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900자)

같이 가시죠

스토커를 스토킹했다 · 서강림

10월 8일 목요일 한낮⁠, 전봇대는 생각보다 가늘었다⁠. 나는 키가 작고 마른 편이라 몸은 반쯤 숨었지만⁠, 커다란 회색 후드 집업과 등에 멘 검은 백팩이 양옆으로 삐져나왔다⁠. 골목 모퉁이의 둥근 반사경에 내가 둥글게 휘어 비쳤다⁠. 어깨까지 오는 부스스한 짙은 갈색 머리는 정수리에 대충 틀어 올렸고⁠, 동그란 얼굴에 눈만 컸다⁠. 검은 마스크는 턱까지 내려가 있었다⁠. 숨이 차서 내렸다가 올리는 것을 잊었다⁠. 휴대전화를 쥔 오른손 손날에 연필 자국이 까맣게 묻어 있었다⁠. 배경 어시스턴트의 손날은 하루 종일 종이 위를 미끄러지고⁠, 비누로 씻어도 회색으로 남는다⁠. 왼손에는 영희네 호떡 봉지가 들려 있었다⁠. 꿀이 든 호떡 두 개가 종이봉투 안에서 식어 가며 봉투 바닥을 기름으로 적셨다⁠.

오후 두 시 칠 분⁠, 망원시장 동쪽 건너 성미산으로 올라가는 언덕 골목에 한낮 햇빛이 쏟아졌다⁠. 골목 꼭대기 지붕들 너머 멀리 남산타워가 손톱만 하게 떠 있었다⁠. 담장 위로 모과나무 가지가 넘어와 있었고⁠, 노랗게 익어 가는 모과 그림자가 아스팔트에 점점이 떨어졌다⁠. 배경 그리는 사람 눈에는 좋은 골목이었다⁠. 소실점이 언덕 꼭대기 하나로 모이고⁠, 전봇대가 박자를 맞춰 늘어서 있었다⁠. 나는 소실점 대신 남색 정장의 등과 짧은 검은 머리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검은 가죽 서류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었다⁠.

딱⁠, 따각⁠. 남자가 오른발을 디딜 때마다 소리가 두 번 났다⁠. 오른쪽 구두 굽이 바깥으로 닳아서 굽 모서리가 먼저 땅에 닿고 나머지가 뒤따라 닿았다⁠. 석 달 동안 백 번은 들은 소리였다⁠. 처음 따라간 아침부터 귀에 익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는 석 달 내내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김도훈이었다⁠. 7월의 어느 아침 여의도 솔빛물산 로비 출입문에서 목에 건 사원증이 뒤집혔고⁠, 「⁠법무팀 김도훈⁠」이라는 글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목요일 오후 두 시의 김도훈은 여의도 본사 17층 책상 앞에 있어야 했다⁠. 김도훈의 목요일 오후 자리까지 아는 내가 무서웠다⁠. 시장에 호떡을 사러 나왔다가 감나무빌라 골목에서 나오는 남색 정장을 본 것은 오 분 전이었고⁠, 내 발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나는 전봇대 뒤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가 담장에 부딪쳐 튀었다⁠. 남자의 걸음이 빨라졌다⁠. 딱⁠, 따각이 딱따각으로 붙었다⁠. 남자는 서류 가방을 겨드랑이에 바짝 붙이고 언덕을 뛰다시피 올라갔다⁠. 달아나는 등이었다⁠. 나는 다음 전봇대까지 달려가 한 번 더 눌렀다⁠. 찰칵⁠. 석 달 동안 이렇게 빨리 걷는 김도훈은 처음 보았다⁠.

모과나무 담장 앞에서 김도훈이 걸음을 멈췄다⁠. 몸은 그대로 두고 고개만 돌렸다⁠. 손에 든 휴대전화가 올라왔다⁠.

찰칵⁠.

내 휴대전화도 찰칵 소리를 냈다⁠. 두 소리가 골목 한가운데서 부딪쳤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휴대전화는 카메라 소리를 끌 수 없다⁠. 석 달 동안 내 전화기는 골목마다⁠, 지하철 계단마다 찰칵 소리를 흘리고 다녔다⁠. 나만 몰랐다⁠.

“⁠윤예원 씨⁠.⁠”

내 이름이었다⁠. 김도훈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은 서류를 읽는 것처럼 또박또박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법적으로는⁠, 고소장에 쓰려면 알아야 합니다⁠.⁠”

김도훈이 어깨에 멘 검은 가죽 서류 가방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가방 바깥 주머니에 흰 봉투가 꽂혀 있었고⁠, 봉투 앞면에 검은 글씨가 크게 찍혀 있었다⁠. 「⁠고소장⁠」⁠.

“⁠오늘 반차를 냈습니다⁠. 지금 마포경찰서에 갑니다⁠.⁠”

김도훈은 휴대전화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넥타이 매듭을 한 번 매만졌다⁠.

“⁠같이 가시죠⁠. 어차피 따라오실 거잖아요⁠.⁠”

따라가지 않을 이유를 삼 초 동안 찾았다⁠. 찾지 못했다⁠.

*

들킨 사람이 계속 따라가는 모양은 우스웠다⁠. 숨을 데도 없고 숨을 까닭도 없었다⁠. 언덕을 내려와 망원시장 동쪽 입구를 지날 때 철판에 기름 끓는 소리와 흑설탕 타는 냄새가 났다⁠. 영희네 호떡 앞에서 최영희 사장님이 누르개를 든 채 고개를 들었다⁠. 내 단골 가게였고⁠, 사장님은 우리 골목 맨 끝 집에 살았다⁠.

“⁠예원아⁠! 또 저 양반 따라가⁠?⁠”

목소리가 시장 끝까지 갔다⁠. 망원정육 사장님이 칼질을 멈췄고⁠, 고향떡집 아주머니가 가래떡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앞서 가던 김도훈은 돌아보지 않고 앞에 대고 말했다⁠.

“⁠증인이 한 분 느셨네요⁠.⁠”

버스 정류장 줄 맨 앞에 김도훈이⁠, 맨 뒤에 내가 있었다⁠. 사이에 장바구니 끌개를 끈 할머니 두 사람이 있었다⁠. 앞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고⁠, 김도훈을 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둘이 싸웠어⁠?⁠”

“⁠아니요⁠. 고소하러 가요⁠.⁠”

“⁠아이고⁠, 요즘 애들은 싸우면 경찰서부터 가⁠.⁠”

버스에서 김도훈은 앞문 옆 일인석에 앉았고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흔들리는 뒤통수를 보면서 나는 4월의 밤을 생각했다⁠.

4월 9일 새벽 한 시 십 분⁠, 나는 웹툰 플랫폼 툰다락에 목요일마다 올라가는 스릴러 「⁠골목 끝 집⁠」의 밤 배경을 그리고 있었다⁠. 원룸 건물 3층 302호 창가에 책상을 붙인 것은 창밖 골목이 곧 내 자료였기 때문이다⁠. 모니터 너머로 길 건너 뽀송 빨래방 앞 가로등 밑에 검은 패딩에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고개를 젖히고 위를 보고 있었다⁠. 골목에서 불이 켜진 창은 내 창 하나였다⁠.

남자는 사십 분 서 있다가 갔다⁠. 다음 주 목요일에 또 왔고⁠, 5월부터는 일주일에 두세 번 왔다⁠. 나는 블라인드를 낮에도 내렸고 불을 끈 채 모니터 불빛으로 그렸다⁠. 택배는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받았고⁠, 상자는 방에 들이자마자 송장을 손톱으로 긁어 잘게 찢었다⁠. 도어락 번호판은 누를 때마다 물티슈로 닦았다⁠. 연필 묻은 손가락이 내 비밀번호 네 개 위에만 회색 자국을 남기는 것을 본 날부터였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3층 복도 끝까지 한 번 더 보았다⁠. 남자는 불 꺼진 창을 보고도 왔다⁠.

6월 18일 밤 열한 시 사 분에 112를 눌렀다⁠. 경찰차가 골목에 들어왔을 때 가로등 밑은 비어 있었다⁠. 젊은 경찰관이 수첩을 펴고 물었다⁠.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죠⁠?⁠” “⁠네⁠.⁠” “⁠연락은 몇 번이나 왔어요⁠?⁠” “⁠한 번도요⁠.⁠” 경찰관은 수첩에 짧게 적고 나를 보았다⁠. 이튿날 고소장을 냈고⁠, 7월 6일 오후에 문자가 왔다⁠. 「⁠[마포경찰서] 귀하가 고소한 사건에 대하여 불송치(⁠혐의없음⁠) 결정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담당 수사관은 전화로 설명했다⁠. 남자를 찾았고⁠, 공공장소에 서 있었고⁠, 빨래방 결제 내역이 있었고⁠, 다가오거나 연락한 일이 없었다고⁠. 남자의 이름은 끝까지 알려 주지 않았다⁠.

증거가 모자라면 채우기로 했다⁠. 7월 중순 밤 빨래방에서 나온 남자를 따라 시장 건너 감나무빌라까지 갔고⁠, 다음 날 아침부터 출근길을 따라갔다⁠. 출근길은 여의도에서 끝났고⁠, 저녁은 망원역 앞 헬스장에서 끝났다⁠. 사진은 사백 장이 넘었다⁠. 거의 전부 김도훈의 등이었다⁠.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김도훈은 한 장도 없었다⁠. 블라인드 뒤에서는 사진이 안 나온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작업실 단톡방 「⁠수박밭⁠」이었다⁠.

「⁠수박씨⁠: 예원 52회 배경 오늘 밤까지 열네 컷 남음⁠」

「⁠은비⁠: 언니 반차 실화⁠?⁠? 작가님 지금 컷 수 세면서 우심⁠」

「⁠은비⁠: 51회 댓글 ‘⁠출근남 실종 7개월째 아직도 기다림⁠’ ‘⁠가로등남 이번 주도 나와라⁠’ㅋㅋ⁠」

「⁠수박씨⁠: 가로등남 넣어 이번 주도⁠」

나는 「⁠네⁠」라고 쳤다⁠. 가로등남은 내가 그렸다⁠. 4월부터 밤 배경마다 가로등 밑에 검은 패딩을 손톱만 하게 넣었다⁠. 무서운 것을 종이에 넣어 두면 창밖에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5월에 박수진 작가에게 가로등남은 실제로 창밖에 서 있는 남자라고 말했더니⁠, 작가님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댓글이 좋으니 계속 넣으라고 했다⁠. 출근남도 내 손에서 나왔다⁠. 작년 가을 아침마다 우리 골목을 지나던 출근길 사람 하나를 걷는 자세 자료로 넣었고⁠, 봄이 되자 골목에서도 배경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독자들은 출근남이 범인이라 숨었다고 했다⁠.

*

마포경찰서 민원실은 은행처럼 생겼다⁠. 번호표 기계⁠, 파란 의자 네 줄⁠, 벽에 붙은 텔레비전⁠. 텔레비전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검찰청 간판이 공소청으로 바뀐 지 엿새째라는 소식이었다⁠. 김도훈이 먼저 번호표를 뽑았다⁠. 「⁠031⁠」⁠. 내 번호표는 「⁠032⁠」였다⁠. 김도훈은 맨 앞줄에⁠, 나는 세 번째 줄에 앉았다⁠. 전광판에는 「⁠028⁠」이 떠 있었다⁠.

사이 줄에는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할아버지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머리 너머로 김도훈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왜 우리 집 앞에 있었어요⁠?⁠”

김도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고소장 봉투를 무릎 위에 반듯하게 놓았다⁠.

“⁠그 질문은 수사관에게 하시는 게 맞습니다⁠. 저도 같은 질문을 받을 테니까요⁠.⁠”

“⁠블라인드를 반년 동안 못 올렸어요⁠. 해 뜬 낮에도요⁠.⁠”

“⁠저는 엘리베이터를 반년 동안 혼자 못 탔습니다⁠.⁠”

할아버지가 김도훈의 뒤통수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지갑 잃어버린 이야기는 그만두고 의자를 한 칸 옆으로 옮겼다⁠. 나는 다음 말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엘리베이터와 블라인드 중 무엇이 더 무거운지 따지는 일은 민원실 의자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전광판 숫자가 「⁠030⁠」으로 바뀌었다⁠. 무릎 위 호떡 봉투가 다 식어서 꿀 냄새도 나지 않았다⁠.

「⁠031번 고객님⁠, 4번 창구로 오십시오⁠.⁠」

경찰서도 김도훈을 고객님이라고 불렀다⁠. 곧바로 내 번호가 3번 창구에 떴다⁠. 우리는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3번 창구의 경사는 돋보기를 목걸이 줄에 걸고 있었다⁠. 내가 스토킹 신고를 다시 하러 왔다고 하자 경사는 진술서 용지 석 장과 볼펜을 내밀었다⁠. 나는 민원실 구석 서서 쓰는 책상에서 사십 분 동안 썼다⁠. 4월 9일⁠, 사십 분⁠, 블라인드⁠, 김철수⁠, 물티슈⁠. 날짜를 쓰려고 휴대전화 달력을 열 때마다 손이 멈췄고⁠, 볼펜을 쥔 손바닥이 두 번 미끄러졌다⁠. 진술서 칸이 모자라 뒷면까지 넘어갔다⁠. 칸막이 너머 4번 창구에서는 김도훈이 별지 묶음을 집게로 집어 하나씩 넘기는 소리가 났다⁠. 경사가 진술서를 다 읽고 물었다⁠.

“⁠증거로 낼 거 있어요⁠?⁠”

나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어 건넸다⁠. 경사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었다⁠. 망원역 개찰구⁠, 여의도역 3번 출구⁠, 솔빛물산 로비 유리문⁠, 헬스장 창문⁠. 화면을 밀던 손가락이 점점 느려졌다⁠.

“⁠이 남자분이 신고인 집 앞에 서 있는 사진은요⁠?⁠”

“⁠없어요⁠. 무서워서 못 찍었어요⁠.⁠”

“⁠그럼 이건 전부⁠…⁠…⁠.⁠”

“⁠제가 따라가서 찍은 거예요⁠.⁠”

칸막이 너머에서 김도훈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넘어왔다⁠.

“⁠고소장 접수하겠습니다⁠. 증거 목록은 열두 개입니다⁠. 3번은 피고소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과 지도 캡처입니다⁠. 피고소인이 지금 옆 창구에 계시니 확보가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4번 창구의 경위가 칸막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3번 경사가 돋보기를 코에 걸고 4번 창구의 고소장 첫 장과 내 진술서 첫 장을 번갈아 보았다⁠.

“⁠윤예원 씨⁠?⁠”

“⁠네⁠.⁠”

“⁠옆 창구에서 윤예원 씨를 고소하셨는데요⁠.⁠”

“⁠제가 먼저 왔어요⁠.⁠”

“⁠번호표는 제가 먼저입니다⁠.⁠”

김도훈이 칸막이 너머에서 말했다⁠. 경사는 한숨을 쉬고 내 휴대전화를 들었다⁠.

“⁠신고하실 거면 이 사진이 증거예요⁠. 임의제출 동의서 쓰시면 필요한 것만 뽑고 돌려 드려요⁠.⁠”

“⁠법적으로는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김도훈은 이번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거절하면 내 여섯 달은 다시 진술서 석 장으로만 남았다⁠. 나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경사가 내 휴대전화를 투명한 지퍼 봉투에 넣었다⁠.

김도훈이 일어나 두 창구에 차례로 고개를 숙였다⁠. 민원실 문으로 가다가 내 의자 세 걸음 앞에서 멈췄다⁠.

“⁠윤예원 씨⁠. 법은 누가 먼저 무서워했는지보다 누가 따라다녔는지를 봅니다⁠.⁠”

“⁠여섯 달 우리 집 앞에 있었던 건 누군데요⁠?⁠”

“⁠그리고 먼저 따라온 것도 윤예원 씨입니다⁠. 작년 가을부터요⁠.⁠”

“⁠작년 가을에 나는 당신 몰랐어요⁠.⁠”

“⁠저는 알았습니다⁠.⁠”

딱⁠, 따각⁠. 구두 소리가 민원실 바닥을 건너 유리문 밖으로 나갔다⁠. 지퍼 봉투 안에서 내 휴대전화 화면이 한 번 밝아졌다⁠. 「⁠은비⁠: 언니 살아 있어요⁠?ㅋㅋ⁠」⁠. 경사가 봉투 입구를 두 번 접었다⁠. 나는 신고하러 와서 증거를 냈고⁠, 내가 낸 증거는 칸막이 너머 고소장 3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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