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31자)

일곱 시 십사 분

싱글대디와 어린이집 선생님 · 탁은담

여섯 시 오십 분⁠, 남궁기윤은 연장반 바닥에 앉아 고솔찬과 블록 탑을 쌓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여섯 시 앞뒤로 하나둘 신발을 신고 나갔고⁠, 교실에 남은 소리는 블록 부딪는 소리와 어항 산소 펌프 소리뿐이었다⁠. 솔찬은 탑 꼭대기에 초록 공룡을 올려놓고 탑이 무너지지 않게 두 손바닥을 양옆에 댔다⁠.

“⁠선생님⁠, 공룡은 왜 맨날 꼭대기 좋아해⁠?⁠”

“⁠멀리 보려고 그러지⁠.⁠”

“⁠아빠 차 보려고⁠?⁠”

“⁠그럴 수도 있겠다⁠.⁠”

복도에서 원장 엄미금의 슬리퍼 소리가 다가왔다⁠. 원장은 두꺼운 파란 파일을 가슴에 안고 연장반 문틀에 어깨를 기댔다⁠. 파일 등에 「⁠2027 위탁 재심사 대비⁠」라는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남궁 선생님⁠, 현관 안전 점검표 오늘 것도 써 주세요⁠. 6월 심사 때 시청에서 석 달 치를 다 본대요⁠.⁠”

“⁠네⁠, 원장님⁠.⁠”

원장은 교실을 한 바퀴 훑어보고 솔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그리고 선생님⁠, 하원 때 현관에 너무 오래 서 계시지 마세요⁠. 밖에서 보면 꼭 무슨 수다 모임 같대요⁠.⁠”

“⁠누가 그래요⁠?⁠”

“⁠단톡방이 그래요⁠. 나는 단톡방에 없는데도 다 들려요⁠.⁠”

원장이 가고 나서 기윤은 휴대전화로 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오십육 분⁠. 해바라기반 학부모 단톡방은 교사가 들어가지 않는 방이었는데⁠, 반대표 추아란이 올린 공지는 어떻게든 원장 책상에 출력되어 올라왔다⁠. 지난주 공지는 「⁠하원 시간 엄수 부탁드립니다🙏⁠」였다⁠. 기윤은 이모티콘이 붙은 부탁을 가장 무서워했다⁠.

솔찬이 블록 탑에서 손을 떼고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바늘은 읽지 못해도 아빠가 오기 전에 할 일은 알았다⁠.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신발장 앞으로 가서 유리문에 이마를 대는 것⁠.

*

일곱 시 십일 분⁠, 고해준은 바름택배 탑차를 볕뜰어린이집 담장 옆에 대고 시동을 껐다⁠. 운전석 문을 열기 전에 휴대전화부터 엎어 두었다⁠. 엎어 두지 않으면 배송 앱이 일곱 시 반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마지막 알림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고객 요청⁠: 문 앞에 두고 벨 누르지 마세요⁠. 개가 짖어요⁠.⁠」 오후에 들른 302호에는 개가 없었다⁠. 초인종 옆에 「⁠개 조심⁠」 스티커만 석 장 붙어 있었다⁠.

목에 감은 수건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 남색 조끼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조끼 안의 흰 티셔츠는 아침에 갈아입은 것인데 벌써 등판에 소금기가 앉아 있었다⁠. 사이드미러 속 얼굴은 짧은 검은 머리 아래 날렵한 턱만 뾰족했고⁠, 볕에 그을린 뺨이 저녁 빛을 받아 한 번 더 그을렸다⁠. 허리를 펴는 순간 왼쪽 엉덩이 위가 찌르르 울렸다⁠. 해준은 조끼 주머니의 파스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러 보고 차에서 내렸다⁠.

현관 유리문 너머 신발장 앞에 노란 모자 하나가 보였다⁠. 솔찬은 일곱 시 십사 분이면 운동화를 신고 유리문에 이마를 댔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아이가 숫자 넷만은 외웠다⁠. 계단 아래에서 해준이 손을 흔들자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옆으로 작은 손바닥 둘이 납작하게 붙었다⁠. 소리는 유리에 막혔지만 입 모양은 읽혔다⁠. 아빠⁠, 일곱 시 십사 분⁠.

문을 연 사람은 남궁기윤이었다⁠. 부드럽게 내려온 밤색 머리가 동그란 은테 안경 위로 조금 덮였고⁠, 연두색 앞치마 가슴께에서 노란 이름표가 흔들렸다⁠. 「⁠해바라기반 남궁기윤⁠」 기윤은 문턱에 서서 솔찬의 노란 가방을 들고 있었다⁠. 가방 끈이 길어서 한 번 접어 쥐는 것이 기윤의 버릇이었다⁠.

“⁠아버님⁠, 오늘의 한 줄 들으실래요⁠?⁠”

“⁠오늘은 몇 점짜리예요⁠?⁠”

“⁠백 점이요⁠. 점심에 솔찬이가 브로콜리를 들고 이건 작은 나무라서 먹으면 배 속에 숲이 생긴다고 했어요⁠.⁠”

“⁠그래서 먹었어요⁠?⁠”

“⁠아니요⁠. 숲은 소중하대요⁠.⁠”

해준은 웃음을 참느라 코로 숨을 내쉬었다⁠. 넉 달째 들은 한 줄이 백 개를 넘었고⁠, 해준은 하나도 잊지 않았다⁠. 지렁이는 비 오는 날 출근한다⁠. 아빠 차는 냉장고보다 크고 냉장고보다 덥다⁠. 선생님 안경은 눈이 두 번 사는 집이다⁠. 알림장 앱에는 오르지 않는 말들이었다⁠. 기윤은 그런 말을 현관에서만 했다⁠.

해준이 계단 맨 아래 칸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윤이 접어 쥔 가방 끈을 내밀었고⁠, 해준의 손이 끈 아래쪽을 잡았다⁠. 손가락 두 마디가 기윤의 손등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끈은 아이 어깨에 매기에는 길고⁠, 어른 둘이 함께 쥐기에는 짧았다⁠.

조끼 안주머니에서 바나나우유 두 개가 나왔다⁠.

“⁠선물 아니에요⁠. 두 개 사니까 하나 더 주던데요⁠.⁠”

“⁠규정상 못 받아요⁠. 아버님 두 개 다 드세요⁠.⁠”

“⁠넉 달째 두 개씩 마셨더니 배가 나왔어요⁠.⁠”

“⁠그건 규정 탓이 아니라 바나나 탓이에요⁠.⁠”

해준이 우유를 조끼에 도로 넣는 동안 솔찬은 운동화 끈을 다 풀어 놓고 다시 묶어 달라고 발을 내밀었다⁠. 매듭은 꼭 아빠가 해야 했다⁠. 해준이 끈을 두 번 감는 동안 현관 안 안내 모니터에서 다음 달 부모 교육 공지가 지나갔다⁠. 「⁠아빠 육아휴직⁠, 이렇게 쓰세요 — 2025년 육아휴직 남성 6만 7⁠,200명⁠, 역대 최고⁠」

“⁠아버님도 들으러 오세요⁠.⁠”

“⁠저는 휴직하면 그냥 휴예요⁠. 직이 없어요⁠.⁠”

기윤이 웃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개인사업자인 택배 기사에게는 쉴 회사가 없었다⁠. 해준이 하루를 쉬면 대리점이 다른 기사에게 구역을 넘겼고⁠, 사흘을 쉬면 구역이 돌아오지 않았다⁠.

*

일곱 시 십구 분⁠, 기윤은 담장 너머 주차장에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하나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연장반이 닫히기까지 십일 분 남은 시각이었다⁠. 이 시간에 오는 어른은 해준 하나뿐이었고⁠, 해준은 이미 계단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계단 세 칸을 한 번에 올라와 문턱 앞에 멈췄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손에는 종이 쇼핑백을 들었다⁠. 기윤은 얼굴보다 쇼핑백 속에 든 공룡 인형의 꼬리를 먼저 보았다⁠. 솔찬이 날마다 그리는 초록색 공룡이었다⁠.

“⁠솔찬아⁠.⁠”

솔찬이 해준의 다리 뒤로 들어갔다⁠. 노란 모자 챙만 무릎 옆으로 삐죽 나왔다⁠. 여자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가 다시 펴졌다⁠.

“⁠엄마야⁠. 화면에서 맨날 봤잖아⁠.⁠”

“⁠화면 엄마는 작은데⁠.⁠”

해준이 솔찬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해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연락도 없이 여길 왜 와⁠.⁠”

“⁠연락했어⁠. 두 주 동안 열한 번⁠. 네가 안 받았지⁠.⁠”

기윤은 가방 끈을 쥔 채 문턱에서 한 발 내디뎠다⁠. 알림장 앱의 보호자 정보에서 본 이름이 떠올랐다⁠. 표다엘⁠. 친모⁠, 미국 거주⁠. 사진은 없었다⁠.

“⁠어머님이세요⁠? 해바라기반 담임 남궁기윤입니다⁠.⁠”

“⁠네⁠, 선생님⁠. 오늘은 제가 데려갈게요⁠. 저녁만 먹이고 아빠한테 데려다줄게요⁠.⁠”

“⁠죄송합니다⁠, 어머님⁠. 하원은 하원 동의서에 올라 있는 보호자께만 해 드립니다⁠. 지금 동의서에는 아버님과 대리인 한 분만 계세요⁠.⁠”

“⁠제가 친권자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아버님이 오셨고⁠, 아이 손을 잡고 계신 분도 아버님이에요⁠.⁠”

다엘은 기윤을 위아래로 한 번 보았다⁠. 연두색 앞치마⁠, 노란 이름표⁠, 기윤의 손에 접혀 있는 노란 가방 끈⁠. 눈길이 끈 아래쪽⁠, 해준의 손이 아직 닿아 있는 자리에서 멈췄다⁠.

기윤은 허리를 숙여 솔찬과 눈을 맞췄다⁠.

“⁠솔찬아⁠, 어항 물고기 밥 줬어⁠?⁠”

“⁠아니⁠.⁠”

“⁠그럼 마지막 당번 하고 오자⁠. 아빠는 여기 계셔⁠.⁠”

솔찬이 기윤의 손을 잡고 신발장 너머 어항 앞으로 갔다⁠. 기윤은 등 뒤로 유리문을 닫으며 어른 둘의 목소리가 아이 귀에 닿지 않는 거리를 걸음으로 쟀다⁠. 어항까지 아홉 걸음이었다⁠. 물고기 밥을 세 번 뿌리는 동안 유리문 밖에서 해준의 어깨가 두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

주차장 가로등이 막 켜졌다⁠. 해준은 탑차 옆에 서서 다엘이 내미는 서류를 받지 않았다⁠. 다엘은 받든 말든 서류를 탑차 사이드미러에 끼웠다⁠.

“⁠오늘 아침에 고양지원에 냈어⁠. 친권자 및 양육자 변경 심판 청구⁠.⁠”

“⁠뭘 바꿔⁠.⁠”

“⁠솔찬이 사는 집⁠.⁠”

다엘은 말을 짧게 끊었다⁠. 결혼하고 다섯 해 동안 다투는 날마다 그랬다⁠. 해준이 길게 말하면 다엘은 짧게 끊었고⁠, 짧게 끊긴 말 사이로 해준은 늘 할 말을 놓쳤다⁠.

“⁠호수대학병원 국제진료센터 정규직이야⁠.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 호수공원 앞에 서른두 평 얻었고⁠, 엄마가 같이 살아⁠. 아침밥 해 줄 사람이 있어⁠.⁠”

“⁠삼 년 동안 일요일에 영상 통화 삼십 분 하던 사람이⁠.⁠”

“⁠돈도 보냈어⁠.⁠”

“⁠돈은 애를 안 재워⁠.⁠”

“⁠그러니까⁠. 너는 밤에 애를 누가 재워⁠?⁠”

해준의 입이 닫혔다⁠. 다엘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해준 눈앞에 들었다⁠. 탑차 조수석에 노란 모자를 쓴 솔찬이 고개를 꺾고 잠들어 있었다⁠. 안전벨트 위로 침 자국이 번졌고⁠, 계기판 시계가 01⁠:12를 가리켰다⁠. 아래에 해준이 보낸 글자가 그대로 있었다⁠. 「⁠애가 트럭에서 꿀잠 잠ㅋㅋ 아빠 차가 침대보다 좋대⁠」

“⁠1월 십육 일⁠. 네가 보냈어⁠.⁠”

“⁠할머니가 독감 걸린 날 딱 하루야⁠.⁠”

“⁠하루면 충분해⁠. 새벽 한 시에 다섯 살짜리가 화물차 안에 있었어⁠.⁠”

“⁠위약금 물면 다음 달 월세가 없어⁠.⁠”

“⁠그래서 바꾸자는 거야⁠. 네가 무너지는 걸 내가 왜 기다려⁠.⁠”

해준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마봉칠 형님⁠」이 떴다⁠. 끊으려는 손가락보다 자동 응답이 빨랐다⁠. 스피커에서 쉰 목소리가 터졌다⁠.

“⁠해준아⁠, 나 오늘 크롭 바람막이 샀는데 편의점 알바가 영포티래⁠. 영포티가 욕이냐⁠? 칭찬이냐⁠?⁠”

해준이 통화를 끊었다⁠. 다엘이 아주 짧게 웃었다가 웃음을 거뒀다⁠. 다엘은 웃음까지 짧게 끊었다⁠.

“⁠너 아까 애 안을 때 허리 짚더라⁠.⁠”

“⁠짚은 적 없어⁠.⁠”

“⁠두 번 짚었어⁠. 왼쪽⁠.⁠”

해준은 대답 대신 사이드미러에 끼워진 서류를 뽑아 조끼 안에 넣었다⁠. 종이가 파스 위에 겹쳐 버석거렸다⁠. 다엘이 어린이집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한테도 물어볼 거야⁠.⁠”

“⁠선생님이 무슨 상관인데⁠.⁠”

“⁠너 아까 저 선생님 볼 때 얼굴⁠. 나랑 살 때 한 번도 안 보여 준 얼굴이더라⁠.⁠”

해준이 다엘을 보았다⁠. 다엘은 이미 계단 쪽으로 걷고 있었다⁠.

*

일곱 시 이십팔 분⁠, 기윤은 연장반 불을 끄고 현관에 열쇠를 꽂았다⁠. 해준은 솔찬을 안아 탑차 조수석의 부스터 시트에 앉히는 중이었다⁠. 기윤은 해준이 버클을 두 번 확인하는 손을 보았다⁠.

또각 소리와 함께 다엘이 계단 위로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는 쇼핑백이 없었다⁠. 공룡 인형은 탑차 조수석 솔찬의 무릎 위로 옮겨 가 있었다⁠.

“⁠선생님⁠, 하나만 여쭤볼게요⁠.⁠”

“⁠네⁠, 어머님⁠.⁠”

“⁠담임 맡으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해바라기반은 3월부터고⁠, 연장반 하원은 작년 12월부터 제가 맡았습니다⁠.⁠”

“⁠그럼 넉 달 동안 날마다 저 사람이랑 여기 계셨네요⁠.⁠”

“⁠일곱 시 반까지 남는 아이가 솔찬이 하나라서요⁠.⁠”

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윤은 다엘의 끄덕임이 대답을 다 듣기 전에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엘이 휴대전화를 쥔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가 뺐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3월 13일 새벽 네 시에 어디 계셨어요⁠?⁠”

기윤의 손이 열쇠 위에서 멈췄다⁠. 열쇠는 반쯤 돌아간 채 더 돌지 않았다⁠. 주차장 끝에서 탑차 문이 열려 있었고⁠, 해준이 차 문을 잡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 해준의 목에 감긴 수건이 하얗게 떠 있었다⁠.

“⁠어머님⁠, 그건 제 개인적인 일입니다⁠.⁠”

“⁠개인적인 일이요⁠.⁠”

다엘이 기윤의 말을 똑같이 한 번 되뇌었다⁠. 그러고는 노란 이름표를 똑바로 보았다⁠.

“⁠법원에서는 개인적인 일이 제일 먼저 나오던데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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