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56자)
어서 오게, 젊은이
망한 게임 튜토리얼 마을의 촌장 NPC로 빙의했다 · 장연무
서비스가 끝나기 일 분 전, 나는 원룸 책상 앞에서 컵라면 국물이 식어 기름이 하얗게 굳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모니터 오른쪽 위에는 「서비스 종료 1분 전」이라는 붉은 글씨가 떠 있었고, 접속자 수 칸에는 내 캐릭터 하나만 남아 있었다. 열세 해를 버틴 게임 「새벽대륙 온라인」의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이 마지막 일 분을 튜토리얼 마을 새싹마을에서 보내기로 했다. 마흔일곱 번째로 만든 초보 캐릭터를 광장 우물가에 세우고, 촌장 할아버지 앞 두 걸음 자리에 맞춘 다음 말 걸기를 눌렀다. 십 년 동안 수천 번 들은 대사가 말풍선으로 떴다.
「어서 오게, 젊은이. 새싹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나는 채팅 창에 답을 쳤다. 고마웠어요, 할아버지. 화면이 까맣게 꺼졌다.
*
처음 온 것은 무릎이었다. 왼 무릎이 판자처럼 굳어서, 서 있는데도 몸이 앞으로 쏟아지려 했다. 허리가 굽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땅바닥의 돌 틈과 내 발등이었고, 발등에는 낡은 가죽 신이 신겨 있었다. 왼손이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손바닥 굳은살에 닿는 나무 결이 반질반질했다. 지팡이였다. 나는 버릇대로 이것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었고, 지팡이 끝에 몸무게를 옮기고서야 넘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드는 데 목이 한참 걸렸다. 우물이 보였고, 우물 너머로 잡화점 간판과 여관 처마가 보였다. 새싹마을 광장이었다. 화면으로 수천 번 내려다본 자리를 나는 처음으로 땅에 서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걸음 앞에 내 캐릭터가 서 있었다. 초보 가죽 갑옷을 입고 나무 검을 찬 스무 살 얼굴의 청년이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내 입이 열렸다.
「어서 오게, 젊은이. 새싹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목소리는 쉬고 낮았다.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니었다. 혀와 턱이 저 혼자 움직여 대사를 끝까지 밀어냈고, 나는 이 소리를 내 귀로 들었다.
나는 한동안 우물 돌 테두리를 붙잡고 서 있었다. 그러다 십 년 동안 손가락이 해 온 일을 입으로 해 보았다.
“상태창.”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인벤토리. 지도. 설정. 로그아웃.”
우물 속에서 내 목소리가 한 번 울리고 끝났다. 밤바람이 불었고, 마을 어디선가 닭이 엉뚱한 시각에 울었다. 손등을 꼬집었더니 아팠다. 배 속이 비어서 쓰렸다. 게임 속 촌장은 십삼 년 동안 한 번도 무엇을 먹은 적이 없었다. 이 몸이 지금 배가 고팠다.
*
나는 지팡이를 짚고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열 걸음에 한 번씩 몸이 앞으로 기울었고, 이때마다 지팡이를 조금 더 멀리 짚어 무게를 받쳐야 했다. 무릎이 굽지 않는 왼다리는 끌고, 오른다리로 디디고, 지팡이로 버틴다. 세 박자를 맞추기까지 광장 반 바퀴가 걸렸다.
등불을 든 남자가 내 옆을 지나갔다. 마을 둘레를 밤새 도는 등불지기였다.
「밤길 조심하세요.」
등불지기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고, 똑같은 걸음으로 골목 모퉁이를 돌았다. 잠시 뒤 같은 모퉁이에서 같은 걸음으로 다시 나왔다. 등불 속 기름이 줄지 않았다.
잡화점 문은 열려 있었다. 계산대 뒤에 마흔쯤 된 여자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서 있었다. 주인 베르타였다. 선반에는 빵과 사과와 붉은 물약 병이 빼곡했다. 나는 빵 냄새에 침을 삼켰다.
「어서 와요, 새싹 잡화점이에요.」
“빵 하나만 주세요.”
「천천히 골라 봐요.」
내가 빵 하나를 집자 베르타의 눈이 내 손으로 왔다.
「돈이 모자라네요.」
내 품에는 동전 한 닢이 없었다. 나는 빵을 선반에 내려놓았다. 베르타가 「또 와요」 하고 말하더니 처음 자리로 돌아가 다시 「어서 와요」를 시작했다. 나는 문밖으로 나가며 우물가에 선 내 캐릭터의 허리춤을 돌아보았다. 초보 주머니가 불룩했다. 저 안에 은화가 몇 닢 있었다. 손을 뻗어 봤지만 주머니는 돌처럼 굳어 열리지 않았다.
남쪽 다리 끝에는 퀘스트 안내원 모리가 서 있었다. 스물다섯쯤 된 청년으로, 초록 조끼에 깃털 꽂은 모자를 썼다. 새싹마을에 처음 들어온 초보가 맨 먼저 만나는 얼굴이었다. 나는 다리 난간에 지팡이를 걸치고 이 앞에 섰다.
「새싹마을에 오신 걸 환영해요! 먼저 광장의 촌장님께 인사드리세요!」
“내가 촌장인데.”
「연습장의 허수아비로 공격을 연습해 보세요!」
모리는 일곱 줄을 다 했다. 뿔토끼 다섯 마리, 잡화점 물약, 고블린 굴은 위험하다는 말이 차례로 지나갔고, 마지막 줄에서 모리는 활짝 웃으며 남쪽 다리 너머의 어둠을 손으로 가리켰다.
「축하해요! 이제 넓은 세상으로 떠나세요!」
그리고 손을 내리고 첫 줄로 돌아갔다. 나는 모리가 가리킨 쪽을 보았다. 다리 너머 길은 숲 사이로 사라졌다. 열세 해 동안 모리는 저 손짓으로 수십만 명을 떠나보냈고,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나만 마흔일곱 번 돌아왔다. 이때마다 모리는 처음 보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
연습장은 마을 서쪽 끝이었다. 말뚝에 꽂힌 허수아비 다섯이 나란히 서 있었고, 짚으로 엮은 몸통에는 십삼 년 동안 초보들이 내리친 나무 검 자국이 얽혀 있었다. 맨 왼쪽 허수아비가 가장 낡았다. 단추 두 개로 박은 눈 가운데 하나가 실 끝에 매달려 덜렁거렸다. 이름은 짚돌이였다. 튜토리얼 안내에 그렇게 나왔다.
「공격 버튼을 눌러 저를 때려 보세요!」
짚돌이가 말했다. 나는 지팡이에 기대 숨을 골랐다.
“공격 버튼 같은 거 없어. 그리고 안 때려, 임마. 너 맞는 거 지겹지도 않냐?”
허수아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짚 끝을 흔들었다. 나는 돌아서려다 한 번 더 들었다.
「공격 버튼을 눌러 저를 안 때려 보세요!」
나는 지팡이를 짚은 채 굳었다. 다섯 개 허수아비 가운데 짚돌이만 대사가 바뀌어 있었다. 바뀐 마디는 하나였고, 이 마디는 방금 내가 한 말에서 나왔다.
나는 다시 대답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진짜 사람에게 하듯 말했다. 몇 년 동안 여기 서 있었는지, 비 오면 짚이 젖지 않는지, 이 덜렁거리는 눈은 누가 그랬는지 물었다. 짚돌이는 세 번을 더 되풀이했다.
「공격 버튼을 눌러 저를 안 때려, 임마!」
「버튼을 저를 안 때려, 임마. 지겹지도 않냐!」
나는 웃음이 터졌는데, 늙은 목에서 나온 웃음은 기침처럼 갈라졌다. 웃다가 허리가 접혀 지팡이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게임에서 NPC, 곧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은 정해진 대사만 했다. 선택지를 누르면 다음 대사가 나왔고, 우리는 아무도 대사에 진짜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한 마디가 바뀐다.
고개를 드니 연습장 울타리 너머로 서쪽 능선이 보였다. 달빛 아래 능선 뒤가 회색으로 막혀 있었다. 안개였다. 게임 지도에서 이 자리에는 회색 칠 위에 「업데이트 예정」이라는 글씨만 있었다. 확장이 취소되어 끝내 열리지 않은 땅이었고, 이 안을 걸어 본 사람은 열한 명이었다. 시험하던 계약직 테스터들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능선에서 눈을 떼었다. 북쪽 하늘이 붉었다.
*
북문 경비병은 창을 세우고 문 옆에 서 있었다. 서른쯤 된 여자였다. 게임에서 경비병은 건드리면 무엇이든 한 방에 쓰러뜨렸다. 초보들이 장난으로 몬스터를 끌고 와 경비병 앞에 버리곤 했다.
「북쪽은 위험하다. 초보자는 조심해라.」
경비병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횃불 넷이 들판 쪽에서 북문으로 걸어 들어왔다. 경비병의 창끝은 하늘을 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앞장선 것은 문 상인방에 머리가 닿을 만큼 큰 고블린이었다. 잿빛이 도는 초록 살갗, 한쪽 귀가 반 넘게 잘린 자국, 머리에 얹은 녹슨 쇠 왕관. 왼손에 쇠뭉치를 끌고 오는데, 뭉치가 돌바닥에 긁히며 불똥이 튀었다. 뒤에 창을 든 작은 고블린 셋이 따라왔다.
고블린 왕 쿠르곤. 튜토리얼의 첫 보스였다. 쿠르곤은 게임에서 한 번도 굴 맨 안쪽 방을 나온 적이 없었다. 이 방에 들어오는 플레이어를 기다렸다가 「인간 놈들, 내 굴에서 나가라!」를 외쳤고, 삼 분쯤 맞다가 쓰러졌다. 나는 이 방에 수천 번 들어갔다.
쿠르곤은 광장으로 곧장 걸어와 우물가의 내 캐릭터 앞에 섰다. 고개를 기울여 이 빈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또 너냐. 초보. 일어나 봐.”
캐릭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 일어나네. 서버 내려갔지?”
이 말이 고블린 입에서 나왔다. 쿠르곤이 쇠뭉치를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내 캐릭터의 머리가 진흙 인형처럼 꺼졌다. 피가 나오지 않았다. 갈라진 목 안이 비어 있었고, 빈 몸은 무릎부터 꺾여 우물가에 쌓였다. 초보 주머니가 터지며 은화가 돌바닥에 굴렀다.
쿠르곤이 몸을 돌려 내 앞 두 걸음에 섰다.
「어서 오게, 젊은이. 새싹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내 입이 먼저 말했다. 쿠르곤의 어깨가 흔들렸다. 웃고 있었다.
“젊은이래. 크크. 계속해.”
혀가 다음 대사를 밀어냈다.
「북쪽 굴의 고블린 왕을 물—」
나는 어금니를 맞물렸다. 혀끝이 이 사이에 끼어 피 맛이 돌았다. 대사가 목구멍에 걸려 멈췄다. 쿠르곤의 노란 눈이 가늘어졌다.
“물리쳐 주게. 끝까지 해. 나는 그 말을 만 번 넘게 들었다. 세다가 그만뒀다.”
쿠르곤은 쇠뭉치 끝으로 내 지팡이를 툭 건드렸다. 무게중심이 지팡이에 걸려 있던 몸이 기우뚱했고, 나는 우물 테두리에 손바닥을 짚었다.
“내가 죽을 때 하던 대사, 알지? 다음엔 네 마을을 불태우겠다. 만 번 했는데 한 번도 안 지켰다. 서버가 안 보내 줬거든. 이제 서버가 없다.”
쿠르곤이 손가락 셋을 펴 보였다. 손톱 밑이 까맸다.
“세 번째 밤. 다 태운다. 너는 보고 있어.”
*
쿠르곤은 돌아서서 북문으로 가지 않고 서쪽으로 걸었다. 나는 지팡이를 끌며 뒤를 따랐다. 세 박자가 엉켜 두 번 넘어질 뻔했다. 쿠르곤은 연습장 울타리를 넘지 않고 그냥 걷어찼다. 게임에서 부서지지 않던 울타리 판자가 부러져 날아갔다.
“여기서 연습했지. 초보들이. 나 잡으려고.”
쿠르곤이 짚돌이 옆 허수아비에 횃불을 댔다. 마른 짚이 소리를 내며 붙었다. 불은 단숨에 몸통을 타고 올라 머리를 삼켰고, 매캐한 연기와 함께 탄 짚 부스러기가 달빛 속으로 흩어졌다. 허수아비는 끝까지 대사를 했다.
「공격 버튼을 눌러 저를 때려 보—」
말뚝만 남았다.
짚돌이가 옆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다. 허수아비 목소리는 떨 줄을 몰랐다. 그런데 짚 끝이 바람도 없는데 곤두서 있었다.
「공격 버튼을 눌러 저를 안 때려, 임마. 지겹지도 않냐!」
쿠르곤이 짚돌이 앞에서 멈췄다. 고개를 천천히 내 쪽으로 돌렸다.
“이건 대사가 다르네.”
“…….”
“아까 너도 대사 끊었지. 촌장은 대사 안 끊는다. 만 번 들어서 안다.”
쿠르곤이 횃불을 짚돌이의 가슴께로 내렸다. 불이 짚 끝 한 뼘 앞에서 흔들렸다. 열기에 짚돌이의 덜렁거리던 단추 눈이 실 끝에서 빙글 돌았다.
나는 지팡이를 앞으로 짚고 한 걸음 들어갔다. 무게가 앞으로 쏠렸고 무릎이 버티지 못해, 나는 횃불과 짚돌이 사이에 반쯤 쓰러지듯 끼어들었다. 얼굴 옆으로 불의 열기가 훅 끼쳤다. 수염 끝이 그슬리는 냄새가 났다.
쿠르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횃불을 거두지 않았다.
“대사 말고. 네 말로 해 봐.”
쿠르곤이 몸을 숙였다. 썩은 고기와 젖은 돌 냄새가 숨에 묻어 왔다.
“너,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