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201자) · 하윤 · 가정 29년 팔월 보름
자국 없는 칼
내가 벤 놈의 고통이 전부 나한테 온다 · 한도윤
사시 나루의 팔월은 물비린내보다 동유 냄새가 먼저 온다. 배 밑창에 새로 먹인 오동기름이 한낮 볕에 데워져 강바람을 타고 부두 끝까지 밀려오고, 그 밑에 썩은 갈대와 생선 비늘 냄새가 한 겹 깔려 있어서, 하윤은 숨을 쉴 때마다 입안이 미끈거린다고 생각했다. 등에 멘 약초 짐은 서른 근이었다. 스승이 산에서 캐 말린 천마와 황정이고, 이 짐을 약재 객주에 넘기면 문파 넷이 보름을 먹는다.
하윤은 객주 쪽으로 걷다가 발을 멈췄다. 부두 셋째 말뚝 앞에 사람이 모여 있었고, 가운데 배꾼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넉 냥이라고 했지, 여만복.”
말하는 쪽은 소매를 걷어붙인 사내였다. 허리에 박도를 찼고 앞니 하나가 없었다. 그 뒤에 둘이 더 서 있었는데, 하나는 팔짱을 끼고 하나는 칼을 멘 채 강을 보고 있었다. 강을 보는 쪽의 뒷모습을 하윤은 알았다. 어깨가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고, 기운 쪽 손이 칼자루에서 한 뼘 떨어진 자리에 늘 머문다.
“세량 낼 은이 없어서 꾼 거요. 이자까지 넉 냥이면 배를 팔아야 하오.”
“팔아.”
“배를 팔면 뭘로 갚소?”
앞니 빠진 사내가 웃었다. 여만복 옆에 여자아이 하나가 밧줄 뭉치를 안고 서 있었다. 아홉 살쯤이고, 밧줄이 제 몸통만 했다.
“도겸이, 해.”
강을 보던 사내가 돌아섰다. 일곱째 사형이었다. 두 해 전 문파를 나갈 때보다 볼이 꺼졌고, 눈 밑이 검었다. 도겸은 하윤을 보지 못했다. 칼을 뽑는 손이 느렸고, 그 느림은 힘을 다 뺀 손에서만 나온다. 무영검법 첫째 초식 평사(平斜)는 칼을 비스듬히 눕혀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긋는다. 날이 살에 닿는 동안 손목을 반 치 풀어 주면 날이 살을 가르지 않고 지나간다.
칼끝이 여만복의 왼 어깨를 지나갔다. 적삼이 갈라졌다. 피는 안 났다.
여만복이 소리도 못 내고 옆으로 쓰러졌다. 왼팔을 감싸 안고 발끝으로 부두 널판을 긁었는데, 긁는 소리가 이상하게 길었다. 아이가 밧줄을 떨어뜨렸다.
*
하윤은 짐을 내려놓지 않은 채 앞으로 나갔다. 스스로도 언제 발이 나갔는지 몰랐다.
“사형.”
도겸이 고개를 들었다. 하윤을 알아보는 데 한 호흡이 걸렸고, 알아본 다음에는 웃었다.
“여덟째구나. 약초 팔러 왔냐?”
“그 사람을 왜 벱니까?”
“은을 안 갚으니까.”
“베면 사흘을 못 일합니다. 그러면 더 못 갚습니다.”
앞니 빠진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이자가 붙지. 이 친구는 셈을 모르네.”
사내가 박도를 뽑아 들고 하윤 쪽으로 걸어왔다. 박도는 무영이 아니다. 저건 베면 피가 나는 칼이다. 하윤은 등의 짐끈을 한 손으로 풀었고, 짐이 널판에 떨어지면서 천마 뿌리가 몇 개 굴러 강으로 들어갔다. 하윤은 그쪽을 잠깐 봤다. 스승이 비탈에서 무릎을 짚고 캔 뿌리였다.
박도가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하윤은 왼발을 반 보 물리면서 칼을 뽑았고, 뽑은 칼이 올라가는 길에 사내의 오른 손목 안쪽을 지나갔다. 손목을 반 치 풀었다. 칼이 살을 지나가는 느낌은 언제나 같다. 젖은 비단 한 장을 뚫는 것 같고, 뚫고 나면 손바닥에 아무것도 안 남는다.
박도가 떨어졌다. 사내가 제 손목을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소매가 갈라졌고 그 아래 살은 멀쩡했는데, 사내는 불에 덴 사람처럼 이를 딱딱 부딪쳤다.
“이,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래!”
하윤은 칼을 칼집에 넣었다. 스물넷이었다. 일곱 해에 스물셋을 벴고, 방금 하나가 늘었다. 사흘 뒤면 오른 손목 안쪽이 이 사내처럼 탈 것이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사내가 눈을 치떴다.
“뭐?”
“이름을 알아야 찾아갑니다. 사흘 뒤에요.”
“찾아와서 뭘 하게! 또 베게?”
“아닙니다. 갚으려고요.”
팔짱을 끼고 있던 쪽이 뒤에서 대답했다.
“갈칠이오. 흑사채 갈칠.”
갈칠이 동료를 돌아봤다. 이름을 왜 알려 주느냐는 얼굴이었다. 그 틈에 여자아이가 떨어진 밧줄 뭉치를 주워 들고 갈칠의 정강이를 힘껏 후려쳤다. 매듭이 뼈에 맞는 소리가 났다. 갈칠이 손목과 정강이를 한꺼번에 붙잡으려다 널판에 모로 누웠다.
도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코로 숨을 뿜었다. 그러고는 칼을 넣었다.
“여덟째, 따라와라. 주인이 너를 보고 싶어 한다.”
*
통보전장은 나루에서 두 골목 안에 있었다. 문은 좁고 안은 깊었다. 들어서자마자 쇳소리가 났는데, 계산대 뒤에서 점원 셋이 은덩이를 저울에 올리고 있었다. 은이 접시에 닿을 때마다 가는 종소리 같은 것이 울렸고, 주판알 튀기는 소리가 그 사이를 메웠다. 벽에는 선반이 층층이 있었고 선반마다 끈으로 묶은 종이 뭉치가 빼곡했다. 차용증이었다. 기름등 여섯 개가 켜져 있었는데도 방 안쪽은 어두웠다.
주인은 안쪽 탁자에서 차를 따르고 있었다. 쉰 남짓이고, 살이 올라 손등이 부었다. 왼손 엄지에 옥가락지를 꼈다. 오른 손목에 흰 비단을 감고 있었다.
“앉게. 나는 마종곤이오.”
하윤은 앉지 않았다. 마종곤이 개의치 않고 찻잔 하나를 탁자 건너로 밀었다.
“갈칠을 벴다지. 흔적 하나 없이. 곽 선생 제자답소.”
하윤은 스승의 성을 남의 입으로 처음 들었다.
“스승님을 아십니까?”
“오래전에 일을 한 번 맡긴 적이 있소. 요즘도 손이 떨리시오?”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승의 오른손은 지난봄부터 찻잔을 들 때마다 떨렸다. 문파 밖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어야 했다.
“나는 피를 안 흘리게 하는 사람이오.”
마종곤이 찻잔을 입에 댔다.
“전에는 빚 못 갚는 사람 손가락을 잘랐소. 그러면 관아가 오고, 보고 기한이 어쩌고 하며 곤장이 나오지. 지금은 안 자르오. 자국이 없으니 관아도 안 오고, 사흘 앓고 나면 사람도 멀쩡하오. 이 얼마나 깨끗하오?”
“사흘을 못 일하면 이자가 붙습니다.”
“그건 셈이지, 피가 아니오.”
마종곤이 소매에서 은덩이 하나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한 냥짜리였다. 그 옆에 기름종이로 싼 가루약을 놓았다.
“하루에 이것 하나. 그리고 이 약. 마비산이오. 옮겨 온 아픔을 잊게 해 주지. 자네 사형들은 이걸 먹고 웃으면서 일하오. 도겸이는 서른 자리가 넘게 아픈데 밤에 잘 자오.”
하윤은 문 옆에 선 도겸을 봤다. 도겸은 벽에 기대 발끝만 보고 있었다.
“안 합니다.”
“그럴 줄 알았소.”
마종곤이 은을 도로 소매에 넣었다. 가루약은 두고 갔다.
“그럼 무영의 법대로 하시오. 벤 사람의 사흘 일을 벤 사람이 한다지? 갈칠은 사흘 동안 노가촌 윗마을 여섯 집에서 은을 받아 오기로 돼 있었소. 추심이오. 그걸 자네가 해야 자네 손목이 안 아플 것 아니오?”
하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종곤은 무영의 법을 알았다. 알고서 그 법으로 하윤의 목을 쥐었다.
“추심은 안 합니다.”
“그럼 스물넷째 자리를 평생 지고 다니시오. 곽 선생처럼.”
마종곤이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웃었다. 오른 손목의 흰 비단이 기름등 아래서 누렇게 보였다.
하윤은 가루약을 탁자에 둔 채 돌아섰다. 도겸이 문을 열어 주었고, 골목까지 따라 나왔다. 골목에는 전장 뒷문으로 은 상자를 나르는 짐꾼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상자 하나에 짐꾼이 넷씩 붙어 있었다.
“스승님은 어떠시냐?”
“손이 떨리십니다.”
“쌀은?”
“쌀이요?”
“쌀독 말이다. 겨울 날 만큼 있냐?”
하윤은 그 물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파 쌀독은 늘 반쯤 차 있었고, 누가 채우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도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골목 안으로 돌아서다가 한 번 멈췄다.
“여덟째, 갈칠 손목은 네가 진다. 나는 여만복 어깨를 진다. 그게 우리 법이다. 남의 것에 손대지 마라.”
도겸의 왼 어깨가 오른쪽보다 한 치쯤 낮았다. 서른 자리가 넘게 아픈 사람이 밤에 잘 잔다는 말을 하윤은 믿지 않았다.
*
여만복의 집은 강둑 아래 판잣집이었다. 문 대신 거적이 걸려 있었고, 들어서니 여만복이 볏짚 위에서 열에 들떠 떨고 있었다. 아내가 물수건을 갈았고, 아이는 문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사흘 동안 무슨 일을 하시기로 했습니까?”
하윤이 묻자 아내가 수건을 짜다 말고 올려다봤다.
“강 건너 공안으로 약재 짐을 나르오. 사흘에 세 번. 그 삯이 이자요.”
“그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아내가 수건을 떨어뜨렸다.
“댁이 벤 사람도 아니잖소.”
“벤 사람은 제 사형입니다. 사형은 안 할 겁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하윤은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셈해 봤다. 무영의 법은 벤 사람이 갚는 것이다. 남이 대신 갚는다는 말은 문파에서 들은 적이 없다. 도겸의 어깨가 풀릴지 안 풀릴지 하윤은 몰랐다.
아이가 문간에서 물었다.
“아저씨, 배 저을 줄 알아요?”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해요?”
“네가 가르쳐 다오.”
아이가 한참 하윤을 보다가 코를 훌쩍였다.
“돈 받을 거예요. 한 번에 두 푼.”
아내가 아이 뒤통수를 쳤고,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자 아이가 부뚜막에서 떡 하나를 꺼내 왔다. 찹쌀떡이었는데 한쪽이 눌려 납작했다.
“아버지 거예요. 아버지가 못 먹으니까.”
하윤은 그 떡을 받았다. 받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바닥에 올린 채 한참 있었다. 일곱 해 동안 벤 사람 집에서 무엇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떡은 식어 있었고, 손바닥에 닿는 쪽이 조금 끈적였다.
“먹어요. 내일 노 저으려면.”
하윤은 떡을 먹었다. 콩고물이 목에 걸려 기침을 했고, 아이가 그걸 보고 처음으로 웃었다.
새벽에 하윤은 여만복의 배를 밀어 강으로 냈다. 아이가 뱃머리에 앉아 노를 어떻게 쥐는지 소리를 질렀다. 강 위로 물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고, 노를 한 번 저을 때마다 손바닥이 쓸렸다. 하윤은 노를 손목으로 당겼다가 아이한테 혼이 났다. 노는 허리로 미는 것이라고, 손목으로 당기면 배가 제자리에서 돈다고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하윤은 허리를 써 봤다. 배가 조금 앞으로 갔다. 칼은 손목으로 쥐고 노는 허리로 민다. 일곱 해 동안 손목만 쓰던 몸이 허리를 쓰려니 등줄기가 뻣뻣했고, 첫 번째 짐을 공안 나루에 부렸을 때는 해가 벌써 한 뼘이나 올라와 있었다. 공안 객주의 늙은 점원이 짐을 세다가 하윤을 올려다봤다.
“여만복이는 어쩌고 댁이 왔소?”
“앓습니다. 사흘 동안 제가 대신 합니다.”
“삯은 여만복이 앞으로 적으면 되오?”
“예.”
점원이 붓을 들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제 삯을 남의 이름으로 적어 달라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얼굴이었다. 돌아오는 배에서 아이가 두 푼을 달라고 손바닥을 내밀었고, 하윤은 품을 뒤져 한 푼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나머지 한 푼은 외상으로 적어 두겠다고 했다.
둑 위에 누가 서 있었다. 어깨가 오른쪽으로 기운 사람이었다. 도겸은 한참 강을 보다가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