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307자)

발인

두 장의 유언장 · 노범우

아침 일곱 시 반⁠, 장례식장 주차장에 해가 가득했다⁠. 밤새 이슬에 젖었던 차 유리들이 마르면서 김을 올렸다⁠. 범곤의 회색 세단은 주차장 맨 끝에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려 있었고⁠, 범곤은 운전석에 비스듬히 앉아 한쪽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었다⁠. 넥타이를 풀어 조수석에 던져 두었다⁠. 글러브박스는 내가 열어 둔 그대로였다⁠.

나는 열쇠 꾸러미에서 범곤 차의 보조 열쇠를 뺐다⁠. 서른두 해 동안 차가 다섯 번 바뀌는 사이에도 늘 내 꾸러미에 있던 열쇠였다⁠. 열쇠를 범곤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이제 문 잠기면 당신이 직접 불러요⁠. 보험사에⁠.⁠”

범곤이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위의 열쇠가 햇빛에 반짝였다⁠.

“⁠이혼하자는 거지⁠.⁠”

“⁠네⁠.⁠”

“⁠예순에⁠.⁠”

“⁠저는 쉰일곱이에요⁠.⁠”

범곤이 웃었다⁠. 웃음이 짧았고 눈은 웃지 않았다⁠. 범곤은 열쇠를 쥐었다가 폈다⁠.

“⁠사억은⁠.⁠”

“⁠당신 빚이에요⁠. 아파트 당신 지분은 당신이 알아서 해요⁠. 내 지분은 내가 지킬게요⁠. 대구 가면 변호사부터 볼 거예요⁠.⁠”

“⁠그다음엔⁠?⁠”

“⁠공증사무소요⁠. 증인 둘 데리고 가서 유언장 쓸 거예요⁠. 말로 하고⁠, 공증인이 읽어 주고⁠, 서명하고⁠. 내 것은 누가 고칠 데가 없게⁠.⁠”

“⁠당신 유언장에 나는 없겠네⁠.⁠”

“⁠캐나다에 있는 우리 딸은 있어요⁠.⁠”

범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석에서 내려와 차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 앞에 서서 오래 나를 보았다⁠. 서른두 해 동안 나는 범곤이 거짓말할 때 손을 쉬게 두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범곤의 두 손은 바지 옆에 가만히 내려와 있었다⁠.

“⁠선희야⁠, 미안하다⁠.⁠”

“⁠알아요⁠.⁠”

“⁠당신은 맨날 안다고 하네⁠.⁠”

“⁠이번에는 진짜 알아요⁠.⁠”

범곤은 발인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운구는 들지 않겠다고 했다⁠. 들 자격이 없다고⁠. 범곤은 장례식장 정문 옆 화단에 혼자 서서 발인을 지켜보았다⁠. 돋보기는 와이셔츠 주머니에 없었다⁠. 접객실 상 위에 두고 나온 뒤로 찾으러 가지 않았다⁠.

*

아홉 시⁠, 발인이었다⁠. 상조 팀장이 「⁠발인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흘 내내 수의 등급과 상복 수와 향의 개수를 두고 우리 형제와 부딪친 팀장은 마지막 날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영정은 미송의 아들 채헌이 들었다⁠. 새벽 첫차로 대구에서 왔다고 했다⁠. 의대 본과 4학년⁠, 할아버지 키를 닮아 컸다⁠. 채헌은 영정을 가슴에 안고 계단을 내려가다 미송에게 등을 한 번 맞았다⁠. 너무 빨리 걷는다고⁠.

관은 여섯이 들었다⁠. 앞에 태구와 재묵⁠, 가운데에 도윤구와 형틀 사장⁠, 뒤에 전기 사장과 설비 사장⁠. 하청 사장 넷이 운구를 들겠다고 나섰을 때 상조 팀장은 가족이 드는 게 맞다고 했고⁠, 태구가 이 사람들도 아버지 식구라고 했다⁠. 형틀 사장은 무릎이 안 좋아서 관 모서리를 잡을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어젯밤 이마에 드립백을 얹고 잔 사람이었다⁠.

태구는 관 앞머리를 오른손으로 받쳤다⁠. 아버지의 굽은 오른손이 누운 자리였다⁠. 태구는 계단 열두 칸을 내려가는 동안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빠져나가 풍산 가는 국도로 들어갔다⁠. 시내를 벗어나자 길가에 레미콘 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열한 대⁠. 하청 협의회 차들이었다⁠. 레미콘 통은 돌지 않았고⁠, 차들은 갓길에 바짝 붙어 한 줄로 길을 내주고 있었다⁠. 차마다 운전석 옆에 기사가 내려 서 있었다⁠. 안전모를 벗어 가슴에 대고⁠, 운구차가 지나갈 때 허리를 숙였다⁠.

나는 운구차 조수석에서 레미콘 차들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열한 대째 차 옆에 컨테이너에서 발톱을 깎던 노동자가 서 있었다⁠. 작업복 위에 어젯밤의 검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점퍼 주머니에서 드립백 봉지 귀퉁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사장님들이 어젯밤에 다 정했답니다⁠. 길은 안 막고 줄만 서자고⁠.⁠”

운구차 기사가 말했다⁠. 이 길로 운구를 이십 년 다녔는데 레미콘 차가 줄을 선 건 처음이라고 했다⁠. 사이드미러에 뒤따르는 관광버스가 비쳤다⁠. 「⁠금목토건 협력업체 협의회⁠」 종이를 앞 유리에 붙인 채였다⁠. 버스 창마다 하청 사장들이 창문을 내리고 레미콘 기사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맨 앞 창에서 재묵이 드립백 봉지를 흔들었다가 미송에게 손목을 잡혔다⁠.

*

풍산 뒷산 장지는 과수원 집 뒤 솔밭을 지나 올라간 자리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봉분 옆에 새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포클레인 기사가 아침에 파 놓고 내려갔다고 했다⁠. 나는 구덩이 가장자리에 쭈그려 앉아 깎인 흙벽을 보았다⁠. 맨 위는 솔잎이 썩은 검은 흙⁠, 검은 흙 아래 손바닥 두 뼘쯤 누런 흙⁠, 맨 아래는 붉은 자갈층이었다⁠. 일곱 살 때 옥동 공사장에서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짚어 주던 띠와 같은 순서였다⁠.

과수원 집 부엌에서 김이 올라왔다⁠. 하소옥이 새벽에 먼저 내려와 국수를 삶고 있었다⁠. 조문객에게 낼 국수였다⁠. 멸치하고 디포리로 육수를 냈다고⁠, 마 씨가 장지까지 올라와 알려 주었다⁠. 누렁이가 마 씨를 따라 올라와 구덩이 둘레를 한 바퀴 돌고 할아버지 봉분 옆에 엎드렸다⁠.

과수원 고랑에서 측량 기사 둘이 빨간 말뚝을 뽑고 있었다⁠. 전무가 아침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 말뚝을 거두라고 했다⁠. 말뚝 하나가 뽑힐 때마다 흙이 둥글게 들려 올라왔다가 주저앉았다⁠.

하관을 하기 전⁠, 솔밭 아래 길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검은 원피스에 지팡이를 팔에 건 여자가 내렸다⁠. 어머니였다⁠. 미송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내려갔고⁠, 어머니는 미송의 팔을 뿌리치고 솔밭 비탈을 혼자 걸어 올라왔다⁠. 지팡이는 끝내 짚지 않았다⁠.

“⁠대구까지 갔다가 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돌렸다⁠. 기사 양반이 왕복이라고 돈을 두 배 받더라⁠.⁠”

어머니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미송이 혈압계를 꺼내려 하자 어머니가 손을 저었다⁠.

“⁠미송이가 전화로 그러데⁠. 니 아버지가 영상에서 니한테 뭐라 캤다꼬⁠.⁠”

“⁠…⁠…⁠.⁠”

“⁠봉투 돌려주라 캤다며⁠.⁠”

“⁠네⁠.⁠”

“⁠니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으면 내가 사십 년을 더 살아 줬을 기다⁠.⁠”

어머니는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진주 귀걸이가 다시 귀에 달려 있었다⁠.

“⁠봉투는 니가 들고 와라⁠. 대구 우리 집으로⁠. 내 손으로 받을 끼다⁠. 받아서 뭘 할지는 내가 정한다⁠.⁠”

“⁠네⁠.⁠”

“⁠그라고⁠.⁠”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열세 해 동안 보지 못한 얼굴로 보는 것이 아니었다⁠. 어제 저녁 육개장을 먹던 얼굴 그대로였다⁠.

“⁠다음 주에 와라⁠. 김밥 싸 놓으께⁠. 니 꼬다리 좋아하제⁠.⁠”

나는 꼬다리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꼬다리는 어머니가 먹는 자리였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꼬다리 자리를 내게 내준다고 했다⁠.

*

하관 전에 과수원 집 부엌에 내려갔다⁠. 가스레인지 두 개에 들통 두 개가 끓고 있었다⁠. 하소옥은 상복 소매를 걷어 올리고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구고 있었다⁠. 헹군 국수를 손으로 한 타래씩 감아 채반에 올렸다⁠. 타래의 크기가 자로 잰 듯 같았다⁠. 이십 년 장터 국숫집의 손이었다⁠.

식탁 위에 연습장 서른 권이 끈으로 묶여 있었다⁠. 맨 위에 「⁠참 잘했어요⁠」 고무도장이 얹혀 있었다⁠.

“⁠큰따님 가져가세요⁠. 법원에 내야 하잖아요⁠.⁠”

“⁠다 끝나면 돌려드릴게요⁠.⁠”

“⁠도장은 드릴게요⁠. 마 씨가 큰따님 드리라고 했어요⁠. 땅 파시는 분도 잘했다는 도장은 받아야 한다고⁠.⁠”

하소옥이 국수 타래를 채반에 올리며 웃었다⁠. 나는 고무도장을 집어 손바닥에 굴렸다⁠. 보라색 인주가 손바닥에 웃는 얼굴로 찍혔다⁠.

“⁠소옥 씨⁠, 재묵이하고 미송이하고 아침에 얘기했어요⁠. 법으로는 소옥 씨 유언장이 진짜여도 우리 자식들이 풍산 땅에서 유류분이라는 걸 청구할 수 있대요⁠. 법이 정한 몫의 반이요⁠. 우리 셋은 청구 안 하기로 했어요⁠.⁠”

하소옥의 손이 국수 타래 위에서 멈췄다⁠.

“⁠그러면 큰따님들은요⁠?⁠”

“⁠아버지 회사 주식이 남아요⁠. 사옥 팔고 하청 갚고 나면 얼마 안 되겠지만⁠. 재묵이는 그걸로 가게 빚 갚고 다시는 가게 안 한대요⁠. 미송이는 채헌이 마지막 학기 등록금 낸대요⁠. 태구가 대 준 두 해 치 등록금은 태구 아들 대학 갈 때 그대로 돌려준대요⁠. 이자 붙여서⁠.⁠”

하소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수 한 타래를 더 감아 채반에 올렸다⁠. 그리고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내 손을 잡았다⁠. 국수를 헹군 손이라 차가웠다⁠.

“⁠계단에 판자 하나 더 대는 거⁠, 재묵 씨가 해 주신대요⁠. 커피 기계 놓는 받침 만들던 솜씨로⁠.⁠”

부엌 창밖에서 재묵이 판자를 어깨에 메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판자가 길어 휘청거렸고⁠, 누렁이가 판자 끝을 물려고 쫓아갔다⁠.

*

하관은 열한 시였다⁠. 관이 줄에 매달려 천천히 내려갔다⁠. 태구가 줄 하나를 잡았고⁠, 재묵이 맞은편 줄을 잡았다⁠. 관이 붉은 자갈층 바닥에 닿자 줄이 느슨해졌다⁠.

권 법무사가 내 옆에 와서 낮게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에 검인 청구를 넣자고⁠. 두 장 다⁠, 증거들도 다⁠. 내가 저고리 안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하소옥의 유언장은 아직 거기 있었고⁠, 태구의 유언장은 핸드백 안의 서류 봉투에 들어 있었다⁠. 두 봉투가 처음으로 따로 있었다⁠.

태구가 줄을 놓고 구덩이 가장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 무릎에 붉은 흙이 묻었다⁠. 태구는 흙을 털지 않고 나에게 왔다⁠.

“⁠누나⁠, 간다⁠.⁠”

“⁠어디로⁠?⁠”

“⁠안동경찰서⁠. 형부도 같이 간다 카더라⁠. 아까 전화 왔다⁠.⁠”

“⁠전무님이 사옥 파는 거 맡는다고 했어⁠.⁠”

“⁠들었다⁠.⁠”

태구는 할아버지 봉분 앞에 한 번 절하고⁠, 아버지 구덩이 앞에 한 번 절했다⁠. 그리고 하소옥이 국수를 삶는 과수원 집 쪽으로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솔밭 비탈을 혼자 내려갔다⁠. 비탈 아래에 태구의 검은 세단이 세워져 있었고⁠, 세단 옆에 범곤이 서 있었다⁠. 범곤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태구가 운전석에 탔다⁠. 세단이 과수원 길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측량 기사가 말뚝 한 다발을 안고 길가로 비켜났다⁠.

*

상조 팀장이 취토를 하시라고 했다⁠. 상주가 흙을 처음 덮는 순서였다⁠. 팀장이 삽을 내밀었다⁠.

나는 삽 대신 핸드백에서 흙손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발굴용 흙손이었다⁠. 서른 해 동안 남의 무덤 흙을 긁은 흙손이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고 흙손으로 둔덕의 흙을 골랐다⁠. 솔잎 섞인 검은 흙과 누런 흙이 섞이지 않게⁠, 누런 흙만 한 줌 떠냈다⁠. 아버지는 맨 밑에 깔린 게 제일 오래된 거라고 했다⁠. 오래된 흙 위에 사람이 덮을 뿐이라고⁠.

나는 흙손을 든 채 일어나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머니가 흙손을 보았다⁠. 상조 팀장이 당황해서 순서가 상주부터라고 말하려다 미송에게 옆구리를 찔렸다⁠. 어머니가 흙손을 받았다⁠. 손잡이를 쥐는 손이 빨랐다⁠. 사십 년 동안 자식 넷의 도시락을 싸고 교복 단추를 채운 손이었다⁠.

어머니가 구덩이 가장자리로 한 걸음 다가갔다⁠. 흙손을 기울였다⁠. 누런 흙 한 줌이 관 뚜껑 위로 떨어져 붉은 자갈층 위에 얇게 퍼졌다⁠. 과수원 집 부엌에서 국수 삶는 김이 솔밭 위로 올라왔고⁠, 고랑에서는 마지막 빨간 말뚝이 뽑혀 나왔다⁠. 어머니가 빈 흙손을 내 손바닥에 도로 쥐여 주었다⁠. 흙손 손잡이가 어머니 손바닥만큼 따뜻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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