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228자)
어섬 이륙장
국토횡단 패러글라이딩 · 이수
새벽 다섯 시 일 분, 이우한의 휴대전화가 베개 옆에서 한 번 떨었다. 자유비행대 단톡방이었다. 안기철이 올린 글은 여섯 글자였다.
「오늘은 된다.」
밑으로 일기도 사진 한 장이 따라 올라왔다. 서해 위에 동그라미가 크게 하나, 등고선이 넓게 벌어져 있었다. 고기압이 머리 위에 앉고 바람이 서쪽에서 고르게 분다는 그림이었다. 기철은 기상청에서 삼십 년을 예보로 먹고산 사람이었고, 단톡방에 「된다」를 쓴 날은 일 년에 서너 번이었다.
우한은 이불을 걷지 않고 누운 채로 화면을 오래 봤다. 옆에서 아내 지수아가 돌아누웠다. 거실에서는 아홉 살 하윤이 틀어 놓고 잔 선풍기가 고개를 저었다. 5월인데도 하윤은 선풍기를 틀어야 잠이 들었다.
단톡방에 글이 하나 더 올라왔다. 도보람이었다.
「기철 선생님 된다는 게 어디까지 된다는 거예요?? 우리 동네 뒷산?? 아니면 그거???」
물음표가 세 개씩 붙어 있었다. 기철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회장 마범수의 글이 올라왔다.
「오늘 정기 비행 없습니다. 활공장 풀베기만 합니다. 아홉 시 집합.」
범수는 화가 나면 존댓말을 썼다. 우한은 화면을 끄고 일어났다.
다섯 시 사십 분에 김남수의 트럭이 아파트 앞에 섰다. 짐칸에 덮개를 씌운 큰 가방 하나가 실려 있었다. 남수가 운전석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쉰여덟인데도 남수는 젊어서 날개를 메던 사람처럼 어깨가 넓었다.
“사장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토요일에 사장이 뭐 하러 사장이야. 타.”
조수석에는 스물셋 먹은 남수의 조카 김태오가 졸린 눈으로 앉아 있었다. 군대를 막 마친 녀석이었다. 남수가 턱으로 짐칸을 가리켰다.
“어젯밤에 다 봤지? 은솔 씨가 한 번 더 보라더라.”
덮개 밑의 가방은 낡은 붉은 천이었다. 지퍼 손잡이에 하얀 매직으로 「오석주」라고 적혀 있었다. 우한은 짐칸 문을 닫고 뒷좌석에 올랐다.
트럭이 시화호 쪽으로 달렸다. 송산면 고포리에 닿자 길 양옆이 포도밭으로 바뀌었다. 아직 잎이 손바닥만 했다. 어섬은 원래 섬이었다. 시화지구 간척으로 바다가 막히면서 둘레가 땅이 되었고, 섬은 포도밭과 갈대밭 한가운데 솟은 작은 언덕으로 남았다. 소나무 숲이 꼭대기를 덮고, 남쪽 아래로는 초경량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는 활주로가 길게 누워 있었다.
일 년 전 우한은 꼭대기 소나무 숲 서쪽 둔덕의 풀을 베고 돌을 골라 이륙장을 만들었다. 해발 50m였다. 땅 임대료와 정비비, 이륙장 이름으로 든 보험은 남수가 댔다. 자비대 사람들은 처음에 이곳을 「사장님 이륙장」이라 불렀다. 범수는 아예 부르지 않았다.
둔덕에 올라서자 서쪽이 한꺼번에 열렸다. 마른 갯벌이 은빛으로 번들거리고, 갯벌 너머로 대부도가 낮게 엎드려 있었다. 바람이 바다 쪽에서 얼굴로 곧게 불었다. 우한은 풍향기를 봤다. 대나무 장대 끝의 주황색 천이 둔덕 쪽으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태오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하품을 했다.
“삼촌, 이거 낙하산이죠?”
남수가 웃었다. 우한은 대답 대신 가방을 열었다. 흰 천이 쏟아져 나왔다. 둔덕 풀밭 위로 날개를 반달 모양으로 펼치자 양 끝의 빨간 천이 아침 햇빛을 받았다. 가운데에 빨간 글씨가 박혀 있었다. 「Edel」.
“에델이요?”
“광주에 있던 회사다. 우리나라에서 날개를 만들었어. 문 닫은 지 여덟 해 됐고.”
“망한 회사요?”
“망한 회사.”
태오가 날개 끝을 들춰 봤다. 천은 두 겹이었다. 위 천과 아래 천 사이가 칸막이 천으로 나뉘어 길쭉한 방이 수십 개 줄지어 있었다. 앞쪽 가장자리에 입이 뚫려 있었다.
“여기로 바람이 들어가. 방마다 공기가 차면 날개가 비행기 날개 모양으로 부푼다. 앞이 두껍고 뒤가 얇은 모양.”
우한은 손바닥을 비스듬히 기울여 태오 앞에 내밀었다.
“낙하산은 떨어지는 걸 늦추는 물건이고, 이건 앞으로 미끄러지는 물건이야. 1m 내려가는 동안 8m를 앞으로 간다. 미끄럼틀을 타는 거지. 공기로 된 미끄럼틀.”
“그럼 결국 내려오는 거잖아요.”
“가만있으면.”
“가만 안 있으면요?”
우한은 둔덕 아래 포도밭을 가리켰다. 비닐을 덮은 고랑들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해가 땅을 데운다. 밭이랑 주차장이랑 마른 비탈이 먼저 데워져. 데워진 땅 위의 공기는 위로 오르지, 더운 공기는 가볍다. 어느 순간 덩어리째 떨어져 나가서 위로 올라가. 그게 써멀이다. 그 안에 들어가서 원을 그리면, 미끄럼틀 전체가 위로 올라가.”
태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구름 한 점 없었다.
“안 보이는데요.”
“안 보여. 소리로 찾는다.”
우한은 비행복 가슴 멜빵에 회색 기계를 끼웠다. 손바닥만 한 흑백 액정이 달린 낡은 바리오였다. 석주가 쓰던 물건이었다. 은솔이 날개보다 하루 먼저 창고 상자에서 꺼내 준 물건이었다. 십 년 만에 전지를 갈아 끼우자 바리오는 살아났지만 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반대쪽 멜빵에는 무전기를 달았다. 고무 안테나가 귀 높이까지 올라왔다. 헬멧 속 이어폰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회수조, 들려?”
“들려요!”
보람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찢었다. 우한이 헬멧을 반쯤 벗었다.
“소리 줄여.”
“줄였어요! 지금 고포리 들어가는 길이에요. 기철 선생님이 커피 사 오래요. 우한 씨 것도 사요? 아, 날기 전엔 안 마시죠? 그럼 저 혼자 두 잔 마셔요?”
“보람아.”
기철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느리고 낮았다.
“채널은 비워 두는 거다.”
“네.”
무전기가 조용해졌다. 남수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우한은 하네스를 땅에 내려놓고 날개 줄을 고르기 시작했다. 줄은 가늘었다. 날개 아래에서 수백 가닥으로 갈라져 내려오다가 몇 묶음으로 모이고, 마지막에는 양쪽 어깨 높이의 고리 둘로 모였다. 우한은 줄 묶음을 하나씩 손가락에 걸고 끝까지 훑었다. 꼬인 데가 없는지, 걸린 풀잎이 없는지 봤다.
석주의 날개는 중급 날개였다. 동호회 사람들은 요즘 날개를 초보, 중급, 고급, 선수용으로 나눠 불렀다. 초보 날개는 접혀도 저절로 펴졌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빠르고 미끄러웠지만, 접히면 사람이 손으로 펴야 했다. 우한의 날개는 따로 있었다. 에델이 문 닫기 직전에 만든 고급 날개였다. 중고로 사서 팔 년을 아껴 탔고, 지난겨울 남수의 돈으로 줄을 새로 갈았다.
우한의 날개는 지금 자비대 활공장 창고에 있었다. 사흘 전 저녁, 범수가 우한의 날개 가방을 창고 선반에 올리고 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회칙 7조. 회장 허락 없는 장거리 비행 금지.”
“회칙 7조에 날개 압수는 없습니다.”
“지금 생겼습니다.”
범수는 열쇠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쉰다섯 먹은 등이 꼿꼿했다. 우한은 자물쇠를 보다가 웃었다. 녹슨 자물쇠였다. 망치 한 번이면 떨어질 물건이었다. 범수도 그걸 알았다. 망치를 들면 우한은 자비대에서 나가야 했다. 범수는 나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남수가 둔덕 끝에 서서 손그늘을 했다.
“범수는 오늘 안 와?”
“풀베기한답니다.”
“풀베기는 무슨.”
남수가 혀를 찼다. 태오가 삼촌과 우한을 번갈아 봤다.
“회장님이랑 싸우셨어요?”
“싸운 게 아니라.”
남수가 말끝을 흐렸다. 우한이 대신 말했다.
“회장님 말이 맞아. 내가 떨어지면 활공장 땅 주인이 계약을 끊는다. 회원 서른 명이 하늘을 잃어. 보험사도 장거리는 안 받아 준다고 했고.”
“그럼 왜 날아요?”
우한은 손에 쥔 줄 묶음을 내려다봤다. 빨간 줄이 하나 섞여 있었다. 날개 앞쪽을 잡아 주는 줄이었다.
“십 년 전에 이 날개 주인이 여기서 강릉까지 가려고 했어. 하루에. 대관령 너머에서 떨어졌다.”
태오가 입을 다물었다. 남수가 둔덕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여덟 시가 넘자 포도밭 고랑 위로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우한은 바리오를 켜 고도를 맞췄다. 흑백 액정에 「50」이 떴다. 해발 50m. 둔덕 꼭대기가 47m였고, 우한이 선 자리는 거기서 몇 걸음 아래였지만 바리오는 늘 조금씩 후했다.
아홉 시 반에 보람의 경차가 포도밭 사이 둑길로 들어왔다. 보람이 차에서 뛰어내리며 커피 두 잔을 흔들었다. 기철은 조수석에서 천천히 내려 하늘부터 봤다.
“열 시 반이다.”
“네?”
“써멀 올라오는 시각. 바다 바람이 아직 세서 내륙 공기를 누르고 있다. 열 시 반은 돼야 밀고 올라온다.”
기철이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오늘 하루 바람을 높이별로 적은 표였다. 1,500m 위로 서풍이 시속 20km. 구름 바닥은 오후에 2,000m 안팎. 동해 쪽은 오후 세 시부터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이 들어온다고 적혀 있었다.
“동해 바람이 문제다. 서쪽에서 미는 바람이랑 강릉 위에서 부딪친다. 해 지기 전에 닿아야 한다.”
우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람이 커피를 두 잔 다 들고 둔덕 위를 서성거렸다.
“근데 진짜 이거 타고 가요? 이 골동품?”
“골동품 아니다.”
“골동품이죠. 제 날개는 작년에 나온 거예요. 우한 씨 날개는 제가 고등학생 때 만든 거고요. 그 골동품으로 기록 넘으면 제가 에델 하나 살게요.”
“에델은 망했다니까.”
“그러니까 중고로요!”
기철이 보람의 손에서 커피 한 잔을 빼 갔다. 보람이 빈손을 내려다봤다.
열 시 십 분이었다. 둑길 끝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은색 승합차 한 대가 포도밭 사이를 달려 들어왔다. 옆구리에 「자유비행대」라고 적혀 있었다. 보람이 커피를 쏟을 뻔했다.
“회장님이에요.”
승합차가 둔덕 아래 공터에 섰다. 범수가 내렸다. 작업복 바지에 풀물이 들어 있었다. 정말 풀을 베다 온 모양이었다. 범수는 둔덕을 올라오지 않았다. 아래에서 고개만 들었다.
“이우한 씨.”
“예.”
“내려와요.”
우한은 대답하지 않고 하네스를 멨다. 등판이 있는 앉는 하네스였다. 요즘 장거리를 나는 사람들은 누워서 다리를 덮개 속에 넣는 하네스를 썼다. 우한의 하네스는 석주 때부터 쓰던 낡은 물건이었다. 엉덩이 밑에 두꺼운 보호대가 있었고, 배 앞에 비상 낙하산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발 앞에는 줄에 매단 쇠막대 발판이 늘어져 있었다. 하늘에서 두 발을 얹어 쉬는 자리였다.
범수가 한 계단 올라왔다.
“아니, 뜨지 마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남수가 둔덕 끝에서 범수를 내려다봤다.
“범수야.”
“형님은 가만 계세요. 형님 이륙장이라도 이 사람은 우리 회원입니다.”
“회원이니까 보러 왔지.”
“보러 온 게 아니라 말리러 왔습니다.”
범수가 우한을 봤다. 우한은 날개 줄을 하네스 고리에 걸고 있었다. 찰칵, 찰칵. 왼쪽, 오른쪽. 갈색 등산화 끈을 한 번 더 조였다. 장갑을 꼈다. 두꺼운 검은 장갑이었다. 5월이어도 2,000m 위는 손이 얼었다.
“우한 씨. 석주 형도 그날 아침에 저렇게 줄 걸었어요.”
우한의 손이 잠깐 멈췄다. 기철이 고개를 숙였다. 보람은 커피 컵을 두 손으로 쥐었다. 바람이 바다 쪽에서 한 번 세게 불어 날개 끝이 들썩였다.
우한은 범수를 보지 않고 바리오를 봤다. 숫자는 그대로 「50」이었다.
“회장님. 열 시 반에 뜹니다.”
“이우한.”
“제 날개는 창고에 두세요. 열쇠도 가지고 계시고요. 저는 이걸로 갑니다.”
범수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날개를 봤다. 흰 천, 양 끝의 빨강, 가운데의 빨간 글씨. 범수의 턱이 굳었다. 십 년 만에 보는 날개였을 것이다.
열 시 이십구 분, 포도밭 위에서 작은 회오리가 일었다. 마른 비닐 조각이 빙글빙글 솟구쳐 둔덕 높이를 넘어갔다. 기철이 짧게 말했다.
“지금.”
우한은 몸을 돌려 날개를 마주 봤다. 바다를 등지고, 양손에 앞줄을 쥐었다. 바람이 등을 밀었다. 우한이 줄을 당기며 한 걸음 물러서자 흰 날개가 풀밭에서 일어났다. 수십 개의 방에 바람이 차오르며 천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날개가 머리 위로 올라와 멈췄다. 우한은 고개를 젖혀 날개를 올려다봤다. 줄 하나 꼬이지 않았다. 양 끝의 빨강이 하늘에 박혔다.
우한은 몸을 돌려 바다 쪽으로 섰다. 두 걸음, 세 걸음. 둔덕 끝에서 발밑의 풀이 사라졌다. 발이 허공을 디뎠다. 갈색 등산화 바닥이 갯벌 냄새 나는 바람을 밟았다.
몸이 떴다.
둔덕이 발밑으로 물러났다. 범수의 승합차 지붕이 보였고, 포도밭 고랑이 줄지어 지나갔다. 날개가 둔덕 비탈을 타고 오르는 바다 바람을 받아 한 뼘씩 높아졌다. 우한은 하네스 안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고 발판에 두 발을 얹었다.
가슴에서 갈라진 소리가 울렸다.
삐, 삐, 삐.
석주의 바리오였다. 십 년 만에 우는 소리였다.
이어폰에서 보람이 소리쳤다.
“떴어요! 진짜 떴어요! 회장님, 떴어요!”
“보람아, 채널.”
기철이 말했다. 무전기 너머에서 승합차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 우한은 내려다보지 않았다. 동쪽 하늘에 첫 뭉게구름이 손톱만 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240km 끝에 경포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