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05자) · 놀이방
두 번째 심장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문가온
오월 이십팔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정문 앞 계단은 오전 열 시에 이미 뜨거웠다. 오월 끝 햇볕이 화강암 계단에 고여서 운동화 밑창으로 올라왔다. 리안은 계단 아래 그늘에 서 있었다. 기자 여섯, 카메라 셋. 그들은 리안을 몰랐다. 그녀의 이름은 기사마다 「내부 고발자 A씨」였다. 문세라가 그렇게 해 주었다.
문세라가 리안 옆 그늘로 들어왔다. 목에 신분증 대신 부채를 걸고. 식약처 로고가 찍힌 홍보용 부채였다.
“덥네요. 이거 하나 드려요. 우리 청 굿즈예요. 아무도 안 가져가요.”
리안은 부채를 받았다. 부치자 바람에서 플라스틱 냄새가 났다.
“스물아홉 명 다 찾았어요.”
문세라가 말했다. 계단 쪽을 보면서.
“처음에 셋, 나정원 씨 상자에서 열하나. 나머지 열여덟은 수입 통관 기록하고 그쪽 나라 보건 당국 협조로요. 마지막 한 명은 어제 찾았어요. 방콕. 예순 살 남자. 전화로 알렸더니 한참 말이 없다가, 그럼 그 한국 여자는 괜찮냐고 묻더래요. 자기 심장 걱정보다 먼저.”
리안은 부채를 멈췄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모른다고 했어요. 괜찮으세요?”
“모르겠어요.”
“그게 정직하네요.”
문세라는 부채를 다시 부치라고 손짓했다.
열 시 이십 분에 검은 승합차가 섰다. 천도율이 내렸다. 수갑은 없었다. 영장 실질 심사는 구속 전 절차다. 변호사 둘이 양옆에 붙었다. 그는 한 달 동안 살이 빠져 있었다. 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 손목에 여전히 시계가 없었다. 기자들이 몰려갔다. 스물아홉 건 인정하십니까. 해외 판매 대금은 어디 있습니까. 천도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세 번째 단에서 멈췄다. 그늘에 선 리안을 봤다.
그가 계단을 도로 내려왔다. 변호사가 팔을 잡았다. 그는 뿌리쳤다. 리안 앞에 섰다. 기자들이 뒤따라왔다가 변호사들에게 막혔다. 둘 사이에 이 미터가 남았다. 유리 한 장이 없는 이 미터.
“서리안 씨. 연구소 문 닫은 거 아시죠.”
“알아요.”
“1번 방, 2번 방 열두 개는요?”
“식약처가 관리해요. 조건부로. 환자 본인 세포로 동의받은 건 계속 키우고, 이식까지 간대요. 열두 개 다.”
천도율의 얼굴이 한 번 흔들렸다. 그 소식은 그가 몰랐던 것이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한 분 이식받으셨어요. 예순일곱 살 할머니요. 유월에 손녀 결혼식이 있대요. 걸어서 들어가신대요.”
“내년 백구십 명은요.”
“그건 이제 대표님 돈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나라가 정해요. 느리게. 대표님은 느린 게 싫으셨죠. 느리면 사람이 죽으니까. 그 말은 맞아요. 그래서 대표님이 빨리 가져간 스물아홉 개는 스물아홉 명을 살렸어요. 그것도 맞아요.”
리안은 거기서 숨을 한 번 쉬었다. 가슴뼈 가운데가 당겼다. 그녀는 흉터 위를 누르지 않았다. 그냥 두었다.
“근데 그 스물아홉 명은 한 달 전까지 자기 가슴에 누구 게 들어 있는지 몰랐어요. 이제 알아요. 감사관님이 한 명씩 다 찾아서 알렸어요. 싱가포르, 두바이, 상하이, 방콕. 스물아홉 명 다요. 그중에 열일곱 명이 저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기관을 통해서, 이름 없이. 대표님은 그 사람들한테서 편지 받아 본 적 있으세요?”
천도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다시 팔을 잡았다.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세 번째 단에서 한 번 더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손목을 한 번 봤다. 없는 시계를. 그리고 올라갔다.
열일곱 통의 편지는 리안의 원룸 신발 상자 안에 있었다. 영어, 아랍어, 중국어, 태국어. 기관이 번역문을 붙여 보냈다. 그중 한 통은 삐뚤빼뚤한 영어였다. 두바이. 열 살. 올해 학교 달리기에서 이등 했어요. 일등은 다음에 할게요. 그 아이는 편지 끝에 심장을 그렸다. 빨갛게. 해부도처럼 정확하지는 않았다. 동그라미 두 개를 붙여 아래를 뾰족하게 만든, 아이들이 그리는 그 심장. 리안은 그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
리안은 그 등을 끝까지 봤다. 이긴 것 같지 않았다. 이긴 사람은 없다고 한 달 전에 자기가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강목훈은 불구속 입건이었다. 업무상 배임과 생명윤리법 위반 방조. 그는 모든 진술서에 서명했다. 열한 장. 연구소가 문을 닫은 날 소장실 짐을 상자 하나에 쌌다. 리안이 도우러 갔을 때 상자에는 서류가 거의 없었다. 머그컵 하나, 구겨진 넥타이 하나, 그리고 액자 하나. 아홉 살쯤 된 남자아이가 운동장 철봉에 매달려 웃는 사진. 강목훈은 그 액자를 상자 맨 위에 올렸다. 뒤집지 않고.
“서 기술자는 어디로 갑니까?”
“식약처가 열두 개 관리할 기술자를 뽑는대요. 계약직. 넣었어요.”
“됩니다. 잇는 손이니까.”
그 말을 하고 그는 상자를 한 번 추슬렀다. 넥타이가 상자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는 그것을 도로 밀어 넣지 않았다.
그는 상자를 들고 나갔다. 리안은 그 말을 오래 가지고 있었다. 잇는 손.
나정원은 공익 신고자로 인정받았다. 두 번째 진술을 마치고 나오던 날 그는 검찰청 앞에서 딸 손을 잡고 있었다. 아빠 회사 갔다 왔어, 하고 말하면서.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편도하는 식약처 계약직에 같이 넣었다. 둘 다 됐다. 조찬은 휴가가 끝나고 나서 연구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휴가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무기한 휴가. 그는 그 말을 할 때마다 웃었는데, 세 번째에는 안 웃었다. 리안이 밥을 샀다. 참치마요가 아니라 삼겹살이었다. 조찬이 할머니한테 혼나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삼겹살은 뭐라고 하시냐고 편도하가 물었다. 조찬은 고기를 뒤집으며 한참 생각하더니, 할머니는 삼겹살은 무조건 된다고 했다고 했다. 편도하가 할머니는 다 된다고 하시는 거 아니냐고 했다. 조찬이 그게 할머니라고 했다. 셋이 웃었다. 불판 위에서 기름이 튀었다. 리안의 손등에 한 방울 떨어졌다. 뜨거웠다. 리안은 손을 빼지 않고 웃었다.
오후 세 시. 한결대병원 본관 칠 층. 소독약과 분유와 크레파스. 복도는 여전히 이 도 더웠다. 리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복도 벽의 아이들 그림은 한 달 사이에 몇 장 바뀌어 있었다. 빨간 해는 그대로였다. 간호사실 앞을 지날 때 누가 서리안 씨, 하고 불렀다. 모르는 간호사였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였다. 소문이 칠 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리안도 고개를 숙였다. 이 복도에서 받은 인사를 이십삼 년 만에 돌려주는 것 같았다.
정미경이 코디네이터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무엇을 들고. 누렇게 바랜 크레파스 그림. 이 층짜리 계단. 꼭대기에 만세를 부르는 작은 사람.
“이거 네 거야. 이십삼 년 동안 저 벽에 있었어. 퇴원하는 날 네가 나한테 줬어. 기억 안 나지.”
리안은 그림을 받았다. 종이가 얇아져서 손끝에 빛이 비쳤다.
“그리고 하나 더.”
정미경이 봉투를 내밀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로고. 올해부터 기관을 거치면 기증자 가족과 수혜자가 이름 없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그 집 엄마가 해마다 전화했어. 이십삼 년. 그 아이 잘 사느냐고. 그것만 묻고 끊었어. 법이 바뀐 걸 알고 올봄에 편지를 보냈더라. 너한테.”
리안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 봉투 겉면에 적힌 글씨를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볼펜 자국이 뒷면까지 눌려 있었다. 꾹꾹 눌러 쓴 사람의 손.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서, 부엌 불 아래서 열 것이다. 여기서 열면 칠 층 복도에 주저앉을 것 같았다. 정미경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아 놀이방에 있어.”
놀이방은 복도 끝 햇볕 드는 방이었다. 매트 위에 블록이 흩어져 있었고, 창가에 계단 모양 교구가 있었다. 세 칸짜리 나무 계단. 아이들이 재활할 때 오르내리는 것. 세아가 그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산소 줄이 없었다. 가슴에 모니터 선도 없었다. 환자복 앞섶 사이로 거즈가 보였다. 명치에서 쇄골 사이까지 곧게.
“아줌마!”
세아가 리안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윤지선이 창가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한 달 전과 달랐다. 눈 밑이 검지 않았다.
“아줌마, 봐요.”
세아가 나무 계단 첫 칸에 발을 올렸다. 난간을 잡았다. 둘째 칸. 셋째 칸. 꼭대기에 섰다. 두 팔을 들었다. 만세. 숨이 조금 찼다. 볼이 빨갰다. 빨간 볼이 이렇게 반가운 줄 리안은 처음 알았다.
“세 칸이요. 한 번도 안 쉬었어요. 이거 반 층이래요. 선생님이.”
윤지선이 창가에서 말했다.
“어제는 두 칸에서 쉬었어요. 오늘 세 칸. 저 애가 아침마다 몇 계단 갔는지 벽에다 붙여요. 숫자가 늘어나는 게 제일 좋대요.”
놀이방 벽에 색종이가 붙어 있었다. 날짜와 숫자. 일, 일, 이, 이, 삼. 숫자가 늘어나는 벽이었다.
“알아.”
“어떻게 알아요?”
“나도 거기서부터 했으니까.”
세아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리안 앞에 섰다. 한참 올려다봤다. 그러다 물었다.
“아줌마, 들어 볼래요?”
리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잠깐 서 있었다. 세아가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거즈 옆을.
“엄마가 맨날 들어요. 밤에. 귀 대고. 아줌마 거라며. 아줌마도 들어 봐요. 자기 건데 한 번도 안 들어 봤잖아요.”
윤지선이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은 무릎을 꿇었다. 매트가 푹신했다. 세아의 키가 그녀 눈높이보다 조금 높았다. 리안은 조심스럽게 몸을 숙였다. 거즈를 피해서, 왼쪽 가슴 옆에 귀를 댔다. 환자복 면이 뺨에 닿았다. 따뜻했다. 열한 살 몸의 열. 병동의 이 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놀이방 창밖 매미 소리. 복도 끝 아이 우는 소리. 그러다 그 밑에서.
툭. 툭. 툭.
분당 여든쯤. 3번 방 유리 너머에서 듣던 육십오보다 빨랐다. 열한 살 아이의 박자였다. 그녀가 키운 것이 이제 이 아이의 박자로 뛰고 있었다. 칠 년 치 사월, 해마다 이십 밀리리터. 그 안에서 자란 것이, 이제 그녀를 모르는 박자로.
리안의 가슴뼈 가운데에서도 무엇인가가 뛰었다. 이십삼 년 된 남의 것이. 가방 속 봉투 안의 엄마가 보낸 것이.
두 박동이 한 귀와 한 가슴 사이에서 겹쳤다. 맞지 않았다. 맞을 필요가 없었다.
세아가 리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쓰다듬는 게 아니라, 그냥 얹었다. 엄마가 밤마다 그랬듯이. 뛰나 볼라고.
“들려요?”
“들려.”
리안은 귀를 떼지 않았다.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