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10자) · 가을 버스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 도경

퇴사 마흔아흐레째. 시월 십구일. 중앙극장 철거 전날.

구청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 통과된 것은 그 전 주였다. 성하보행교 존치. 차량교는 백 미터 하류로 옮겨 새로 놓는다. 시장 영업손실 보상 가정은 칠십에서 오십으로. 시장 상인들은 오순자 사장님 말대로 같이 다시 계산받았다. 떡집, 건어물, 신발 가게. 순자네 반찬은 시장 뒤편 공영 상가 일 층으로 옮기기로 했다. 공영 상가는 삼 년 뒤에 완공이다. 그동안은 컨테이너. 사장님이 말했다. 「컨테이너도 반찬은 팔아. 냉장고만 들어가면.」

극장은 헐린다. 회사 땅이고, 계획대로다. 절반이었다.

매표소 한 평은 문 영감이 협의 보상에 도장을 찍었다. 두 배. 조건이 하나 붙었다. 매표소 부스를 헐지 말고 다리 입구로 옮겨 줄 것. 옮기는 비용은 회사가. 윤 이사대우가 그 조건을 결재란에 올렸다. 대표가 한 번 반려했고, 윤 이사대우가 한 번 더 올렸다. 두 번째에 통과됐다고, 한석을 통해 들었다. 한석은 요즘 구청 앞에서 대리 콜을 기다린다. 남 주무관과 가끔 캔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철거 전날 저녁, 윤 이사대우가 전화를 했다. 가림막 안 극장 로비를 하룻저녁 열어 주겠다고. 안전 요원 둘을 붙여서. 여덟 시부터 열한 시까지. 문 영감이 부탁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틀고 싶다고. 가을 버스.

필름은 없었다. 극장 영사기는 폐관 때 고물상에 넘어갔다. 문 영감 말로는 고물상 주인이 영사기 렌즈만 따로 빼서 돋보기로 팔았다고 했다. 나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전화를 걸었다. 천구백구십삼 년 작 가을 버스. 흥행 실패작. 자료원에 복원본이 있었다. 비영리 상영 신청서를 쓰고, 이틀 동안 세 번 전화하고, 파일을 받았다. 빔 프로젝터는 누나네 교회에서 빌렸다. 스크린은 없었다. 극장 로비 벽이 희었다. 이십일 년 동안 먼지가 앉은 흰 벽. 한석과 둘이서 걸레로 닦았다. 닦으니 벽이 더 희어졌다. 닦은 자리와 안 닦은 자리 사이에 선이 생겼다. 그 선 안쪽이 스크린이었다.

일곱 시 반, 다리 입구로 옮겨 놓은 매표소에 불이 들어왔다. 매형이 전선을 끌어다 백열전구를 하나 달았다. 창구 유리의 금에 누나가 붙인 테이프가 전구 빛에 반짝였다. 문 영감이 창구 안 의자에 앉았다. 감색 양복. 넥타이는 두껍고 짧은 옛날 매듭. 오른손은 아직 깁스. 왼손으로 표 뭉치를 넘겼다. 내가 순서대로 주워 둔 그 뭉치. 오백 번대부터.

첫 손님은 오순자 사장님이었다. 삼천 원을 창구에 밀어 넣었다.

“영감님, 일반 한 장.”

문 영감이 왼손으로 표를 뜯었다. 서툴렀다. 두 번 만에 뜯었다. 날짜 도장은 이천오 년 삼월 십사일 그대로였다. 문 영감은 도장을 새로 찍지 않았다.

“그날 표요. 마지막 날. 오늘까지 유효하오.”

떡집, 건어물, 신발 가게. 누나와 매형, 조카 둘. 조카들은 학생 이천 원. 남 주무관과 그의 아이. 아이는 다리 난간에 매달리던 아이 가운데 하나였다. 크레파스 그림을 그린 아이. 한석은 대리 콜을 끄고 왔다. 표를 받아 들고 한참 봤다. 「삼 년 만에 뭘 샀네요. 나를 위해서.」

여덟 시 오 분 전, 노부부 한 쌍이 다리를 건너왔다. 칠십 대. 남편이 지팡이를 짚고, 부인이 그 팔을 잡고. 매표소 앞에 서서 한참 창구를 들여다봤다. 문 영감이 창구 너머로 그들을 봤다. 한참.

“이천오 년 삼월 십사일. 셋째하고 넷째.”

부인이 입을 가렸다.

“기억하세요?”

“신혼 때 여기서 봤다고. 마지막 날이라 다시 왔다고. 이번에도 여자가 안 나오네, 하셨지.”

“동네 단톡방에서 봤어요. 오늘 튼다고. 저희 이사 간 지 십오 년인데, 손녀가 보여 줬어요.”

문 영감은 표 두 장을 뜯었다. 왼손으로. 이번에는 한 번에 뜯었다.

“돈 안 받소. 그날 두 분이 산 표, 영화 끝나고 반쯤 찢겨서 나갔거든. 반은 내가 받았으니, 반은 오늘 드리는 거요.”

누나는 표를 사면서 문 영감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이거 재미있어요?」 문 영감이 대답했다. 「아니. 망했소.」 누나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럼 왜 틀어요?」 「망한 것도 끝까지 봐야 망한 줄 알지.」 누나는 표를 받아 들고 나를 돌아봤다. 입 모양으로 말했다. 너랑 똑같다.

로비에는 서른한 명이 앉았다. 접이식 의자는 구민회관에서 빌렸다. 공청회 때 그 의자들. 여덟 시 정각, 불을 껐다. 빔 프로젝터가 흰 벽을 비췄다. 닦은 자리 안쪽에 버스가 떠올랐다. 시골길, 가을, 막차. 필름을 복원한 화면이라 가끔 긁힌 자국이 지나갔다. 비처럼.

영화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사가 버스를 몰고, 여자가 타고, 내리고. 둘은 말이 없었다. 날마다 같은 정류장. 조카 하나가 중간에 누나 무릎에서 잠들었다. 오순자 사장님이 두 번 코를 풀었다. 왜 우는지 사장님도 모르는 것 같았다. 떡집 사장님이 절편을 돌렸다. 로비 안에서 절편 봉지 소리가 났다. 아무도 쉿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장면. 여자가 안 나온다. 기사는 정류장에 버스를 세우고 기다린다. 한참. 화면이 오래 그대로다. 로비 안이 조용했다. 버스가 떠나고, 빈 정류장이 남고, 끝.

불이 켜지기 전에 노부부의 부인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이번에도 안 나오네.”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거지.”

스물한 해 전 그날과 같은 대사였다. 문 영감이 어둠 속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나중에 사장님이 말했다.

불이 켜졌을 때 사람들은 한참 일어나지 않았다. 매형이 먼저 박수를 쳤다. 혼자. 아무도 따라 치지 않았다. 매형은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가, 누나가 팔꿈치로 찌르자 다시 쳤다. 그제야 떡집 사장님이 따라 쳤다. 서른한 명이 박수를 쳤다. 망한 영화에.

박수가 멎었을 때 로비 맨 뒤 벽에 윤 이사대우가 서 있었다. 넥타이 없이. 손에 표 한 장. 언제 들어왔는지 아무도 못 봤다. 문 영감이 그 표를 알아봤다. 창구에서 판 기억이 없는 표였다.

“그 표는 어디서 났소.”

“매표소 창구에 삼천 원 놓고 제가 뜯었습니다. 어르신 안 계실 때. 죄송합니다.”

문 영감은 그를 한참 봤다.

“뜯는 손이 서툴렀겠구먼.”

“세 번 만에 뜯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 로비 앞에서 윤 이사대우가 나를 불렀다.

“재우야. 대표님 고소는 그대로 간다. 나는 못 막는다고 했지.”

“네.”

“대신 재판 가면 나 증인으로 나간다. 네 버전 칠, 칠십으로 바꾸기 전날 내가 뭘 물을지 네가 알았다는 거. 그건 네 잘못이고. 내가 그걸 원하는 얼굴을 십일 년 동안 하고 있었다는 거. 그건 내 잘못이고. 둘 다 말할 거다.”

그는 표를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세 번 만에 뜯은 표.

“그러면 나도 회사에 오래 못 있겠지. 괜찮아. 나도 좀 걸어 보려고.”

그날 밤 한석과 둘이 다리 위에 섰다. 매표소 불은 꺼져 있었다. 강물이 가로등 빛을 흔들었다.

“재우 씨. 제가 그날 노트에 적었다던 질문 있잖아요. 삼 년 뒤에 어디 서 있나.”

“네.”

“저는 답 정했어요. 삼 년 자격 정지 끝나면 조사원 다시 할 거예요. 계수 칸 채우는 조사원. 그때까지는 대리 하면서 밤에 웃는 손님 세고요.”

“저는 아직 반쯤입니다.”

“반 통이네요.”

한석이 웃었다. 문 영감 말투를 흉내 냈다. 서툴렀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굴착기가 극장 지붕을 뜯었다. 우리는 다리 위에서 봤다. 문 영감, 오순자 사장님, 한석, 나. 등굣길 아이들이 난간에 매달려 물 대신 굴착기를 봤다. 남 주무관의 아이가 문 영감 옆에 와서 섰다. 「할아버지, 극장 없어지면 슬퍼요?」 문 영감이 대답했다. 「슬프지. 그래도 너 떨어지는 것보다는 덜 슬프다. 난간에서 손 떼라.」 매표소는 다리 입구에 서 있었다. 거기서 극장 지붕이 보였다. 앉아서도. 지붕이 무너지는 데 사십 분 걸렸다. 중어극장 간판이 마지막으로 떨어졌다. 앙 자의 아래 획 없이.

“이제 안 보이네.”

문 영감이 말했다.

“그래도 앉으실 거죠.”

“앉지. 보이는 데 있으려고 오는 게 아니라, 이제는 여기가 보이는 데니까.”

그날 오후 나는 종점까지 버스를 탔다. 그리고 종점에서부터 걸었다. 거꾸로. 8구간 종점에서 공원, 7구간 공원에서 육교, 6구간 육교에서 학교. 육교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세 걸음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한석은 이제 거기 서지 않는다. 난간의 페인트 벗겨진 자리만 남아 있었다. 나는 거기 잠깐 서서 퇴근 차를 셌다. 웃는 차 열한 대. 한석보다 둘이 많았다.

5구간 학교에서 다리. 문 영감의 매표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창구 너머로 문 영감이 손을 들었다. 왼손으로. 4구간 다리에서 극장 자리. 가림막 너머 빈터. 3구간, 2구간. 시장 뒤편 컨테이너에 순자네 반찬 간판이 붙어 있었다. 간판 밑에 사장님이 앉아 있었다.

“오늘도 지나가시네.”

“네.”

“안 사고?”

“반 통 주세요. 오늘 뭐 잘 나가요?”

“코피 총각한테는 콩자반이지.”

집에 돌아온 것은 저녁 여덟 시였다. 세 시간 사십 분. 무릎이 뻐근했다. 깔창 덕에 발바닥은 괜찮았다. 신발 가게 사장님 말이 맞았다. 많이 걷는 사람한테는 깔창이 필요하다. 거꾸로 걸으니 모든 게 조금씩 달랐다. 같은 길인데 다른 일이었다.

노트의 마지막 장을 폈다. 여덟 권 가운데 첫 권이 거의 찼다. 표지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가방에 넣고 쉰 날 가까이 걸었으니까. 사이사이 끼워 둔 것들 때문에 노트가 두꺼워져 있었다. 다섯 번째 표, 내용증명, 매표소가 기운 새벽에 뒷면에 적은 표, 조카가 그려 준 버스 그림.

10월 20일 · 여덟 정거장 · 거꾸로 · 세 시간 사십 분 극장 · 헐림 · 사십 분 매표소 · 다리 입구 · 앉아서 보임 육교 · 비어 있음 · 웃는 차 열한 대 순자네 반찬 · 컨테이너 · 콩자반 반 통

그 아래에 이번 주에 정한 것을 적었다. 월요일부터 성하시장 상인회 사무실에 나간다. 영업손실 보상 서류를 같이 쓰는 일. 무급. 원가표를 반대쪽에서 짜는 일. 고소는 아직 진행 중이고, 퇴직금은 아직 묶여 있다.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할 걸 정했다.

냉장고를 열었다. 찬 기운이 얼굴에 닿았다. 콩자반은 다 먹었다. 두 번째 칸에 반 통 하나만 서 있었다. 딱 맞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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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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