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49자) · 첫인상
십 분
도서관 창고에서 엄마의 연애편지가 나왔다 · 유하람
매곡분관 이층 회의실은 창문이 남쪽으로 두 개 나 있고, 그중 하나는 칠 년째 안 열린다. 칠월 첫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안 열리는 창 쪽 유리에 매미 한 마리가 붙어서 울고 있었다. 회의실 안이 조용해서 매미 소리가 탁자 위까지 들어왔다.
회의는 아홉 시 정각에 시작됐다. 정각에 시작하는 회의는 이 분관에서 삼 년 만이었다.
“서도현입니다.”
새 관장은 자리에 앉지 않고 말했다. 앉지 않는 사람은 길게 말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아주 길게 말할 생각인 사람이다. 한여름은 어느 쪽인지 보려고 그의 구두를 봤다. 굽 바깥쪽이 닳아 있었다. 많이 걷는 사람이었다.
“넉 달입니다.”
그가 화면을 켰다. 월별 이용자 수 그래프, 삼 년 치. 오른쪽 끝이 아래로 기울어 있었다.
“십일월 십삼일에 폐관 심사가 있습니다. 이 그래프를 바꾸지 못하면 이 건물은 문화 복합 공간이 됩니다. 도서관 기능은 본관으로 통합되고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여름이 말했다.
“알고 계신 건 압니다. 삼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셨다는 것도요.”
회의실에 여섯 명이 있었다. 여섯 명 다 그 문장을 들었다. 여름은 손에 든 펜을 내려놓았다. 놓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매미가 잠깐 울음을 멈췄다가 다시 울었다.
“작년에 독서 모임 네 개 만들었습니다. 올해 여섯 개고요.”
“그래서 이용자가 몇 명 늘었죠?”
“열아홉 명이요.”
“열아홉.”
도현은 그 숫자를 되풀이했다. 비웃는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평평했다. 평평해서 더 나빴다.
“이번 달 목표는 사백입니다.”
여기까지가 십 분이었다. 여름은 십 분 만에 이 사람에 대한 판단을 끝냈다. 숫자만 보는 사람. 사람 얼굴은 안 보는 사람. 넉 달 채우고 실적 들고 본청으로 돌아갈 사람.
여름은 이 분관에서 팔 년을 일했다. 팔 년 동안 관장이 셋 바뀌었다. 첫 번째는 정년으로 나갔고, 두 번째는 승진해서 갔고, 세 번째가 오늘 왔다. 관장이 바뀌면 여름은 서가 배치를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 어린이실은 왜 일층 안쪽인지, 큰글자책은 왜 입구 바로 옆인지, 신문 열람대는 왜 창가에서 한 칸 떨어져 있는지. 이유가 다 있다. 창가에 두면 오후 햇빛에 신문이 누렇게 바래고, 어르신들이 눈부셔서 모자를 쓴 채로 읽는다. 팔 년 동안 세 번 설명했다. 세 번 다 아무도 끝까지 안 들었다.
이번에는 설명을 안 하기로 했다. 물어보면 하기로 했다.
이런 판단이 여름은 대체로 정확했다. 서가 앞에 선 사람을 삼 초만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찾는지 알았다. 손가락이 책등을 따라 내려가는 속도, 고개가 기우는 각도, 한숨의 길이. 사람도 비슷하다고 여겼다.
회의가 끝나고 다들 나갔다. 여름은 마지막에 나가려고 자료를 추리고 있었다.
“한여름 선생님.”
도현이 문가에 서 있었다.
“네.”
“3층 향토자료실 열쇠를 주시겠습니까?”
여름은 손을 멈췄다.
“3층이요?”
“네.”
“거기 이번 달 이용자 두 명입니다.”
“압니다.”
“두 명 중에 한 명은 저고요.”
도현이 처음으로 웃었다. 아주 짧게.
“그것도 압니다.”
여름은 허리춤 열쇠 꾸러미에서 3층 것을 뺐다. 열쇠는 놋쇠였고, 손잡이에 누가 빨간 매니큐어로 점을 찍어 두었다. 여름이 오기 전부터 있던 점이었다.
“뭐 찾으세요?”
“자료요.”
“어떤 자료요?”
“찾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열한 시에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분관 앞 장애인 주차 칸에 섰다. 여름은 카운터에서 그걸 봤다. 운전석에서 비서가 먼저 내리고, 뒷문에서 회색 양복 차림의 남자가 내렸다. 예순 살쯤이었다.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넘겼고, 걸음마다 구두 굽이 로비 타일을 딱딱 때렸다. 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 배문수였다. 지역 신문 일면에서 여러 번 본 얼굴이었다.
배문수는 로비 한가운데 서서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고, 신문 열람대 쪽을 한 번 보고, 신문을 읽던 어르신 넷을 한 번 봤다. 그리고 비서에게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층고 좋네. 뜯으면 넓게 나오겠어.”
신문을 넘기던 소리가 멈췄다. 여름은 카운터에서 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사서 선생님.”
배문수는 웃었다. 이가 고르고 하얬다.
“지나가다 들렀어요. 새 관장 왔다길래. 넉 달이면 충분히 정리되겠네요.”
“정리요?”
“폐관 심사요. 다 아시잖아.”
“심사는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넉 달이지.”
배문수는 여름의 명찰을 한 번 봤다. 이름을 외우는 눈이 아니라 확인하는 눈이었다. 이층에서 도현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배문수는 그쪽을 향해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출입문으로 걸어 나갔다. 승합차 문이 닫혔다. 장애인 주차 칸에 선 채로 오 분이 지나 있었다.
신문 열람대의 어르신 하나가 여름에게 물었다.
“뜯는다는 게 여기 말이여?”
여름은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보니 도현이 계단 중간에 서서 출입문 쪽을 보고 있었다. 얼굴에 아무것도 없었다. 놀란 얼굴도, 화난 얼굴도. 그 빈 얼굴이 여름에게는 더 분명하게 읽혔다. 저 사람은 알고 있었다. 배문수가 올 줄도, 무슨 말을 할 줄도.
점심은 직원 휴게실에서 먹었다. 휴게실은 일층 화장실 옆 창고를 개조한 방이라,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환풍기가 같이 덜덜거린다. 계약직 사서 민지가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물었다.
“선생님, 새 관장님 어때요?”
“넉 달.”
“네?”
“넉 달 있다 가실 분.”
민지는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여름을 봤다. 민지는 이 분관에 온 지 일 년이 안 됐고, 관장이 바뀌는 걸 처음 봤다. 여름은 민지에게 관장이란 계절 같은 것이라고 말해 주려다 그만두었다. 계절은 그래도 돌아온다.
“근데 잘생기셨던데요.”
“구두 굽이 바깥으로 닳았어.”
“그게 무슨 뜻인데요?”
“많이 걷는다는 뜻.”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여름은 대답하지 않고 김치를 집었다. 많이 걷는 사람은 한 자리에 오래 안 있는다. 그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입 밖에 내면 정 선생 귀에 들어가고, 정 선생 입을 거치면 저녁에는 「관장이 곧 떠난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책상 서랍 맨 아래 칸에는 흰 봉투가 하나 있다. 봉투 겉에 여름 글씨로 날짜 없이 한 줄이 적혀 있다. 「폐관 결정 시.」 석 달 전에 썼다. 안에 든 종이는 한 장이고, 마지막 줄 서명까지 끝나 있다. 여름은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와서, 서랍을 한 번 열었다가 닫았다. 날마다 하는 일은 아니었다. 오늘은 했다.
오후에 여름은 정 선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정 선생은 일흔여덟 살 자원봉사자다. 이 분관이 문을 연 해에 사서였고, 정년 뒤로도 일주일에 나흘씩 나와서 반납 도서를 제자리에 꽂는다. 서가 사이에서 카트를 미는 속도가 여름보다 느린데, 꽂는 자리는 여름보다 정확하다.
“3층 열쇠를 달래요.”
“어어.”
정 선생은 카트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청구기호를 봤다.
“뭐 하러?”
“모르죠. 실적 자료 뒤지겠죠.”
“3층에 실적 자료가 어디 있어.”
정 선생이 카트를 세웠다.
“거긴 옛날 거밖에 없는데.”
그리고 한 시간 뒤, 여름은 일층 카운터에서 정 선생이 어르신 셋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새 관장이 3층 열쇠를 바꾼대. 옛날 거 다 치운대.”
여름은 반납함에서 책을 꺼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어르신 셋이 동시에 여름을 봤다. 한 분은 벌써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있었다.
“그런 말 안 했어요. 열쇠를 달라고 했어요.”
“그게 그거지.”
정 선생은 태연했다. 정 선생에게는 버릇이 하나 있다. 말을 옮길 때 반쯤 바꾼다. 나쁜 뜻은 없다. 들은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동안 조금씩 자기 식으로 기운다. 팔 년 동안 여름은 그 기울기를 바로잡느라 적지 않은 오후를 썼다.
지팡이 짚은 어르신에게 삼 분을 들여 설명하고 나니 여섯 시였다.
여름은 3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참마다 공기가 한 도씩 더워졌다. 3층은 냉방이 안 된다. 향토자료실은 복도 끝에 있고, 문 위 통풍창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여름은 문을 조금 열었다.
도현이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3층에 딱 하나 있는 창가 열람석이다. 의자는 등받이가 낮은 나무 의자이고, 다리 하나가 짧아서 앉으면 조금 기운다. 여름이 몇 번 받침을 괴어 두었는데 올 때마다 빠져 있었다. 도현은 기운 의자에 기운 채로 앉아, 책상 위에 누렇게 바랜 신문 축쇄판을 펼쳐 놓고 있었다. 셔츠 등이 땀으로 짙게 젖어 있었다. 그런데도 넥타이를 풀지 않았다.
통계 자료가 아니었다. 1998년 지역 신문이었다.
여름은 문을 닫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1998년 지역 신문에서 이용자 수를 늘릴 방법이 나올 리 없다. 그러면 저 사람은 지금 다른 것을 찾고 있다.
그 생각을 삼 초쯤 하다가 접었다. 접은 까닭은 간단했다. 십 분 만에 내린 판단을 아홉 시간 만에 바꾸는 것은 여름의 방식이 아니었다.
여덟 시에 도현이 열쇠를 돌려주러 카운터에 왔다. 넥타이는 끝내 안 풀려 있었고, 이마에 땀이 말라 소금기가 희미하게 앉아 있었다.
“3층 창가 의자 말입니다.”
“네.”
“다리 밑에 뭘 괴어 두셨던데요. 종이를 접어서.”
“짧아서요. 한쪽이.”
“압니다.”
도현은 그 말만 하고 열쇠를 카운터에 놓았다. 매니큐어 점이 위로 가게. 여름은 그가 안다고 한 게 다리 길이인지, 받침을 괸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도현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큰글자책 서가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입구 바로 옆, 여름이 세 번 설명하고 세 번 다 끝까지 안 들린 그 자리였다. 도현은 서가를 한 번 올려다보고, 입구 쪽 계단을 한 번 돌아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나갔다. 여름은 그 끄덕임을 못 본 척했다.
도현이 나간 뒤 여름은 문단속을 하러 3층에 다시 올라갔다. 창가 자리 의자가 제자리에서 반 뼘 밀려 나와 있었다. 제자리로 밀어 넣으려고 의자를 기울였을 때, 의자 바닥 판 안쪽에 연필 자국이 보였다.
여름은 휴대폰 불빛을 비췄다. 어린아이 글씨였다. 획이 삐뚤고, 받침이 크고, 연필을 세게 눌러 써서 나무에 홈이 파여 있었다.
서도현. 1998. 여름.
여름은 그 글씨를 오래 봤다. 마지막 두 글자가 계절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팔 년 동안 이 의자 다리에 받침을 몇 번이나 괴었는데, 바닥을 뒤집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의자를 제자리에 놓았다. 짧은 다리 밑에 받침을 다시 괴었다. 창밖에서 마을버스 7번이 정류장을 지나갔다. 막차까지 한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