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12자)

두 장의 소환장

악녀와 성녀가 손을 잡았다 · 백해원

크레센트 공작저의 아침 식탁에 의자가 일곱 개 놓였다. 평소에는 셋이었다.

공작은 맨 끝자리에 앉아 수프를 노려보았다. 그 옆으로 공작부인, 이사벨라, 엘리스가 앉았고, 맞은편에 리나와 엘로이즈가 앉았다. 엘로이즈는 시녀가 주인 식탁에 앉으면 안 된다고 세 번 말했고, 공작부인이 세 번 다 앉으라고 했다. 일곱째 의자는 비어 있다가, 벽난로 옆 벽에서 무언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난 뒤에 찼다.

“배고파.”

노엘이 머리에 짚 부스러기를 붙인 채 걸어 나왔다. 저장고 벽 뒤에서 엿새를 지낸 몸에서 오래 묵은 포도주 냄새가 났다. 공작의 숟가락이 수프 그릇에 떨어졌다.

“저, 저 아이는…”

“새 시녀예요, 아버지.”

“시녀가 왜 벽에서 나오느냐?”

“우리 집 벽이 넓어서요.”

공작부인이 빵 바구니를 노엘 쪽으로 밀었다. 노엘이 빵 두 개를 한꺼번에 집었다. 공작은 아내를 보았고, 아내는 남편을 보지 않고 버터를 발랐다. 공작이 숟가락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는 그날 아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허락이었다.

엘리스는 식탁 아래서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어젯밤 대신전 계단에서 성력을 걸었다. 신이 안 보고 있었다고 웃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맨 먼저 손바닥을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은 원래 손을 대야 일었다.

“리나. 이리 와 볼래?”

리나가 의자에서 내려와 엘리스 옆에 섰다. 엘리스가 리나의 등에 왼손을 댔다. 구호소 이후로 리나에게 남은 마른기침이 있었다. 손바닥에서 미지근한 물이 손목으로 흘렀다. 리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기침이 나오지 않았다.

엘리스가 손을 뗐다.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있네.”

“있어요?”

이사벨라가 물었다.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오늘도 안 보고 있나 봐.”

“그럼 언니, 오늘도 성녀예요.”

“교단이 아니라는데?”

“교단이 아니라고 하는 성녀요.”

리나가 두 사람의 신성어 대화를 듣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노엘이 빵을 문 채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엘리스가 노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번에는 성력 없이 손바닥으로.

*

점심 무렵 프리실라 하웰이 깃털 모자를 쓰고 뛰어 들어왔다. 응접실 문을 열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영애! 큰일이에요! 소문이 두 개예요. 하나는 제가 낸 거고, 하나는 제가 낸 게 아니에요.”

“제가 낸 거부터요.”

“성녀가 크레센트 공작가로 시집갔다.”

엘리스가 마시던 차를 뿜었다. 이번에는 받침이 아니라 탁자 위로 흘렀다. 이사벨라가 손수건을 찾다가, 손수건이 없어서 소매로 닦았다. 공작부인이 그 소매를 보고 눈을 감았다.

“하웰 영애, 그건 너무…”

“너무 좋죠? 수도 사람들이 지금 대신전 욕보다 그 이야기를 더 해요. 대신관님이 성녀를 내쫓았다는 말보다, 성녀가 크레센트 영애 집으로 갔다는 말이 더 재밌거든요. 재밌는 소문이 무서운 소문을 이겨요.”

“다른 하나는요?”

프리실라가 부채를 접었다. 감탄사가 빠진 얼굴이었다.

“아르덴 제국 사절이 오늘 아침 북문으로 들어왔어요. 교단 본산에서요. 대주교래요. 마차가 열두 대.”

채령은 아르덴을 알았다. 루미엘 동쪽 국경 너머의 큰 제국이었고, 이 대륙 교단의 본산이 그 수도에 있었다. 루미엘 대신전도 그 본산에서 성유를 받아 왔다. 원작에서 아르덴은 왕태자의 혼담 상대로 두 번 이름만 나왔다. 사절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왕궁에서 오늘 아침 회의가 있었대요. 대신관님이 폐하께 청하셨대요. 본산 사절이 수도에 머무는 동안, 마녀 재판을 열자고. 본산이 보는 앞에서 루미엘 교단이 깨끗하다는 걸 보이겠다고요. 폐하께서 허락하셨대요.”

응접실이 조용해졌다. 벽난로에서 장작 하나가 무너졌다.

“사절은 얼마나 있대요?”

“한 달이요.”

원작의 마녀 재판은 시즌 마지막 날, 성녀의 날이었다. 넉 달째의 끝이었다. 지금은 둘째 달 엿새였다. 채령은 손가락으로 무릎 위에 날짜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두 달 넘는 날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

해가 기울 무렵 공작저 대문 밖에 행렬이 섰다. 성기사 여섯, 사제 둘, 그리고 흰 말을 탄 대신관 오르텐. 행렬 맨 앞에서 말고삐를 잡은 사람은 루카스였다. 은빛 갑옷이 아니라 평기사의 회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 어깨의 부단장 표식이 뜯겨 나간 자리에 실밥만 남았다.

공작저 하인이 대문을 열었다. 이사벨라와 엘리스가 현관 계단을 내려왔다. 공작이 그 뒤에 섰고, 노엘은 이층 창문 커튼 뒤에 있었다. 커튼 아래로 신발 끝이 보였다.

오르텐이 말에서 내렸다. 사제 하나가 그에게 두루마리 둘을 건넸다. 대신전 봉인이 찍힌 붉은 밀랍이 해를 받아 번들거렸다.

“루카스 경은 오늘부로 부단장에서 내려왔습니다.”

오르텐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제단 받침의 돌이 사라진 것을 사제가 찾았지요. 누가 뺐는지 경에게 물었더니, 경이 뺐다고 하더군요. 정직한 사람입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정직한 일을 맡겨야지요. 오늘은 소환장을 모시는 일을 맡겼습니다.”

루카스는 말고삐를 쥔 채 앞만 보았다. 이사벨라가 루카스를 보았다. 루카스가 아주 조금 고개를 숙였다. 원작에서 이 사람은 이사벨라의 팔을 잡고 대신전 광장으로 끌고 갔다. 오늘 이 사람은 그 일을 하지 않으려다 어깨 표식을 잃었다.

“크레센트 공작 영애 이사벨라.”

오르텐이 첫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이사벨라가 받았다. 밀랍이 아직 미지근했다.

“성녀를 홀리고 등록되지 않은 불을 다루는 자를 숨긴 혐의로, 마녀 재판의 피고로 부릅니다. 스무 날 뒤, 대신전 앞마당.”

“그리고 엘리스.”

오르텐은 성녀라고 부르지 않았다. 둘째 두루마리를 엘리스 앞에 내밀었다. 엘리스가 받지 않자, 그는 두루마리를 든 손을 내리지 않고 기다렸다.

“교단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마녀를 감싸, 가짜 기적으로 신의 이름을 더럽힌 혐의로 같은 재판의 피고로 부릅니다.”

엘리스가 두루마리를 받았다. 오른손으로 받았다. 새살이 당겼는지 손가락 끝이 한 번 떨렸다.

“둘 다요?”

“둘 다입니다.”

“원래 재판은 마녀 하나 태우는 거 아니었어요?”

엘리스는 이 나라 말로 물었다. 오르텐이 웃었다. 처음 만난 날과 같은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마녀는 하나면 됩니다. 피고가 둘일 뿐이지요.”

이사벨라가 한 걸음 나섰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되는데요?”

“그것은 재판정에서 두 분이 정하실 겁니다.”

오르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저녁 햇빛이 그의 반쯤 흰 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재판정에서는 피고도 증언을 합니다. 한 피고가 다른 피고를 마녀로 지목하면, 지목한 쪽은 홀린 자, 속은 자로 봅니다. 속은 자는 태우지 않습니다. 교단은 자비롭습니다.”

공작저 앞이 조용해졌다. 대문 철창 사이로 저녁 바람이 지나갔다. 장미 정원 쪽에서 꽃잎 몇 장이 날아와 오르텐의 발 앞에 떨어졌다.

“영애께서는 성녀를 지목하시면 됩니다. 평민 출신 성녀가 공작 영애를 꾀어 교단을 속였다고. 성녀께서는 영애를 지목하시면 되고요. 악녀가 성녀를 홀렸다고. 어느 쪽이든, 사절 앞에서 교단은 마녀 하나를 태우고 하나를 용서합니다. 그것이 루미엘 교단이 깨끗하다는 증거가 되지요.”

“둘 다 지목 안 하면요?”

엘리스가 물었다. 오르텐이 엘리스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러면 둘 다 탑니다.”

오르텐이 말에 올랐다. 고삐를 쥐고, 마지막으로 이층 창문 쪽을 올려다보았다. 커튼 아래의 신발 끝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영애. 견습은 재판정에 증인으로 서게 될 겁니다. 어디서 나오든. 신의 축복이 두 분과 함께하기를.”

행렬이 돌아섰다. 루카스가 말고삐를 끌고 맨 앞에서 걸었다. 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대문을 지나기 직전, 왼손을 들어 회색 외투 어깨의 실밥 자리를 한 번 쓸었다.

*

밤이 깊었다. 손님방이 아니라 이사벨라의 방이었다. 엘리스는 오늘부터 이 방을 같이 쓰겠다고 했고, 공작부인은 침대가 넓으니 그러라고 했다. 공작은 그 말을 듣고 서재로 들어가 포도주 한 병을 들고 나왔다가, 저장고에 남은 술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도로 들어갔다.

두루마리 둘이 탁자 위에 있었다. 아무도 펼치지 않았다. 벽난로 불빛이 붉은 밀랍 위에서 흔들렸다.

채령은 창가에 서 있었다. 장미 정원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 정자 탁자 다리 밑에 누군가 받쳐 둔 접은 천이 아직 있을 것이었다.

“언니.”

“응.”

엘리스는 침대 끝에 앉아 오른손에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주치의 연고에서 풀을 걸러 낸 것이었다. 돼지기름과 밀랍 냄새가 방 안에 은근히 퍼졌다.

“외전 얘기, 다 안 했어요.”

엘리스의 손이 멈췄다.

“외전에서 이사벨라는 참회하고 살아요. 그건 말했죠. 재판은 열리고, 성녀가 타요. 그것도 말했고요.”

채령이 창문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찼다.

“성녀를 화형대에 세운 마지막 증언이 누구 거였는지는 말 안 했어요. 이사벨라 거예요. 재판정에서 이사벨라가 일어나서, 성녀가 저를 꾀었다고 말해요. 그리고 살아요. 외전 마지막 화 제목이 「용서받은 악녀」예요. 독자 투표 일등이었어요.”

방 안에 연고 냄새와 장작 타는 소리만 남았다. 엘리스가 연고 뚜껑을 닫았다. 천천히 돌려서 닫았다.

“그거, 오늘 대신관이 말한 거랑 똑같네.”

“네.”

“그래서 처음에 말 안 했어?”

“말하면 언니가 저를 안 믿을 것 같아서요.”

엘리스가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와 채령 옆에 섰다. 채령은 엘리스를 보지 못하고 유리에 비친 얼굴만 보았다. 유리 속 엘리스는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웃는 얼굴도 아니었다.

“채령아.”

“네.”

“나 응급실에서 일 년에 한 번은 거짓말하는 보호자 만나. 애 다친 거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해. 묻기도 전에. 너는 내가 묻기 전에 말했어. 대신관 말 듣고 내가 너를 의심하기도 전에.”

엘리스가 채령의 손을 잡았다. 붕대 없는 오른손이었고, 연고 때문에 미끄러웠다.

“스무 날이야. 재판정에서 누가 누구를 지목할지는 대신관이 정하는 거 아니고 우리가 정해. 그리고 나는 이미 정했어.”

“뭘요?”

“아무도 안 태우는 쪽으로.”

“그거 오르텐이 둘 다 탄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재판을 없애야지. 처음부터 네가 그랬잖아. 누가 타느냐가 아니라, 재판이 아예 못 열리게.”

이층 복도 끝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다가와 방문 앞에서 멈췄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노엘이었다.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목에 건 칠 층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 정했어. 재판정에 증인으로 설게.”

“노엘, 그건…”

“그 대신관이 내가 어디서 나오든 세운다며. 그럼 내가 걸어서 나갈래. 그리고 거기서 물어볼 거야. 십오 년 전 성문 밖에서 나한테 이 불 가르쳐 준 사제가 누구냐고. 본산 대주교 앞에서.”

노엘이 손바닥을 폈다. 검은 불이 손가락 사이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빛을 먹는 불이 벽난로 불빛까지 조금씩 끌어당겼고, 방 안이 한 겹 어두워졌다.

엘리스가 그 불을 오래 보다가 물었다.

“그 사제, 살아 있으면 지금 몇 살이야?”

노엘이 손을 오므렸다. 불이 꺼지고, 고운 재가 한 줌 카펫 위로 떨어졌다.

“대신관 나이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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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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