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25자)

경포대 모래밭

국토횡단 패러글라이딩 · 이수

강릉 시내가 가까워질수록 바리오는 낮게만 울었다⁠. 뚜우우⁠. 1⁠,200⁠, 1⁠,100⁠. 산을 내려온 서풍이 등을 밀었지만 공기는 가라앉고 있었다⁠. 해가 산 뒤로 기울어 강릉 들판 절반이 산 그림자에 잠겼다⁠. 그림자 속 땅은 더 이상 공기를 밀어 올리지 않았다⁠.

18km⁠. 이 날개로 1m 내려가며 8m를 가면 1⁠,100m로는 9km를 갔다⁠. 경포대까지 절반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하늘이 줘야 했다⁠.

“⁠기철 선생님⁠.⁠”

“⁠보인다⁠. 아니⁠, 안 보인다⁠. 너 지금 시내 서쪽 끝이다⁠.⁠”

기철의 목소리 뒤로 승합차 엔진이 울었다⁠. 범수가 대관령 옛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굽잇길마다 브레이크가 끽끽거렸다⁠.

“⁠아침에 말한 선 기억하지⁠. 오후 세 시부터 바다 바람이 들어온다고⁠. 지금쯤 바다 바람이 시내 안쪽까지 밀고 들어와 있을 거다⁠. 서풍이랑 부딪치는 데가 있다⁠. 부딪치면 둘 다 갈 데가 없어서 위로 솟는다⁠. 그 선을 찾아라⁠.⁠”

“⁠안 보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안 보인다⁠. 다른 걸 봐라⁠. 연기⁠, 깃발⁠, 새⁠.⁠”

우한은 내려다봤다⁠. 강릉 시내 서쪽 끝 아파트 단지들⁠, 남대천 둑⁠, 둑 너머 논⁠. 논두렁에서 누군가 짚을 태우고 있었다⁠. 연기가 가늘게 올라왔다⁠. 연기는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산 쪽으로⁠. 바다에서 바람이 불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한의 높이에서는 서풍이 불었다⁠. 땅 위에서는 동풍이 불었다⁠. 둘 사이 어딘가에 선이 있었다⁠.

시내 북쪽⁠, 경포호로 가는 길목 위에 흰 점들이 떠 있었다⁠. 열⁠, 스물⁠. 점들이 원을 그리고 있었다⁠. 날갯짓을 하지 않고 날개를 편 채로 빙글빙글 돌며 높아지고 있었다⁠.

갈매기였다⁠.

갈매기들은 바다에서 왔다⁠. 바다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가 서풍에 막혀 솟는 공기를 타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바닷새들은 그런 공기를 찾아 하루의 마지막 놀이를 했다⁠. 석주가 어섬에서 해 질 녘에 갈매기를 보며 했던 말이 있었다⁠. 「⁠저놈들이 우리 선생이다⁠. 저놈들은 바리오가 없어도 안다⁠.⁠」

“⁠갈매기 떼 봤습니다⁠. 시내 북쪽⁠, 경포 들머리⁠.⁠”

“⁠거기다⁠. 가라⁠.⁠”

우한은 날개를 북동쪽으로 틀었다⁠. 남쪽은 보지 않았다⁠. 남대천 너머 남쪽으로 공군기지가 있었다⁠. 활주로 근처 하늘은 군 비행기들의 하늘이었다⁠. 들어가면 안 되었다⁠. 우한은 시내 북쪽으로 비켜 나갔다⁠. 1⁠,000m⁠, 950m⁠. 갈매기 떼까지 4km⁠.

바리오 숫자가 900에 닿았을 때⁠, 날개가 갑자기 앞으로 들렸다⁠. 정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등 뒤의 서풍이 끊기고 얼굴로 바다 냄새가 들이쳤다⁠. 소금기와 비린내⁠. 어섬 둔덕에서 맡던 냄새였다⁠. 서해와 동해의 냄새가 같은지 우한은 처음 알았다⁠.

삐⁠.

갈라진 소리가 울렸다⁠. 날개 양쪽이 동시에 들렸다⁠. 우한은 원을 그리지 않았다⁠. 선을 따라 날았다⁠. 바다 바람과 서풍이 부딪친 선은 원이 아니라 줄이었다⁠. 시내 북쪽에서 해안선과 나란히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보이지 않는 벽⁠. 벽 위로 공기가 솟았다⁠. 어섬 둔덕을 타던 것과 같았다⁠. 대관령 비탈을 타던 것과 같았다⁠. 이번에는 땅이 아니라 바람이 비탈이었다⁠.

삐⁠, 삐⁠, 삐⁠.

950⁠, 1⁠,000⁠. 우한은 선을 따라 북쪽으로 갔다가 돌아서 남쪽으로 왔다⁠. 갈매기들이 우한의 날개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한 마리가 고개를 돌려 흰 날개를 봤다⁠. 빨간 날개 끝을 봤다⁠. 날갯짓 한 번 없이 우한보다 빨리 올라갔다⁠.

1⁠,100⁠. 경포대까지 9km⁠.

“⁠우한아⁠, 됐다⁠. 1⁠,100이면 간다⁠.⁠”

기철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우한은 대답하지 않고 선을 한 번 더 탔다⁠. 1⁠,150⁠.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우한은 날개를 동쪽으로 돌렸다⁠.

바다가 정면에 있었다⁠.

발밑으로 강릉 시내 북쪽 동네들이 지나갔다⁠. 지붕들이 노을빛을 받아 주황으로 물들었다⁠. 들판이 지나가고 솔숲이 지나갔다⁠. 경포호가 다가왔다⁠. 둥근 호수가 하늘을 담고 있었다⁠. 호수 위에 하늘이 하나 더 있었다⁠. 분홍빛 하늘⁠.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벚나무 길이 이어졌다⁠. 벚꽃은 다 지고 초록 잎만 남아 있었다⁠.

호수 동쪽 끝에 솔숲이 한 줄⁠, 솔숲 너머가 모래밭이었다⁠. 흰 모래가 활처럼 휘어 남북으로 길게 뻗었다⁠. 모래밭 끝에서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다⁠.

“⁠우한 씨⁠!⁠”

보람이 소리쳤다⁠.

“⁠우리 도착했어요⁠! 주차장이에요⁠! 모래밭으로 뛰어가요⁠!⁠”

“⁠천천히 가⁠.⁠”

“⁠우한 씨가 먼저 와요⁠! 우리가 늦으면 안 되잖아요⁠!⁠”

300m⁠. 호수를 건넜다⁠. 솔숲 위로 날개를 미끄러뜨렸다⁠. 소나무 꼭대기들이 바다 바람에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바다 바람을 안고 내려야 했다⁠. 우한은 모래밭 위에서 날개를 남쪽으로 돌려 크게 한 바퀴를 그렸다⁠. 모래밭이 넓었다⁠.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저녁 산책하는 사람들⁠, 사진 찍는 연인들⁠, 개를 데리고 걷는 노인⁠. 모래밭 북쪽 끝이 비어 있었다⁠.

칙⁠.

누군가 송신 단추를 눌렀다⁠. 이번에는 말이 들어왔다⁠.

“⁠우한 씨⁠.⁠”

은솔이었다⁠.

우한은 숨을 멈췄다⁠. 은솔의 목소리를 무전기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수화기로 듣던 목소리보다 작고 가늘었다⁠. 단추를 누르는 손이 아직 서툴렀다⁠.

“⁠북쪽 끝이요⁠. 사람 없어요⁠. 우리 거기 서 있을게요⁠.⁠”

칙⁠. 단추가 떨어졌다⁠.

우한은 모래밭 북쪽 끝을 봤다⁠. 솔숲 끝자락 아래에 사람 넷이 서 있었다⁠. 하나는 키가 크고 하나는 작고 하나는 팔을 미친 듯이 흔들고 하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손에 무전기가 들려 있었다⁠.

100m⁠. 우한은 바다를 등지고 돌아 바다 쪽을 향했다⁠. 정면에서 바다 바람이 불어왔다⁠. 날개가 바람을 안고 속도를 늦췄다⁠. 모래밭이 천천히 다가왔다⁠. 50m⁠, 30m⁠. 우한은 발판에서 발을 내렸다⁠. 하네스 안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리를 아래로 뻗었다⁠.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렸다⁠.

10m⁠. 우한은 두 손의 조종줄을 천천히⁠, 끝까지 당겼다⁠. 날개가 뒤를 잡아당기듯 속도를 늦췄다⁠. 몸이 공중에서 멈추는 듯했다⁠.

갈색 등산화가 모래에 닿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모래가 발목까지 빠졌다⁠. 세 걸음째에 우한은 섰다⁠. 머리 위의 날개가 바람을 잃고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흰 천이 모래밭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빨간 날개 끝 둘이 모래 위에 나란히 누웠다⁠.

가슴에서 바리오가 한 번 짧게 울고 조용해졌다⁠. 우한은 내려다봤다⁠. 흑백 액정에 숫자가 떠 있었다⁠.

0⁠.0⁠.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다는 숫자다⁠.

오후 일곱 시 십 분이었다⁠. 해가 대관령 너머로 반쯤 넘어가 있었다⁠. 우한은 몸을 돌려 서쪽을 봤다⁠. 지나온 산들이 겹겹이 노을을 등지고 검푸르게 서 있었다⁠. 능선 위로 하늘이 주황에서 분홍으로⁠, 분홍에서 보라로 물들었다⁠. 어섬에서 날개를 접으며 보던 하늘과 같은 색이었다⁠. 해는 어섬에서는 바다로 졌다⁠. 여기서는 산으로 졌다⁠. 같은 해였다⁠.

“⁠우한 씨이⁠!⁠”

보람이 모래밭을 달려왔다⁠. 모래에 발이 빠져 두 번 넘어졌다⁠. 두 번 다 일어나 달렸다⁠. 달려와서 우한을 끌어안지 않고 날개 끝을 붙잡았다⁠.

“⁠골동품⁠! 진짜 왔어요⁠! 골동품이 왔어요⁠!⁠”

기철이 천천히 걸어왔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화면을 우한에게 내밀었다⁠. 지도 위에 어섬에서 경포대까지 선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선 위 군데군데 동그란 매듭이 있었다⁠. 매듭은 대관령을 지나서도 이어져 있었다⁠. 끊기지 않고 바다까지⁠.

“⁠곧게 재서 202km다⁠.⁠”

기철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185km보다 길다⁠. 공인받으려면 서류 낼 게 많다⁠.⁠”

기철이 휴대전화를 거두며 소매로 눈가를 한 번 훔쳤다⁠. 예순한 살 먹은 예보관이 바닷바람 탓을 했다⁠. 「⁠모래가 들어갔다⁠.⁠」 보람이 「⁠선생님 모래 안 날려요⁠」 하고 말했다가 기철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다가오지 않았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우한과 눈이 마주치자 범수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우한도 고개를 숙였다⁠.

은솔이 걸어왔다⁠. 맨발이었다⁠. 운동화를 솔숲 끝에 벗어 두고 왔다⁠. 모래에 발자국이 하나씩 찍혔다⁠. 은솔은 날개 앞에서 멈췄다⁠. 흰 천 위에 박힌 빨간 글씨를 내려다봤다⁠. 「⁠Edel⁠」⁠. 은솔이 쪼그려 앉아 손바닥으로 천을 쓸었다⁠. 날개 앞쪽 공기 입구에 마른 풀씨 몇 알이 끼어 있었다⁠. 은솔이 풀씨를 손끝으로 집었다⁠.

“⁠이거⁠.⁠”

“⁠대관령 동쪽 풀씨입니다⁠. 십 년 전 거요⁠. 안 털었습니다⁠.⁠”

은솔이 풀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래 봤다⁠.

우한은 가슴 멜빵에서 바리오를 풀었다⁠. 회색 기계가 아직 체온으로 따뜻했다⁠. 우한은 바리오를 은솔에게 내밀었다⁠.

“⁠형님은 기다렸으면 넘었습니다⁠. 저는 1⁠,850에서 넘었는데도 접혔습니다⁠. 형님은 1⁠,400에서 넘었고요⁠. 높이가 모자랐습니다⁠. 바람 탓도 운 탓도 아닙니다⁠. 높이였습니다⁠.⁠”

은솔이 바리오를 받았다⁠. 두 손으로⁠.

“⁠범수 씨가 말 안 한 건요⁠.⁠”

“⁠들으셨잖아요⁠.⁠”

은솔이 고개를 들어 솔숲 끝을 봤다⁠. 범수가 서 있었다⁠. 은솔은 일어나 범수 쪽으로 걸어갔다⁠. 맨발로⁠. 우한은 따라가지 않았다⁠. 보람도 기철도 따라가지 않았다⁠. 은솔이 범수 앞에 섰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무전기는 둘 다 꺼져 있었다⁠. 은솔이 바리오를 범수의 손에 쥐여 주는 것이 보였다⁠. 범수가 바리오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한참 동안 들지 않았다⁠.

우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비행복 주머니 속에서 일곱 시간 동안 위치를 보내던 전화였다⁠. 화면에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공책이었다⁠. 하윤의 글씨⁠.

「⁠아빠가 가장 높이 간 곳⁠: 문경 (⁠아파트 600개⁠)⁠. 다음에는 강릉 (⁠아마도⁠) 2⁠,000m⁠.⁠」

글씨 밑에 한 줄이 새로 적혀 있었다⁠. 연필로⁠, 꾹꾹 눌러서⁠.

「⁠아빠가 가장 멀리 간 곳⁠: 바다에서 바다까지⁠.⁠」

사진 밑에 수아의 글이 있었다⁠. 「⁠7km 이야기는 집에 와서 해⁠. 저녁 먹었어⁠?⁠」

물음표가 있었다⁠. 우한은 웃으며 답을 썼다⁠. 「⁠아직⁠. 바다 보고 있어⁠.⁠」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자비대 단톡방에 범수가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활공장 창고 문이었다⁠. 녹슨 자물쇠가 문고리에서 빠져 바닥에 놓여 있었다⁠. 문 옆 선반 위에 우한의 날개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사진 밑에 글은 없었다⁠.

보람이 맨 먼저 답을 달았다⁠.

「⁠회장님 저 에델 사요⁠. 중고로⁠. 약속했잖아요⁠.⁠」

기철이 밑에 썼다⁠.

「⁠망한 회사다⁠.⁠」

남수가 맨 밑에 썼다⁠. 남수가 단톡방에 글을 쓴 건 처음이었다⁠.

「⁠오늘 저녁 어섬⁠. 해 지는 거 보러 와⁠. 투뿔 한우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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