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6,277자)

궁합 — 두 명식을 나란히 놓으면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엄마는 이번에는 미연과 같은 기차를 탔다. 서울에서 같이 내려온 건 처음이었다. 보냉 가방이 두 개였다. 하나는 미연 몫, 하나는 한결 몫이라고 했다.

“사장님 장조림 직접 봐야겠어. 사진으로는 간이 안 보여.”

“엄마, 사진으로 간이 보이면 그게 더 이상해.”

“보여. 색 보면 다 보여.”

「쉼표」의 문을 열자마자 엄마는 진열대로 직행했다. 한결은 계산대 뒤에서 차렷 자세로 섰다. 엄마가 장조림 통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한결의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됐네.”

한결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엄마는 그걸 보고도 못 본 척 깻잎 통으로 넘어갔다.

“깻잎은 아직이고.”

한결이 다시 일어섰다. 미연은 창가 자리에서 그 광경을 보며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승수는 그 옆에서 커피잔을 든 채 어깨를 떨었다. 반년 전 이 자리에서 엄마와 승수가 처음 마주 앉았었다. 그때 엄마는 싸우러 왔고, 오늘은 검사하러 왔다.

검사가 끝나고 엄마가 창가 자리에 앉았을 때, 미연은 공책을 꺼냈다. 맨 뒷장의 나중 목록에는 줄이 그어진 항목이 많았다. 丁壬, 乙庚, 고흐. 줄이 안 그어진 항목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엄마 생일이었다.

“엄마, 오늘 엄마 거 끝까지 읽어도 돼?”

“그때 냅킨에 다 읽었잖아.”

“그때는 둘째 줄까지밖에 못 했어. 셋째 줄부터는 그때 내가 몰랐어.”

엄마가 미연을 보았다. 그리고 승수를 보았다. 승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미연 씨 날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하는 김에 하나 더 해.” 엄마가 말했다. “엄마랑 너, 같이 놓고. 궁합이라는 거 있잖아. 그거.”

미연의 펜이 멈췄다. 엄마가 궁합이라는 말을 먼저 꺼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엄마가 그 말을 왜 꺼냈는지, 미연은 알았다. 기차 안에서 미연이 센터 근처에 원룸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대전역에 내릴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미연은 두 명식을 공책에 나란히 적었다. 위가 엄마, 아래가 미연이었다.

엄마 庚 己 壬 ? 戌 丑 寅 ?

미연 甲 癸 壬 丁 申 酉 子 未

“엄마 거 먼저. 첫째 줄, 일간 壬. 둘째 줄, 월지 丑. 한겨울이 끝나 가는 달이에요. 얼음이 아직 다 안 풀린 강.”

“그건 그때 들었어.”

“셋째 줄부터 새 거야. 연간 庚은 나를 낳는 쇠, 음양이 같으니까 편인. 월간 己는 나를 누르는 흙, 음양이 달라서 정관. 지지 안에는.” 미연은 지장간을 하나씩 짚었다. “戌 안에 戊, 辛, 丁. 칠살, 정인, 정재. 丑 안에 己, 癸, 辛. 정관, 겁재, 정인. 寅 안에 甲, 丙, 戊. 식신, 편재, 칠살.”

“그게 다 무슨 뜻이야.”

“엄마 표엔 엄마를 누르는 흙이 엄청 많다는 뜻이야. 월간 己, 戌 안의 戊, 丑 안의 己, 寅 안의 戊. 넷이야.”

엄마의 눈썹이 올라갔다.

“누르는 게 많다고?”

엄마는 그렇게 되묻고는 혼자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그래, 많았지. 아빠 나가고 너희 둘 혼자 키웠는데.”

미연은 펜 끝을 멈췄다. 엄마가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처음이었다. 아빠라는 글자는 이 집에서 오래 아무도 안 쓰는 글자였다.

“엄마, 그건 엄마가 산 거야. 글자가 시킨 게 아니라. 글자는 엄마 표에 누르는 흙이 넷 있다는 것만 말해. 그 흙이 뭐였는지는 엄마가 알지, 내가 붙이면 안 돼.”

엄마가 미연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끄덕임이었다.

“관살이라고 해. 책임, 규칙, 해야 하는 일, 남이 나한테 거는 기대 같은 걸로 풀어 볼 수 있어. 근데 엄마 표엔 그걸 받아 주는 쇠도 있어. 연간 庚, 그리고 戌이랑 丑 안의 辛. 흙이 쇠를 낳고 쇠가 물을 낳아. 누르는 힘이 엄마를 키우는 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

“그게 좋은 거야?”

“칠살이 있는 표에서 다들 반기는 모양이래. 정우 씨 표에도 있었어.”

엄마는 입을 다물고 丑이라는 글자를 오래 보았다.

“뿌리는 丑 안의 癸 하나. 엄마는 강하다기보다는 중간이야. 시주를 모르니까 확실하게는 못 말해. 조건부.”

“용신은.”

엄마가 그 단어를 썼다. 미연은 승수를 보았다. 승수가 시치미를 떼고 커피를 마셨다.

“공부방 단톡방에 엄마도 들어왔어요.” 승수가 말했다. “지난달부터.”

“아니, 언제?”

“네가 공부한다는 게 뭔지는 알아야지.”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미연은 할 말을 잃었다가, 웃음이 터졌다가, 그 웃음이 목에서 뜨겁게 걸렸다.

“……용신은 두 갈래야. 누르는 흙이 많으니까 그 흙을 받아서 엄마를 키우는 쇠, 庚이랑 辛. 그리고 한겨울 물이니까 데워 주는 불. 寅 안의 丙, 戌 안의 丁. 불은 다 땅속에 숨어 있어.”

미연은 엄마 쪽을 다 읽고 숨을 골랐다. 이제 나란히 놓을 차례였다.

“궁합은 이렇게 볼 거예요.” 미연은 승수 쪽을 보며 말했다. 승수가 가르친 방법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끝내지 않고. 일간끼리, 일지끼리, 그리고 서로 맞붙은 글자들이 무슨 관계인지. 마지막으로 서로의 표에 서로가 필요한 게 있는지.”

“첫째. 일간끼리. 壬과 壬. 같은 물, 같은 음양. 서로한테 비견이야.”

“비견이 뭔데.”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 형제. 같이 서 있는 사람.”

엄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친구는 무슨. 내가 너 낳았는데.”

“글자로는 엄마가 나를 낳은 게 아니라, 옆에 서 있는 거야. 같은 물이 둘.”

“둘째. 일지끼리. 엄마 寅, 나 子. 둘 사이엔 합도 충도 없어. 그냥 따로 있어.”

“셋째. 맞붙은 글자.” 미연은 두 표 사이로 선을 그었다. 하나, 둘, 셋. 그을 때마다 엄마의 눈이 따라왔다.

“엄마 월지 丑하고 내 일지 子. 子丑합. 묶이는 사이야. 내 자리, 일지가 엄마의 계절에 묶여 있어.”

“엄마 천간 己하고 내 연간 甲. 甲己합. 이것도 묶임.”

“그리고 내 시간 丁하고 엄마 일간 壬. 丁壬합. 내 표 끝에 있는 불이 엄마 한가운데 물이랑 묶여.”

엄마가 그 세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었다.

“묶이는 게 셋이네.”

“응. 그리고 부딪치는 것도 있어.” 미연은 다른 색 펜을 꺼냈다. “엄마 일지 寅하고 내 연지 申. 寅申충. 정면으로 부딪쳐. 엄마 일지 寅하고 내 월지 酉. 寅酉, 원진. 서로 미워하는 건 아닌데 자꾸 어긋나는 사이. 엄마 연간 庚하고 내 연간 甲도 甲庚충이고.”

빨간 선이 세 줄 더 생겼다. 공책 위에서 엄마와 미연 사이가 파란 선 셋, 빨간 선 셋으로 얽혔다.

엄마가 그 빨간 선을 오래 보았다.

“그래서 너 집 나가는 거야? 부딪쳐서?”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한결이 행주질을 하다 말고 계산대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

“엄마, 그거 아니야.”

“아니긴. 너 아까 기차에서 원룸 알아본다고 했잖아. 집에서 다니면 되는데. 엄마랑 있기 싫어서 그러는 거잖아. 이 표에 다 나와 있네. 엄마 寅이 네 申을 친다며.”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반년 전 숲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그 목소리였다. 그러다 갑자기 꺾였다.

“엄마가 너 키우면서 그렇게 쳤니?”

미연은 펜을 내려놓았다. 엄마가 지금 도해가 하던 짓을 하고 있었다. 글자에 이야기를 붙이고, 그 이야기로 자기를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미연은 그 글자들을 엄마 앞에 늘어놓은 사람이었다.

“엄마. 내가 뛰게 만들었네. 미안.”

“뭘 뛰어.”

“글자는 엄마가 나를 쳤는지 몰라. 엄마가 날 어떻게 키웠는지는 내가 알아. 글자는 그냥, 우리 둘이 붙어 있으면 부딪치는 자리가 있고, 떨어져 있어도 묶이는 자리가 있다는 것만 말해. 寅申충은 연지랑 일지야. 내 표에서 연지는 제일 바깥 자리고. 묶이는 子丑합은 내 일지야. 제일 안쪽 자리.”

미연은 두 표의 그 두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바깥에서 부딪치고, 안쪽에서 묶여. 그게 우리 거야.”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미연의 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넷째는. 서로 필요한 거.”

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마지막 줄이었다.

“내 표는 엄마 표랑 반대야. 나는 강해. 가을 쇠의 달에 태어났고, 일지 子가 제일 센 뿌리고, 申子가 물로 모여. 물이 넘쳐. 그래서 나는 물을 덜어 가는 쪽이 필요해. 내가 낳는 나무, 甲. 그리고 내가 다스리는 불, 丁.”

미연은 엄마의 일지를 짚었다.

“엄마 寅 안에 甲이랑 丙이 있어. 내가 필요한 나무랑 불이 엄마 발밑에 있어.”

그리고 자기 시주를 짚었다.

“엄마는 한겨울 물이라 데워 줄 불이 필요하다고 했지. 내 시간에 丁이 있어. 그 丁이 엄마 일간이랑 丁壬합으로 묶여. 그리고 엄마가 누르는 흙을 받아 줄 쇠, 내 申이랑 酉에 다 있어.”

엄마가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덮었다가 뗐다.

“이렇게 읽는 건 궁합 보는 방법 중 하나야. 다른 사람들은 띠로도 보고, 일주끼리만 보기도 해. 다 다르게 말할 수 있어. 그건 숨기면 안 돼서 말하는 거야.” 미연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근데 이 방법으로 보면, 엄마랑 나는 서로 필요한 걸 서로 갖고 있어. 붙어 있으면 부딪치는 자리도 있고.”

“여섯째 줄, 운도 봐야 돼. 궁합은 두 사람이 같은 시간을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보는 거래.”

미연은 휴대전화에 계산해 둔 숫자를 띄웠다.

“엄마 지금 대운은 癸未야. 쉰넷 무렵부터 십 년. 癸는 엄마랑 같은 물인데 음양이 달라서 겁재, 未는 흙이라 정관. 내 지금 대운은 辛未. 열아홉 무렵부터 십 년. 辛은 나를 낳는 쇠, 정인, 未는 똑같이 정관이야.”

“둘 다 未네.”

“응. 우리 둘 다 지금 未 대운을 지나고 있어. 그리고 올해 2027년도 丁未야. 未가 또 와. 丁은 우리 둘 다한테 정재고, 우리 둘 다 일간 壬이랑 丁壬합을 해.”

엄마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올해 우리 둘이 똑같은 걸 맞는 거야?”

“똑같은 글자가 오는 거지. 똑같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니야. 엄마 표에선 그 未가 寅이랑 아무 관계가 없는데, 내 표에선 시지에 未가 이미 하나 있어서 두 개가 돼. 같은 해를 다른 자리에서 맞는 거야.”

엄마는 그 말을 입속으로 한 번 굴렸다. 같은 해를 다른 자리에서.

엄마가 공책을 미연 쪽으로 밀었다.

“일곱째 줄은. 말로 옮기는 거. 그거 해 봐. 엄마한테 하는 말로.”

미연은 펜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반년 전 처음 혼자 명식을 읽던 날보다 더 떨렸다.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엄마는 그동안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엄마가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 걸 미연은 처음 보았다.

“엄마랑 나는 같은 물이야. 엄마는 겨울 끝에, 나는 가을 한가운데 났어. 엄마는 누르는 게 많은 데서 쇠로 버티는 물이고, 나는 넘쳐서 어디로 흘려보낼지 찾는 물이야. 우리는 바깥 자리에서 부딪치고 안쪽 자리에서 묶여 있어. 그래서 내가 방을 따로 구하려는 건 엄마를 피하려는 게 아니라, 부딪치는 자리를 조금 떨어뜨려 놓으려는 거야. 묶인 자리는 떨어져도 안 풀려. 그건 子丑합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엄마가 매주 장조림 검사하러 올 거라서야.”

마지막 문장에서 엄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반년 전 이 자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줄은 근거가 뭔데.”

“엄마가 지금 가방 두 개 들고 온 거.”

“그건 한결 사장 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남의 장조림까지 검사하는 사람이잖아.”

계산대 뒤에서 한결이 크게 기침을 했다. 승수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근거 보임.”

*

엄마는 저녁 기차를 탔다. 플랫폼까지 따라가겠다는 미연을 엄마는 개찰구 앞에서 돌려세웠다.

“방 구하면 보일러부터 봐. 장판 뜨거운 데 말고.”

“응. 할머니 집 장판은 딱 좋았는데.”

“다음 주에 반찬 들고 간다. 그 방으로.”

“엄마 집에서 지하철 네 정거장이야. 장조림 들고 와도 안 식어.”

“그걸 근거라고 하는 거야?”

“응.”

엄마가 미연의 어깨를 한 번 쳤다. 세게. 그리고 개찰구를 지나갔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았다.

“올해 丁未라며. 우리 둘 다 丁이랑 합한다며. 그거 좋은 거야?”

미연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올해 丁이 두 사람 일간 壬과 똑같이 합을 한다는 건 계산해 둔 사실이었다. 그 합이 좋은지 나쁜지는 계산할 수 없었다.

“몰라. 같이 묶이는 해래.”

“그럼 됐어.”

엄마는 다시 돌아서서 걸어갔다. 이번에는 손을 흔들었다. 등을 보인 채, 머리 위로 한 번.

미연은 공책 맨 뒷장을 펼쳐 나중 목록의 엄마 생일에 줄을 그었다. 줄 옆에 작게 적었다. 끝까지 읽음. 부딪침 셋, 묶임 셋.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쓰려다 그만두었다. 엄마가 머리 위로 흔든 손은 근거 칸에도, 근거 안 보임 칸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미연은 그런 것들을 위한 칸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공책을 덮었다.

4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궁합 — 두 명식을 나란히 놓으면 ·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