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217자)

귀 떨어진 사발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성종 11년, 1480년 10월의 한양 의금부 옥은 새벽마다 짚 썩는 냄새로 깨어났다.

의금부는 임금의 명을 받아 큰 죄인을 다스리던 관청이었고, 나장은 그 관청에서 죄인을 지키고 끌고 다니던 하급 군졸이었다. 나장 오순돌은 해가 뜨기 전에 마당 동쪽 끝 우물로 갔다. 두레박 줄은 밤이슬을 먹어 손바닥에 차갑게 감겼고, 줄을 당길 때마다 도르래가 늙은 개처럼 낮게 울었다. 순돌은 물을 먼저 제 손등에 부어 보았다. 쇠 맛이 났다. 이 우물은 늘 쇠 맛이 났는데, 할아버지는 그것이 땅 밑에 묻힌 옛 칼 때문이라고 했고 순돌은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이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마다 그 칼을 떠올렸다.

물은 놋 사발에 담았다. 손잡이 귀가 하나뿐인 사발이었다. 떨어져 나간 다른 쪽 귀 자리는 오래 손을 타서 반들반들했고, 엄지가 늘 거기에 걸렸다.

옥은 칸마다 판자로 막혀 있었다. 북쪽 끝 칸에는 얼마 전부터 한 여자가 들어 있었다. 이름은 어우동이었다.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일로 수사를 받는 중이었고,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옥 마당의 나장들보다 저잣거리 떡장수들이 더 자세히 안다고 떠들었다.

순돌은 칸 앞에 쪼그려 앉아 사발을 판자 아래 틈으로 밀어 넣었다.

“물이오.”

안에서 짚이 바스락거렸다. 손 하나가 사발을 끌어갔다. 손등에 빗살 같은 실금이 나 있었는데, 추운 데서 오래 있으면 살갗이 그렇게 튼다. 사발이 다시 판자 틈으로 나왔을 때 물은 바닥까지 비어 있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돌도 묻지 않았다. 기록은 그 옥에서 그녀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순돌이 아는 것도 그만큼이었다. 사발이 비어서 나온다는 것, 그것 하나였다.

*

해가 담장 위로 올라오자 옥문 앞이 시끄러워졌다.

구득룡이 문간에 앉아 있었다. 옥 나장들의 우두머리였고, 마흔 살인데도 목소리는 장터 엿장수보다 컸다. 그 앞에 사람이 셋 줄을 서 있었다. 갓을 비뚜름하게 쓴 생원 하나, 머리에 떡 함지를 인 할미 하나, 그리고 무엇 하러 왔는지 본인도 모르는 얼굴의 총각 하나.

“쌀 한 되요. 한 되면 판자 틈으로 한 번. 오래 들여다보면 반 되 더.”

생원이 소매에서 쌀자루를 꺼내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나는 구경 온 게 아니라 공무로 온 것이네. 풍속이 얼마나 어지러운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상소를 쓰지 않겠나?”

“그럼 공무 값으로 한 되 반이오. 공무는 오래 보시니까.”

생원이 쌀을 내밀었다. 득룡은 자루를 받아 손바닥 위에서 두 번 튕겨 무게를 쟀다. 사람의 말보다 쌀의 무게가 정직하다는 것이 득룡의 지론이었다.

순돌이 그 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발은 아직 왼손에 들려 있었다.

“북쪽 칸은 안 되오.”

“어허, 오 나장. 또 시작이네.”

득룡은 웃었다. 웃을 때 앞니 하나가 빠진 자리가 검게 보였다.

“저 판자 틈 내가 낸 거 아니야. 판자가 오래돼서 저절로 벌어진 거지. 안 그런가?”

“저절로 벌어진 판자에 송곳 자국이 왜 있소?”

“그거야 쥐가 팠겠지.”

“쥐가 송곳을 쥐오?”

떡장수 할미가 함지를 인 채로 끽끽 웃었다. 득룡이 할미를 한 번 노려보고 나서 순돌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문간의 공기가 바뀌었다. 웃던 할미가 웃음을 삼켰고, 총각은 슬그머니 반 걸음 물러났다.

“오 나장. 내가 저 여자를 구경거리로 만들었나? 조정이 만들었지. 편전에서 대감들이 저 여자 이름을 하루에 몇 번씩 입에 올리는데, 백성이 얼굴 한 번 보겠다는 걸 왜 막아? 막는다고 소문이 그치나? 안 그런가?”

“소문은 소문대로 가라 하시오. 판자 틈은 내가 막겠소.”

“그 판자가 자네 거야?”

“사발은 내 거요.”

순돌은 북쪽 칸 앞으로 걸어가 판자 틈 앞에 등을 대고 섰다. 송곳 자국이 등판에 닿았다. 판자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순돌은 그 고요가 자기 등 뒤에서 무언가를 듣고 있다고 느꼈다.

득룡은 한참 순돌을 보다가 생원에게 쌀자루를 도로 내밀었다.

“오늘은 판자가 고장이오. 내일 오시오.”

“내일은 공무가 없는데.”

“그럼 모레 공무를 만드시오.”

생원이 쌀자루를 끌어안고 돌아섰다. 할미는 떡 하나를 총각 손에 쥐여 주고 따라 나갔다. 총각은 떡을 든 채 순돌을 한 번, 득룡을 한 번 보고,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문을 나갔다.

득룡이 순돌 곁으로 와서 낮게 말했다.

“이번 달 야번은 자네가 다 서게. 형장 쪽 담장. 바람 좋은 자리야.”

*

떡장수 할미는 밥 한 끼 먹을 참도 지나지 않아 혼자 돌아왔다. 이번에는 함지를 내려 옆구리에 끼고, 쑥떡 두 개를 콩고물째 손바닥에 올려 순돌 앞에 내밀었다.

“나장 양반, 이건 인정이야. 쌀은 구 나장한테 주는 거고, 떡은 자네한테 주는 거고. 판자 틈 말고 문틈으로 한 번만. 눈만 대고 금방 뗄게.”

“할미, 그 여자 얼굴 봐서 뭐 하오?”

“뭐 하긴. 장터에서 다들 나한테 물어. 어우동이 어떻게 생겼냐고. 내가 못 봤다고 하면 떡이 안 팔려. 봤다고 하면 두 개씩 팔리고. 이게 다 살림이야.”

할미의 셈은 득룡의 셈보다 정직했다. 순돌은 그 정직함이 더 곤란했다. 순돌은 떡 두 개를 받아 들고 북쪽 칸 앞으로 가서, 판자 아래 틈으로 하나를 밀어 넣었다. 콩고물이 판자 바닥에 노랗게 흘렀다. 안에서 짚이 한 번 움직였고, 떡이 끌려 들어갔다.

할미가 입을 벌렸다.

“아니, 그건 자네 먹으라고 준 건데.”

“하나는 들어갔고, 하나는 내가 먹겠소. 할미 떡은 안을 봤으니 그걸로 셈하시오.”

“떡이 본 걸 내가 어떻게 팔아?”

“떡한테 물어보시오.”

할미는 함지를 고쳐 끼고 혀를 찼다. 그러다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웃음소리가 옥 담장에 부딪혀 돌아올 만큼 컸다. 할미는 그 웃음을 끝으로 문을 나갔다. 나가는 길에 문간의 득룡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구 나장, 저 집 양반은 떡 장사를 해도 망할 사람이야.”

득룡은 대꾸하지 않았다. 순돌은 남은 떡 하나를 반으로 갈라 입에 넣었다. 쑥 냄새가 쇠 맛 우물물 냄새를 잠깐 덮었다.

*

점심 무렵 맹 서리가 왔다.

맹 서리는 의금부에서 문서 심부름을 하던 아전, 곧 서리였는데, 조정 소식을 남보다 반나절 먼저 안다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소매에는 늘 엿 한 가락이 들어 있었다. 오늘 엿은 날씨 탓에 반쯤 굳어서, 맹 서리가 그것을 이로 끊을 때마다 딱 소리가 났다.

“오 나장, 들었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하셨소.”

“그러니까 지금 하려는 거 아닌가.”

맹 서리는 우물가 돌에 엉덩이를 걸치고 엿을 한 번 더 끊었다. 이번에는 엿이 이에 붙었다. 서리는 손가락으로 어금니를 후비면서 말을 이었는데, 그 바람에 말이 반쯤 엿 맛이 났다.

“편전에서 말이 갈렸어. 저 여자 하나를 두고. 죄와 벌을 정한 나라 법조문, 그러니까 형률에 맞는 조문이 없는데 사형을 매길 수 있느냐, 그게 다툼이야.”

“형률이 뭐라는데요?”

“형률은 형률대로 말하지. 사람마다 그걸 다르게 읽어서 탈이지.”

“그럼 서리 나리는 어떻게 읽으시오?”

“나야 엿 읽지.”

순돌은 웃지 않았다. 맹 서리는 웃었다가 아무도 따라 웃지 않자 엿을 소매에 도로 넣었다.

순돌이 물었다.

“같이 엮인 사내들은 어디 있소?”

맹 서리는 그 물음에 처음으로 말을 멈췄다. 우물 두레박이 바람에 흔들려 돌벽을 두 번 쳤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나리 소관은 뭐요?”

“소식이지. 소식 중에 그건 없어.”

순돌은 북쪽 칸을 보았다. 그 칸에서 들린 소리는 짚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사발이 판자 바닥을 긁는 소리, 그리고 밤에 한두 번 들리는 마른기침이 전부였다. 수사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를 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러 사람 가운데 이 옥 마당에 들어온 사람을 순돌은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

*

저녁에 집에 가니 분이가 쌀독 바닥을 긁고 있었다.

박박 긁는 소리가 부엌 바깥까지 들렸다. 쌀독은 친정에서 시집올 때 지고 온 것인데, 바닥 한가운데 금이 가서 그 금에 쌀알이 끼었고, 분이는 저녁마다 그 쌀알을 숟가락 끝으로 파내며 하루치 걱정을 같이 파냈다.

“구 나장이 자네더러 야번 다 서래?”

“어찌 아오?”

“떡장수 할미가 저녁 전에 다녀갔어. 판자 앞에서 등 대고 버틴 나장이 우리 집 양반이라고. 동네에 다 퍼졌어. 오늘 밤엔 아마 등에 송곳 박힌 나장이 될 거야.”

순돌은 마루 끝에 앉아 짚신을 벗었다. 짚신 바닥에 옥 마당 흙이 붙어 있었다. 분이는 숟가락을 놓고 그 흙을 보았다.

“야번 서면 쌀 덜 나와. 구 나장한테 밉보이면 내년 자리도 몰라.”

“알고 있소.”

“아는데 왜 그래?”

순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짚신을 탁탁 털었다. 마당에 흙이 떨어졌다. 분이는 한숨을 쉬고 금 간 쌀독 뚜껑을 덮었다. 뚜껑이 덜컥 하고 맞지 않는 자리에서 걸렸다.

“그 여자는 어때?”

“물은 다 마시오.”

“그거 말고.”

“그거밖에 모르오.”

분이는 더 묻지 않았다. 아궁이에서 장작 하나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

밤의 형장 쪽 담장은 득룡 말대로 바람이 좋았다. 너무 좋아서 순돌은 창을 세운 채 귀를 두 손으로 번갈아 감쌌다. 담장 너머는 빈 마당이었다. 사람을 처형하는 날에만 사람이 모이는 마당이라, 평소에는 바람만 와서 놀다 갔다.

자정이 넘어 발소리가 들렸다. 맹 서리였다. 등불도 없이 와서, 담장 모퉁이에서 순돌을 보고 놀라 제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아이고, 귀신인 줄 알았네.”

“귀신이 창을 들고 있소?”

“요즘 귀신은 다 든다더라.”

맹 서리는 숨을 고르고, 오늘은 소매에서 엿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순돌에게는 이상했다.

“늦게까지 편전에 불이 켜져 있었어. 저 여자 일로.”

“그래서요?”

맹 서리는 담장 너머 빈 마당을 보았다. 바람이 그 마당의 흙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사형 말이 나왔어. 형률 밖으로라도 해야 한다는 쪽이 있대.”

“반대하는 쪽은요?”

“있지. 법에 없는 벌을 내리면 법이 무슨 소용이냐는 쪽. 그 사람들 목소리도 작지 않았대. 누가 이길지는 나도 몰라.”

“나리가 모르는 소식도 있소?”

“있어. 오늘 처음 알았네.”

맹 서리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제 입을 손바닥으로 한 번 쳤다. 농담처럼 하려던 말이 농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냥 추워서인지, 순돌은 알 수 없었다.

순돌은 창 자루를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낮의 사발 감촉이 남아 있었다. 떨어져 나간 귀 자리의 반들반들한 데가 엄지 끝에 닿던 감촉이었다.

옥 쪽에서 마른기침이 한 번 들렸다. 그리고 그쳤다.

바탕: 『성종실록』 122권, 성종 11년(1480) 10월 18일 1기사·5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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