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6,496자)

십이지지 — 열두 달의 문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경찰서 정문 옆에는 등받이가 반쯤 떨어져 나간 나무 벤치가 하나 있었다. 미연은 거기 앉아 승수가 들어간 유리문을 보고 있었다. 들어간 지 사십 분이 지났다.

유리문 위에는 민원실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쉬지 않고 드나들었다. 교통 범칙금을 내러 온 아저씨, 잃어버린 지갑을 찾으러 온 학생, 서류 봉투를 끌어안은 할머니. 미연은 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다가, 그중 누구도 살인 사건 때문에 온 얼굴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승수는 그 일 때문에 들어가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승수가 미연의 공책에 종이 한 장을 끼워 주고 갔다. 열두 칸짜리 표였다. 맨 위에 子, 맨 아래에 亥가 있었고, 칸마다 동물과 달과 시각이 적혀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이거나 봐요, 하고 승수는 말했다. 나오면 물어볼 거예요.

子 쥐 / 대설에서 소한까지 /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 북쪽 / 한겨울 丑 소 / 소한에서 입춘까지 / 새벽 한 시에서 세 시 / 겨울 끝 寅 호랑이 / 입춘에서 경칩까지 / 새벽 세 시에서 다섯 시 / 봄 시작 卯 토끼 / 경칩에서 청명까지 / 새벽 다섯 시에서 일곱 시 / 동쪽 / 한봄 辰 용 / 청명에서 입하까지 / 아침 일곱 시에서 아홉 시 / 봄 끝 巳 뱀 / 입하에서 망종까지 / 아침 아홉 시에서 열한 시 / 여름 시작 午 말 / 망종에서 소서까지 / 낮 열한 시에서 한 시 / 남쪽 / 한여름 未 양 / 소서에서 입추까지 / 낮 한 시에서 세 시 / 여름 끝 申 원숭이 / 입추에서 백로까지 /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 가을 시작 酉 닭 / 백로에서 한로까지 / 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 서쪽 / 한가을 戌 개 / 한로에서 입동까지 / 저녁 일곱 시에서 아홉 시 / 가을 끝 亥 돼지 / 입동에서 대설까지 / 밤 아홉 시에서 열한 시 / 겨울 시작

미연은 자기 띠부터 찾았다. 2004년생, 원숭이띠. 연주가 甲申이었으니 申이 원숭이였다. 그건 알고 있었다. 엄마는 1971년 1월생인데 늘 자기가 돼지띠라서 먹을 복이 있다고 했다. 미연은 엄마 명식의 연주를 떠올렸다. 庚戌. 戌은 개였다.

미연은 공책을 들여다보다가 혼자 소리 내어 웃었다. 지나가던 순경이 벤치 쪽을 힐끔 보았다. 미연은 얼른 입을 막았다. 경찰서 앞에서 혼자 웃는 사람은 수상해 보일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승수의 시주를 찾았다. 乙卯. 卯는 토끼, 새벽 다섯 시에서 일곱 시. 승수는 새벽 다섯 시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부지런하셨다던 그 시각이 토끼 칸에 들어가 있었다. 미연은 근거 안 보임 둘째 줄 옆에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부지런한 게 아니라 토끼 시간에 태어난 것.

미연 자신은 오후 한 시 반이었다. 未, 양. 미연은 양의 시간에 태어났다. 순한 양이라고 적으려다 지웠다. 그건 뛰는 거였다.

*

화장실에 가려고 민원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복도 끝 형사과 쪽 계단참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하나는 정우였다. 회색 후드 티셔츠 차림에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다른 하나는 미연이 할머니 밭에서 본 사람이었다. 정우의 아버지, 서울에서 내려온 김영수였다. 오늘은 짙은 남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미연은 복도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췄다.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영수가 정우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아빠가 변호사 붙일게. 제일 좋은 사람으로.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는 것만 말해.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아는 거 다 말했어요.”

“그래. 잘했어.”

영수는 정우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 손이 아들의 어깨 위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런데 얼굴은 아들 쪽이 아니라 계단 아래 창문 쪽을 보고 있었다. 정우가 아버지 얼굴을 따라가려다 그만두었다.

“아버지.”

“응.”

“그날 서울 가셨죠? 이장님이랑 밭에서 나가시고.”

“그럼. 바로 올라갔지. 밤길에.”

“그럼 됐어요.”

정우가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영수는 아들의 등이 형사과 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았다가, 아무것도 누르지 않고 다시 넣었다. 미연이 서 있는 복도 쪽으로 돌아섰을 때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아, 밭에 있던 아가씨.”

“안녕하세요.”

“우리 어머니 일 도와주신다고. 고마워요.”

영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밭둑에서 어머니에게 우는 소리를 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었다. 영수는 미연을 지나쳐 민원실을 빠져나갔고, 유리문 밖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경찰서 마당이 금연 구역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도로 집어넣었다.

미연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손을 오래 씻었다. 아무것도 이상한 게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걱정했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확인했다. 그런데 손을 씻는 내내 영수가 창문 쪽을 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르는 느낌은 근거가 아니었다. 미연은 그 느낌을 공책에 적지 않았다.

*

승수가 나온 건 들어간 지 두 시간 가까이 지나서였다. 무릎을 짚고 계단을 내려오는 걸음이 조금 느렸다.

“오래 걸렸네요.”

“똑같은 걸 세 번 물어보더라고요. 대답이 바뀌나 보려고.”

“바뀌었어요?”

“세 번째엔 절 스님 법명을 잘못 댔어요.”

“선생님!”

“고쳐서 다시 댔어요. 형사님이 웃더라고요.”

둘은 경찰서 맞은편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점심때가 지나 손님이 없었다. 국밥이 나오기도 전에 승수가 손을 내밀었다. 미연은 공책을 건넸다. 승수는 열두 칸 표 옆에 미연이 적어 놓은 글씨를 하나씩 읽었다. 토끼 시간 부분에서 승수가 크게 웃었다.

“이건 근거 보임 칸으로 옮겨도 되겠네요.”

“그럼 둘째는 취소예요?”

“아니요. 어머니가 부지런하셨다는 말에는 여전히 근거가 없어요. 토끼 시간이라는 것만 근거가 있고.”

“엄마는 개띠예요. 맨날 돼지띠라고 했는데.”

“1월 생이시지요?”

“17일이요.”

“띠는 설날이 아니라 입춘에 바뀌어요. 명리에서 한 해의 시작은 양력 2월 4일 무렵의 입춘이에요. 그 전에 태어나면 앞 해의 띠지요. 어머님은 1971년에 태어나셨지만, 입춘 전이라 사주로는 1970년 경술년, 개띠예요.”

“엄마한테 말해도 돼요?”

“먹을 복이 줄어든다고 서운해하시면 미연 씨 책임이에요.”

미연은 엄마가 그 말을 듣고 지을 얼굴을 상상하다 말았다. 반찬통을 하나 덜 보낼 것 같았다.

국밥이 나왔다. 승수는 숟가락을 들지 않고 표의 둘째 줄, 달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가 중요해요. 지지의 달은 우리가 쓰는 1월, 2월이 아니에요. 절기로 끊어요. 寅월은 입춘부터 경칩 전까지, 양력으로 치면 2월 초에서 3월 초. 이걸 모르면 월주가 틀려요. 그래서 2월 3일생과 2월 5일생이 같은 2월인데 월주가 다를 수 있지요.”

“그래서 만세력을 써야 하는 거네요.”

“계산은 기계가 해도 돼요. 무엇을 계산했는지는 알아야 하고요.”

“띠, 달, 시각. 지지는 시간을 세는 글자네요.”

“해도 달도 날도 시도 다 이 열두 글자로 세요. 그래서 미연 씨 명식 아래 줄의 申은 해를, 酉는 달을, 子는 날을, 未는 시를 세는 거예요. 같은 열두 글자인데 자리마다 세는 단위가 달라요.”

미연은 자기 명식 아래 줄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申, 酉, 子, 未. 원숭이, 닭, 쥐, 양. 동물원 같았다.

“동물들은 진짜 성격하고 상관있어요? 원숭이띠는 꾀가 많다, 그런 거.”

“그건 나중에 붙은 이야기가 많아요. 명리에서 지지를 읽을 때는 동물보다 계절과 오행을 먼저 봐요. 子는 쥐가 아니라 한겨울의 물이고, 午는 말이 아니라 한여름의 불이에요.”

승수가 가방에서 『연해자평』 묶음을 꺼냈다. 「오행생극부」라는 글의 첫머리였다.

大哉干支,生物之始,本乎天地,萬象宗焉。有陰陽變化之機,時候淺深之用;故,金木水火土無正形,生剋制化理取不一。

승수가 낮게 읽었다. 대재간지, 생물지시, 본호천지, 만상종언. 유음양변화지기, 시후천심지용. 고, 금목수화토무정형, 생극제화리취불일.

“크도다, 간지여. 만물이 생겨나는 시작이 하늘과 땅에 뿌리를 두어 온갖 형상이 이를 따른다. 음양이 바뀌는 기틀과, 때에 따라 깊고 얕게 쓰이는 작용이 있다. 그러므로 금목수화토에는 정해진 형상이 없고, 생하고 극하고 누르고 바뀌는 이치도 한 가지로만 취하지 않는다.”

“정해진 형상이 없다.”

미연이 그 말을 따라 했다.

“쥐가 쥐가 아니라는 거네요.”

“시후천심. 같은 글자도 때에 따라 깊이가 달라요. 子가 한밤 열두 시에 있으면 깊은 물이고, 子월이면 꽁꽁 언 물이에요. 子가 연지에 있으면 그 해 전체의 물이고요. 글자 하나를 동물 하나로 묶어 두면 이 다른 깊이를 다 놓쳐요.”

*

국밥 그릇이 반쯤 비었을 때 승수가 미연의 공책 표 아래에 세 줄을 더 썼다.

寅 申 巳 亥 계절이 시작하는 네 글자 子 午 卯 酉 계절의 한가운데 네 글자 辰 戌 丑 未 계절이 끝나는 네 글자

“열두 글자를 이렇게 셋으로 나눠 봐요. 봄이 寅에서 시작해서 卯에서 한창이고 辰에서 끝나요. 여름은 巳에서 시작해 午에서 한창, 未에서 끝나고요. 가을은 申酉戌, 겨울은 亥子丑. 계절마다 시작과 한가운데와 끝이 있어요.”

“그럼 저는 酉월이니까 가을 한가운데. 엄마는 丑월, 겨울 끝. 선생님은 午월, 여름 한가운데.”

“그 세 무리를 하나씩 따로 배울 거예요. 시작하는 글자는 움직이고, 한가운데 글자는 순하고 진하고, 끝나는 글자는 거두어 담아요. 다음 시간부터 하나씩.”

승수가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경찰서에서 두 시간을 보낸 사람치고는 얼굴이 너무 멀쩡해서, 미연은 오히려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子 午 巳 亥 넷은 조금 이상해요.”

승수가 표의 그 네 칸에 점을 찍었다.

“순서로 따지면 子는 양, 丑은 음, 寅은 양, 이렇게 번갈아 가요. 그런데 子와 午는 순서로는 양인데 쓰일 때는 음으로, 巳와 亥는 순서로는 음인데 쓰일 때는 양으로 보는 학설이 있어요. 몸과 쓰임이 다르다고 해서 체용이라고 불러요.”

“처음 배울 때는 午가 양의 화라고 하셨잖아요.”

“그땐 순서로 말한 거예요. 몸은 양이고 쓰임은 음이라는 거지요. 둘 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느 자리에서 어떤 쓰임으로 말하는지는 밝혀야 해요. 안 밝히고 섞으면 그때부터 아무 말이나 할 수 있게 돼요.”

미연은 공책에 子午巳亥, 체용이라고 적고 그 옆에 별표를 쳤다. 나중 목록에도 하나를 보탰다.

“이걸로 사람 성격 말하는 사람들은 체로 말하는지 용으로 말하는지 밝혀요?”

“대개는 안 밝히지요.”

미연은 문득 도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단톡방에 피 볼 살이 둘이라고 적은 사람. 그 사람은 무엇으로 말했는지 밝힌 적이 없었다.

*

국밥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걷는 동안, 미연은 승수가 낸 숙제를 했다. 이름만 아는 유명인들의 월지를 계절별로 나누는 숙제였다. 승수가 준 인물 표를 보며 미연은 걸으면서 소리 내어 셌다.

“이순신 辰월, 늦봄. 니체 戌월, 늦가을. 윤동주 子월, 한겨울. 먼로 巳월, 초여름. 엘비스 丑월, 겨울 끝. 아인슈타인이랑 고흐는 둘 다 卯월, 한봄.”

“계속.”

“세종 巳월, 초여름. 유관순 子월. 김구 申월, 가을 시작. 헬렌 켈러 午월, 한여름. 정주영 亥월, 겨울 시작.”

정류장 의자에 앉았을 때 미연은 계절별로 나눈 이름들을 내려다보았다. 겨울 칸이 제일 길었다. 그 칸에는 시를 쓴 사람과 만세를 부른 사람과 공장을 세운 사람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들끼리 닮은 점이 있어요?”

“찾아보면 찾아져요. 찾으려고 하면요.”

“찾으면 안 돼요?”

“찾기 전에 어떻게 찾을지를 먼저 정해요. 그렇지 않으면 미연 씨는 맞는 것만 세게 돼요.”

버스가 오지 않았다. 시골 정류장의 시간표에는 다음 차가 사십 분 뒤라고 적혀 있었다. 미연은 공책을 덮고 기지개를 켰다.

“형사님은 뭐 물어보셨어요? 똑같은 거 세 번 말고.”

“어제 저녁 일곱 시부터 자정까지. 이장님과 말다툼한 일. 정우 씨를 언제부터 알았는지. 그리고 생일.”

“생일이요?”

“알리바이 확인하려면 인적 사항이 필요하다고 받아 적더라고요. 연월일에, 태어난 시까지.”

“시까지요?”

“그건 내가 그냥 말해 줬어요. 새벽 다섯 시라고.” 승수가 정류장 너머 산 쪽을 보았다. “받아 적고 나서 한참을 그 종이를 보더라고요. 아마 오늘 밤에 내 사주를 뽑아 볼 거예요.”

“형사님이요?”

“반쯤은 믿는 사람이에요. 도해 원장 종이를 접어서 버리지 않던 거 봤잖아요.”

미연은 거북바위 위에서 오 형사가 접은 종이를 안주머니에 넣던 손을 떠올렸다. 그 종이는 지금도 거기 있을 것이었다.

“형사님이 선생님 사주에서 뭘 찾을까요?”

“토끼 시간에 태어났다는 거.”

미연은 웃었다. 승수도 웃었다. 그런데 승수의 웃음은 금방 걷혔다.

“정우 씨는 아직 안에 있어요. 나보다 훨씬 오래 붙잡혀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변호사 붙여 준대요. 복도에서 들었어요.”

“그래요.”

승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무릎을 문질렀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들어올 때까지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연은 버스에 오르며 경찰서 쪽을 돌아보았다. 정문 옆 벤치는 비어 있었고, 그 앞에 누가 피우려다 만 담배 한 개비가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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