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728자)

경금과 신금 — 바위와 보석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아침이 되자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목마다 노란 줄이 쳐져 있었다.

마을은 조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집 앞 골목에 둘셋씩 모여 서서 계곡 쪽을 보다가, 경찰차가 지나가면 입을 다물었다가, 차가 지나가면 다시 고개를 맞댔다. 미연은 그 사이를 지나 할머니 집으로 갔다. 밤새 단톡방 글이 몇백 개로 불어나 있었는데, 그중 절반에 정우라는 이름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 집 마당에는 경찰 두 명이 있었다. 헛간 문이 열려 있었고, 괭이와 쇠스랑과 삽이 비닐에 하나씩 싸여 마당에 늘어서 있었다. 할머니는 헛간 문턱에 서서 마지막 하나를 두 손으로 붙들고 있었다. 나무 자루가 손때로 반들반들한 낫이었다. 날에는 녹이 군데군데 슬어 있었다.

“이건 영감 거야.”

“어머님, 마을 농기구 전부 확인하는 거예요. 확인 끝나면 돌려드려요.”

말하는 사람은 마흔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복 차림의 남자였다. 점퍼 가슴께에 경찰서 출입증이 매달려 있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서두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낫을 놓지 않았다.

“이 날 봐. 이가 다 빠졌어. 이걸로 뭘 해. 무청도 못 베.”

“그래도 확인은 해야 돼요, 어머님.”

할머니의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 형사는 낫을 받아 비닐에 넣었다. 비닐 너머로 자루 끝이 보였는데, 거기 칼로 새긴 듯한 글자 하나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미연은 그게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수 없었다.

“정우는요?”

미연이 물었다. 할머니가 그제야 미연을 보았다.

“새벽에 데려갔어. 참고인이라나 뭐라나. 이장이랑 계곡 쪽으로 걸어가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대.”

“정우가 뭐래요?”

“이장이 불러서 따라갔대. 할 말 있다고. 얘기하다 싸우고 저 혼자 먼저 내려왔대. 그게 다래.”

할머니는 빈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 낫 자루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형사가 미연을 돌아보았다.

“학생은 누구예요?”

“산에서 공부하는 사람이요. 어제 여기서 무 뽑았어요.”

“아, 어제 밭에 있던. 그럼 거북바위 그분이랑 같이 있던 분이네.” 형사가 수첩을 펼쳤다. “어제 이장님이랑 그분이 말다툼이 좀 있었다면서요.”

미연은 입을 벌린 채 굳었다. 형사는 펜 끝으로 수첩을 두 번 두드렸다.

“그분 지금 어디 계세요?”

*

승수는 거북바위에 있었다. 형사와 미연이 올라왔을 때 눈을 감고 있었고,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눈을 떴다. 형사는 숨이 차서 한참 무릎을 짚고 서 있다가 출입증을 내밀었다.

“오성태 경위입니다. 몇 가지만 여쭐게요.”

“앉으세요. 숨부터 고르시고.”

오 형사는 바위 끝에 걸터앉아 어제 저녁 일곱 시부터 자정까지 어디 있었느냐고 물었다. 승수는 해 지고 절 마당에 있다가 숙소로 내려가 잤다고 했다. 절 스님이 봤을 거라고도 했다. 오 형사는 받아 적었다. 그리고 수첩을 덮더니 점퍼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건 수사랑 상관없이 그냥 여쭙는 건데요.”

종이를 펴자 여덟 칸짜리 표가 나왔다. 칸 세 개가 채워져 있었다. 辛巳, 戊戌, 壬戌. 시주 칸은 비어 있었다. 표 아래에 빨간 펜으로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괴강, 백호. 피를 볼 팔자.

“도해 원장이 마을 단톡방에 올린 겁니다. 김정우 씨 거예요. 마을 사람 절반이 이걸 돌려 봤어요. 선생님이 이쪽 전문가시라고 들었는데, 진짜 이런 게 있습니까? 살인을 하는 사주.”

승수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그 질문엔 답하지 않겠습니다.”

“왜요? 그냥 의견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이 조서 옆에 붙어 다닐 거니까요. 있다고 하면 그게 증거처럼 쓰이고, 없다고 하면 거북바위 양반이 감싼다고 하겠지요.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는 형사님이 증거로 찾으세요. 글자는 그걸 못 찾아요.”

“그러니까 없다는 거죠?”

“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오 형사가 웃었다. 웃음 끝이 조금 굳어 있었다.

“선생님도 어제 이장님이랑 언성 높이셨잖아요. 그 일로 다들 선생님 얘기도 해요. 남의 동네 일에 왜 끼어드시냐고.”

“알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 바람이 지나갔다. 미연은 그 바람이 지나가는 동안 종이 위의 빨간 글씨를 보았다. 피를 볼 팔자. 네 글자가 너무 쉽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읽혔다.

미연이 입을 열었다.

“형사님, 하나만 보여 드려도 돼요?”

오 형사와 승수가 동시에 미연을 보았다. 미연은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손이 떨려서 몇 장을 한꺼번에 넘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어젯밤 잠이 안 와서, 승수가 나중에 보자며 넘겨준 인물 표를 붙들고 있다가 찾아낸 두 줄이었다.

乙 庚 庚 丙 巳 辰 午 子

戊 甲 庚 ? 寅 子 午 ?

“둘 다 일주가 庚午예요. 셋째 칸, 위아래 두 글자가 똑같아요.”

“그래서요?”

“위는 이순신이에요. 임진왜란 때 바다를 지킨 충무공이요. 아래는 스탈린이에요. 러시아 남쪽 캅카스 산맥 아래의 작은 나라 조지아에서 태어나, 소련을 삼십 년 가까이 다스린 독재자요. 숙청으로 수십만 명을 처형하고, 수용소와 강제 이주와 기근으로 수백만 명을 죽음에 몰아넣은 사람이요.”

오 형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같은 날 글자에서 바다를 지킨 장수도 나오고, 사람을 수백만 명 죽인 독재자도 나왔어요. 글자가 사람을 죽이는 거면 둘 다 죽였어야 하잖아요. 글자가 사람을 살리는 거면 둘 다 살렸어야 하고요.”

미연은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들이켰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엄마한테 대들 때처럼.

“정우 씨 일주는 壬戌이래요. 저도 아직 거기까지 못 배웠어요. 근데 이건 알아요. 같은 일주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 빨간 글씨는 근거가 안 돼요.”

오 형사는 한참 공책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공책 대신 미연을 보았다.

“학생, 사주 몇 년 배웠어요?”

“일주일이요.”

“일주일.”

오 형사가 웃었다. 이번에는 끝이 굳지 않은 웃음이었다. 형사는 도해의 종이를 다시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버리지는 않았다.

“일주일 배운 학생이 원장보다 낫네. 근데 마을 사람들은 그 종이를 볼 거예요. 학생 공책은 안 보고.”

형사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서 산을 내려갔다. 몇 걸음 가다 돌아보았다.

“선생님, 혹시 나중에 경찰서로 한번 오셔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러지요.”

발소리가 멀어졌다. 미연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빠져서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공책이 무릎에서 미끄러졌다. 승수가 공책을 주워 이순신과 스탈린의 두 줄을 오래 보았다.

“이건 언제 찾았어요?”

“어젯밤에요. 잠이 안 와서요. 선생님이 준 표에서 같은 거 찾다가.”

“좋은 근거였어요.”

“선생님이 답 안 하셔서 제가 한 거예요.”

“알아요. 그래서 좋은 근거였다고요.”

*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승수가 『적천수』를 펼쳤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느냐고 미연이 물었지만 승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이야말로 이 구절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庚은 양의 금이에요. 바위, 원석, 무쇠, 칼과 도끼. 다듬어지기 전의 단단한 쇠예요. 방위로는 서쪽, 색으로는 흰색, 옛 책의 숫자로는 4와 9, 몸으로는 폐와 대장을 금에 붙여요. 계절로는 가을, 곡식을 베고 거두어들이는 계절이고요.”

“그래서 낫이네요.”

미연은 말해 놓고 입을 다물었다. 비닐에 싸여 마당에 놓여 있던 낫이 떠올랐다.

庚金帶煞,剛強為最。

“경금대살, 강강위최. 경금은 살을 띠고, 굳세고 강하기로는 으뜸이다.”

미연이 고개를 들었다.

“살이요? 피 볼 살 할 때 그 살이에요?”

“글자는 같아요. 煞. 그런데 이 구절에서 살은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에요. 베고 끊고 누르는 기운이에요. 가을에 낫이 벼를 베듯이, 쇠가 가진 결단하는 힘을 그렇게 불러요. 명리에서는 나를 누르는 힘을 칠살이라고도 하고, 기운이 센 몇 가지 일주를 괴강이니 백호니 하는 이름으로도 불러요. 이름이 무서우니까 사람들이 그 이름을 피와 바로 이어 붙이지요.”

“도해 원장처럼요.”

“이 구절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庚이 다 살을 띠었어요. 이순신도, 스탈린도, 내 월간의 庚도.” 승수가 자기 명식의 庚을 가리켰다. “내 표에도 庚午가 있어요. 월주에.”

미연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들은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그럼 선생님도 피 볼 팔자예요?”

“도해 원장한테 물어보면 그렇다고 하겠지요. 나는 오늘 아침에 형사한테 알리바이를 댔고요.”

미연은 웃음이 새어 나와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웃으면 안 되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웃음이 났고, 웃고 나니 아침부터 어깨에 얹혀 있던 무언가가 조금 내려갔다.

“庚을 생활로 옮기면, 결단하고 경계를 긋고 흐트러진 걸 정리하는 힘으로 풀어 봐요. 잘 쓰이면 해야 할 결정을 미루지 않지요. 지나치면 서둘러 잘라 내고, 남의 사정을 끝까지 안 듣고요. 그리고 庚은 丁을 만나야 쓸모가 생겨요. 대장간 화덕에서 달궈야 연장이 되니까. 갑목 수업 때 본 벽갑인정, 庚이 甲을 쪼개 丁을 붙이는 그림도 같은 이야기예요.”

“쇠가 사람을 베는지 벼를 베는지는 쇠가 정하는 게 아니네요.”

“그 말은 미연 씨가 오늘 형사한테 한 말이에요.”

*

오후 늦게 미연은 다시 할머니 집에 들렀다. 할머니는 텅 빈 헛간 앞 평상에 앉아 있었다. 무청 더미 위에 얹어 두었던 서류 봉투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미연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다가, 손가락에서 반지 하나를 빼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가는 금반지였다. 오래 껴서 한쪽이 닳아 얇아져 있었고, 가운데 박힌 작은 돌은 빛을 잃어 뿌옜다.

“영감이 장터에서 사 준 거야. 결혼하고 십 년 만에. 금 한 돈짜리.”

할머니가 그 반지를 미연에게 내밀었다. 미연은 받지 못하고 손바닥 위에 놓인 채로 들여다보기만 했다.

“닦아 줘. 내 손으로 닦으면 눈물이 묻어.”

미연은 마당 수돗가로 가서 반지를 물에 헹궜다. 찬물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동안 반지에 낀 때가 조금씩 풀렸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돌을 문지르자, 뿌옇던 돌이 마당의 저녁빛을 받아 아주 작게 반짝였다.

미연은 그 반짝임을 보다가 아침에 승수가 해 준 다음 구절을 떠올렸다. 庚 다음에 오는 辛, 음의 금. 다듬어진 보석과 가는 금붙이.

辛金軟弱,溫潤而清。

신금연약, 온윤이청. 신금은 무르고 여리지만, 따뜻하고 윤기 있으며 맑다. 승수는 그 무르다는 말을 사람이 약하다는 뜻으로 옮기지 말라고 했다. 다듬어진 것, 섬세한 것, 결이 고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辛은 壬을 반긴다고 했다. 맑은 물에 보석을 씻는다는 그림이었다.

壬. 미연의 일간이었다. 그리고 정우의 일간이기도 했다.

미연은 수돗물을 잠그고 반지를 할머니 손바닥에 돌려놓았다. 할머니는 반지를 끼지 않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우리 정우는 그런 애 아니야.”

“알아요.”

“네가 뭘 알아. 사흘 본 애가.”

“일주일이요.”

할머니가 미연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금방 무너졌다. 할머니는 반지를 쥔 손을 가슴께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미연은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마을 쪽에서 경찰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고, 할머니의 어깨가 그 소리에 한 번 굳었다가 풀렸다.

정우는 해가 진 뒤에 돌아왔다. 순찰차에서 내려 대문까지 걸어오는 동안, 골목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골목을 따라 줄줄이 이어졌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미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미연은 받기 전에 숨을 한 번 골랐다.

“너 지금 어디야. 뉴스에 계룡산 아래 마을 이장이 숨진 채 발견됐대. 경찰이 타살로 본다고. 너 거기 있는 거 아니지?”

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대답이 되었다.

“내일 엄마가 내려간다. 주소 찍어.”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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