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00자)

서리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효란은 새벽 다섯 시에 시계방 작업대 불을 켰다⁠. 종로 낙원동 골목의 탁 시계방은 아래층이 가게였고 위층이 효란의 집이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 열한 개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박자로 갔다⁠. 효란은 하나씩 귀를 대고 지나가다가 문 옆의 낡은 뻐꾸기시계 앞에서 멈췄다⁠. 사흘째 일 분씩 빨랐다⁠. 뒷판을 열어 진자 추를 반 바퀴 내리고 닫았다⁠. 무릎을 펴고 일어날 때 관절이 딱 소리를 냈다⁠. 시계 소리보다 컸다⁠.

작업대 한가운데에 유리 덮개가 하나 있었다⁠. 덮개 안에 남자 손목시계가 누워 있었다⁠. 가죽 줄은 갈라졌고 바늘은 아홉 시 사십일 분에 멈춰 있었다⁠. 효란은 시계를 마흔 해 동안 한 번도 감지 않았다⁠. 손님들이 덮개 속 시계는 왜 안 고치느냐고 물으면 효란은 손님 시계부터 고치자고 대답했다⁠.

벽에는 사진이 빼곡했다⁠. 서른한 살의 효란이 시계 골목의 늙은 기술자 옆에서 핀셋을 처음 쥐고 잔뜩 찡그린 사진이 맨 위에 있었고⁠, 맨 아래에는 예순 살의 효란이 노인복지관 탱고 반 상장을 들고 이를 다 드러내며 웃었다⁠. 두 사진 사이를 미용실 친구들과 바닷가와 생일 케이크가 메웠다⁠. 효란은 아침 약 두 알을 물 없이 삼키고 덮개 위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셔터를 반쯤 올리자 맞은편 구두 수선 부스에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공동수가 부스 창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일흔넷이었고 목소리가 골목을 다 채웠다⁠.

“⁠병원 가지⁠? 내가 태워 줄게⁠.⁠”

“⁠아저씨 차 타면 기상하기 전에 내가 먼저 눕겠어요⁠.⁠”

“⁠내 차가 어때서⁠. 이십 년 동안 사고 한 번 없었어⁠.⁠”

“⁠이십 년 동안 차고에서 안 나왔잖아요⁠.⁠”

동수는 웃지 않았다⁠. 효란의 단화 굽을 먼저 내려다보았다⁠. 왼쪽 굽이 바깥으로 닳아 있었다⁠.

“⁠굽 갈고 가⁠. 남편 앞에 서는데⁠.⁠”

“⁠남편 앞에 안 서요⁠.⁠”

동수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 전에 골목 끝에 운전석 없는 택시가 와서 멈췄다⁠. 효란은 셔터를 끝까지 올리지 않고 택시에 올랐다⁠. 차 안에서 고른 목소리가 행선지를 물었다⁠. 효란은 에버슬립이라고 대답했다⁠. 택시가 한마디를 보탰다⁠. “⁠보호자님⁠,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효란은 창밖을 보며 기계한테까지 들킨다고 중얼거렸다⁠.

*

효란은 보호자 화장실 세면대에 왼손을 담그고 물비누를 세 번 짰다⁠. 금반지는 손가락 둘째 마디까지 미끄러져 올라오다가 늘 멈추던 자리에서 또 멈췄다⁠. 마흔 해 동안 시계 뒷판을 따고 태엽을 감고 핀셋을 쥐는 사이에 마디가 조금씩 굵어졌고⁠, 반지는 한 번도 마디를 넘어 본 적이 없었다⁠. 비누 거품이 손등의 검버섯 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거울 속에 일흔 살 여자가 서 있었다⁠. 작고 곧은 몸에 물결치는 은빛 짧은 머리가 귀를 살짝 덮었고⁠, 주름진 눈가 안에서 갈색 눈만 맑았다⁠. 연보라 카디건은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였다⁠. 효란은 거울 속 여자에게 낮게 말했다⁠.

“⁠빠져라⁠, 좀⁠.⁠”

손목 화면이 떨렸다⁠. 동네 친구들 단톡방 「⁠낙원동 할매회⁠」였다⁠.

「⁠미용실 순혜⁠: 빠졌어⁠?⁠?⁠?⁠?⁠」

「⁠미용실 순혜⁠: 식용유 써 식용유⁠. 우리 사위 반지 그걸로 뺐다니까⁠」

「⁠떡집⁠: 뭘 빼 남편 반지를⁠. 빼지 마⁠」

「⁠미용실 순혜⁠: 언니는 사정을 몰라요⁠」

효란은 젖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렀다⁠. 「⁠안 빠져⁠. 주머니에 넣고 들어간다⁠. 오늘은 단톡 좀 쉬어⁠.⁠」 답은 일 초 만에 왔다⁠. 「⁠미용실 순혜⁠: 응원 서른한 번째 올린다♡⁠」 효란은 화면을 끄고 손을 털었다⁠. 물방울이 거울에 튀었다⁠.

*

로비 벽 화면에서 아침 뉴스가 소리 없이 돌았다⁠. 「⁠해외 제약사 근섬유 석회증 치료제 승인 뒤 세계 곳곳에서 첫 기상⁠」⁠. 자막이 지나가고 다음 줄이 올라왔다⁠. 「⁠국회 보건복지위⁠, 장기 수면자 가족 문제 첫 논의⁠」⁠. 소파에 앉은 보호자들이 화면을 올려다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렸다⁠. 저마다 지하 3층에 누군가를 재워 둔 사람들이었다⁠.

기상실은 동관 1층 끝에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넓은 창이 보였고⁠, 아침 햇빛이 하얀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문 옆 안내판에 큰 글씨가 박혀 있었다⁠.

「⁠에버슬립은 병을 고칠 날까지 재웁니다⁠. 깨우는 날은 의료위원회가 정합니다⁠.⁠」

“⁠탁 여사님⁠.⁠”

원장 마동규가 복도 저편에서 걸어왔다⁠. 키가 크고 머리가 하얗게 셌고⁠, 흰 가운 앞자락이 걸음마다 무릎을 스쳤다⁠. 걸음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동규는 서류판을 가슴에 대고 효란 앞에 멈췄다⁠.

“⁠기상은 아홉 시입니다⁠. 그 전에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남편분께 아내라고 하지 말아 주십시오⁠. 보호자로만 곁에 계셔 주십시오⁠.⁠”

효란은 대답하지 않고 동규의 서류판을 내려다보았다⁠. 「⁠기상 보호자 확인서⁠」 아래 보호자 이름이 박혀 있었고⁠, 관계 칸에 「⁠지인⁠」이 미리 찍혀 있었다⁠.

“⁠깨어난 분은 석 달 동안 적응기를 보내십니다⁠. 큰 충격은 피해야 합니다⁠. 서른 살 남자가 눈을 떴는데 아내가 일흔이면⁠…⁠…⁠.⁠”

“⁠충격은 제가 받았어요⁠. 마흔 해 전에⁠.⁠”

동규는 목소리를 한 칸 낮췄다⁠. 화를 내는 사람의 낮춤이 아니라 비밀을 꺼내는 사람의 낮춤이었다⁠.

“⁠다음 주에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서이겸 님이 저희 병원의 첫 완치 기상자입니다⁠. 지하 3층에 아직 삼천 명이 주무십니다⁠. 그분들 가족이 화면으로 보셔야 하는 건 웃는 남편 하나입니다⁠. 옆에 일흔 살 아내가 서 계시면 기자들은 아내가 왜 일흔인지부터 묻습니다⁠.⁠”

“⁠병원 기계가 고장 나서요⁠.⁠”

“⁠그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 투자가 빠집니다⁠. 삼천 명의 차례가 밀립니다⁠.⁠”

“⁠싫다고 하면요⁠?⁠”

동규는 서류판 밑에서 얇은 화면을 꺼내 효란 쪽으로 돌렸다⁠. 「⁠서이겸 · 기상 2060년 3월 12일 아홉 시 · 의료위원회 승인⁠」⁠.

“⁠깨우는 날은 위원회가 정합니다⁠. 오늘이 아니어도 됩니다⁠. 위원회는 언제든 다시 모일 수 있습니다⁠.⁠”

목소리는 끝까지 공손했다⁠. 효란은 화면에서 눈을 들어 유리문 위의 둥근 벽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열두 시를 지날 때 소리가 반 박자 늦게 왔다⁠. 효란의 귀는 마흔 해 동안 그런 소리를 잡아 왔다⁠.

“⁠저 시계⁠, 이 초 늦어요⁠.⁠”

“⁠네⁠?⁠”

“⁠벽시계요⁠. 원장님 병원은 시계도 늦네요⁠.⁠”

동규가 처음으로 웃었다⁠. 효란은 웃지 않고 하나를 더 물었다⁠.

“⁠남편이 물으면요⁠? 아내는 어디 있느냐고⁠.⁠”

“⁠적응기 동안 바깥소식은 병원이 말씀드립니다⁠.⁠”

“⁠뭐라고요⁠?⁠”

“⁠기록에 있는 대로요⁠. 2020년 여름에 동반 수면 계약이 끝났다고⁠.⁠”

효란은 동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끝났다는 말은 맞았다⁠. 마흔 해 전 여름에 효란의 캡슐이 열렸고⁠, 한 번 깬 몸은 다시 얼릴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병원이 내민 합의서에 이름을 썼다⁠. 이름을 쓴 순간 효란은 동반 수면자에서 보호자가 되었다⁠. 기록은 마흔 해 동안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계약이 끝난 거지⁠, 제가 떠난 건 아니에요⁠.⁠”

“⁠여사님⁠. 서른 살 남자한테 그 둘이 다르게 들릴까요⁠?⁠”

동규는 웃는 얼굴로 펜을 내밀었다⁠. 효란은 펜을 받아 확인서 맨 아래에 이름을 썼다⁠. 손끝이 펜을 너무 세게 눌러 종이가 조금 패었다⁠. 관계 칸의 「⁠지인⁠」은 그대로 두었다⁠.

*

바닥 가운데 네모난 뚜껑이 소리 없이 열렸다⁠. 하얀 캡슐이 지하 3층에서 천천히 올라와 바닥과 높이를 맞추고 멈췄다⁠. 뚜껑 이음새마다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의사 둘과 간호사 하나가 캡슐 양옆에 붙었고⁠, 가슴에 「⁠7⁠」이 찍힌 간호 로봇이 바퀴를 굴려 다가와 담요를 펼쳐 들었다⁠. 효란은 문가에서 두 걸음 안으로 들어와 섰다⁠. 더 가지 말라고 동규가 손바닥을 살짝 들어 보였다⁠.

창가에 액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입원할 때 낸 가족사진을 기상하는 날 창가에 두는 것이 이 병원의 규칙이었다⁠. 2017년 봄의 결혼사진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의 두 사람이 웃고 있었다⁠. 신부의 짧은 머리는 까맸고 신랑의 머리는 결혼식 날에도 부스스했다⁠. 효란은 사진 속 신부의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캡슐 옆면의 작은 화면에 글자가 떴다⁠.

「⁠서이겸 · 잠든 날 2020년 3월 14일 · 잠든 나이 서른 · 지금 몸 나이 서른⁠」

효란은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지금 몸 나이 서른⁠. 마흔 해 동안 매달 보존료를 보내면서도 효란은 이 글자를 한 번도 제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숫자는 정말로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목 화면이 한 번 떨렸다⁠. 단톡방이 아니었다⁠.

「⁠서은희⁠: 언니⁠, 저 지금 고속도로예요⁠. 오빠 깨면 저부터 보게 해 줘요⁠. 오빠는 저를 스물넷으로 알 거예요⁠」

효란은 답하지 않고 화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이겸의 여동생은 올해 예순넷이었다⁠.

뚜껑이 열렸다⁠. 찬 김이 하얗게 피어올라 햇빛 속으로 흩어졌다⁠. 소독약과 언 쇠 냄새가 기상실 안에 퍼졌다⁠. 김이 걷히자 남자 하나가 누워 있었다⁠.

마른 몸이었다⁠. 하늘색 환자복 깃 위로 쇄골이 도드라졌고⁠, 얼굴은 창백했다⁠. 검은 머리는 마흔 해를 누워 있었는데도 부스스하게 뻗쳐 있었다⁠. 잠들기 전날 밤에도 저랬다고⁠, 효란은 생각했다⁠. 가슴 위에 모은 손 가운데 왼손 약지에서 금반지가 빛을 받았다⁠. 효란은 카디건 주머니 속에서 제 왼손을 주먹 쥐었다⁠.

의사가 이름을 불렀다⁠. 세 번째 부르자 속눈썹이 떨렸다⁠.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눈동자는 천장을 헤매다가 창의 햇빛에 닿자 가늘어졌다⁠. 마른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몇 시예요⁠?⁠”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의사가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아홉 시 사 분입니다⁠.⁠”

“⁠아⁠, 다행이다⁠. 오늘 오후 근무라⁠.⁠”

간호사가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떨렸다⁠. 간호 로봇이 담요를 덮어 주며 또박또박 말했다⁠. “⁠서이겸 님⁠, 깨어나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2060년 3월 12일입니다⁠.⁠” 이겸은 로봇을 한참 보다가 효란이 있는 문가로 눈을 굴렸다⁠.

“⁠이천⁠…⁠… 육십⁠?⁠”

“⁠네⁠.⁠”

“⁠대박⁠.⁠”

간호 로봇이 머리 위의 작은 등을 깜박였다⁠. “⁠지금 하신 말씀을 기록합니다⁠.⁠” 이번에는 의사도 웃었다⁠.

이겸은 웃지 않았다⁠. 눈동자가 창가로 가서 결혼사진에 멈췄다⁠. 숨이 빨라졌다⁠.

“⁠효란이는요⁠? 옆에서 같이 잤는데⁠.⁠”

의사가 동규를 보았다⁠. 동규가 한 걸음 나섰다⁠.

“⁠적응기 동안 차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몸부터 살피시지요⁠.⁠”

이겸은 동규의 말을 듣지 않았다⁠. 팔꿈치로 캡슐 가장자리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마흔 해 동안 쓰지 않은 팔이 반쯤 들리다 무너졌다⁠. 손이 미끄러졌다⁠. 효란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왼손이 이겸의 손을 받았다⁠.

이겸은 받은 손을 놓지 않았다⁠.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끝은 아직 차가웠고 쥐는 힘은 아이만 했다⁠. 깨어난 눈은 한동안 초점이 맞지 않는다고 의사가 미리 말해 주었었다⁠. 이겸의 눈이 효란의 얼굴 위에서 흐릿하게 헤맸다⁠.

“⁠어머님은 누구세요⁠?⁠”

효란은 숨을 한 번 삼켰다⁠. 첫 번째로 떠오른 성이 입에서 나왔다⁠.

“⁠옆 병실 보호자예요⁠. 엄⁠…⁠… 엄 여사⁠.⁠”

“⁠엄 여사님⁠.⁠”

이겸은 엄 여사의 손을 더 꼭 쥐었다⁠. 둔한 손끝이 손가락 마디를 더듬다가 반지 위를 지나갔다⁠.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효란은 고개를 창으로 돌리려다 멈췄다⁠. 이겸이 올려다보며 물었다⁠.

“⁠제 아내 탁효란⁠, 못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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