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5,976자)

여든두 걸음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출소는 3월 2일이었다.

전날 밤에 나는 창고에 갔다.

열람 시간이 아닌데 윤 교도관이 열어 줬다.

서가가 여덟 칸이다.

백여든두 권이다.

나는 그 앞에 삼십 분쯤 앉아 있었다. 의자 둘 중 하나에 앉았다. 십육 년 전에 그 방에서 나왔다가 「방 안 잔류」로 남은 의자다.

창은 위쪽에 있고 철망이 쳐져 있다. 밤이라 빛이 안 들어왔다.

바닥은 녹색이다.

십육 년 전 첫 신청서에 나는 이렇게 썼다.

유휴 공간 활용 신청(도서 열람실) 사용 목적: 도서 열람

그때 나는 이것이 몇 년 걸리는 일인지 몰랐다.

알았으면 안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다르게 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규정을 썼을 것이다.

윤 교도관이 문가에 서 있었다.

“임 선생님.”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예.”

“한 가지 말씀 안 드린 게 있습니다.”

나는 돌아봤다.

“일곱 번 반려한 사람이 접니다.”

“…예.”

“제가 사유를 골랐습니다. 다섯 개 중에 하나씩요.”

“…”

“화재 위험, 위생, 공간 용도, 예산, 관리 인력. 그리고 단독 관리 불가, 근무 편성.”

“…”

“일곱 번 다 제가 적어 올렸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왜요?”

윤재호가 서가를 봤다.

“한 번에 다 적으면 포기하실 것 같아서요.”

“…처음부터 다섯 개를 다 아셨습니까?”

“알았습니다.”

“…”

“2015년 6월에 제가 처음 그 서류를 봤습니다. 그때 이미 다섯 개가 다 보였습니다.”

“…”

“다섯 개를 한 번에 적어서 내려보내면, 그건 반려가 아니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럼 여덟 번째부터 건의로 바꾸라고 하신 것도.”

“그것도 저입니다.”

“…”

“여덟 달을 안 내셨을 때, 저는 끝난 줄 알았습니다.”

“…”

“그런데 그때 임 선생님이 배식하실 때 왼쪽을 보고 걸으셨습니다.”

나는 그를 봤다.

“…보셨습니까?”

“여덟 달 동안요.”

“…”

“안 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직 안 끝난 겁니다.”

“…왜 알려 주십니까? 지금요.”

“내일 나가시니까요.”

윤재호가 문을 잡았다.

“여기 있는 동안 아셨으면 저를 미워하셨을 겁니다.”

나는 서가를 봤다. 여덟 칸이다.

“지금은요?”

윤재호가 웃었다.

“지금은 나가시잖아요.”

나는 그날 밤에 그 사람에게 하나를 물었다.

십육 년 동안 안 물은 것이다.

“선생님.”

“예.”

“왜 저를 도와주셨습니까?”

윤재호가 문 옆에 서 있었다. 복도 등이 반쯤 켜져 있어서 얼굴이 반쯤 어두웠다.

“…임 선생님.”

“예.”

“제가 여기 온 게 2013년입니다.”

“…예.”

“그전에 저희 아버지가 여기 계셨습니다.”

“다른 데였습니다. 여기는 아니고요.”

“…”

“구 년 계셨습니다. 나오셔서 삼 년 사시고 가셨습니다.”

“…”

“그 구 년 동안 아버지가 저한테 편지를 백 통쯤 쓰셨습니다.”

“…”

“여든 통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무슨 문장이요.”

윤재호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볼펜을 놓았다.

“구 년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

“그건 쓸 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가 문을 열었다.

“임 선생님이 처음 그 서류를 내셨을 때, 저는 그걸 봤습니다.”

“…”

“쓸 게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나왔다.

문서 세 개하고 문서 아닌 것 한 장은 넘기고 왔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건의자 칸에는 안세중 이름이 적혀 있다.

담당 셋에도 없다. 규정 어디에도 없다. 인계 문서 받는 사람 칸에도 없다.

그게 규정대로다.

나오는 길에 나는 여든두 걸음을 마지막으로 걸었다.

세면장이 예순여덟 걸음째다. 계단이 일흔네 걸음째다.

여든두 걸음째는 안 갔다. 나가는 문은 반대쪽이다.

십육 년 동안 세 번씩 걸었으니 만 칠천 번쯤 걸었다.

마지막에 그 끝까지 못 간 것이 나는 지금도 좀 아쉽다.

나가기 전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정문 앞 사무실에서 소지품을 받는데, 정광호가 거기 서 있었다.

보안과장이 출소자를 배웅하는 일은 없다.

“임경식.”

“…예.”

“하나 물어봅시다.”

“말씀하십시오.”

“이 년 전에 그 책 돌아왔을 때요.”

“예.”

“누가 가져갔는지 아셨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이 년 동안 대답을 준비했다.

“…몰랐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정광호가 나를 봤다.

“…저는 압니다.”

나는 그를 봤다.

“…”

“그때 제가 열람실 앞을 지나다가 봤습니다. 문 닫히기 직전에요.”

“…”

“그날 보고서에 안 적었습니다.”

“과장님.”

“예.”

“왜 안 적으셨습니까?”

정광호가 서류를 정리했다.

“임경식 씨가 저한테 그러셨잖습니까?”

“…무엇을요?”

“대장으로 사람을 찾으면 그 줄이 죽는다고요.”

“…”

“저는 대장을 안 썼습니다. 눈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같은 거더군요.”

그가 소지품 봉투를 나에게 밀었다.

“가십시오.”

밖에 나와서 나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탔다.

십육 년 전과 버스 번호가 달랐다. 노선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해 5월에 나는 시립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쉰여섯 살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안이 넓었다. 서가가 몇 칸인지 세다가 그만뒀다. 마흔 칸쯤에서 그만뒀다.

책이 몇 권인지도 안 셌다.

안내 창구에 사람이 있었다.

“…조성희 선생님 계십니까?”

“어느 분이요?”

“…”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조성희입니다.”

그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한 사람이 나왔다.

오십 대였다. 나보다 조금 아래로 보였다.

“…임경식 선생님?”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

“제 얼굴을 모르실 텐데요.”

“…글씨를 압니다.”

그 사람이 잠깐 나를 봤다.

“…무슨 말씀이세요.”

“편지를 스물세 통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날 삼십 분쯤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 방이 몇 평인지, 서가가 몇 칸인지, 책이 몇 권인지.

나는 다 대답할 수 있었다.

“…선생님.”

“예.”

“마지막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그 방에 이름이 없습니다.”

“…”

“열람실이라고만 부릅니다.”

조성희가 나를 봤다.

“이름을 지으셨습니까?”

“…지었습니다.”

“뭐라고 지으셨습니까?”

나는 그 이름을 말했다.

그 사람이 그것을 종이에 적었다.

여든두 걸음

“…이게 무슨 뜻입니까?”

“복도 길이입니다.”

“…”

“제가 십육 년 동안 하루에 세 번씩 걸었습니다.”

조성희가 그 종이를 봤다.

“그럼 이건 그 방 이름이 아니라 선생님이 걸으신 거네요.”

나는 그 말에 잠깐 아무 대꾸도 못 했다.

“…그러네요.”

“다른 걸로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왜요?”

“그 방은 그 복도 끝에 있습니다.”

“…”

“끝에 있는 것을 알려면 거기까지 걸어야 합니다.”

그해 6월에 정상우를 만났다.

그 사람이 먼저 찾아왔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보호관찰 쪽에 물어봤다고 했다.

열세 해 만이다.

마흔둘이 됐다. 나갈 때 스물아홉이었다.

살이 좀 붙었고 머리가 셌다. 나는 그 사람을 못 알아봤다. 그 사람은 나를 알아봤다.

“형님.”

“…정 씨.”

“늙으셨네요.”

“…예.”

“저도요.”

우리는 역 앞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 사람이 국밥을 시켰다. 나는 뭘 시킬지 몰라서 같은 것을 시켰다.

밥이 나오기 전에 그 사람이 물었다.

“형님.”

“예.”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나는 그 물음을 여덟 번 받았다.

받을 때마다 답을 안 했다.

“…스물두 번째입니다.”

정상우가 숟가락을 놓았다.

“…스물둘이요?”

“예.”

“열세 번째부터는 제 이름이 아니고요.”

“다른 사람 이름입니다.”

“…”

“안세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그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정상우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형님.”

“예.”

“그거 십오 년 전에 저한테 약속하셨어요.”

“…무엇을요?”

“건의자 칸에 누구 이름 들어가면 알려 주신다고요.”

나는 그 약속을 기억 못 했다.

그 사람은 기억하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십오 년 늦으셨어요.”

“…예.”

“그런데 오셨네요.”

밥을 다 먹고 그 사람이 종이봉투를 꺼냈다.

버스 회사 이름이 찍힌 봉투였다. 손잡이가 있고 귀퉁이가 닳아 있었다.

“이거요.”

나는 그것을 받았다.

무게가 있었다.

“펴 보세요.”

나는 손을 봉투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정 씨.”

“예.”

“이거 시립도서관에 부쳐 주십시오.”

정상우가 나를 봤다.

“…예?”

“조성희라는 분이 계십니다. 거기로 보내면 그분이 안으로 넣어 주십니다.”

“…형님 거잖아요.”

“아닙니다.”

“…”

“어머님이 그날 들고 오신 건 저한테 오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려던 겁니다.”

“…”

“십오 년 늦게 들어가는 겁니다.”

정상우가 봉투를 봤다.

“그럼 형님은 못 보시는데요.”

“예.”

“…한 번도 안 보셨잖아요.”

“예.”

“열어만 보시면 되잖아요.”

나는 손을 뗐다.

“열면 제 것이 됩니다.”

그 두 권이 무슨 책인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십육 년 전에 못 봤고 그날은 안 봤다.

못 본 것과 안 본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만드는 데 십육 년이 걸렸다.

정상우는 그 봉투를 이튿날 부쳤다.

부치고 나서 전화를 했다. 그 사람은 내 번호를 그날 받아 갔다.

“형님.”

“예.”

“이제 안 물어볼게요.”

“…”

“답 들었으니까요.”

나는 수화기를 들고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정 씨.”

“예.”

“열세 해 동안 여덟 번 물으셨습니다.”

“…예.”

“저는 한 번도 답을 안 했습니다.”

“압니다.”

“…죄송합니다.”

전화 저쪽에서 그 사람이 웃는 소리가 났다.

“형님.”

“예.”

“답장 안 하셔도 된다고 제가 여덟 번 썼잖아요.”

“…”

“그거 진짜로 안 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듬해 봄에 나는 그 이름이 붙었다는 것을 편지로 들었다.

안세중이 보낸 것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임 선생님

이름이 붙었습니다. 문 옆에 붙였습니다. 글씨는 밖에서 왔습니다. 임서윤이라는 분이 써 보내 주셨습니다. 누구신지는 안 물었습니다.

여든두 걸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왜 여든두 걸음이냐고 묻습니다. 저는 세어 보라고 합니다.

세어 본 사람이 지금까지 열한 명입니다. 열한 명 다 여든둘이 나왔다고 합니다.

책은 백구십사 권입니다. 한도가 이백 권이라 여섯 권 남았습니다. 스물세 번째 건의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도 상향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작년에 가르치기 시작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썼습니다. 석 달 걸렸습니다.

선생님보다 한 달 빠릅니다.

안세중 올림

나는 그 편지를 접지 않았다.

그 편지를 받고 두 달 뒤에 한 통이 더 왔다.

임 선생님

기증 두 권 들어왔습니다. 백구십오 번과 백구십육 번입니다.

기증자 칸에 이름이 없었습니다. 봉투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습니다. 「접견인」이라고 적었습니다.

한 권은 요리고 한 권은 소설입니다. 제목을 적어 드릴까요?

안세중 올림

나는 그 마지막 줄에 답장을 썼다.

한 줄이었다.

안 적으셔도 됩니다.

부치고 나서 나는 그 두 번호를 공책에 적었다.

195 196

번호만 안다.

십육 년 동안 나는 무엇이 몇 개인지 세면서 살았다.

세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

그 두 권은 없는 쪽이다.

없는 쪽을 하나쯤 두고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

십육 년 전에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온 사람이 유리 앞에서 표지를 이쪽으로 돌렸다.

그 표지를 나는 못 봤다.

못 본 것이 그 사람이 한 일이다.

봤다고 하면 그 일이 없어진다.

지금 그 두 권은 복도 끝에 있다.

거기까지는 여든두 걸음이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3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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