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52자) · 소랑 · 2027년 11월 27일
서른세 번째
파도가 닿는 곳까지 · 진해솔
이천이십칠 년 십일월 이십칠일 토요일 새벽, 이진리에서 제일 먼저 들린 것은 여전히 바람이었다.
배소랑은 현관 칠판 앞에서 분필을 쥐었다. 만조 오전 여섯 시 십 분, 간조 낮 열두 시 이십 분. 칠판 오른쪽 귀퉁이에는 규칙 세 줄이 일 년째 그대로 있었고, 그 아래에는 윤나래의 반듯한 글씨로 오늘의 소리 칸이 따로 그어져 있었다. 어제 칸에는 파도, 갈매기, 사장님 한숨, 그리고 차은결 재채기 세 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랑은 한숨 옆에 작게 배소랑이라고 적힌 걸 보고 웃다가 지우지 않고 뒀다.
윤나래는 봄에 두 달 치 방값만 들고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여름 성수기에 물때 방 세 개가 한 번도 안 비었고, 소랑 혼자서는 이불 빨래를 감당할 수 없었다. 윤나래는 이제 많지 않은 월급을 받았다. 대신 주말마다 방파제에 녹음기를 들고 나갔고, 은결은 그 녹음을 들을 때마다 붐마이크 쥐던 버릇이 아직 손목에 남아 있다고 놀렸다.
일 년 전 오늘 오후 세 시 버스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이 내렸다. 봄까지라고 했고, 봄이 몇 월인지 모른다고 했다. 봄은 두 번째로 지나갈 참이었다.
소랑은 장부를 폈다. 투숙객 칸 맨 위에 차은결, 입실 이천이십육 년 십일월 이십칠일이 있었고 퇴실일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은결이 행주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언제부턴가 설거지는 은결 몫이었다.
“일 년 됐어요. 퇴실일 적어 주셔야 되는데요.”
“안 적으면 안 돼요?”
“손님은 퇴실일을 적어야 돼요.”
“그럼 손님을 그만두면 되잖아요.”
소랑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은결은 행주를 개면서 모르는 척했는데, 귀 끝이 빨갰다.
*
유월 이십칠일 새벽 다섯 시, 선창에는 만식호 한 척만 떠 있었다.
소랑은 녹음기 케이스를 들고 은결과 나란히 선창 끝에 섰다. 배만식은 엔진 덮개를 열어 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경유 냄새와 새벽 물비린내가 섞여 코끝이 시큰했다. 동쪽 하늘이 막 회색으로 풀리는 참이었다.
“기계 들고 왔나.”
“네. 받기 전에 여쭤볼게요. 받아도 돼요?”
“받기 전에 내 말부터 들어라.”
만식이 일어나서 딸 쪽으로 돌아섰다. 은결이 반걸음 물러섰다.
“어제 니 그 기계 앞에 앉는 거 봤다. 할매 마이크 삐 할 때 니 손 가는 거 봤다. 나는 그기 뭔지 모른다. 근데 니 손은 안 떨었다.”
“아빠는 그걸 왜 보고 싶었어요? 도망 왔다면서요.”
“니가 도망 왔다꼬 생각하는 거 같아서 그랬다. 나는 니가 도망 왔다꼬 생각한 적 없다. 그래 말해야 니가 화내고 뭐라도 할 줄 알았다.”
소랑은 대답하지 못했다. 만식이 엔진 덮개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기름때 박힌 손톱 밑이 새벽빛에 검게 보였다.
“오 년 전에 서울 갔었다. 니 큰 공연 한다 캐서. 니 엄마 가고 나서 처음이었다. 표를 니 몰래 샀다. 맨 뒷자리였다.”
소랑의 숨이 목에서 멈췄다. 손에 든 녹음기 케이스가 갑자기 두 배로 무거워졌다.
“중간에 삐 소리 났제. 나는 그기 무슨 소린지도 몰랐다. 그라고 나는 막차 때문에 일어났다. 해평 가는 막차가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새벽에 배 나가야 되니까. 나가믄서 뒤돌아보이 니가 저 앞에 기계 앞에 앉아 있더라. 그래서 됐다 싶었다.”
소랑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선창 콘크리트가 무릎을 통해 차갑게 올라왔다. 이천 석 객석 맨 뒤에서 일어나 나가던 뒷모습이 있었다. 오 년 동안 그 등이 페이더 위에 겹쳐 있었다. 소랑의 소리 때문에 나간 사람이라고 믿었던 그 등이 막차 시간을 맞추느라 서두른 아버지였다.
“와 우노. 막차 탔다는 말에.”
“아빠, 그거 왜 이제 말해요?”
“니가 안 물었다 아이가.”
은결이 뒤에서 조용히 코를 훌쩍였다. 만식이 은결을 흘끗 보고 헛기침을 하더니 엔진 덮개 쪽으로 돌아섰다.
“받아라. 내 이름 적고. 배만식, 만식호, 천구백팔십칠 년부터. 부고 아이다. 바뀌는 기다. 오늘 오후면 이 소리 없다. 내가 바꾸기로 했다.”
만식이 시동을 걸었다. 통통통통. 그 소리가 선창 콘크리트를 타고 소랑의 무릎으로, 허벅지로, 배꼽 밑으로 올라왔다. 어릴 때 방바닥에 귀를 대고 이 소리가 커지기를 기다리던 밤들이 몸 안에서 한꺼번에 일어났다. 은결이 녹음 버튼을 눌렀다. 만식은 오 분 동안 엔진을 공회전시키고, 마지막으로 스로틀을 한 번 끝까지 당겼다가 놓았다. 통통 소리가 한 번 크게 솟았다가 바다 쪽으로 흩어졌다.
그날 오후 만식호는 읍내 조선소로 끌려갔고, 일주일 뒤 새 엔진을 달고 돌아왔다. 새 엔진은 소리가 낮고 고르고 조용했다. 만식은 새 엔진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 달 동안 투덜거렸다. 너무 조용해서 배가 가는지 안 가는지 모르겠다는 게 이유였다.
32. 만식호 발동기 통통 — 배만식 · 1987~2027년 6월 27일
*
음반은 시월에 나왔다. 「파도가 닿는 곳까지」, 서른두 곡에 차은결 곡 하나를 더한 서른세 트랙이었다.
속지 맨 앞에 소리를 주신 분들이라는 제목 아래 이름 스물둘이 적혀 있었다. 곽말순이 맨 앞이었고, 최막례가 한 칸 아래였고, 곽분님은 네 번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이 따로 있었다. 이 음반을 다시 쓰게 해 주신 분, 이복례. 수록지 칸에는 이진리라고 적혔다. 구월 어촌계 총회에서 마을 이름 안건이 다시 올라왔고, 서른한 명 가운데 서른한 명이 손을 들었다. 계장석에서 제일 먼저 손을 든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회관에 있던 사람이 다 봤다.
마지막 트랙은 십사 분짜리 은결의 곡이었다. 안개 속 무적에서 받은 여덟 마디로 시작해서, 곽분님 자장가의 네 가지 가사가 한 마디씩 번갈아 지나가고, 통통 소리가 박자를 대신 쳤다. 곡 중간에 소리가 전혀 없는 삼 초가 있었다. 주혜린이 사고인 줄 알고 전화했을 때 은결은 그게 무적이 울기 직전 안개 속 삼 초라고 대답했다. 곡 제목이 음반 제목이 됐다. 은결은 이 년 동안 한 음도 못 쓰다가 일 년 동안 십사 분을 썼고, 스스로는 그걸 한 해에 한 곡이라고 셌다.
음반이 나온 날 소랑과 은결은 한 장을 들고 말순의 집에 갔다. 말순은 돋보기를 쓰고 속지를 펼쳤다. 제 이름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맨 앞에 있었는데도 그랬다. 찾고 나서 굽은 검지로 그 세 글자를 짚었다.
“여기 있네. 와 맨 앞이고?”
“제일 많이 주셨으니까요.”
말순은 속지를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반대쪽 주머니에서 인천 소인이 찍힌 편지 한 통을 꺼냈다. 딸이 보냈다고 했다. 방송에서 숨소리를 듣고 엄마 숨인 줄 알아서, 인터넷을 뒤져 음반 소식까지 찾아냈다고 했다.
“지가 몰랐단다. 내가 무슨 소리 내면서 사는지. 스물에 나가서 마흔여섯이 됐는데 이제 안단다. 설에 온다 카더라. 십이 년 만이다.”
말순은 편지를 도로 주머니에 넣고 앞치마를 두 번 툭툭 쳤다. 이름 없는 방송이 딸을 찾게 했고, 이름 있는 음반이 딸에게 엄마를 알려 줬다. 소랑은 그 두 가지가 한 앞치마 양쪽 주머니에 나란히 들어 있는 걸 오래 봤다.
한도경의 「마지막 겨울, 이진리」는 유월에 전국 방송을 탔다. 이름 없이 나갔다. 방송이 나가고 한 달쯤 지나자 인터넷에 글이 몇 개 올라왔다. 그 다큐에 나온 할머니 숨소리, 원래 주인이 누군지 아는 사람? 댓글에 음반 속지 사진이 달렸다. 곽말순, 김 발 걷는 소리, 봄까지.
그리고 어제 오후, 한도경이 물때 현관문을 다시 열었다. 조끼 대신 양복을 입고 있었다.
“차 감독, 속편 들어가. 「다시 온 겨울」. 이번엔 이름 다 넣을게. 음반 소리 쓰게 해 줘. 사람들이 이름을 찾더라고.”
은결은 칠판 앞에 서서 규칙 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한테 물으시면 안 돼요. 스물두 분한테 한 분씩 물으세요. 세 번씩요.”
“스물둘에 세 번이면 예순여섯 번이야.”
“네. 저는 그렇게 받았어요.”
한도경이 칠판을 한참 보다가 목록 맨 앞 줄에서 눈을 멈췄다. 바람, 낸 사람 없음.
“이건 누구한테 물어?”
“그건 안 물어도 돼요. 대신 못 파세요. 주인이 없으니까요.”
한도경은 웃으려다 그만두고 명함 한 장을 칠판 틀에 끼워 둔 채 나갔다. 소랑이 그걸 빼서 오늘의 소리 칸 옆에 다시 꽂았다. 윤나래가 명함 밑에 한 줄을 적었다. 한도경 대표 한숨.
*
새벽 여섯 시, 두 사람은 방파제 끝까지 걸어 나가서 장비를 내려놓았다.
경매장 부속동 뒷방에는 지난달부터 소리 두는 곳이라는 나무 간판이 걸려 있었다. 민서하가 운영 규칙을 세 번 올려 받아 낸 칸이었다. 등대는 여전히 소리를 안 냈고, 제빙 공장 터에는 볼트 구멍 스물네 개 위로 풀이 올라와 있었다. 소랑은 가끔 그 풀을 뽑으러 갔다가 구멍 하나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돌아왔다. 여름에도 구멍 안쪽은 서늘했다. 창고 두 동이 헐린 물때 앞마당에는 만식이 보상금 남은 걸로 깔아 준 자갈이 아직 발밑에서 새것처럼 사각거렸다.
십일월 파도가 낮고 길게 들어왔다. 겨울 파도보다 소리가 낮았다. 테트라포드 사이로 들어온 물이 방파제 안쪽에 갇혀 한 바퀴 돌았고, 바깥쪽 물은 콘크리트 모서리에 닿았다가 하얗게 부서지며 물러났다. 은결이 스위치를 눌렀다.
“이건 안 사라지는데요.”
소랑이 방파제에 앉았다. 콘크리트가 청바지를 뚫고 차갑게 올라왔고, 바람이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일 년 전 그날처럼 목도리를 안 하고 나왔다. 은결이 제 목도리를 풀어 소랑의 목에 감았다.
“그러니까 적어 두는 거예요. 없어질 때 알아야죠.”
“이름은 누구로 적어요? 파도는 낸 사람이 없잖아요.”
“들은 사람으로요. 한 사람이 들으면 들은 거고, 둘이 들으면 기록이에요.”
십오 분을 받았다. 헤드폰 한쪽은 은결의 귀에, 한쪽은 소랑의 귀에 있었고, 선이 짧아서 어깨가 붙어 있었다. 헤드폰 안에서 파도가 돌고, 헤드폰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소랑은 이 소리를 서른네 해 동안 매일 들었는데, 오늘 처음 들은 것 같았다.
돌아와서 은결이 칠판에 적었다.
33. 파도 — 2027년 11월 27일 · 방파제 끝 · 채록 배소랑, 차은결
목록에서 사라지지 않는 소리는 그 한 줄뿐이었다.
그날 오후 소랑은 장부를 다시 폈다. 퇴실일 칸을 한참 보다가 볼펜을 내려놓고, 대신 칠판 앞으로 가서 일 년 전 은결이 적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거기에는 아직도 분필 가루가 뭉친 글씨 네 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직 안 감. 소랑은 그 네 글자 아래에 분필로 한 줄을 보탰다. 안 가도 됨.
밤이 되자 바람이 잦아들고 파도 소리가 올라왔다. 파도는 방파제 끝까지 닿았다가 물러났다. 그다음 것도 같은 데까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