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89자) · 하윤 · 칠월

받은 것도 갚아야 한다

무영검의 제자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사시 나루 뒷골목의 삯바느질 집은 문턱이 낮아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었다. 도겸의 어머니는 하윤이 하는 말을 바늘을 쥔 채 끝까지 들었다. 아들이 칼을 내려놓고 둑에서 돌을 들었다는 대목에서 바늘을 한 번 멈췄고, 헛간 이야기에서는 멈추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어머니는 반짇고리에서 흰 무명 한 필을 꺼내 하윤에게 내밀었다.

“수의를 지어 두었소. 두 해 전에. 그 애가 전장으로 간 날부터 언젠가 입을 줄 알았소.”

하윤은 그 무명을 받았다. 받은 것도 갚아야 한다는 말이 그때는 생각나지 않았다. 윤선이 어머니의 손을 잡았고, 어머니는 그 손을 빼지 않았다. 여만복이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스승의 장례 날짜를 알려 달라고 했다.

*

도겸은 문파 뒷산 양지바른 비탈에 묻혔다. 유월 한낮이었고, 산딸기가 붉게 익어 덤불마다 단내가 났다. 장우가 혼자 구덩이를 팠다. 하윤이 삽을 들고 거들려 하자 장우는 삽자루로 하윤의 손을 밀어냈다. 이건 셋째가 하는 일이라고, 일곱째 몫까지 참는 건 셋째 일이라고 했다. 흙을 다 덮고 나서 장우는 부엌으로 내려가 쌀독 바닥을 긁어 밥을 지었다. 사발 다섯에 밥을 퍼서 상에 놓았는데, 하나가 남았다. 장우는 남은 사발을 한참 보다가 제 사발의 밥을 한 숟가락 떠서 그 사발에 옮겼다. 그러고는 도로 반을 덜어 왔다.

소달이 상 앞에 앉아 울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장우가 소달의 사발에 밥을 한 숟가락 더 얹었다.

“먹어라. 굶으면 못 참는다.”

*

스승은 서쪽 방에 누워 있었다. 봄 사이에 살이 많이 빠져서 이불이 몸을 덮은 것인지 몸이 이불 밑에 없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오른손은 여전히 이불 위에서 떨렸다. 하윤은 머리맡에 앉아 여섯 달 동안의 일을 차례로 말했다. 우물, 담, 노삼의 겨울, 다리, 둑, 그리고 헛간. 도겸 이야기에서 스승은 눈을 감았고, 한참 뒤에 다시 떴다.

“무릎이 정월 스무날쯤에 풀렸다. 누가 갚았는지 몰랐다.”

“약포 뒷담을 끝낸 날입니다.”

“네가 쌓았구나.”

“황가 부자하고 짐꾼 둘하고 같이 쌓았습니다.”

스승이 떨리는 손을 들어 제 오른 무릎에 얹었다.

“벤 사람이 아니어도 갚아지는구나. 백하진 그 다리에서 넷이 나를 도왔을 때 알았다. 알고도 너희한테는 하나씩 세라고 가르쳤다.”

“왜 그러셨습니까?”

“나는 은 스무 냥 받은 칼이었다. 그런 칼이 남의 손을 빌려 갚는다고 가르치면, 너희도 남의 손에 기대 벨 줄 알았다.”

하윤은 스승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일곱 해 동안 한 번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없었다.

“스승님은 윤백수 어르신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왜 죽였다고 하셨습니까?”

“내가 받은 은이 그 사람을 죽였다. 그 셋이 들어간 문을 연 건 나다.”

스승이 고개를 조금 돌려 창밖을 봤다.

“나흘째 새벽, 대문 밖에 마종곤이 서 있었다. 나는 그 손목을 무영으로, 흔적 하나 없이 날로 그었다. 관아는 도둑이 들었다고 적었다. 그날 칼을 뒤집었어야 했다. 등으로 쳐서 뼈를 부러뜨렸어야 했다. 흔적이 남았으면 마종곤은 그 손목을 들고 관아에 섰어야 했을 거다. 나는 그날도 흔적 없는 칼을 골랐다.”

스승의 떨리는 오른손이 이불 위에서 한 번 크게 튀었다.

“이 손은 그래서 떤다. 마종곤의 사흘 일은 윤백수를 죽이는 채비였다. 그런 사흘은 대신 해 줄 수가 없다. 그러니 못 갚는다.”

*

문간에 윤선이 서 있었다. 스승이 윤선을 오래 봤다.

“선이냐?”

“그렇소.”

“장부에 네 이름이 있다. 금이 없다.”

“들었소.”

“사흘째 밤에 네가 아비 머리맡의 물을 들고 나왔다. 나한테 주더라. 나는 그 물을 반 마셨다. 나머지 반은 너한테 돌려줬다. 네 아비가 마실 물이었다.”

윤선이 방으로 들어와 스승 곁에 앉았다.

“벤 게 아니라 받은 거다. 받은 것도 갚아야 한다. 사십 해 생각했는데 어떻게 갚는지 모르겠다.”

윤선이 머리맡의 물사발을 들었다. 스승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받쳐 들고 사발을 입술에 댔다.

“물 드시오.”

“또 주냐?”

“그렇소.”

스승이 마셨다. 반을 마시고 입을 뗐다.

“이번엔 받지 마라. 네 것이다.”

“받으시오.”

윤선이 사발을 다시 기울였다. 스승은 나머지 반을 마셨다. 목젖이 두 번 오르내렸고, 마른 입술에 물기가 번졌다. 윤선의 손등에 물 한 방울이 떨어졌는데, 사발에서 흐른 것인지 다른 데서 떨어진 것인지 하윤은 보지 않았다.

스승이 하윤을 불렀다.

“장부를 가져와라. 선 줄에 금을 그어라.”

하윤은 붓을 들었다. 선 줄을 봤다. 긋지 않았다.

“이건 제 빚입니다. 물을 받은 건 스승님이지만, 갚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그럼 이 장부는 안 닫히겠구나.”

“안 닫아도 됩니다.”

스승이 장부 맨 뒤를 펴 보라고 했다. 빈 장에 「베지 않은 날」 금 일곱이 있었다.

“너는 몇이냐?”

“여섯입니다.”

“나는 일곱에서 멈췄다. 여덟째를 못 했다.”

스승은 칠월 초이렛날 새벽에 갔다. 오른손은 마지막까지 떨렸다.

*

장례 날 산문 아래로 사람들이 올라왔다. 노가촌 윗마을에서 노춘과 둘째 집 사내가 왔다. 사시 나루에서 여만복이 딸 여순의 손을 잡고 왔다. 하윤이 백하진에서 올라오는 길에 들렀을 때 도겸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여만복이 스승 장례에 꼭 오겠다고 했었다. 황가약방의 아들이 윤선 대신 약포를 닫고 왔다. 의성역 역승이 제 아비 노삼의 말을 전하러 왔다. 저녁까지 산문 마당에 스물이 모였다.

해 질 녘에 산문 아래 고갯길로 가마 한 채가 올라왔다. 가마에서 내린 사람은 마종곤이었다. 구양탁이 곁에 섰고, 사형 셋이 뒤에 섰다.

“조문 왔소. 그리고 곽 선생 장부를 가지러 왔소. 빌려준 은이 있어서.”

장우가 부엌 칼을 든 채 산문 앞을 막았다.

“스승님 장부는 스승님 거요.”

“안찰사 방계린이 노삼 늙은이의 공초를 받았다지. 그 장부에 스물두 해 전 날짜가 적혀 있으면 곤란하오.”

구양탁이 앞으로 나섰다. 환도를 뽑았다. 장우를 어깨로 밀어 넘어뜨리고 산문 안으로 들어섰다. 여순이 여만복의 다리 뒤로 숨었고, 노춘이 대패를 거꾸로 쥐었다.

하윤이 연무장 한가운데 섰다. 허리에 도겸의 칼이 있었다. 백하진에서 올라오는 스무 날 동안 한 번도 뽑지 않은 칼이었다. 칼집 입구에 도겸이 두 번 빗나간 자국이 손끝에 걸렸다. 저녁 해가 산문 기와 너머로 떨어지면서 연무장 박석을 붉게 물들였고, 향로에서 오르던 향 연기가 바람에 꺾여 구양탁 쪽으로 흘렀다.

구양탁의 첫 칼이 하윤의 머리로 왔다. 하윤은 반 보 물러났다. 두 번째 칼이 옆구리로 왔다.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도겸의 칼을 뽑았다. 일곱 해 동안 수없이 뽑은 칼이었다. 손목이 반 치 풀리려 했다. 하윤은 풀지 않았다. 대신 손목을 뒤집었다. 칼날이 하늘을 보고 칼등이 아래를 봤다.

뒤집힌 칼등이 구양탁의 환도를 옆으로 쳐 내고, 그 길로 구양탁의 오른 쇄골에 떨어졌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렸다. 둔한 소리였다. 금 간 돌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였다.

구양탁이 환도를 놓치고 무릎을 꿇었다. 쇠장갑 낀 손으로 어깨를 움켜쥐었는데, 적삼 위로 금세 검푸른 멍이 번졌다. 흔적이었다. 하윤이 남긴 흔적이었다.

노춘과 여만복과 윗마을 사내가 달려들어 구양탁을 짓눌렀다. 장우가 일어나 부엌에서 새끼줄을 가져왔다.

마종곤은 산문 밖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형 셋은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아무도 뽑지 않았다. 셋 다 하윤이 든 칼을 알아봤다. 도겸의 칼이었다. 칼등이 아래를 향한 채 하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자국을 남겼군. 이제 자네도 율에 걸리오.”

“압니다. 형주로 가겠습니다. 이 사람을 데리고요. 도겸 사형을 죽인 흔적이 이 사람 칼에 있습니다.”

마종곤은 오른 손목의 흰 비단을 쓸었다. 그러고는 가마에 올랐다. 사형 셋이 그 뒤를 따랐다. 넷째가 산문을 돌아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따라 내려갔다.

하윤은 그날 밤 그 동작에 칼을 뒤집어 등으로 치는 수, 배도(背刀)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 베는 수의 일곱째였다. 스승이 하지 못한 여덟째 날을, 하윤은 일곱째 수로 했다.

*

이튿날 새벽 하윤은 산을 내려갔다. 구양탁을 새끼줄로 묶어 앞세웠고, 품에 장부를 넣었다. 형주 안찰사 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서 스물다섯을 쳤다고 공초하고, 방계린이 맡아 둔 스승의 칼을 돌려받을 것이다. 윤선이 약 보퉁이를 메고 따라왔다. 장우와 소달은 산문에 남았다. 소달이 산문 아래까지 따라 내려와 물었다.

“사형, 여덟째 수는 언제 만드십니까?”

“모른다. 아직 사형이 다섯 남았다.”

“셋 아닙니까? 어제 셋이 왔는데요.”

“사시 헛간에 둘이 누워 있다. 아홉째하고 열한째. 나간 여섯에서 일곱째 사형을 빼면 다섯이다.”

소달이 손가락을 꼽아 보다가 셈이 안 맞는다는 얼굴을 했고, 장우가 뒤에서 소달의 뒷덜미를 잡아 도로 끌고 올라갔다.

고갯길 중턱의 주막은 문이 열려 있었다. 섣달에 하윤이 대패로 고친 탁자가 마당에 나와 있었고, 그 탁자에 사형 셋이 둘러앉아 있었다. 넷째 사형 진목이 탁자 위에 칼을 뉘어 놓고 있었다. 새벽 안개가 마당에 낮게 깔려 셋의 발목을 덮었고, 주막 주인은 부엌 문틈으로 얼굴만 내밀었다가 하윤을 보고 도로 문을 닫았다.

진목이 일어섰다. 손이 떨렸다. 탁자 모서리를 짚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덟째, 주인이 어젯밤에 약을 안 줬다. 장부하고 구양탁을 가져오면 우리 셋 마비산 값을 평생 대 주겠다고 했다. 못 가져오면 오늘부터 끊는다고.”

뒤에 앉은 둘이 차례로 일어섰다. 다섯째는 벌써 이를 딱딱 부딪쳤다. 여섯째는 목 뒤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는데, 셋 가운데 제일 어렸고 하윤과 같은 해에 문파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여섯째의 눈이 하윤 품의 장부와 새끼줄 끝의 구양탁 사이를 오갔다.

“일곱째는 끊고 둑에서 돌을 들었다더라. 그러고 죽었다. 우리는 그렇게 못 한다. 서른 자리가 한꺼번에 오면 우리는 도겸처럼 못 버틴다.”

구양탁이 새끼줄에 묶인 채 부러진 쇄골을 감싸고 웃었다.

“여덟째, 셋이다. 뒤집은 칼 하나로 셋을 칠 거냐?”

윤선이 약 보퉁이를 내려놓고 하윤 옆에 섰다. 허리춤에서 약칼을 꺼내 쥐었다.

진목이 탁자 위의 칼을 집어 들었다. 뽑지는 않았다. 칼자루를 쥔 손이 떨려서 칼집 끝이 탁자에 딱딱 부딪쳤다.

“장부만 주면 된다. 너는 가던 길 가라. 구양탁은 우리가 데려간다. 그러면 오늘 아무도 안 앓는다.”

하윤은 품에 손을 넣어 장부를 쥐었다. 가죽 끈 매듭이 손바닥에 닿았다. 스승이 사십 해 동안 묶고 푼 매듭이었다. 이 장부를 주면 사형 셋이 오늘 밤 약을 먹는다. 안 주면 셋이 오늘부터 도겸이 방앗간에서 겪은 밤을 겪는다.

다섯째가 먼저 칼을 뽑았다. 이어서 여섯째가 뽑았다. 진목만 칼집째 쥐고 있었다.

하윤은 장부를 도로 품에 넣고, 허리에서 도겸의 칼을 뽑아 등이 아래로 가게 뒤집어 쥐었다. 안개 속에서 두 자루의 날이 하윤을 향해 반 치씩 풀려 있었고, 진목의 칼은 아직 칼집 안에서 떨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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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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