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94자)

마음의 양식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새벽 종이 울리기 전⁠, 공양은 담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기와가 밤새 서리를 먹어서 배에 닿는 자리마다 차가웠다⁠. 담 아래 마당에서는 무승 마흔 명이 줄을 맞춰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두 발을 어깨보다 넓게 벌리고⁠, 허벅지를 땅과 나란히 내리고⁠, 두 주먹을 허리에 붙인 채였다⁠. 말 등에 올라앉은 모양이라 마보라고 부른다는 것을 공양은 불목하니 덕칠의 수다에서 주워들었다⁠.

무승들은 향 한 대가 다 타도록 꿈쩍하지 않았다⁠. 입김만 하얗게 올라왔다⁠. 무승 교두가 줄 사이를 걸으며 누군가의 엉덩이를 대나무 막대로 툭 쳤다⁠.

“⁠엉덩이 내려라⁠. 말이 도망간다⁠.⁠”

공양은 수염을 앞으로 모았다⁠. 쥐구멍 앞이 아닌 데서 수염이 이렇게 쏠리는 일은 드물었다⁠. 다리 넷으로 서는 짐승도 아닌 사람이⁠, 다리 둘로⁠, 꼼짝도 않고 버텼다⁠. 공양은 쥐를 잡을 때 늘 한 발이 먼저 미끄러졌다⁠. 장경각 마루는 기름을 먹여 반들반들했고⁠, 쥐는 늘 공양보다 반 뼘 빨랐다⁠.

공양은 담 위에서 뒷다리로 일어났다⁠. 앞발 둘을 배에 붙이고 엉덩이를 내렸다⁠. 꼬리를 땅에 대지 않으려고 바짝 세우니 허리가 뒤로 휘었다⁠. 하나⁠, 둘⁠, 셋⁠. 숨을 열까지 세었을 때 뒷다리 안쪽이 떨리기 시작했다⁠. 스물에서 꼬리가 왼쪽으로 쏠렸고⁠, 꼬리를 따라 몸이 기울었다⁠. 기와가 발바닥 밑에서 빠져나갔다⁠.

담 아래에는 덕칠이 막 우물에서 길어다 놓은 물통 두 개가 있었다⁠.

물이 귓속까지 들어왔다⁠. 공양은 네 발을 한꺼번에 허우적거리다 물통 가장자리를 발톱으로 긁었다⁠. 마당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고⁠, 웃음은 줄을 타고 번졌다⁠. 마흔 명의 허벅지가 한꺼번에 들썩였다⁠.

“⁠누가 웃었냐⁠?⁠”

교두의 목소리가 마당을 갈랐다⁠.

“⁠웃은 놈 없으면 다 같이 마보 한 대 더⁠.⁠”

마당 전체가 앓는 소리를 냈다⁠. 공양은 물통 안에서 귀를 납작하게 눕혔다⁠. 사람 말은 다 알아들었다⁠. 사람들이 공양의 말을 못 알아들을 뿐이었다⁠.

*

“⁠이놈아⁠, 쥐는 안 잡고 물은 왜 잡냐⁠?⁠”

덕칠이 공양의 목덜미를 쥐고 물통에서 건져 올렸다⁠. 덕칠의 손은 장작을 패느라 갈라져 있었고⁠, 갈라진 틈마다 송진이 끼어서 털에 쩍쩍 달라붙었다⁠. 덕칠은 공양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행주로 털을 문질렀다⁠. 문지르는 내내 입을 쉬지 않았다⁠.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가 공양 시간이었다⁠. 공양 종만 치면 부엌 문지방에 와 앉아 있더라⁠. 그래서 공양이라 했더니⁠, 이름값을 하느라 공양밖에 모르는 놈이 됐지⁠. 쥐를 잡으라고 들였는데 쥐가 너를 구경하러 온다더라⁠. 계율원 수좌 스님 눈썹 봤냐⁠? 눈썹 두 짝이 이마 위에서 만난다⁠. 화가 나면 그게 한 줄이 돼⁠.⁠”

공양은 야옹 하고 짧게 울었다⁠. 눈썹 이야기는 벌써 세 번째 듣는 중이었다⁠.

“⁠배고프구나⁠. 그래⁠, 배고프지⁠.⁠”

덕칠은 소매에서 누룽지 한 조각을 꺼냈다⁠. 공양은 배가 고프다고 운 것이 아니었지만 누룽지는 먹었다⁠. 덕칠은 공양이 무슨 소리를 내든 배가 고프다는 말로 들었다⁠. 석 달째 그랬다⁠.

“⁠산 아래 우리 어머니 동네는 독 긁는 소리만 난다더라⁠. 메뚜기가 조밭을 다 쓸어 갔다지⁠. 관아에서는 또 공문이 올라왔다나 봐⁠. 절더러 진휼미를 바치래⁠. 굶는 사람 먹일 쌀을 절이 내라는 거야⁠. 절도 굶는데⁠. 강호에는 마교 놈들이 돌아다닌다는 말도 있고⁠. 마교 알지⁠? 모르지⁠. 사람 피를 짜서 술 담근다는 놈들이다⁠. 나도 본 적은 없다⁠.⁠”

덕칠은 누룽지 부스러기를 털고 일어났다⁠. 흰 바탕에 누런 얼룩이 앉은 공양의 털은 반쯤 말라 고슴도치처럼 뻗쳐 있었다⁠.

*

계율원 수좌는 해가 지붕을 넘어올 무렵 장경각에 왔다⁠. 계율원은 절의 법도를 맡은 곳이고⁠, 수좌는 계율원의 우두머리 스님이었다⁠. 수좌의 허리끈에는 쇠 열쇠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곳간 열쇠였다⁠. 수좌가 걸을 때마다 열쇠가 허벅지에 부딪쳐 탁⁠, 탁 소리를 냈다⁠.

수좌는 장경각 서가 앞에 서서 경전 한 권을 뽑았다⁠. 『⁠금강경⁠』이었다⁠. 귀퉁이가 반달 모양으로 뜯겨 나가 있었다⁠. 수좌는 한 권을 내려놓고 옆의 것을 뽑았고⁠, 또 옆의 것을 뽑았다⁠. 다섯 권째에서 수좌는 손을 멈췄다⁠.

“⁠저것이 들어온 지 석 달이다⁠.⁠”

수좌는 공양을 보지 않고 말했다⁠. 공양은 서가 맨 아래 칸에 앉아 꼬리로 발을 감싸고 있었다⁠.

“⁠석 달 전에는 갉힌 경전이 열한 권이었다⁠. 오늘 아침에 스물여섯 권이다⁠.⁠”

덕칠이 장경각 문간에서 빗자루를 쥔 채 고개를 숙였다⁠.

“⁠스님⁠, 저놈이 그래도 밤마다 서가를 돌기는 합니다⁠. 돌다가 졸아서 그렇지⁠.⁠”

“⁠그믐까지다⁠.⁠”

수좌의 눈썹이 정말로 한 줄이 되었다⁠.

“⁠그믐까지 새 이빨 자국이 줄지 않으면 저것을 산 아래 마을에 내려놓아라⁠.⁠”

“⁠산 아래 내려놓으면 잡아먹힙니다⁠.⁠”

“⁠쥐한테 말이냐⁠?⁠”

“⁠사람한테요⁠. 올해는 사람이 고양이를 봅니다⁠, 스님⁠.⁠”

수좌는 웃지 않았다⁠. 덕칠은 빗자루 끝으로 마루를 긁다가 한마디를 더 붙였다⁠.

“⁠헌식돌에 누룽지라도 다시 올리면 쥐가 서가까지는 안 올라올 텐데요⁠.⁠”

헌식돌은 일주문 옆의 너럭바위였다⁠. 해마다 공양이 끝나면 덕칠이 남은 밥을 덜어 바위에 올려놓았고⁠, 산짐승과 새와 쥐가 와서 먹었다⁠. 공양도 몇 번 얻어먹었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란다⁠.⁠”

수좌는 『⁠금강경⁠』을 서가에 다시 꽂았다⁠. 갉힌 귀퉁이가 바깥을 보게 꽂았다⁠.

“⁠봄까지 헌식은 없다⁠. 곳간에 섬이 몇 남았는지 너도 알 것이다⁠.⁠”

수좌가 나간 뒤에도 열쇠 소리는 한참 동안 계단 아래에서 들렸다⁠. 덕칠은 공양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믐이면 보름 남았다⁠, 이놈아⁠. 보름⁠.⁠”

*

오후에 공양은 일주문까지 내려갔다⁠. 일주문은 절 들머리에 기둥 두 개로 선 문이었고⁠, 문 옆에 헌식돌이 엎드려 있었다⁠. 바위 한가운데 밥을 올리던 자리가 움푹 패어 있었다⁠. 공양은 앞발을 바위에 올리고 코를 댔다⁠. 밥 냄새는 없었다⁠. 대신 쥐 냄새가 겹겹이 배어 있었다⁠. 작은 발자국이 움푹한 자리 둘레를 빙빙 돌다가 바위 가장자리에서 끊겼다⁠. 왔다가⁠, 핥고⁠, 다시 왔다가⁠, 핥은 자리였다⁠. 바위 겉이 반질반질했다⁠.

일주문 밖 길섶에는 사람 여남은이 앉아 있었다⁠. 등짐을 베고 누운 노인도 있었고⁠, 솥뚜껑을 품에 안고 맨발로 쭈그린 사내도 있었다⁠. 하남 들판 어디선가 올라온 유민들이었다⁠. 절에 가면 죽 한 그릇은 준다는 소문을 따라온 사람들이었는데⁠, 일주문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문지기 무승이 문 앞에 막대를 가로 쥐고 서 있었다⁠.

길섶의 사내가 공양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사내의 눈이 공양의 목덜미에서 배로⁠, 배에서 뒷다리로 내려갔다⁠. 장에서 생선을 고르는 눈이었다⁠.

공양은 헌식돌에서 앞발을 내렸다⁠. 천천히 돌아섰고⁠, 일주문 기둥을 지나자마자 뛰었다⁠. 장경각 계단을 네 칸씩 올라 서가 맨 아래 칸에 몸을 밀어 넣고 나서야 숨을 쉬었다⁠. 덕칠의 농담은 농담이 아니었다⁠.

공양은 칸 안에서 다시 마보를 잡았다⁠. 사람이 고양이를 보는 해에⁠, 고양이가 쫓겨나면 갈 곳은 일주문 밖 길섶뿐이었다⁠. 숨을 서른까지 세었다⁠. 이번에는 꼬리를 세우지 않고 바닥에 붙여 몸 뒤에 받쳐 보았다⁠. 다리 둘에 꼬리 하나⁠, 셋이 버티니 마흔까지 갔다⁠.

*

밤이 되자 장경각은 종이 냄새로 가득 찼다⁠. 낮에 해를 먹은 서가가 식으면서 묵은 먹 냄새를 뱉어 냈다⁠. 공양은 서가 맨 아래 칸에 몸을 숨기고 앞발 둘을 가지런히 모았다⁠. 오늘은 마보를 써 볼 생각이었다⁠. 뒷다리를 넓게 벌리고 엉덩이를 내리면⁠, 마루가 미끄러워도 몸이 밀리지 않을 것이었다⁠.

쥐는 한 마리씩 오지 않았다⁠. 줄을 지어 왔다⁠. 문지방 밑 틈에서 회색 머리가 하나 나오고⁠, 뒤를 이어 열이 나오고⁠, 다시 스물이 나왔다⁠. 맨 앞의 늙은 쥐는 한쪽 눈이 하얗게 멀어 있었다⁠. 애꾸 쥐는 공양이 숨은 칸 앞을 지나며 앞발을 들어 꾸벅 인사를 했다⁠.

“⁠실례합니다요⁠, 고양이 도령⁠.⁠”

“⁠실례인 줄 알면 돌아가라⁠.⁠”

“⁠돌아가면 배가 고픕니다요⁠.⁠”

애꾸 쥐는 서가 두 번째 칸으로 기어올라 경전 한 권의 귀퉁이를 물었다⁠. 뒤따라온 쥐들도 저마다 한 권씩 맡았다⁠. 사각사각⁠, 종이 씹는 소리가 장경각을 채웠다⁠.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건 부처님 말씀이다⁠.⁠”

“⁠경전은 마음의 양식이라 하지 않습니까요⁠. 스님들이 그러던데요⁠.⁠”

“⁠그건 사람 마음 말이다⁠.⁠”

“⁠쥐도 마음이 있습니다요⁠. 마음이 배고프면 몸도 배고프고요⁠.⁠”

공양은 대답 대신 뛰었다⁠. 뒷다리로 마루를 차고 나가⁠, 두 번째 칸에 앞발이 닿는 순간 엉덩이를 내렸다⁠. 마보였다⁠. 몸이 칸 위에 단단히 박혔다⁠. 미끄러지지 않았다⁠. 공양은 처음으로 쥐들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자리는 잡았는데 쥐가 없었다⁠. 엉덩이를 내리는 동안 쥐들은 이미 위 칸으로⁠, 옆 서가로⁠, 마루 밑으로 흩어져 있었다⁠. 위 칸에서 애꾸 쥐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도령⁠, 앉는 건 잘 앉으셨습니다요⁠. 잡는 건 언제 하십니까⁠?⁠”

쥐들이 찍찍 웃었다⁠. 공양의 귀 끝이 뜨거워졌다⁠.

“⁠시끄럽다⁠.⁠”

서가 꼭대기에서 낮은 목소리가 내려왔다⁠. 쥐들의 웃음이 칼로 자른 듯 멎었다⁠.

공양은 고개를 들었다⁠. 천장 바로 밑⁠, 경전 더미 위에 검은 것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고양이인 줄 알았다⁠. 몸통이 공양의 절반은 되었고⁠, 털이 숯처럼 검어서 등불이 닿아도 빛을 먹었다⁠. 쥐였다⁠. 꼬리 끝에 구리 고리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고리가 서가 나무에 닿을 때마다 짤그랑 소리가 났다⁠.

“⁠흑수라 한다⁠. 저것들은 나를 서왕이라 부른다⁠.⁠”

흑수는 앞발로 경전 한 장을 찢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고 삼켰다⁠.

“⁠맛이 없군⁠. 먹이 너무 짜⁠.⁠”

“⁠내려와라⁠.⁠”

“⁠털보야⁠, 네가 올라오너라⁠. 마보는 잘 봤다⁠.⁠”

흑수는 쥐들이 공양의 새벽 구경까지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공양은 수염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올가을 이 절은 헌식돌을 비웠다⁠. 산 아래 독은 사람이 먼저 비웠고⁠, 비운 곡식은 소작료라는 이름으로 이 산을 올라왔다⁠. 마을 쥐들은 볏짚을 갉다가 볏짚도 떨어지자 제 새끼 꼬리를 갉았다⁠. 사람도 절도 쥐를 굶겼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내 일은 장경각이다⁠.⁠”

“⁠그러면 오늘 밤 장경각은 비워 주마⁠. 네 일을 덜어 주는 거다⁠. 대신 동짓날 밤에는 곳간을 연다⁠. 너희가 열든⁠, 우리가 열든⁠.⁠”

공양은 서가를 타고 올랐다⁠. 세 칸을 한 번에 뛰어 꼭대기 바로 아래 칸에 발톱을 박았다⁠. 흑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공양의 코가 흑수의 수염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흑수의 앞발이 옆으로 그어졌다⁠.

코끝이 갈라졌다⁠. 처음에는 차가웠고⁠, 숨을 한 번 쉬고 나서야 뜨거웠다⁠. 공양은 칸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톱을 더 깊이 박았다⁠. 흑수가 뒷발로 경전 더미를 밀었다⁠.

경전 수십 권이 공양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공양은 경전과 함께 마루까지 떨어졌다⁠. 등이 먼저 닿았다⁠. 숨이 한 번 끊겼다가 돌아왔다⁠. 공양은 종이 더미 속에서 네 발을 버둥거렸다⁠. 갉힌 귀퉁이들이 눈앞에서 하얗게 흩날렸다⁠.

“⁠동짓날이다⁠, 털보⁠.⁠”

짤그랑⁠. 구리 고리 소리가 지붕 쪽으로 멀어졌다⁠. 쥐들의 발소리가 마루 밑으로 빠져나갔다⁠.

장경각 문이 열렸다⁠. 등불 하나가 문간에 멈췄고⁠, 등불 뒤에 허리끈의 쇠 열쇠가 흔들렸다⁠. 등불은 마루에 쏟아진 경전을 지나⁠, 갉힌 종이 더미를 지나⁠, 더미 꼭대기에 코에서 피를 흘리며 앉은 회색 고양이에게서 멈췄다⁠.

공양은 입에 『⁠금강경⁠』 한 장을 문 채였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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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필깎이2026.10.31· 1화

    엉덩이 내려라 말이 도망간다에서 빵 터졌어요. 공양이 마보를 덕칠 수다로 배운 것도 웃겨요.

    • 마하솔작가2026.10.31

      공양은 무공도 소문도 담 위에서 다 배워요. 덕칠의 수다가 소림사 최고 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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