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472자)
종료
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한빛결
세르바는 일요일 아침 여섯 시에 철창 앞에서 빵 냄새를 맡았다. 하늘 시계는 「D-0」 금빛 숫자 끝에 붉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오늘 24:00 서비스 종료」 언덕길을 빵집 주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버들 바구니, 밀가루 묻은 앞치마, 매끈한 손등.
“어서 오세요, 모험가님! 처음 뵙는 분이네요. 바람언덕 마을의 갓 구운 빵, 하나 맛보시겠어요?”
세르바는 철창 사이로 빵을 받았다. 이번에는 받았다. 따뜻했다.
“아저씨. 오늘 밤 열한 시에 여기 다시 와 줘요. 빵 들고요.”
빵집 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 찍힌 사람이 받는 말이 아니었다. 대사에 없는 부탁이었다. 빵집 주인은 웃었다가, 웃음을 그대로 둔 채 한참 세르바를 보았다.
“밤에는 빵을 안 구워요, 모험가님.”
“알아요. 그래도 와 줘요.”
빵집 주인은 대답하지 않고 언덕을 내려갔다. 세르바는 빵을 든 채 오래 서 있었다. 어제까지 하이렐름 유리 다리 위에서는 냄새가 없었다. 사흘 동안 숨을 쉬어도 코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바람언덕으로 떨어지던 순간 처음 닿은 것이 빵 냄새였다.
채후가 성벽에서 내려와 세르바 옆으로 왔다. 갑옷은 그대로였고, 헤드셋도 그대로였다. 세르바는 빵을 반으로 갈라 채후에게 내밀었다.
“먹어요. 마지막 날이니까.”
“저 이거 먹으면 체력 차요. 맛은 나요?”
“맛있어요.”
채후가 빵을 씹었다. 맛이 났다. 스무아흐레 동안 할멈의 귀리죽만 먹었다. 갓 구운 빵 맛을 채후는 스무아흐레 만에 처음 알았다.
“세르바 씨. 오늘 밤에 부탁이 하나 있어요.”
“들어 보고요.”
“길드장 해 주세요.”
세르바는 빵을 씹다 멈추었다. 채후는 빵 부스러기를 털며 웃었다. 웃음이 어설펐다.
“열한 시에 팀장님이 제 캐릭터를 지워요. 그 전에 제가 넘길 거예요. 길드장이 없으면 성이 이사를 못 가요. 누리 씨가 그랬어요. 세르바 씨가 해 주세요.”
“나 표시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요. 표시 있는 사람이 표시 있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면서요.”
세르바는 남은 빵을 한입에 넣었다. 다 씹고 나서야 대답했다.
“빵값은 당신이 내요.”
*
반석주는 일요일 오후 다섯 시에 판교 사무실 대표실 문 앞에 사직서를 놓고 왔다. 대표는 자리에 없었다. 운영팀 칸으로 돌아오자 팀원 열한 명이 와 있었다. 일요일이었다. 누리가 불렀다고 했다. 열한 명이 석주의 책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애가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석주의 보온병에 새 보리차를 채워 왔다.
“팀장님 없이 거목 가면, 저희 누가 챙겨요?”
“누리 씨가요. 누리 씨는 거목 안 가요. 바람언덕-2 맡아요. 거목은 누리 씨 자리를 비워 둔대요. 마음 바뀌면 오라고요.”
누리가 고개를 저었다. 열쇠 막대가 누리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사원증 옆이었다.
“저 안 가요. 엄마한테 말했어요. 생신상은 다음 달에 차려 드리기로 했어요.”
석주는 보리차를 마셨다. 따뜻했다. 열한 명의 얼굴을 하나씩 보았다. 하나하나 이름이 있었다. 두 해 동안 「야간 대화」 폴더를 열 때마다 석주는 바람언덕 사람들 대신 이 이름들을 떠올렸다. 오늘은 둘 다 떠올렸다.
“열한 시부터 종료 작업 들어갑니다. 열한 시에 나채후 님 접속 해제, 열한 시 반에 바람언덕 구역 이전, 자정에 종료. 순서 바꾸지 않습니다. 날짜도 안 바꿉니다.”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리가 노트북을 펼쳤다. 석주는 운영자 캐릭터 대신 개인 노트북을 열었다. 반달곰이 바람언덕 성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
채후는 밤 열 시 오십 분에 성 마당 짐 더미 꼭대기에 선 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엘무는 채후의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마지막 방송이었다. 진행은 엘무가 했다. 시청자는 삼십사만이었다. 채후는 숫자를 엘무에게 듣고 알았다.
“바깥 여러분! 지금 시청자가 삼십사만 명이래요! 저 숫자 이제 알아요! 삼십사만은 국자로 못 세요!”
「ㅋㅋㅋㅋㅋ 국자 드립 회수」
「엘무 마지막까지 웃기네」
「만 원 후원. 엘무 고마웠어. 바람언덕 이사 잘 가」
엘무가 후원 글을 읽다가 목이 메었다. 메인 목소리 그대로 다음 글을 읽었다. 채후는 엘무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보았다. 금빛 「D-0」 아래 붉은 글씨가 바뀌어 있었다. 「종료까지 01:09:12」 초가 줄어드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채후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귀로 세었다.
반달곰이 우물가에서 일어나 채후 앞으로 걸어왔다. 둥근 얼굴, 기운 초보 옷, 엘무가 그을린 소매. 쉰 명이 마당에서 길을 터 주었다. 하늘 시계 바로 아래 마당 한가운데에서 둘이 마주 보았다. 반달곰의 머리 위에 말풍선이 떴다.
「나채후 님. 열한 시예요. 지울게요」
“제가 할게요.”
「제가 하기로 했잖아요」
“팀장님. 제가 나가는 건 제가 정해요. 이것만은 제 손으로 하게 해 주세요. 대신 하나 약속할게요. 안 버텨요. 열한 시 오 분 안에 끝낼게요.”
말풍선이 오래 뜨지 않았다. 판교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멈춰 있었다. 채후는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하늘 시계가 일 분을 줄였다.
「날짜는 지킵니다」
“알아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시간뿐이에요. 오 분이요.”
「오 분」
반달곰이 한 걸음 물러났다. 채후는 손을 들었다. 길드장 창이 떴다. 채후는 길드원 목록을 내려 「세르바」를 찾았다. 세르바가 채후 옆에 와 있었다. 칼은 허리에 있었다. 채후는 「길드장 넘기기」를 눌렀다. 「세르바에게 길드장을 넘기시겠습니까?」
“세르바 씨, 같이 눌러요.”
“이번엔 혼자 눌러요. 내가 받는 사람이니까.”
채후는 혼자 눌렀다. 붉은 망토가 채후의 어깨에서 스르르 풀려 세르바의 어깨로 옮겨 갔다. 세르바는 망토를 손으로 잡아 보지 않았다. 대신 채후를 보았다. 망토가 세르바에게는 조금 길었다. 끝자락이 서리 낀 흙바닥에 끌렸다.
채후는 엘무를 불렀다. 엘무가 짐 더미에서 내려와 헤드셋을 벗어 채후에게 돌려주었다. 채후는 헤드셋을 목에 걸었다. 쿠션을 귀에 댔다. 알림 목소리가 쉬지 않고 채팅을 읽었다. 삼십사만 명이 같은 말을 했다. 고마웠어. 가지 마. 잘 가. 고마웠어.
“여러분. 저 이제 끌게요.”
채후는 마이크를 입 가까이 댔다. 말을 고르다가, 고르지 않기로 했다.
“여덟 해 동안 방송하면서 길드원이 하나씩 떠날 때 저는 한 번도 안 붙잡았어요. 스무아흐레 동안은 붙잡았어요. 보여 주면서요. 보여 줘서 다친 사람이 많았어요. 빵집 아저씨, 약초 할머니, 꼬치 아저씨, 단장님. 다 제가 보여 줬어요. 보여 준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저도 안 잊을게요. 이제 이 사람들은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살아요. 그게 이사예요.”
채후는 길드원 목록 맨 위의 자기 이름을 눌렀다. 「길드 탈퇴」 다음 창에서 「캐릭터 삭제」 「채후 · 레벨 99 · 플레이 여덟 해 · 삭제하시겠습니까? 되돌릴 수 없습니다」
채후는 눈을 감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보이게 하려고 감지 않았다. 마당의 쉰 명이, 짐 더미가, 전나무가, 우물이, 붉은 망토를 두른 세르바가, 그을린 소매의 반달곰이 채후의 눈에 있었다. 삼십사만 명의 화면에도 있었다.
채후는 눌렀다.
*
세르바는 채후가 빛이 되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빛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채후의 갑옷이 먼저 빛이 되었고, 장검이, 갈색 머리가 빛이 되었다. 목에 걸린 검은 헤드셋만 빛이 되지 않았다. 헤드셋은 한 박자 늦게, 바깥으로 가는 사람처럼 따로 사라졌다. 마당에 발자국 둘이 남았다.
「길드 정원 49/50」
세르바의 눈앞에 글자가 떴다. 길드장의 눈이었다. 세르바는 철창을 보았다. 철창 너머 서리 내린 풀밭에 버들 바구니를 든 사람이 서 있었다. 밀가루 묻은 앞치마. 매끈한 손등. 빵집 주인이 언덕을 올라와 있었다. 바구니는 비어 있었다.
“밤에는 빵을 안 구워서요. 그래도 오라고 하셔서.”
세르바는 허락 단추를 눌렀다. 길드장이 된 뒤 처음 누르는 단추였다. 철창이 열렸다. 빵집 주인이 빈 바구니를 들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길드 정원 50/50」
할멈이 빵집 주인 손에 귀리죽 그릇을 쥐여 주었다. 빵집 주인은 그릇을 받아 들고 웃었다. 늘 웃던 대로였다. 웃음이 끝나는 자리에서 빵집 주인이 우물을 보았다. 한참 보았다.
반달곰의 머리 위에 마지막 말풍선이 떴다.
「열한 시 반이에요. 이사합니다. 저는 성 밖으로 나갈게요. 저는 같이 못 가요. 반달곰은 회색달 서버 거라서요」
반달곰은 열린 철창을 지나 풀밭으로 나갔다. 나가다가 철창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엘무가 손을 흔들었다. 손끝에 불이 켜져 있었다. 머리통만 했다.
*
변누리는 열한 시 삼십 분에 열쇠 막대를 꽂은 노트북의 단추를 눌렀다. 「구역 이전 · 바람언덕 → 바람언덕-2」 석주와 열한 명이 누리 뒤에 서 있었다. 화면 속 바람언덕 성이 빛의 선으로 바뀌었다. 성벽, 마당, 짐 더미, 전나무, 우물, 쉰 명. 선이 하나씩 끊기지 않고 옆 화면으로 건너갔다. 옆 화면에서 선이 다시 돌이 되고 나무가 되고 사람이 되었다. 우물 도르래가 돌았다. 할멈의 국자가 솥을 두드렸다. 누리는 숨을 참고 있다가 내쉬었다.
“우물 돌아요.”
“봤어요.”
석주는 원래 화면을 보았다. 바람언덕이 떠난 언덕 위가 풀밭이었다. 풀밭에 반달곰이 혼자 앉아 있었다. 언덕 아래 마을에 불이 하나 남아 있었다. 빵집이었다. 빵집 주인이 떠난 빵집에도 불은 켜져 있었다.
자정이 되었다. 석주는 「서비스 종료」 단추를 눌렀다. 누리 대신 석주가 눌렀다. 하늘 시계가 「D-0」에서 영으로 바뀌었다. 금빛 숫자가 하늘 끝까지 번졌다. 왕도의 종탑, 기사단 광장, 막힌 골목, 빵집의 불, 풀밭의 반달곰이 차례로 하얘졌다. 화면이 까매졌다.
석주는 「야간 대화」 폴더를 열었다. 마지막 기록이 하나 남아 있었다. 오늘 새벽 세 시, 바람언덕 우물가. 「빵 냄새 나는 언덕에 바람이 분다, 내일도 분다」 부른 사람은 여럿이었다. 석주는 폴더를 닫지 않고 노트북을 덮었다.
*
나채후는 열한 시 사 분에 병원 다인실 천장을 보았다. 처음 들린 것은 냉장고 모터 소리였다. 이어서 귤 까는 소리. 이어서 보슬의 비명. 귀가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받았다. 목에 헤드셋이 얹혀 있었다. 선 끝이 끊긴 채였다.
닷새 뒤, 채후는 병원 침대에서 보슬이 가져다준 노트북을 열었다. 손가락이 자판을 자꾸 놓쳤다. 작은 서버 「바람언덕-2」의 접속 화면이 떴다. 채후는 새 캐릭터를 만들었다. 초보 옷, 나무 몽둥이, 짧은 검은 머리. 레벨 1. 캐릭터는 바람언덕 성문 앞 풀밭에 서 있었다.
헤드셋을 귀에 댔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들어온 모험가에게 바람언덕 사람들의 말은 글자로만 왔다. 철창 너머 마당에서 붉은 망토를 두른 길드장이 성문을 향해 걸어왔다. 망토 끝자락이 마당 흙에 끌렸다. 길드장의 머리 위에 말풍선이 떴다.
「입장 요청이 왔네. 이름이 뭐예요?」
채후는 손가락을 자판에 올렸다. 오래 올려 두었다. 뒤에서 보슬이 귤을 까다 멈추었다. 채후는 글자를 하나씩 쳤다.
「라면 끓일 줄 압니다」
철창 너머에서 엘무가 길드장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엘무의 그을린 손끝에 불이 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