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75자)

칠석

폭군의 호위무사로 빙의했는데 폭군이 나만 본다 · 윤재하

칠월 이렛날 아침, 고 내관이 연꽃 등 하나를 들고 침전 문 안쪽으로 왔다.

“소원을 적어 띄우는 등이다. 칠석에는 궁 사람 누구나 하나씩 띄운다.” 그가 등을 내 품에 안겼다. 한지를 꽃잎 모양으로 오려 대나무 살에 붙인 등이었다. 한가운데 촛대 자리 옆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거기 적어라. 글 모르면 내가 적어 주마.”

나는 붓을 받아 적었다. 칼 안 맞게 해 주세요.

고 내관이 그걸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호위가 칼을 안 맞겠다는 소원을 비는 건 처음 본다.”

“현실적인 목표가 중요합니다.”

“무엇?”

“아닙니다.”

내 왼팔에는 무명이 두껍게 감겨 있었다. 어젯밤 옥 앞에서 그인 자리였다. 붓을 쥔 손가락이 붕대 끝에서 조금 저렸다. 침전 안쪽에서 염휘가 나와 내 등 뒤로 지나갔다. 그는 내 소원 종이를 슬쩍 보고 아무 말 없이 지나가더니, 고 내관에게서 등 하나를 더 받아 침전 안으로 들어갔다. 휘장 너머에서 붓 긁는 소리가 한참 났다. 한 줄이 아니었다.

궁 안에는 아침부터 소문이 돌았다. 황상의 호위가 반란군을 끌어들여 자경전 옥지기를 죽였다. 수라간 나인들이 내 얼굴을 보고 길을 돌아갔다. 회랑에서 마주친 대신 하나는 소매로 입을 가렸다. 태후가 말한 그대로였다. 아니, 그 노인이 죽은 건 사실이었다. 소문은 그 사실에 내 이름을 붙였을 뿐이었다.

*

술시, 저녁 일곱 시께. 청량전 연못에 등불이 떴다.

연꽃 등 수백 개가 연못 양쪽에서 띄워져 가운데로 모였다. 장인들이 대나무 줄로 등을 이어 두어서, 등들이 모이면 연못 한가운데 활처럼 휜 다리 모양이 생겼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까치와 까마귀가 놓은 다리를 건너 만난다는 그 오작교였다. 등불 빛이 물에 비쳐 다리가 두 개가 되었다. 하나는 물 위에, 하나는 물속에. 바람이 불면 물속 다리만 흔들렸다. 한지 타는 냄새와 연잎 냄새, 기름 냄새가 누각을 채웠다.

원작 1권 마지막 화가 이 장면으로 시작했다. 「등불이 다리를 놓았고, 그 다리를 건너 죽음이 왔다.」 나는 그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문장 바로 옆에 내가 서 있었다.

태후는 상석 옆 반 자 낮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평온했다. 연회가 반쯤 지났을 때 그가 잔을 들고 염휘를 향해 말했다.

“황상,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밤입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지요.”

“그렇습니다, 어마마마.”

“황상 곁의 사람도 잘 지켜야 합니다.” 태후가 나를 봤다. 대신들 모두가 들으라는 목소리였다. “요즘 그 아이가 궁 밖까지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밤만큼은 황상 곁을 떠나지 않게 하세요.”

대신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옥지기 이야기를 다들 알았다. 태후는 그 이야기에 오늘 밤을 한 겹 더 얹었다. 오늘 밤 침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대신들은 황상 곁에 붙어 있던 호위 하나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위소겸은 연회에 없었다. 금군 통령이 칠석 연회의 경비를 맡았는데, 누각 입구에 그의 금빛 갑옷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부통령이 서 있었다. 나는 그 빈자리를 오래 봤다. 등 뒤에서 온다고 했다.

*

자시, 자정 무렵. 나는 침전 빗장을 열어 두었다.

황제와 짠 대로였다. 빗장을 걸지 않고, 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어 둔다. 호위대 서른 명 가운데 스물은 침전 지붕 처마 밑과 뒤뜰 장독대 그늘에 숨었다. 열은 평소처럼 앞뜰에 섰다. 진목은 앞뜰 맨 앞이었다. 사흘 전 박석에 꿇었던 무릎이 아직 덜 풀려서, 그는 서 있는 동안 자꾸 발을 바꿔 디뎠다. 침전 안에는 등잔 하나만 켰다. 염휘는 침상에 눕지 않고 휘장 뒤에 앉아 칼을 무릎에 놓았다. 재상은 고 내관이 수라간으로 데려갔다. 늙은 개는 끌려가면서 침전을 세 번 돌아봤다.

나는 문 안쪽에 섰다. 문을 등지고, 휘장 쪽을 보고. 열린 문틈으로 밤바람이 들어와 뒷목을 식혔다. 매미가 그쳤다. 그 대신 연못 쪽에서 등불이 물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첫 발소리는 앞뜰이 아니라 지붕에서 났다.

기와 위를 걷는 소리였다. 하나, 둘, 다섯. 처마 밑에 숨은 호위대가 칼을 뽑는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처마에서 앞뜰로 떨어져 내렸고, 진목이 그 사람을 받았다. 쇠와 쇠가 부딪혔다. 앞뜰 박석 위에 등불 하나가 엎어져 기름이 번지면서 불이 붙었다. 그 불빛 속에서 검은 옷 다섯과 호위대 열이 얽혔다.

열린 문틈으로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그 칼을 흘렸다. 이 몸이 흘렸다. 자객의 칼이 문설주에 박혔다. 나는 칼자루로 그의 손목을 쳤다. 손목에서 무언가 꺾이는 소리가 났다.

그때 뒤뜰에서 함성이 일었다. 호위대가 아니었다. 쪽빛 앞치마를 두른 사내 여남은 명이 뒤 담을 넘어오고 있었다. 맨 앞의 사내 손목에 붉은 끈이 감겨 있었다.

태후의 자객과 반란군이 한밤중 침전 앞뒤에서 한꺼번에 들어왔다. 원작 1권 마지막 화에 백무현은 없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칠석을 흘렸다. 원작에 없는 칼이 원작의 칼 옆에 섰다.

백무현이 뒤뜰 호위대 둘을 지나 침전 뒷문을 걷어찼다. 뒷문이 부서졌다. 그가 휘장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등잔 불빛 속에서 그의 눈썹 흉터가 하얗게 빛났다. 휘장 뒤에서 염휘가 일어섰다. 둘이 처음으로 같은 자리에 섰다. 원작 열두 권 동안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두 사람이었다. 원작의 폭군은 백무현이 일어나기 전에 죽었으니까.

“네가 폭군이냐?” 백무현이 말했다.

“네가 그 책의 주인이냐?” 염휘가 말했다.

백무현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했다. 나는 둘 사이로 뛰어들었다. 문 안쪽 자리를 버렸다. 백무현의 첫 칼이 내 칼에 걸렸다. 무거웠다. 어젯밤 수라간 길에서 맞대 본 칼보다 훨씬 무거웠다. 오늘은 그가 진심이었다. 내 왼팔 붕대 밑에서 상처가 터지는 게 느껴졌다. 손등으로 피가 흘렀다.

“비켜.”

“못 비킵니다.”

“너도 벤다고 했다.”

“그것도 알아요.”

염휘가 내 옆으로 나섰다. 그의 칼이 백무현의 두 번째 칼을 받았다. 황제와 호위가 반란군 수장 하나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섰다. 앞뜰의 불빛이 문틈으로 들어와 셋의 그림자를 휘장 위에 크게 그렸다.

그 그림자 속에, 넷째가 있었다.

나는 그걸 휘장 위에서 먼저 봤다. 염휘 등 뒤로 그림자 하나가 길어지고 있었다. 호위대 갑옷이었다. 우리 서른 명 가운데 하나가 입는 그 갑옷. 그런데 그 사람이 쥔 칼에 금실 술이 달려 있었다. 호위대 칼에는 술이 없다.

등 뒤에서 온다.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백무현의 칼을 놓았다. 몸을 돌렸다. 이 몸이 돌린 게 아니었다. 이 몸은 앞의 칼을 놓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고, 끝까지 버텼다. 돌린 건 나였다. 나는 염휘의 등과 그 칼 사이로 들어갔다.

칼이 들어왔다.

오른쪽 옆구리였다. 차가운 줄 알았는데 뜨거웠다. 쇠가 살을 지나가는 감각은 아픔보다 무게가 먼저였다. 누가 내 옆구리에 무거운 돌을 하나 집어넣은 것 같았다. 호위대 투구 밑에서 작은 눈이 나를 봤다. 위소겸이었다. 그 눈이 처음으로 놀라 있었다. 그가 노린 것은 내가 아니었다.

“신발 값입니다.” 내가 말했다.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염휘가 돌아섰다. 그 다음은 빨랐다. 그의 칼이 위소겸의 왼팔을 내리쳤다. 위소겸이 비명을 지르며 칼을 놓쳤다. 왼팔이 덜렁거렸다. 원작 2권에서 백무현이 자르던 그 팔이었다. 오늘은 황제가 쳤다. 그때 앞뜰에서 금군의 함성이 울렸다. 「자객을 잡으러 왔다! 문을 열어라!」 부통령이 끌고 온 금군 수십 명이 앞뜰로 쏟아져 들어왔다. 금군 둘이 침전 안으로 뛰어들어 피 흘리는 위소겸을 양쪽에서 끼고 끌어냈다. 자객을 잡으러 온 금군이 자객을 데리고 나갔다.

나는 무릎이 꺾였다. 바닥이 가까워졌다. 바닥에 닿기 전에 누가 나를 받았다.

백무현이었다. 그는 칼을 쥔 손 반대쪽 팔로 내 어깨를 받쳐 바닥에 눕혔다. 그러고는 염휘를 올려다봤다. 염휘는 칼을 백무현의 목에 대고 있었다. 백무현은 피하지 않았다.

“폭군 대신 칼을 맞는 놈은 처음 봤다.” 백무현이 말했다. 나를 내려다보며 했는지, 황제를 올려다보며 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그만둔다. 다음엔 둘 다 벤다.”

그는 칼을 거두고 부서진 뒷문으로 나갔다. 염휘는 그를 쫓지 않았다. 칼을 바닥에 던지고 내 옆에 무릎을 꿇었다. 손바닥으로 내 옆구리를 눌렀다. 피가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그 손이 떨렸다. 복숭아를 깎을 때도, 고약을 바를 때도 안 떨던 손이었다.

“날짜는 내가 정한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서 끝이 다 안 나왔다. “오늘은 아니다. 듣고 있느냐? 오늘은 아니야.”

나는 대답하려고 했는데 입안에 쇠 맛이 고였다. 등잔 불이 멀어졌다.

원작 1권은 여기서 끝난다. 「칠석 밤, 황제는 침전에서 죽었다.」

황제는 내 위에 엎드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의를 불러라, 어마마마 사람 말고, 아무나, 아무나 데려와라. 그 목소리가 들리는 동안 원작 1권은 끝나지 않았다.

*

눈을 뜨니 천장이었다. 침전 천장이었다.

옆구리가 무명으로 둘둘 감겨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그 자리가 당겼다. 창호지로 아침 볕이 들었다. 매미가 울었다. 칠월 여드렛날 아침이었다. 원작 1권에도 2권에도 없는 아침이었다. 원작 2권은 황제의 장례로 시작했다.

침상 옆에 염휘가 앉아 있었다. 옷이 어젯밤 그대로였다. 소매가 검붉게 굳어 있었다. 그는 자고 있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뜨는 걸 보고 아무 말 없이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손바닥만 한 나무 패였다. 한쪽 면에 「호위대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새긴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뭇결에서 아직 칼 냄새가 났다.

“진목이 부장이고, 너는 대장이다. 어제부터.” 그가 말했다. “서른 명 다 네 것이다. 스물아홉 명이다. 하나는 어젯밤 소겸한테 갑옷을 팔았다.”

“처형 날짜는요?”

“정하지 않는다.”

그가 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끝이 물에 젖어 번져 있었다. 고 내관이 연못가에 걸린 걸 건져 왔다고 했다. 어제 아침 그가 휘장 뒤에서 오래 적던 등불 소원이었다.

한 줄째. 재상이 열 해 더 살게.

두 줄째. 야율의 처형 날짜를 정하지 않게.

세 줄째는 먹이 번져 읽을 수 없었다. 나는 그걸 물어보려다 그만뒀다. 그의 귀 끝이 붉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고 내관이었다. 그는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또 뛰어온 모양이었다.

“폐하, 자경전에서 칙령이 나갔습니다.” 그가 숨을 몰아쉬었다. “섭정 인장이 찍혔습니다. 황상께서 병이 깊어 정사를 보실 수 없으니, 오늘부터 태후마마가 모든 정사를 대신 보신다고. 금군이 궁문 열두 개를 모두 닫았습니다. 침전 앞뜰 밖으로는 호위대도 못 나갑니다.”

염휘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고 내관이 목소리를 낮췄다. “북문 밖에 하란 사신이 와 있답니다. 원래 가을에 오기로 한 사람들이 석 달이나 일찍요.”

하란. 원작에서 도성을 불태우는 북쪽 기병의 나라였다. 원작에서 그 사람들은 3권에 온다.

나는 호위대장 패를 쥐고 천장을 봤다. 황제는 살았다. 나도 살았다. 원작 결말로 가는 길은 비틀렸다. 대신 그 자리에 내가 모르는 길이 열렸다. 태후는 인장을 쥐고 문을 닫았고, 백무현은 다음에 둘 다 벤다고 했고, 북쪽 사람들은 석 달을 앞당겨 왔다.

원작에 없는 내일이었다. 댓글 달 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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