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6,704자)

임수와 계수 — 강과 이슬비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엄마는 아침 아홉 시에 숙소 대문을 두드렸다. 첫 기차를 타고 대전에서 택시를 탔다고 했다. 한 손에는 보냉 가방, 다른 손에는 핸드백, 어깨에는 장바구니가 걸려 있었다. 장바구니 안에서 반찬통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짐 싸.”

인사보다 그 말이 먼저였다. 엄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장판에 손바닥을 대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사람 자는 방이야? 찜질방이지. 아주머니! 여기 보일러 몇 도로 해 놨어요?”

숙소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뭐라고 대답했고, 엄마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보냉 가방을 열어 반찬통을 하나씩 꺼내 방바닥에 늘어놓았다. 멸치볶음, 장조림, 깻잎, 김치 두 가지. 미연은 그 반찬통을 보다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짐을 싸라는 사람이 반찬부터 풀고 있었다.

“엄마, 나 안 가.”

“사람이 죽었어. 너 있는 동네에서.”

“알아.”

“아는데 왜 여기 있어? 학원은 안 가고, 전화는 안 받고, 산에서 사주를 배워? 너 엄마가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 밤새 뉴스 보면서.”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지다가 갑자기 꺾였다. 엄마는 반찬통 뚜껑을 하나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손이 떨려서 뚜껑이 제자리에 안 맞았다.

미연은 그 손을 보았다. 엄마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언제부터 저랬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 괜찮아.”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엄마가 봐.”

엄마의 눈이 방구석에 놓인 공책에 멎었다. 미연이 손을 뻗기 전에 엄마가 먼저 집었다. 몇 장을 넘기던 엄마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맨 뒷장이었다.

“근거 안 보임. 마흔둘까지 셌다는 말, 하나. 어머니가 부지런하셨다는 말, 둘. 아인슈타인의 꽃집, 내 거.” 엄마가 고개를 들었다. “이게 뭐야?”

“수업 노트.”

“아인슈타인한테 꽃집을 차려 줬어?”

“……응.”

엄마는 공책을 들고 한참 미연을 보다가,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그 사람 만나야겠다. 어디 있어.”

*

승수는 등산로 입구 카페에 있었다. 미연이 오늘은 거기서 만나자고 문자를 보내 두었다.

카페는 처음으로 꽉 차 있었다. 테이블 여섯 개에 카메라 가방을 멘 기자들과 사복 차림의 경찰들이 섞여 앉아 있었고, 계산대 앞에는 줄이 서 있었다. 한결은 앞치마 끈이 풀린 것도 모르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미연과 눈이 마주치자 한결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이 년 만에 처음이에요.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일로요.

창가 구석 자리에 승수가 앉아 있었다. 엄마는 승수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공책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미연이 엄마예요.”

“승수라고 합니다.”

“우리 애한테 뭘 가르치세요?”

“명리를 가르칩니다.”

“사주요.”

“네.”

“돈은요?”

“안 받습니다.”

“그게 더 수상하네요.”

승수가 웃었다. 엄마는 웃지 않았다.

“우리 애 지금 취업 준비해야 할 때예요. 스물두 살이에요. 일 년 늦으면 일 년 뒤처지는 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산에서 글자를 외우고 있어요. 사람 죽은 동네에서.”

“어머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엄마의 눈썹이 올라갔다. 싸우러 온 사람에게 맞다고 하면 갈 곳이 없어진다. 미연은 그 표정을 잘 알았다.

“맞으면 보내 주세요.”

“제가 붙잡고 있는 게 아닙니다. 미연 씨가 정하면 따르겠습니다. 어머님이 데려가셔도 저는 말리지 않습니다.”

엄마가 미연을 보았다. 미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으려고 테이블 밑에서 두 손을 꽉 쥐었다.

“좋아요.” 엄마가 핸드백에서 볼펜을 꺼냈다. “그럼 내 것도 봐요. 맞히면 인정할게요.”

엄마는 카페 냅킨을 펴서 숫자를 적었다. 1971년 1월 17일, 양력. 그 아래에 시는 모름이라고 적고 밑줄을 그었다.

“이야기는 안 할 거예요. 미연이가 그러던데, 이야기 먼저 들으면 맞는 글자만 보인다면서요.”

미연은 엄마를 보았다. 그 말을 엄마한테 한 적이 없었다. 수아한테 한 말이었다. 수아가 엄마한테까지 전했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미연이 지난밤 단톡방에 수아와 주고받은 걸 보았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미연의 얼굴에서 읽었을 수도 있었다. 엄마는 늘 그런 식으로 알았다.

승수가 냅킨을 미연 쪽으로 밀었다.

“미연 씨가 해 봐요. 첫째 줄, 둘째 줄.”

“제가요?”

“어머님 것이니까요.”

미연은 휴대전화로 만세력을 열었다. 손가락이 떨려서 생년을 두 번 잘못 눌렀다. 화면에 세 기둥이 떴다. 미연은 그것을 냅킨에 옮겨 적었다.

庚 己 壬 戌 丑 寅

“일간은…….”

미연이 멈췄다. 셋째 칸 윗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승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壬이에요.”

“그렇네요.”

“임수요. 큰 강, 큰 물. 저랑 같아요.”

“그렇네요.”

“선생님, 숲에서 엄마 목소리가 갑목이라고 하셨잖아요.”

승수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엄마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뭐가 갑목이야?”

“엄마 목소리요. 선생님이 전화 듣고 엄마 목소리가 갑목이라고 했어요. 곧게 뻗는 큰 나무.”

“그게 틀렸다는 거야?”

“엄마는 나랑 같은 큰 물이래.”

엄마가 냅킨을 들여다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미연은 공책을 펼쳐 맨 뒷장을 짚었다. 하나, 둘. 그 아래가 비어 있었다. 승수가 먼저 말했다.

“셋이네요.”

“셋이에요.”

“약속대로 하면, 미연 씨는 이제 그만둬도 돼요.”

카페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졌다. 커피 기계가 김을 뿜는 소리, 기자 하나가 통화하는 소리, 한결이 주문을 되묻는 소리가 전부 유리창 너머 일처럼 들렸다. 엄마만 영문을 모르고 미연의 얼굴을 살폈다.

“뭘 그만둬? 무슨 약속인데?”

“처음 만난 날 선생님이 그랬어. 자기가 근거 없는 말을 하면 내가 짚으래. 셋 짚으면 수업 그만둬도 된대.”

엄마의 얼굴이 이상하게 풀렸다. 데려갈 이유가 저절로 굴러들어 온 얼굴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이유를 바로 집어 들지 않았다. 대신 냅킨 위의 癸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큰 물이 뭔데. 설명해 봐. 그만두기 전에.”

*

승수는 가방에서 『적천수』를 꺼냈다. 나무와 불과 흙과 쇠를 지나 마지막에 남은 물의 구절이었다.

壬水汪洋,能洩金氣,剛中之德,周流不滯。

“임수왕양, 능설금기, 강중지덕, 주류불체. 임수는 넓고 넘실대며, 쇠의 기운을 흘려보낼 줄 안다. 굳센 가운데 중심의 덕이 있고, 두루 흘러 막히지 않는다.”

“쇠의 기운을 흘려보낸다는 게 뭐예요?”

엄마가 물었다. 승수가 이번에는 엄마 쪽을 보고 설명했다.

“금생수예요. 쇠가 물을 낳지요. 그런데 큰 물은 그 쇠의 기운을 받아서 고여 있지 않고 흘려보내요. 어머님 연간에 庚이 있어요. 쇠예요. 미연 씨는 酉월, 쇠가 가장 단단한 가을 한가운데 태어났고요. 두 분 다 쇠를 곁에 둔 큰 물이에요.”

“그럼 둘이 똑같은 거예요?”

“계절이 달라요. 미연 씨는 가을 물, 어머님은 丑월, 한겨울이 끝나 가는 때의 물이에요. 얼음이 아직 다 안 풀린 강이지요. 같은 壬이라도 가을 강과 겨울 강은 흐르는 모양이 달라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직 미연 씨도 저도 다 못 읽습니다. 셋째 줄을 배워야 해요.”

엄마는 냅킨 위의 丑을 손가락으로 덮었다가 떼었다.

“얼음 낀 강이라.”

“그건 비유예요. 근거는 丑 한 글자고요.”

“목소리 큰 것도 근거 있어요? 아까 갑목이라고 했다던데.”

“그건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셋이 된 거고요. 목소리는 글자가 정하지 않아요. 어머님이 큰 소리를 내시는 건 어머님 삶이 그렇게 만든 거지요.”

엄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승수를 위아래로 훑었다.

“선생님은 뭔데요? 일간.”

“癸입니다. 음의 물. 비나 이슬처럼 작은 물이요.”

승수가 책장을 한 장 넘겼다.

癸水至弱,達於天津。

“계수지약, 달어천진. 계수는 지극히 여리지만, 하늘의 나루에까지 이른다. 은하수를 하늘의 강으로 보고 거기 닿는 나루를 그렇게 불렀어요. 제일 작은 물이 땅에 스몄다가 하늘로 올라 은하수까지 닿는다는 그림이에요.”

엄마가 미연을 보고 턱으로 승수를 가리켰다.

“이슬비가 큰 강 목소리를 갑목이라고 했다는 거지.”

미연은 웃음을 참으려다 실패했다. 승수도 웃었다. 엄마만 웃지 않았는데, 입꼬리 한쪽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

그때 옆 테이블에서 누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소리 내어 읽었다. 기자인 듯한 젊은 남자였다.

“철학관 원장이 또 올렸네.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도 壬水 일간이었다. 물이 살기를 품으면 걷잡을 수 없다. 이거 기사에 써도 되나.”

미연이 그 테이블을 돌아보았다. 테드 번디. 1970년대 미국에서 젊은 여성들을 살해한 사람이었다. 자백한 것만 서른 명이었다. 어젯밤 승수의 인물 표에서 그 이름을 보고 미연은 표를 덮었었다. 피해자들의 이름은 표에 없었다. 표에는 가해자의 생일만 있었다.

미연은 테이블 위의 냅킨을 내려다보았다. 엄마의 셋째 칸, 壬寅. 어젯밤 덮었던 표에서 테드 번디의 셋째 칸에도 같은 두 글자가 있었다. 미연의 손이 냅킨 위에서 멎었다.

엄마가 그 손을 보았다.

“왜. 뭔데.”

“아니야.”

“말해. 이야기 먼저 들으면 안 된다며. 근데 너는 지금 뭘 봤잖아.”

미연은 숨을 골랐다.

“엄마 일주가 壬寅이야. 그 사람이랑 똑같아. 테드 번디.”

엄마의 얼굴이 하얘졌다.

“내가 살인마랑 같다고?”

“세종대왕이랑도 일간이 같아. 정우 씨랑도 같고, 나랑도 같아.”

“그럼 나는 어느 쪽인데?”

엄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작아졌다. 미연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정말로 묻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답을 정해 놓고 묻는 게 아니었다.

“엄마가 사는 쪽이지. 글자가 정하는 게 아니래. 같은 글자로 태어나서 한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은 한글을 만들었어. 그 차이는 글자에 없어.”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카페 문이 열리고 닫히며 찬바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그거 일주일 배워서 아는 거야?”

“여드레.”

엄마가 웃었다. 이번에는 진짜 웃음이었다. 웃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엄마가 미연의 손을 잡았다. 엄마 손이 차가웠다. 미연은 엄마 손을 잡은 채 옆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거 쓰실 거면 이것도 같이 써 주세요. 壬水 일간에는 세종도 있어요. 한글 만든 세종대왕이요. 일주가 壬辰이에요. 그리고 찰리 채플린도 있어요. 무성 영화에서 콧수염 붙이고 지팡이 짚던 희극 배우요. 채플린 일주는 壬戌이에요.”

기자가 미연을 쳐다보았다.

“壬戌이면…… 그 청년이랑 같은 거 아니에요? 단톡방에 돌던 그거.”

“네. 같아요. 일주가 똑같아요.”

카페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한결이 커피를 내리다 말고 이쪽을 보았다.

“같은 일주에서 세상을 웃긴 사람이 나왔어요. 같은 일간에서 한글을 만든 사람도 나왔고, 사람을 서른 명 넘게 죽인 사람도 나왔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도 壬寅이에요. 테드 번디랑 일주가 똑같아요. 우리 엄마는 오늘 아침에 반찬 다섯 통 싸 들고 첫 기차 탔어요.”

엄마가 미연의 손등을 꼬집었다. 아팠다. 미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글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아요. 그걸 기사에 쓰시면 쓰신 분이 근거 없는 말을 옮기는 거예요.”

기자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무엇을 적었는지 미연은 알 수 없었다.

승수가 미연을 보았다. 아까 엄마에게 읽어 준 구절의 끝을 다시 짚었다.

“쇠의 기운을 흘려보낼 줄 안다. 미연 씨는 쇠가 가장 단단한 가을 한가운데의 물이에요. 그 날 선 기운을 받아서 어디로 흘려보낼지, 그게 미연 씨 물음일 거예요.”

미연은 방금 기자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날 선 말이었다. 그런데 그 날이 누구를 베려고 선 게 아니었다. 막힌 데를 뚫으려고 선 거였다.

“두루 흘러 막히지 않는다.”

미연이 따라 읽었다. 엄마가 그 말을 입속으로 한 번 더 굴렸다.

*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엄마는 반찬 이야기만 했다. 장조림은 사흘 안에 먹고, 김치는 숙소 냉장고에 넣고, 멸치는 상하지 않으니 천천히 먹으라고. 버스가 오는 쪽을 보다가 엄마가 말했다.

“같이 가자.”

“나 여기 좀 더 있을게.”

“셋 짚었다며. 그만둬도 된다며.”

“그만둬도 되는 거지,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니야. 안 그만둘 거야.” 미연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엄마, 이건 내가 정한 거야. 처음으로.”

엄마는 미연을 오래 보았다. 그 눈이 미연의 얼굴 어딘가에서 무엇을 찾는지 미연은 알 수 없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들어왔다.

엄마가 핸드백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미연 손에 쥐여 주었다. 노량진 학원 영수증이었다.

“환불 안 된다는 거 거짓말이야. 첫 주 안 나갔으면 반은 돌려준대. 엄마가 전화해 볼게.”

“엄마.”

“그 돈으로 너 여기 방값이나 내. 찜질방 말고 보일러 제대로 되는 데로 옮기고.”

엄마는 버스에 올랐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도 손을 흔들지 않았다. 대신 창에 이마를 대고 미연을 보았다. 버스가 떠나는 동안 미연은 영수증을 접어 공책 맨 뒷장에 끼웠다. 근거 안 보임 셋 바로 아래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승수였다.

“어머님 가셨어요?”

“네.”

“방금 오 형사가 전화했어요. 내일 경찰서에 좀 와 달래요. 참고인으로요. 정우 씨도 다시 부른대요.”

“같이 가도 돼요?”

“밖에서 기다리는 건 돼요.”

“그럼 기다릴게요. 기다리면서 다음 거 배워요.”

전화 너머에서 승수가 짧게 웃었다.

“다음은 지지예요. 열두 글자. 미연 씨 엄마의 丑도, 정우 씨의 戌도 거기 있어요.”

미연은 전화를 끊고 산 쪽을 올려다보았다. 국사봉 위로 구름 한 덩이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슬비가 될지 큰비가 될지 아직 아무도 몰랐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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