. 나는 창가에서 두 사람을 봤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반석환이 무언가를 물었고, 반하람이 고개를 저었다. 반석환이 또 무언가를 말했고, 반하람은 이번에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한참 둘 다 선로를 봤다. 그러다 반석환이 코트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딸에게 내밀었다. 반하람은 받지 않았다. 반석환은 봉투를 도로 넣고 차로 돌아갔고, SUV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산모퉁이 아래로 내려갔다.
반하람이 들어왔을 때 코끝이 빨갰다. 바람 탓인지 아닌지는 묻지 않았다.
“변호사 비용 대 줄 테니 회사로 돌아오래요. 증언만 바꾸면.”
“그래서요?”
“한 번 거절했어요. 두 번째에는 대답 안 했어요. 세 번째는 안 물어보더라고요.”
그녀는 난로 앞에 앉아 봉례 할머니가 건네는 식혜를 받았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컵을 두 손으로 쥐었다.
“봄에 면회 가요. 아버지니까 가야죠.”
오후에 허만길 국장님이 승강장 끝 안테나 한 칸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날짜 편지를 오늘 뜯었다고 했다. 무슨 내용이었느냐고 묻자 국장님은 잠깐 말이 없다가 내 거다, 하고 끊었다. 박두칠 씨가 은주와 두리 대목을 건너뛰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
저녁 다섯 시부터 늦은 눈이 왔다. 삼월 끝의 눈은 물기가 많아서 레일 위에 앉자마자 녹았다. 여섯 시 이십 분에 차가 왔다. 대합실에는 쉰 명 넘게 있었다. 아이들은 없었는데 아이처럼 창에 붙은 어른들이 있었다.
차가 서자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편지가 생기는 소리가 아니었다. 서걱, 하고 결이 서는 소리는 같았는데, 그 소리가 새 봉투가 아니라 이미 온 봉투들에서 났다. 사람들이 품에 넣고 온 편지, 찬장 위 쌀 포대 옆에 세워 둔 편지, 경로당 서랍에 넣어 둔 편지. 봉례 할머니 손가방에서 소리가 났고, 박두칠 씨 패딩 안주머니에서 소리가 났고, 반하람 코트 안에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 안주머니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제 편지를 꺼냈다. 봉례 할머니가 봉투를 열고 나를 불렀다. 편지의 옅어졌던 줄들이 다 돌아와 있었다. 운동화 신고 오시라는 줄이 처음 받던 날처럼 또렷했다. 할머니는 이번에는 읽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짚어 가며 제 이름이 적힌 자리를 찾았다. 편지 맨 위, 수신인 자리의 세 글자를 찾아 손가락을 멈췄다.
“함, 봉, 례.”
차가 문을 닫고 물러갔다. 명패 걸린 함은 백마흔이었다.
*
4월 1일 아침 여섯 시, 나는 대합실 문을 열었다. 영감님이 먼저 와 있었고, 그것은 이 년 동안 하루도 바뀌지 않았다. 난로에서 송진 냄새가 올라왔고, 연통이 달궈지는 쇳내가 뒤따랐고, 성에 낀 유리창이 가장자리부터 물러졌다.
일곱 시에 이장이 왔다. 이장은 난로 앞 선반에 편지지를 펴고 앉았다. 볼펜을 쥔 손이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영감님이 장작을 하나 더 넣었다. 대합실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이장이 쓰기 시작했다. 한 줄 쓰고 멈추고, 한 줄 쓰고 멈췄다. 이십 분쯤 걸렸다. 그는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수신인 칸에 윤순례라고 쓰고, 발신일 칸에 오늘 날짜를 썼다. 발신인 칸에 제 이름을 쓰기 전에 볼펜을 내려놓고 손을 난로에 쬐었다. 손이 떨려서 글씨가 삐뚤어질까 봐, 한참 쬐었다.
그는 14번 함 앞에 섰다. 놋쇠 명패의 세 글자를 엄지로 한 번 쓸고, 봉투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나는 매표 창구 선반의 날짜 도장을 집었다. 인주를 묻혀 이장에게 받은 접수증에 찍었다. 설운 우편취급국, 2027년 4월 1일. 이 대합실에서 찍힌 첫 소인이었다.
그 소인을 찍고 삼십 분쯤 뒤, 승강장 끝에서 이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안테나 한 칸짜리 자리에서 연지석 주무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서 증거물 보관실에 있는 봉투를 방금 보고 왔다고 했다. 백지에 가깝던 봉투의 글씨가 전부 돌아와 있다고 했다. 발신인 칸의 목경수 세 글자까지 또렷하다고.
이장은 전화를 끊고 승강장 끝에 한참 서 있었다. 녹슨 레일 위로 아침 햇빛이 비스듬히 누웠고, 밤새 남은 눈이 거기서 조금씩 물이 되어 침목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러고는 대합실에 들어오지 않고 곧장 윗골로 내려갔다. 된장 한 종지 퍼 오겠다고, 영감님한테 말하고 갔다.
*
여덟 시, 대합실에는 영감님과 나만 남았다. 영감님은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나는 3번 함 앞에 섰다.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넉 달 동안 가슴에 닿아 있던 봉투였다. 모서리가 닳아서 둥글어져 있었다. 발신일의 마지막 숫자는 이제 처음 쓴 날처럼 진했다. 수신 정이오, 발신일 2030년 1월 9일, 발신인 하람. 람 자 받침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가 열려 있었다.
나는 봉투를 뜯지 않고 난로 앞으로 갔다. 장작을 넣는 것이 내 평소였고, 오늘도 평소대로 하고 싶었다. 장작 두 개를 엇갈려 세우는데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목덜미에 닿았다.
들어온 사람은 반하람이었다. 봉례 할머니 집에서 오 리를 걸어 올라온 얼굴이었다. 털모자에 이슬 같은 눈이 앉아 있었다.
나는 장작을 쥔 채로 돌아서서 먼저 말했다.
“지금 뜯으려던 참입니다. 같이 놀라셔야 해서요.”
그녀가 문을 닫는 것도 잊고 서 있었다. 그러다 웃었다. 그녀는 문을 닫고 난로 앞으로 와서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봉투를 뜯었다. 종이가 석 장 들어 있었다. 첫 장을 펼쳤다. 그녀가 내 어깨 너머로 봤다.
이오 씨. 오늘 당신 생일인데 나는 여기 없습니다. 춘천에 가 있어요. 아버지 나오시는 날이에요. 같이 가겠다는 당신을 제가 말렸어요. 당신은 여기서 난로를 넣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이 편지를 씁니다. 생일에 3번 함이 비어 있으면 안 되니까요.
삼 년 전의 당신은 이 편지를 안 뜯겠죠. 알아요. 당신은 편지를 받고 뜯는 데 한 철이 걸리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언젠가 뜯을 테니까 적어 둘게요.
오늘 아침 함이 이백넷이에요. 봉례 할머니는 어제도 운동화 신고 올라오셨고, 영감님은 아직도 제 고구마를 뒤집지 말라고 하세요. 박두칠 씨는 두리 사진을 함마다 붙이고 다녀요. 이장님은 매달 1일에 14번 함에 편지를 넣으세요. 답장이 안 오는 편지를요.
당신을 처음 좋아하게 된 날을 적을게요.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제가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당신은 난로에 나무를 넣고 있었어요. 당신이 저한테 첫마디를 했어요. 측량하러 오셨습니까? 그 말이 너무 당신 같아서, 저는 그날 고구마를 여섯 개나 태웠어요.
생일 축하해요. 삼 년 동안 난로 넣어 줘서 고마워요. 오늘은 영감님이 두 개 피우신대요.
하람.
나는 둘째 장을 넘기지 못했다. 손이 종이를 쥔 채로 멈춰 있었다. 옆에서 반하람이 코로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첫 장의 맨 아래, 제 이름의 람 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열린 모서리를 닫듯이 손톱으로 한 번 그었다.
“고구마 여섯 개, 맞네요.”
“맞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편지를 쥔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가만히 얹었다. 고구마를 까던 날처럼 따뜻하지는 않았다. 오 리를 걸어온 손이라 차가웠다.
“그럼 저 이 편지 삼 년 뒤에 써야 하는 거죠? 춘천 가는 날 아침에?”
“그렇게 되겠습니다.”
“미리 알면 반칙 아니에요?”
“국장님 말씀으로는 반칙입니다.”
그녀가 웃었다. 의자에서 졸던 영감님이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우리 둘을 보고, 내 손에 든 편지를 보고, 난로를 봤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부지깽이로 장작을 한 번 굴렸다. 불이 확 일어났다. 연통이 우웅 하고 울었다. 창밖 승강장에는 밤새 녹다 만 눈이 레일 위에 얇게 남아 있었고, 우편함 백마흔 개의 명패가 차례로 불빛을 받았다. 3번 함 흰 종이 명패의 번진 오 자도 그 불빛 속에서 처음으로 오 자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