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종을 거는 자리
무영검의 제자 · 한도윤
서흔에서 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이름은 목설. 예순이 넘었고, 왼손 손가락이 셋뿐이었다. 나머지 둘은 삼십 년 전 쇳물에 잃었다고 했다.
“백여섯 자루라.”
목설은 창고 안을 둘러봤다. 검이 벽을 따라 세워져 있었다. 하윤이 스무 해 동안 사 모은 것들이다.
“쇠는 넉넉하오. 근데 이걸로 종을 만들면 소리가 안 나.”
“어찌하여?”
“검을 만드는 쇠는 단단하게 죽인 쇠요. 종은 살아 있는 쇠라야 울지.”
나는 검 한 자루를 집었다. 손잡이 실이 삭아 있었다. 이건 스무 해 전 것이다.
“울지 않아도 됩니다.”
목설이 고개를 들었다.
“종을 만드는데 울지 않아도 된다?”
“예.”
“그럼 왜 종이오?”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준비하지 않은 대답이 나올 때가 있다.
“걸어 두려고요.”
***
목설은 그날 저녁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밤에 하윤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오라는 전갈이었다.
대장간에 가니 화덕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낮에 한 말 다시 해 보오.”
“걸어 두려고 합니다.”
“어디에?”
“무영곡 입구에요.”
목설은 풀무를 밟았다. 불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
“연 낭자.”
“예.”
“종에 이름을 새기면 그건 종이 아니라 비석이오.”
***
나는 명부를 꺼내 화덕 옆에 놓았다.
“압니다.”
“비석은 죽은 사람 것이오.”
“이 백일곱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럼 이름을 새겨야 할 자리는 종이 아니라 무덤이지.”
***
이 말에 나는 오래 대답하지 못했다.
목설이 옳았다. 무덤을 만들면 되는 일이다. 백일곱 개의 무덤은 크지만, 만들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무덤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어르신.”
“말하시오.”
“무덤은 찾아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목설의 손이 멈췄다.
“이 백일곱 사람 중에 마흔둘만 성씨를 압니다. 나머지 예순다섯은 성도 모릅니다. 찾아올 사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명부를 폈다.
“무덤을 만들면 예순다섯 개는 아무도 오지 않는 무덤이 됩니다.”
***
목설은 풀무에서 발을 뗐다.
“종은 다르오?”
“종은 지나가는 사람이 봅니다.”
“보고 뭘 하오?”
“읽습니다.”
나는 명부의 한 장을 짚었다.
“읽으면 그 이름이 그날 하루 살아납니다. 무덤은 일 년에 한 번 살아나고, 종은 매일 살아납니다.”
***
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목설이 먼저 입을 뗐다.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백일곱이 아니라 백여덟을 새기시오.”
“누구를 더합니까?”
목설은 자기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 셋.
“내 아우요.”
***
“스무 해 전에 검을 사러 무영곡에 갔소.”
목설은 손을 내렸다.
“문 앞에서 돌아왔지. 검장이 안 판다고 했다고.”
나는 사부가 사람을 돌려보내던 것을 기억한다. 열두 해 동안 여러 번 봤다.
“그래서요.”
“다른 데서 샀소. 무영곡 것보다 못한 걸로.”
목설은 화덕에 손을 뻗었다가 거뒀다.
“그걸로 죽었소. 검이 부러져서.”
***
나는 명부를 덮었다.
“어르신.”
“말하시오.”
“그 아우 이름은 이 명부에 없습니다.”
“없지.”
“무영곡 검에 벤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소.”
목설이 나를 봤다.
“그러니까 새기라는 거요.”
***
그날 밤 나는 명부 마지막 장에 이름을 하나 더 적었다.
목설이 불러 준 이름이었다.
적고 나서 나는 그 장을 오래 봤다.
백여덟 개.
내 어머니의 이름은 그중 백일곱 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