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5,947자)

상담과 말의 무게 —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주말을 할머니 집에서 보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월요일 새벽, 읍내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서 도해가 사다리 위에 서 있었다. 드라이버로 간판 나사를 하나씩 풀고 있었다. 「도해철학관」의 「관」 자가 먼저 기울었다. 나사가 하나 빠질 때마다 녹슨 쇳가루가 사다리 발치로 떨어졌다.

미연은 대전역으로 가는 첫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보지 않으려 했는데, 간판이 기울면서 끽 소리를 냈고, 도해가 그 소리에 사다리 위에서 휘청했다. 미연은 길을 건넜다. 사다리 다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도해가 내려다보았다. 미연인 걸 알아보고 잠깐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놔. 혼자 해.”

“떨어지시면 제가 신문에 써야 돼요. 그건 확인할 게 많아서 귀찮아요.”

도해가 콧김을 뿜었다. 웃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나사가 빠지자 간판이 도해의 두 팔 안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도해는 그걸 안고 사다리를 한 칸씩 내려왔다. 땅에 내려놓고 나서도 한참 간판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십 년 비바람에 글씨 가장자리가 하얗게 바래 있었다.

“그 식혜, 마셨어.”

도해가 간판을 보며 말했다.

“밤에. 혼자. 달더라.”

미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가 오고 있었다.

“아가씨.” 도해가 일어서며 미연을 불렀다. “나중에 남 사주 봐 줄 일 생기면, 돈 받고 봐.”

“네?”

“공짜로 하면 말이 가벼워져. 받는 사람도 가볍게 듣고, 하는 사람도 가볍게 해. 돈 받으면 무서워서라도 한 번 더 생각해.” 도해는 간판의 먼지를 손바닥으로 털었다. “내가 무서워하질 않아서 이렇게 된 거야. 오만 원이 우스웠거든.”

버스 문이 열렸다. 미연은 버스에 오르다가 돌아보았다. 도해는 간판을 철학관 안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미연은 그 말을 근거 칸에 넣어야 할지, 근거 안 보임 칸에 넣어야 할지 몰라서 버스 안에서 한참 공책을 펼쳐 놓고만 있었다. 결국 두 칸 사이 여백에 적었다. 도해 원장, 마지막 말. 반은 맞는 것 같음.

*

그 주 토요일, 대전교도소 접견실은 생각보다 밝았다. 유리 칸막이 너머로 영수가 들어와 앉았다. 반년 전 할머니 밭둑에 서울 번호판 승용차를 세우고 내리던 쉰 줄의 남자는 머리가 짧게 깎여 있었다. 수의 가슴께에 번호가 붙어 있었다. 번호 위에서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영수가 미연을 접견인으로 부른 건 지난주였다. 정우가 그 말을 전하러 공부방에 왔을 때, 정우는 문턱에 선 채 들어오지 않았다.

“안 가셔도 돼요. 아버지가 뭘 물을지 저도 알아요.”

“뭘 물으실 것 같은데요?”

“자기 팔자요. 아버지는 일이 꼬이면 늘 탓할 데를 찾아요. 사업 망했을 때는 동업자 탓, 빚졌을 때는 경기 탓. 이번엔 팔자 탓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제일 편하니까.”

정우는 문틀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미연은 그 손가락을 보다가 물었다.

“정우 씨는 아버지 거 계산해 봤어요?”

“해 봤어요. 공부방에서 배운 대로. 庚子일이더라고요. 근데 거기서 멈췄어요. 첫째 줄에서. 더 읽으면 저도 아버지 편을 들 이유를 찾을 것 같아서요. 아니면 미워할 이유를 찾든가.”

정우는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그래서 미연 씨한테 미안해요. 제가 못 하는 걸 미연 씨한테 떠넘기는 거라서.”

미연은 그날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흘을 생각하고 접견 신청서를 썼다. 신청서의 관계 칸에는 지인이라고 적었다.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와 줘서 고맙네.”

“십 분이에요.”

“알아.” 영수가 수화기를 고쳐 쥐었다. “길게 안 할게. 하나만 물으려고.”

영수는 수의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유리에 댔다. 낯익은 글씨체였다. 도해의 글씨였다. 壬子, 庚戌, 庚子, 己卯. 그 아래에 빨간 펜으로 적혀 있었다. 金白水淸. 귀한 사주.

“작년 봄에 오만 원 주고 받은 거야. 시행사 일 시작할 때. 도해가 그랬어. 쇠가 물을 만나 맑아지는 사주라고. 늦게라도 크게 된다고.”

영수가 종이를 유리에 붙인 채 미연을 보았다.

“그래서 묻는 거야. 내 팔자가 원래 이랬던 거야? 귀한 사주라던 놈이 왜 여기 있어. 팔자가 틀린 거야, 아니면 원래 이렇게 될 팔자였는데 도해가 거짓말을 한 거야?”

미연은 그 종이를 보았다. 계산해 보지 않아도 알았다. 이 명식은 미연이 반년 동안 일부러 읽지 않은 명식이었다. 사건과 섞일까 봐. 아저씨가 진범이라는 걸 글자로 맞히는 사람이 될까 봐. 그 결심을 처음 한 날 공책에 적어 둔 문장이 있었다. 이 명식은 사건이 끝날 때까지 안 읽는다.

사건은 끝났다. 이제 읽을 수 있었다. 순서표 일곱 줄을 다 밟을 수 있었다. 십 분이면 넉넉했다.

“안 읽을게요.”

영수의 손가락이 유리 위에서 멈췄다.

“왜.”

“읽으면 아저씨는 그 안에서 이유를 찾을 거예요. 子가 둘이라서, 뭐가 많아서, 운이 어때서. 그럼 아저씨가 한 일이 글자 몫이 돼요. 그건 제가 정우 씨 낙인이랑 싸운 반년이 다 거꾸로 되는 거예요.”

“나도 알 권리가 있어. 내 거잖아.”

“알 권리는 있어요. 그래서 계산하는 법은 정우 씨한테 들으세요. 정우 씨가 공부방에서 다 배웠어요. 근데 제 입으로 아저씨한테 그 말을 하는 건 안 할래요.”

영수가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등에 핏줄이 섰다.

“네가 뭔데. 너도 도해랑 똑같아. 남의 팔자 갖고 이래라저래라.”

“아니요. 도해 원장님은 말을 해 줬어요. 저는 안 해요. 그게 달라요.”

미연은 숨을 한 번 골랐다. 손이 떨렸다. 유리 너머의 남자는 사람을 계곡에 두고 떠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아들이었고, 정우의 아버지였다. 미연은 그 셋을 한꺼번에 쥐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물은 거, 팔자가 틀렸냐 아저씨가 틀렸냐. 그건 제가 대답할 수 있어요. 글자로 안 해도 돼요.”

“뭔데.”

“귀하다는 말이 틀렸어요. 글자는 귀하지도 천하지도 않아요. 그냥 여덟 글자예요. 그다음은 아저씨가 한 일이에요. 계곡에서 119 누르다가 끊은 거, 그건 子가 한 게 아니에요.”

접견실이 조용해졌다. 교도관이 벽시계를 한 번 보았다. 영수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도해의 종이가 유리에서 미끄러져 탁자 위로 떨어졌다.

한참 뒤에 영수가 말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참 작았다.

“정우는.”

“밭에 감자 심었어요. 삼월에. 할머니가 평상에서 감독하셨고요. 하지 무렵에 캔대요. 하지 감자라고.”

영수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거 우리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야. 하지 감자.”

“할머니도 그러셨어요. 칠십 년 근거라고.”

영수가 웃었다. 우는 것처럼 웃었다.

“밭은.”

“안 팔았어요. 정우 씨가 반 팔아서 이장님 댁에 드리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받지 않으셨어요. 대신 감자 나면 한 상자 갖고 오래요. 유월에. 제사상에 올리게.”

영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화기를 쥔 손이 떨렸다. 반년 동안 이 남자는 그 이름을 듣지 않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정숙자. 계곡에서 밤새 얼어 죽은 남자의 아내. 그 아내가 영수의 아들이 심은 감자를 남편 제사상에 올리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싹 난 감자 하나를 정우 씨한테 줬어요. 겨우내 헛간에 묻어 둔 거. 싹 나면 먹는 게 아니라 심는 거라고. 할아버지가 그랬대요. 그것도 같이 심었어요.”

“……어머니는. 날 보고 싶어 해?”

미연은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멈췄다. 할머니가 냉장고에 붙여 둔 시간표 옆에, 할머니는 아들 사진을 붙이지 않았다. 떼어 낸 자국도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데 설날 아침 상 위에는 수저가 한 벌 더 놓여 있었다. 미연은 그걸 보았다.

“그건 제가 말 못 해요.”

“너 다 알잖아. 그 집에 매일 들락거리면서.”

“알아도 못 해요. 제가 그 말을 옮기면 할머니 말이 아니라 제 말이 돼요.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한다고 하면 아저씨는 그걸 믿고, 안 보고 싶어 한다고 하면 그것도 믿을 거예요. 둘 다 제 말이에요. 할머니 말이 아니고요.”

영수가 미연을 보았다. 유리 너머로, 오래.

“너, 처음에 우리 엄마 밭에서 무 뽑던 그 애 맞지.”

“네.”

“그때 너 아무것도 몰랐잖아.”

“지금도 잘 몰라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만 배웠어요.”

교도관이 접견 종료 이 분 전이라고 알렸다. 영수가 탁자 위의 도해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주머니에 넣지 않고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럼 어떡해. 어머니한테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전해 줘. 그건 해 줄 수 있잖아.”

미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제가 옮기면 가벼워져요. 아저씨가 직접 쓰세요. 편지 쓸 수 있잖아요.”

“써도 안 읽으실 거야.”

“그건 할머니가 정할 일이에요. 아저씨는 쓰는 것까지만 정할 수 있어요.”

반년 전 미연은 거북바위에서 승수에게 같은 말을 들었다. 미연 씨 일은 미연 씨 손에 있어야 한다고. 그때는 그 말이 얄미웠다. 지금 미연은 그 말을 유리 너머의 쉰네 살 남자에게 하고 있었다.

종료 벨이 울렸다. 영수가 일어서다가 수화기를 다시 귀에 댔다.

“감자, 잘 자라냐.”

“싹 올라왔어요. 하지에 캐요.”

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도관을 따라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 탁자 위에 네 번 접힌 도해의 종이가 남아 있었다. 교도관이 그걸 집어 들고 영수에게 내밀었지만, 영수는 받지 않고 문을 나갔다.

교도소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휴대전화로 먼저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봤냐.”

“네.”

“뭐라디.”

미연은 정류장 의자에 앉은 채 한참 말을 고르지 못했다. 영수가 한 말은 많았다. 귀한 사주, 팔자가 틀렸냐, 어머니는 날 보고 싶어 하냐. 그 가운데 어느 것을 옮겨도 할머니에게는 무거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게를 정하는 건 미연이 아니었다.

“제가 본 것만 말씀드릴게요. 머리를 짧게 깎으셨어요. 손가락을 자꾸 움직이셨어요. 감자 얘기 할 때 웃으셨어요. 그리고 편지를 쓰신대요. 할머니한테.”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들어왔다.

“밥은 먹는 얼굴이디.”

“네. 살은 조금 빠지셨어요.”

“그럼 됐다.”

할머니가 먼저 끊었다. 미연은 버스에 오르며 공책에 적었다. 할머니한테 한 말, 전부 본 것. 들은 것은 안 옮김. 확인 기자 일을 시작하고 윤지호에게 제일 먼저 배운 원칙이었다. 본 것과 들은 것을 섞지 마라. 그 원칙을 신문이 아니라 할머니 앞에서 처음 지켰다.

*

마을 공부방에 돌아온 건 저녁이었다. 승수는 난로 앞에서 무릎에 찜질팩을 얹고 앉아 있었다. 미연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말했다.

“안 읽었어요. 영수 아저씨 거.”

“잘했어요.”

“근거는요?”

미연이 먼저 물었다. 승수가 처음으로 근거를 질문받는 쪽이 되었다. 승수는 찜질팩을 고쳐 얹으며 대답했다.

“『연해자평』의 그 구절이요. 미연 씨가 도서관에서 도해 원장 앞에 펼쳤던 거. 이치로 구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 구절은 말하는 법보다 말하지 않는 법을 먼저 가르쳐요.”

“그건 원전 근거고요.”

“그럼 내 근거는 이거예요.” 승수가 미연을 보았다. “나는 그 어머니한테 말을 했어요. 미연 씨는 영수 씨한테 말을 안 했고요. 둘 다 사주를 들고 온 사람이었어요.”

미연은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버스 안에서 적어 둔 도해의 마지막 말이 두 칸 사이 여백에 있었다. 반은 맞는 것 같음. 미연은 그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돈을 받든 안 받든, 무서워하는 건 맞음. 오늘 무서웠음.

승수가 그 줄을 넘겨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 뒤, 할머니 집 우편함에 대전교도소 소인이 찍힌 봉투가 하나 꽂혔다. 정우가 그걸 들고 평상으로 갔다. 할머니는 봉투를 받아 뜯지 않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해가 능선에 걸릴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해 지기 전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자 할머니는 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정우는 할머니가 그 봉투를 어디에 두는지 보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냉장고 문에는 자석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그 아래 무엇이 끼워져 있는지는, 할머니가 열어 보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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