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5,801자)
운세 통변 — 때를 말하는 법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오성태 경위가 공부방에 내민 종이는 앞뒤로 빽빽한 세 장이었다.
“생일만 적어 오라면서요. 그래서 생일부터 적었어요. 근데 쓰다 보니까.”
미연은 첫 장을 들어 올렸다. 맨 윗줄에 1978년 8월 11일 오전 아홉 시 반, 양력, 대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경찰학교 입학, 첫 발령지, 결혼, 아들 둘, 지난가을 그 사건, 지난달 본청에서 온 전화, 그리고 무릎 연골이 닳았다는 진단까지 날짜순으로 이어졌다. 둘째 장에는 표까지 있었다. 셋째 장 맨 아래에는 이상입니다, 하고 끝맺어 있었다.
“형사님, 이거 조서예요?”
“버릇이에요. 뭘 쓰라면 다 써요.”
미연은 가위를 찾아 첫 장의 맨 윗줄만 오려 냈다. 나머지 세 장은 반으로 접어 오 형사에게 돌려주었다. 오 형사는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잠깐 서운한 얼굴을 했다.
“이거 쓰는 데 두 시간 걸렸는데.”
“이야기는 다 읽고 나서 들을게요. 순서가 그래서요.”
승수는 공부방 구석에서 붓펜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근거 공부방」 이름표가 바람에 자꾸 떨어져서 새로 쓰는 중이었다. 오늘도 미연 씨 날이니 근거만 묻겠다고 했다.
오 형사는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 그게 편하다고 했다. 무릎 때문이라는데, 바닥에 앉는 것이 더 아파 보였다.
승수가 붓펜을 든 채 오 형사의 무릎을 보았다.
“어느 쪽이에요?”
“왼쪽이요. 연골이 반밖에 안 남았대요. 선생님은요?”
“나는 오른쪽이에요. 거북바위에 십 년 넘게 앉아 있었더니.”
“저는 범인 쫓다가요.”
두 사람이 서로의 무릎을 마주 보며 묘하게 경쟁하는 얼굴을 했다. 미연은 공책을 펼치며 끼어들었다.
“두 분 합치면 멀쩡한 무릎 한 쌍 나오겠네요.”
“그건 근거가 있네.”
오 형사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승수는 붓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공부방 창으로 들어온 봄볕이 바닥에 앉은 형사의 등을 비췄다. 반년 전 거북바위까지 숨을 몰아쉬며 올라와 무릎을 짚고 서 있던 그 등이었다.
戊 庚 乙 辛 午 申 巳 巳
“첫째 줄, 일간은 乙이에요. 음의 목, 풀과 꽃과 덩굴이요.”
“덩굴요?”
오 형사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반년 넘게 강력 사건만 맡아 온 사람이었다.
“형사가 덩굴이에요?”
“글자가 덩굴이에요. 형사님이 덩굴인 게 아니고. 乙은 부드러워도 소를 해체한다는 말이 있어요. 『적천수』가 乙을 두고 한 말이에요. 부드러운 게 약한 건 아니라는 뜻으로.”
“아, 그건 좀 낫네.”
“둘째 줄, 월지는 申이에요. 초가을, 쇠의 기운이 올라오는 달. 나무한테는 힘을 잃는 계절이에요. 乙한테 申은 태라는 자리, 아직 태어나기 전처럼 힘이 없는 자리로 봐요.”
“셋째 줄은 관계와 힘이에요.” 미연은 천간에 화살표를 그었다. “연간 戊는 내가 누르는 흙. 음양이 달라서 정재. 월간 庚은 나를 누르는 쇠. 음양이 달라서 정관. 시간 辛은 나를 누르는 쇠. 음양이 같아서 칠살.”
오 형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칠살. 그거 정우 그 친구 표에 있던 거죠.”
“네. 형사님 표에는 정관이랑 칠살이 둘 다 천간에 떠 있는데, 이걸 관살혼잡이라고 해요. 나를 누르는 쇠가 둘, 일간 양옆에 바짝 붙어 있어요.”
“지지는요?”
“연지 午 안에 丁이랑 己. 내가 낳는 불은 식신이고, 己는 편재예요. 월지 申 안에 庚, 壬, 戊. 정관, 정인, 정재. 일지랑 시지 巳 안에 丙, 庚, 戊. 상관, 정관, 정재.”
미연은 지장간을 다 적고 나서 한참 표를 들여다보았다.
“뿌리가 없어요. 乙과 같은 나무가 지지에 하나도 없어요. 나를 낳아 주는 물은 申 안의 壬 하나. 쇠는 천간에 둘, 지지에 셋이라 신약이에요. 이건 안 갈려요. 꽤 분명하게 약해요.”
“약하다는 게.” 오 형사가 말을 골랐다. “형사로서 별로라는 거예요?”
“아니요. 강약은 사람이 훌륭하냐가 아니라고 배웠어요. 형사님 표는 바깥에서 누르는 힘이 아주 세고, 그걸 버티는 내 힘은 작은 모양이라는 것, 그게 다예요.”
오 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에 앉은 무릎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넷째 줄은 격국이에요.” 미연은 월지를 짚었다. “申의 주인 글자 庚이 월간에 드러나 있으니 정관격이에요. 그런데 시간에 칠살 辛도 같이 떠 있어서 혼잡이라서 순수한 정관격으로는 안 보는 사람도 있어요.”
“용신은.”
이번에는 승수가 처음으로 물었다. 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약이고 누르는 쇠가 많으니까, 그 쇠를 받아서 나를 키우는 물이요. 申 안의 壬, 정인. 쇠가 물을 낳고 물이 나무를 낳으면, 누르던 쇠가 나를 키우는 쪽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나와 같은 나무, 비겁. 둘 다 원국엔 거의 없어요. 그래서 운에서 오면 반가운 글자예요.”
“다섯째 줄, 세부요. 월간 庚이랑 일간 乙이 바로 붙어서 乙庚합을 해요. 나랑 정관이 묶여 있어요.”
오 형사가 웃었다.
“그거 들으니까 알겠네. 나 경찰이랑 묶인 팔자라는 거잖아.”
“그건 형사님이 뛴 거예요.”
미연이 바로 말했다. 오 형사가 눈을 껌벅였다.
“합은 관계예요. 성격도 직업도 아니에요. 저도 똑같이 뛰었다가 한결 사장님 앞에서 망신당했어요. 乙이 庚이랑 묶여 있다는 것까지만 말할 수 있어요. 그게 경찰인지 회사인지 가족인지는 몰라요.”
승수가 붓펜을 내려놓고 소리 없이 웃었다. 오 형사는 그 웃음을 보고, 미연을 보고, 머리를 긁었다.
“일주일 배운 학생이 원장보다 낫다고 했던 게 반년 전인데. 이제 나보다 낫네.”
“일주일이 아니라 반년이에요.”
“그래서 더 낫다고.”
미연은 웃음을 참으며 일지와 월지를 짚었다.
“그리고 월지 申이랑 일지 巳가 붙어서 巳申. 합으로도, 형으로도, 파로도 읽는 글자예요. 한 가지로 정하기 어려워요.”
미연은 공책을 한 장 넘겼다. 여섯째 줄. 오늘 오 형사가 듣고 싶은 줄이었다. 미연은 그걸 알았다. 그리고 오늘 미연이 제일 조심해야 할 줄이라는 것도 알았다.
“여섯째 줄, 운이요.”
미연은 휴대전화에 계산해 둔 대운표를 띄웠다.
“지금 대운은 甲子예요. 마흔 무렵부터 십 년. 甲은 나와 같은 나무, 겁재. 子는 나를 낳는 물, 편인. 아까 반가운 글자라고 한 두 가지가 다 왔어요. 뿌리 없던 나무한테 나무랑 물이 같이 온 대운이에요.”
오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지금이 좋은 때라는 거네.”
“용신 쪽 글자가 와 있는 때라고는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대운은 내년 무렵 끝나요. 다음 대운은 乙丑. 乙은 나랑 같은 나무, 비견. 丑은 흙이라 편재예요.”
“올해는요, 2027년은?”
“丁未예요. 丁은 내가 낳는 불, 식신. 그런데 丁은 시간의 辛을 눌러요, 화극금으로요. 형사님을 누르던 칠살 쇠를 내 불이 다스리는 모양인데, 식신제살이라고 불러요. 未는 흙이라 편재고요.”
오 형사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았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오 형사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제 이야기해도 돼요?”
“네.”
“본청에서 지난달에 강력팀으로 오라고 했어요. 그 사건 덕분에. 아버지를 끝까지 파서 진범 잡았다고. 승진이에요. 근데 집사람은 무릎도 이런데 그만두래요. 애들은 고등학생이고, 그리고 저는.”
오 형사는 거기서 멈췄다.
“저는 그 사건 때 정우 그 친구를 회관에서,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수갑 채워서 체포한 사람이에요. 그 친구는 석 달을 구치소에 있었어요. 제가 처음부터 아버지 쪽을 봤으면.”
공부방이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묻는 거예요. 올해 가면 잘 되냐고. 가서 또 그런 실수를 하냐고. 그 丁인지 뭔지가 칼을 다스린다며. 그럼 가도 되는 거잖아요. 아니면 내년에 좋은 대운이 끝난다며. 그럼 지금 가야 되는 거고.”
미연은 펜을 내려놓았다.
“형사님. 그건 제가 말 못 해요.”
“아니, 방금 다 말했잖아. 좋은 대운, 칼을 다스리는 해.”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말했어요. 형사님이 가서 잘될지는 말 안 했어요. 그건 글자에 없어요.”
오 형사의 얼굴이 굳었다. 반년 전 거북바위에서 승수에게 「그러니까 없다는 거죠?」 하고 다그치던 얼굴이었다.
“그럼 그 공부는 왜 하는 건데요. 미래를 못 말하면.”
미연은 그 질문을 알았다. 반년 전 미연 자신이 승수에게 한 질문이었다. 그럼 이걸 왜 배워요. 그때 미연은 발소리를 크게 내며 산을 내려갔었다.
“미래를 말할 수는 있어요. 다만 이렇게 말해야 해요.”
미연은 공책에 쓰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나서 오 형사 쪽으로 돌려 놓았다.
“올해는 형사님을 누르던 힘 가운데 하나를, 형사님 손에서 나오는 것이 다스리는 해로 볼 수 있어요. 내년에는 지금까지 형사님을 받쳐 주던 대운이 바뀌어요. 이 두 가지는 글자에서 나온 말이에요. 그 해에 무엇을 하면 잘된다는 말은 글자에 없어요. 그리고 이건 제 말이 아니라 형사님 말이에요. 아까 처음부터 아버지 쪽을 봤으면, 하고 멈추셨어요. 그 문장을 끝까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는 형사님이 알아요.”
오 형사는 그 종이를 오래 읽었다. 그리고 미연을 보았다.
“그게 미래를 말하는 방법이에요?”
“제가 아는 건 이거예요. 그럴 거다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그 말에 맞춰서 살아요. 정우 씨가 그랬어요. 피 볼 팔자라는 말 때문에 석 달을 갇혀 있었어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여든다섯에 죽는다는 말 때문에 해 뜨기 전에 호미를 들었어요. 미래를 말하는 건 그 사람한테 시간표를 주는 거예요. 그래서 시간표는 그 사람이 쓰게 해야 돼요.”
오 형사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퍼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꺼낸 것은 접힌 종이 한 장이었다. 접힌 자리가 닳아서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미연은 그 종이를 알아보았다. 辛巳, 戊戌, 壬戌. 빨간 펜으로 큼직하게 쓴 네 글자. 피를 볼 팔자.
“반년을 갖고 다녔는데, 버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왜요?”
“버리면 내가 저걸 믿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될까 봐요. 회관에서 그 친구 수갑 채울 때, 내 주머니에 이게 있었어요. 반쯤은 믿었으니까 못 버렸어요.”
오 형사는 그 종이를 미연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 버려도 돼요?”
미연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반년 전 거북바위에서 승수는 이 종이를 받지 않았다. 오 형사가 접어 넣던 것을 미연은 보았다. 그날 이후 이 종이는 미연이 본 모든 낙인의 모양이었다.
“제가 버리면 안 되고 형사님이 버리셔야 해요. 형사님 주머니에 있던 거니까.”
오 형사가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공부방 구석 난로 쪽으로 걸어갔다. 무릎이 또 소리를 냈다. 난로 뚜껑을 열고 종이를 넣으려다, 멈췄다. 돌아서서 승수를 보았다.
“선생님, 이거 태워도 돼요? 증거 같은 거 아니죠?”
“이제 증거 아닙니다.”
오 형사가 종이를 난로에 넣었다. 빨간 글씨가 먼저 오그라들었다. 피를 볼 팔자, 네 글자가 불 속에서 검게 말리는 데 삼 초가 걸리지 않았다. 반년을 갖고 다닌 종이였다.
오 형사는 한참 난로 앞에 서 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미연이 써 준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도해의 종이가 있던 자리였다.
“이건 버리지 말아야겠네.”
“그건 근거가 있으니까요.”
“丁이 辛을 누른다는 거?”
“아니요. 형사님이 멈춘 문장이요.”
오 형사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그리고 문을 나서다가 돌아보았다.
“본청에는 내일 전화할게요. 뭐라고 할지는 아직 모르고요.”
“형사님 시간표요.”
“그래요, 내 시간표로.”
문이 닫히자 승수가 붓펜 뚜껑을 닫고 새로 쓴 「근거 공부방」 이름표를 들어 보였다. 이번에는 테이프가 아니라 압정을 꽂을 거라고 했다. 미연은 그 이름표를 받아 들고 문밖으로 나가 압정을 눌렀다. 압정이 나무 문틀에 박히는 감촉이 엄지에 남았다. 반년 동안 미연이 들은 미래 가운데, 이 문에 붙은 두 글자가 가장 오래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