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6,476자)
병화와 정화 — 태양과 등불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새벽 다섯 시 십 분에 문자가 왔다. 해 보러 갑시다,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미연은 이불 속에서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병화 수업 때 해 보러 가느냐고 농담한 사람이 자기라는 사실이 떠올랐고, 농담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걸 그 시간에 처음 배웠다. 세수는 생략했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승수는 보온병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태어난 사람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요?”
“어머니가 부지런하셨다고 했잖아요. 물려받았지요.”
“그건 근거 안 보임이에요.”
“둘.”
승수가 순순히 인정하고 보온병 하나를 건넸다. 보리차였다. 미연은 셋까지 하나 남았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단단히 접어 두었다.
어둠 속에서 거북바위까지 오르는 길은 낮보다 짧게 느껴졌다. 발밑만 보고 걸어서였다. 바위에 닿았을 때 동쪽 능선 위로 하늘이 막 묽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남색으로, 남색이 잿빛 섞인 분홍으로 번져 가는 동안 바위의 찬 기운이 바지를 뚫고 올라왔고, 보리차 김이 얼굴 앞에서 흩어졌다.
그리고 구름이 왔다.
능선 위에 길게 깔린 구름이 해가 떠오를 자리를 정확히 덮었다. 하늘은 점점 밝아지는데 해는 보이지 않았다. 미연은 보온병을 든 채 굳었다.
“해가 결근했는데요.”
“해는 출근했어요. 구름 뒤에서 일하고 있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밝잖아요.”
미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로 밝았다. 해가 안 보이는데도 바위의 이끼 색이 하나씩 살아나고, 아래 숲의 나무들이 제 모양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게 丙이에요. 양의 화, 하늘의 해. 해는 한 사람만 비추지 않아요. 두루 비추지요. 구름에 가려도 세상은 밝아지고요. 그래서 병화는 널리 드러내고 퍼지는 모습으로 풀어 봐요. 방위로는 남쪽, 계절로는 여름, 색으로는 붉은색에 짝을 지어요. 옛 책은 숫자로 2와 7을 붙이기도 하고, 몸으로는 심장과 소장을 화에 배속해요. 그건 이런 짝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 두면 돼요.”
“심장이요? 그럼 병화는 심장 튼튼해요?”
“그렇게 바로 건너가면 병원 갈 사람이 줄어들겠지요. 배속은 오래된 분류표예요. 진단표가 아니고요.”
승수가 제본한 종이 뭉치에서 『적천수』의 「천간론」을 펼쳤다. 지난번 나무 수업 때 본 바로 그 장의 다음 구절이었다.
丙火猛烈,欺霜侮雪。
“병화맹렬, 기상모설. 병화는 맹렬해서 서리를 업신여기고 눈을 깔본다.”
“해가 눈을 깔봐요?”
“겨울에 해가 나면 서리부터 녹지요. 그 모습이에요. 병화의 기세가 그만큼 세다는 그림이고, 동시에 겨울 같은 조건에서도 제 빛을 낸다는 말로 읽어요.”
구름 가장자리가 금빛으로 타올랐다. 해는 여전히 안 보였지만 구름 테두리가 그 모양을 그려 내고 있었다.
“잘 쓰이면요?”
“생각을 나누고 사람과 일을 움직이는 모습으로 풀어요. 지나치면 의욕이 앞서서 세부를 놓치고, 혼자 너무 뜨거워지지요.”
“우리 동생이요. 집에서 혼자 콘서트 하는.”
“동생 생일은 알아요?”
“……이번엔 알아요.”
미연이 휴대전화를 꺼내 동생 생일을 찾으려 하자 승수가 손을 저었다.
“그건 숙제로 하고. 미연 씨 표부터 봐요. 미연 씨는 壬이지요. 큰 물. 丙을 만나면 어떤 그림이 될까요?”
미연은 능선 아래 저수지 쪽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해가 닿지 않아 수면이 회색이었다.
“강에 해가 비치는 거요?”
“강휘상영이라는 말이 있어요. 강물과 햇빛이 서로를 비춘다는 뜻이에요. 물은 해를 받아 반짝이고, 해는 물에 비쳐 두 배로 빛나지요. 후대 사람들이 壬과 丙이 만나는 좋은 그림 가운데 하나로 꼽았어요.”
“저 丙 없는데요.”
“원국에는 없지요. 그런데 사람은 원국만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해마다 다른 글자를 만나요. 그 이야기는 순서표 여섯째 줄에서 해요.”
미연은 순서표 여섯째 줄 옆에 작은 해를 하나 그렸다.
그때 구름이 찢어졌다. 해가 능선 위로 한꺼번에 얼굴을 내밀었고, 저수지 수면이 회색에서 금색으로 뒤집혔다. 미연은 보리차를 쏟을 뻔했다. 강휘상영이 정말로 저기 있었다.
“지각이네요.”
“지각해도 해는 해예요.”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 승수가 포스트잇 붙은 종이 두 장을 꺼냈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돌멩이로 눌렀다.
가 乙 戊 丙 戊 未 寅 辰 戌
나 丁 壬 丙 ? 巳 子 午 ?
“둘 다 병화예요. 나는 시를 몰라요. 해 봐요.”
“가는 일간 丙, 월지 寅. 寅은 봄 시작이니까 이른 봄 해. 나는 일간 丙, 월지 子.”
미연이 子에서 멈췄다.
“子는 한겨울이죠? 겨울 해예요. 기상모설. 서리를 깔보는 해.”
“나의 표에서 丙 아래는요?”
“午. 아까 선생님 표에 있던 午, 양의 화. 해가 불 위에 앉아 있어요. 겨울인데 발밑은 뜨거운 거네요.”
“좋아요. 거기까지가 오늘 정확한 말이에요.”
승수가 포스트잇을 떼었다. 가는 스티브 잡스,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애플이라는 컴퓨터 회사를 세운 사람이었다. 나는 윤동주였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나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쓰고, 해방을 반년 앞둔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스물일곱 살로 세상을 떠난 시인이었다.
미연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동주는 별을 썼잖아요. 별이 해예요?”
“별빛은 오히려 丁에 가까운 그림이에요. 작은 빛, 한 점의 빛. 그런데 윤동주의 일간은 丙이에요.”
“그럼 안 맞는 거예요?”
“맞고 안 맞고를 시로 재지 말자는 거예요. 시인이 별을 썼다고 일간이 丁일 이유는 없어요. 그 사람이 무엇을 썼는지는 그 사람의 삶이고, 일간은 그 삶을 읽는 여러 질문 가운데 첫 번째일 뿐이에요.”
미연은 겨울 해, 子월의 丙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한겨울에 태어나 서리를 깔보는 해가 결국 남의 나라 감옥의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글자 위에 겹쳐지려는 걸 애써 떼어 놓았다. 이름을 알고 나면 맞는 글자만 눈에 들어온다는 말이 이번에는 아프게 들렸다.
*
그날 저녁, 승수는 숙소 근처 절 마당으로 미연을 불렀다. 해가 진 뒤였다.
미연은 절 입구에서부터 휴대전화를 흔들며 걸어왔다.
“숙제 했어요. 동생한테 생일이랑 태어난 시간 물어봤어요. 엄마한테 다시 물어봐야 한다고 난리 쳐서 삼십 분 걸렸어요.”
“그래서요?”
“만세력 앱에 넣었더니 일간이 辛이래요.”
“신금이네요. 다듬은 보석.”
“집에서 혼자 콘서트 하는 애가 보석이래요. 병화일 줄 알았는데.”
“콘서트 하는 보석도 있겠지요. 무대 조명 받으면 제일 반짝이는 게 보석이니까.”
“그건 지금 선생님이 뛴 거 아니에요?”
“뛰었네요. 그건 취소할게요.”
미연은 셋째 줄을 셀까 말까 망설이다가, 승수가 먼저 취소했으니 봐주기로 했다. 대신 공책 뒷장의 엄마는 무토, 아빠는 경금, 동생은 병화라고 적었던 줄에 두 줄을 더 그었다. 느낌으로 붙인 이름 셋 가운데 하나가 벌써 틀렸다. 나머지 둘도 생일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다음엔 삼십 분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대웅전 처마 밑에 연등 몇 개가 매달려 있었고, 그중 하나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종이 갓 속에서 작은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처마 끝 단청의 붉은색이 조금씩 살아났다가 가라앉았다. 마당은 어두웠는데 그 등불 아래 한 뼘만 환했다.
“이게 丁이에요. 음의 화. 아침의 해와 같은 불이지만 하는 일이 달라요. 해는 세상을 두루 비추고, 등불은 한 자리를 비추지요. 이 등불 아래에서는 글씨를 읽을 수 있지만, 마당 끝까지는 못 비춰요.”
“그럼 丁이 丙보다 약한 거예요?”
“밤에 해가 있어요?”
미연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깜깜했다.
“……없죠.”
“해가 할 수 없는 일을 등불이 해요. 『적천수』는 丁을 이렇게 적었어요.”
승수가 휴대전화 불빛 대신 연등 아래로 종이를 가져갔다.
丁火柔中,內性昭融。
“정화유중, 내성소융. 정화는 부드러우나 가운데가 있고, 그 안의 성질은 밝고 두루 어우러진다.”
“부드러운데 중심이 있다.”
“촛불을 봐요. 바람이 불면 휘청거리지만 심지는 안 움직여요. 그래서 정화는 한 대상을 오래 살피는 집중, 안에서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열정으로 풀어 봐요. 지나치면 관심이 한 곳에 묶이거나 마음을 다 태워 버리고요.”
“丁이 좋아하는 건요? 乙은 丙을 반긴다고 했잖아요.”
“丁은 甲을 반겨요. 장작이 있어야 불이 오래 가니까. 나무 수업 때 벽갑인정이라는 말 했지요. 쪼갠 甲에 丁을 붙인다. 丁 입장에서 보면 그게 땔감이 생긴 거예요.”
미연은 공책을 펼쳐 자기 명식을 등불 아래로 가져갔다. 시주의 천간에 丁이 있었다.
“저 丁 있어요. 시주에.”
“있지요. 그리고 그 丁이 미연 씨 일간 壬 바로 옆에 붙어 있어요. 壬과 丁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하나 있는데, 그건 합을 배울 때 꺼낼게요. 오늘 꺼내면 미연 씨가 밤새 검색할 테니까.”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어젯밤 몇 시에 잤어요?”
미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만 더 보고 가요.”
이번 종이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지 않았다. 승수는 그냥 이름부터 알려 주었다. 다산 정약용, 1762년 음력 6월 경기도 광주의 마재 마을에서 태어나 유배지에서 오백여 권의 책을 쓴 조선 후기의 학자였다. 시는 몰랐다.
壬 丁 丁 午 未 未
“일간 丁, 월지 未. 未는 여름 끝이에요. 한여름이 막 지나간 불.”
“그 아래는요?”
“일지도 未. 월주랑 일주가 똑같이 丁未예요.”
“유배지에서 십팔 년을 지냈다고 해요. 그 긴 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꺼지지 않고 책을 썼지요. 그걸 정화유중이라고 부르고 싶어지지요?”
“네.”
“그럼 방금 뛴 거예요.”
미연이 웃었다. 이번에는 스스로도 알았다. 연등 속 불꽃이 바람에 한 번 크게 휘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심지는 그대로였다. 미연은 등불 아래 한 뼘 환한 자리에 서서, 자기 시주의 丁을 손가락으로 덮었다가 다시 떼었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아침보다 어두웠다. 승수가 손전등을 켜서 미연의 발밑만 비췄다. 앞길 전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다음 계단 하나는 언제나 보였다.
*
숙소 앞 가로등 밑에 누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캐리어 하나를 옆에 세워 둔 채였다. 미연은 그 정수리를 알아보았다. 대학 사 년 동안 강의실 앞자리에서 보던 정수리였다.
“수아야?”
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화장이 반쯤 지워져 있었고, 목에는 아직 회사 출입증 줄이 걸려 있었다. 합격 화면 사진을 올린 지 사흘 만이었다.
“너 산에 있다며. 대화방에 그랬잖아. 며칠 산에 있겠다고.”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
“합숙 연수 중에 나왔어. 일요일 저녁 자유 시간에. 가방 들고 그냥 버스 탔어.”
미연은 수아 옆에 앉았다. 가로등 불빛에 날벌레가 모여들었다가 흩어졌다. 수아는 무릎을 끌어안고 한참 말이 없다가 갑자기 쏟아냈다. 연수 첫날부터 조별 발표가 있었고, 발표마다 점수가 매겨졌고, 점수는 강당 앞 화면에 이름과 함께 떴다. 수아는 이틀 내내 일등이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인사팀장이 이름을 불렀고, 저녁마다 동기들이 수아 옆자리로 몰렸다.
“다들 나 보고 대단하대. 근데 나 사흘 동안 한 번도 숨을 못 쉬었어. 계속 켜져 있어야 돼. 꺼지면 안 돼. 그거 알아? 하루 종일 무대 조명 밑에 서 있는 거.”
미연은 그 말을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웃음이 아니라 다른 게 튀어나온 거였다.
“넌 붙었잖아.”
수아가 미연을 보았다.
“붙어서 힘든 거잖아. 나는 그 무대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어. 회사가 채용을 없앴대. 나 그 메일 받던 날 너 합격 사진 봤어. 축하한다고 쓰는 데 십 분 걸렸어.”
말을 뱉고 나서야 미연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 수아의 얼굴이 가로등 아래서 하얘졌다.
“그래서 곰 하나 보낸 거야?”
“…….”
“나 그 곰 보고 좀 서운했어. 근데 이유가 있었구나.”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숙소 마당의 개가 두 번 짖고 그쳤다. 미연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는데, 사과보다 먼저 아까 절 마당에서 본 연등이 떠올랐다. 한 뼘만 환하던 자리.
“오늘 해 보러 갔었어. 새벽에.”
“뭐?”
“해는 다 비춰야 해서 쉬지를 못한대. 그리고 저녁엔 등불을 봤는데, 등불은 한 자리만 비추면 된대. 마당 끝까지 안 밝혀도 된대.”
수아가 미연을 빤히 보았다.
“너 산에서 뭐 배우는 거야? 사이비야?”
“엄마도 그 소리 하더라.”
수아가 처음으로 웃었다. 웃다가 울었고, 울다가 다시 웃었다. 미연은 수아의 출입증 줄을 목에서 벗겨 캐리어 손잡이에 걸어 주었다.
“내 사주도 봐 줄 수 있어?”
“나 아직 못 봐. 근데 하나는 알아. 생일만 적어 와. 이야기 없이. 이야기 먼저 들으면 맞는 글자만 보인대.”
“뭐야, 그게.”
“나도 몰라. 근데 근거는 있어.”
수아는 그날 밤 미연의 방에서 잤다. 장판이 너무 뜨겁다고 투덜대다가 금방 잠들었다. 미연은 잠든 수아 옆에서 휴대전화를 열어 엄마와의 대화창을 띄웠다. 월요일은 내일이었다.
엄마, 나 월요일에 학원 안 가. 미안해. 대신 내가 정한 거야.
보내기 단추 위에서 엄지가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눌렀다. 화면에 숫자 1이 떴다가, 한참 뒤에도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