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6,096자)
통변의 기본 — 글자를 말로 옮기다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등산로 입구 카페의 간판은 그대로 「쉼표」였다. 바뀐 건 그 아래에 붙은 작은 나무판 하나였다. 반찬도 팝니다. 한결이 직접 쓴 글씨였는데, 「팝니다」의 받침이 비뚤어져서 멀리서 보면 「팜니다」로 읽혔다.
삼월 마지막 월요일, 가게 문에는 휴무 팻말이 걸려 있었다. 미연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진열대에 늘어선 반찬통에서 간장 졸인 냄새가 났다. 장조림, 멸치볶음, 깻잎, 무말랭이. 한 달 전 업종을 바꾼 뒤로 한결은 커피 기계보다 가스레인지 앞에 더 오래 서 있었다.
“장조림 간 좀 봐 주세요. 어머님이 또 문자 보내셨어요.”
한결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미연 엄마의 문자였다. 간장 반 숟가락 줄이고 꽈리고추는 마지막에.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사장님 지난번 거 짰어요. 손님은 말 안 해도 다 알아요.
“엄마가 사장님한테도 이래요?”
“레시피 주신 날부터 매주요. 이제는 제가 먼저 사진 보내요. 검사받으려고.”
미연은 장조림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짰다. 엄마가 옳았다. 미연은 아무 말 없이 물을 한 잔 따랐고, 한결은 그 물잔을 보고 고개를 떨궜다.
승수는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반년 전 미연 엄마가 냅킨에 생일을 적던 바로 그 자리였다. 한결이 앞치마를 벗고 맞은편에 앉더니, 접은 종이 한 장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가져왔어요. 생일만.”
미연은 그 종이를 보다가 승수를 보았다. 비 오던 정자에서 승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에 생일만 종이에 적어서 가져와요, 아무 이야기 없이.
“반년 걸렸네요.”
“가게 접는 날 받으러 갔다가 거절당한 사람이 무슨 낯으로 바로 와요. 접을 뻔한 가게를 반찬가게로 바꾸고, 한 달 버티고, 이제 왔어요.”
승수가 종이를 미연 쪽으로 밀었다.
“미연 씨가 해요. 나는 근거만 물을게요.”
미연은 종이를 펼쳤다. 1992년 6월 14일 오전 열 시, 양력, 서울. 그 아래에는 한결의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이야기는 안 썼습니다.
미연은 휴대전화로 만세력을 열어 네 기둥을 공책에 옮겼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반년 사이에 달라진 게 있다면 그거였다.
壬 丙 辛 癸 申 午 酉 巳
“순서표대로 갈게요.” 미연은 공책 첫 장의 일곱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첫째 줄, 일간. 셋째 칸 윗글자 辛. 음의 금, 다듬은 보석이요.”
한결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제가 보석이에요?”
“아직 아무것도 아니에요. 첫째 줄은 그냥 중심을 잡는 거예요.”
“둘째 줄, 월령. 월지 午. 한여름 한가운데예요. 辛은 뜨거운 불을 꺼린다고 배웠어요. 다듬은 보석을 화덕에 다시 넣으면 모양이 망가지니까. 그러니까 한결 씨는 보석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에 태어난 보석이에요.”
“그건 좀 억울한데요.”
“억울한지 아닌지는 셋째 줄에서 봐요.”
미연은 천간 네 글자에 화살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반년 전 거북바위에서 승수가 그어 주던 그 화살표였다.
“셋째 줄, 관계와 힘. 辛을 나로 놓으면, 연간 壬은 내가 낳는 물이에요. 음양이 다르니까 상관. 시간 癸도 내가 낳는 물인데 음양이 같으니까 식신. 그리고 월간 丙은 나를 누르는 불이고 음양이 달라서 정관이에요.”
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를 묻지 않았다. 근거가 다 보이는 말이었다.
“지지는 지장간까지 봐야 해요. 연지 申 안에는 庚, 壬, 戊. 庚은 나와 같은 금인데 음양이 달라서 겁재예요. 월지 午 안에는 丁과 己. 丁은 나를 누르는 불, 음양이 같으니까 칠살이고, 己는 나를 낳아 주는 흙이라서 편인. 일지 酉 안에는 辛 하나. 나랑 똑같은 글자, 비견이에요. 시지 巳 안에는 丙, 庚, 戊.”
“뿌리는?”
“일지 酉요. 辛한테 酉는 제 집이에요. 건록 자리. 연지 申에도 庚이 있고, 시지 巳에도 庚이 숨어 있어요. 그러니까 보석은 여름에 태어났는데, 발밑에 쇠가 단단히 깔려 있어요.”
“그럼 강해요, 약해요?”
한결이 물었다. 미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자기 명식의 강약을 써 보던 날, 쉽게 대답했다가 승수에게 몇 번이나 지워졌던 기억이 났다.
“득령은 못 했어요. 午월은 금이 힘을 잃는 계절이니까. 득지는 했어요. 酉에 앉았으니까. 득세는 반쯤이에요. 천간에 불이 하나, 물이 둘이라 나를 돕는 글자는 천간에 없고, 지지에 쇠가 흩어져 있어요. 그래서 저는 중간에서 조금 약한 쪽으로 읽어요. 그런데 酉의 뿌리를 크게 보는 사람은 버틸 만하다고 읽을 수도 있어요.”
“갈린다는 말이에요?”
“갈린다는 말이에요. 갈리는 걸 숨기면 안 된다고 배웠어요.”
한결이 처음으로 웃었다.
“넷째 줄, 격국과 용신.” 미연은 월지 午를 다시 짚었다. “격은 월지에서 잡아요. 午의 주인 글자는 丁이라 칠살인데, 천간에 드러난 건 丙이에요. 정관. 그래서 편관격으로 볼지 정관격으로 볼지가 또 갈려요. 午 안에 丙을 넣어 세는 표도 있고 안 넣는 표도 있어서요.”
“어느 쪽이 좋은 거예요?”
“좋고 나쁨이 아니라, 나를 누르는 힘이 이 명식의 중심이라는 건 똑같아요. 여름의 불이 한가운데 있어요.”
미연은 펜을 멈추고 한결을 보았다.
“용신은 두 갈래로 봐요. 하나는 조후예요. 한여름 보석은 식혀 주고 씻어 줄 물을 반겨요. 그 물이 연간 壬과 시간 癸에 있어요. 특히 시간 癸는 일간 바로 옆이에요. 다른 하나는 억부예요. 누르는 힘이 세니까, 그 힘을 받아서 나를 낳아 주는 쪽으로 돌려 줄 흙이 필요해요. 午 안의 己, 巳 안의 戊. 불이 흙을 낳고 흙이 쇠를 낳으면, 누르던 힘이 돕는 힘으로 바뀌어요.”
승수가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그건 어디서 배운 말이에요?”
“칠살을 인성으로 바꾼다는 거요? 용신 배울 때요. 살인상생.”
“근거 보임.”
승수가 짧게 말했다. 한결은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보며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다섯째 줄, 세부. 일간 辛과 월간 丙이 붙어 있어요. 丙辛합이에요. 합이 있다고 다 화하는 건 아니고, 午월이라 물로 바뀌지는 않아요. 그냥 묶여 있어요. 나를 누르는 정관이랑 내가 손을 잡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시지 巳와 일지 酉가 붙어 있어서 巳酉, 금으로 모이는 반쪽짜리 합이에요. 발밑 쇠가 조금 더 단단해지는 쪽이에요.”
“여섯째 줄, 운. 지금 대운은 己酉예요. 2021년 무렵부터 십 년. 己는 나를 낳는 흙, 酉는 내 뿌리예요. 억부로 보면 반가운 글자들이 왔어요. 그리고 올해 2027년은 丁未예요. 丁은 칠살이니까 불이 하나 더 오고, 未는 흙이니까 편인이에요. 未는 월지 午랑 午未합을 하고요.”
미연은 거기서 펜을 내려놓았다. 여섯 줄을 밟는 동안 한결은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이제 일곱째 줄이었다. 반년 동안 미연이 제일 많이 틀린 줄이었다.
“일곱째 줄, 말로 옮기기. 이제부터가 진짜예요.”
미연은 공책을 한 장 넘겨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었다.
“한결 씨는 다듬어진 결을 가진 사람으로 풀어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가장 뜨거운 계절에, 나를 누르는 힘이 한가운데 있는 자리에서 태어났어요. 그 뜨거움은 책임, 기준, 남이 매기는 점수 같은 걸로 풀어 볼 수 있고요. 한결 씨는 그 압박이랑 손을 잡고 지내는 쪽이었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잠깐.”
승수가 손을 들었다.
“손을 잡고 지내는 쪽이었을 거예요. 근거는?”
“丙辛합이요.”
“합이 성격이에요?”
미연은 입을 다물었다. 합이 있으면 사이가 좋다고 풀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때 미연은 그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었었다.
“……합은 관계예요. 성격이 아니에요. 지울게요.”
미연이 그 문장에 줄을 그었다. 그 순간 한결이 의자를 뒤로 밀며 몸을 젖혔다.
“아니, 근데요. 미연 씨 말 맞아요. 저 회사 다닐 때 팀장이 매주 점수 매겼어요. 화면에 다 띄웠어요. 그게 싫어서 나왔는데, 나와서 차린 가게도 매일 매출이라는 점수가 떴어요. 그럼 결국 제가 이렇게 태어나서 그런 거예요? 압박 받는 팔자라서 회사도 망하고 가게도 망하고?”
목소리가 커졌다. 진열대 반찬통 뚜껑이 그 소리에 미세하게 떨렸다.
“제가 회사 때려친 것도, 퇴직금 날린 것도, 다 이 午 한 글자 탓이에요?”
미연은 그 질문 앞에서 숨이 막혔다. 바로 그게 도해가 정우에게 했던 짓이었다. 이야기와 글자를 붙여서, 그 사람이 한 일을 글자한테 넘겨주는 것. 미연은 지금 반대 방향으로 똑같은 짓을 할 뻔했다. 한결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아니에요.”
미연은 공책을 내려놓았다.
“글자는 한결 씨가 회사를 그만둘지 말지 몰라요. 그만둔 건 한결 씨예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에요. 한결 씨 명식에는 누르는 힘이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 힘을 받아서 나를 키우는 흙이 옆에 있다. 그 흙을 어떻게 쓸지는 제가 몰라요.”
“그럼 아까 그 손잡고 어쩌고는요?”
“그건 제가 뛴 거예요. 근거 안 보임.”
미연은 공책 뒷장을 펼쳐 「내가 뛴 것」 목록 맨 아래에 한 줄을 보탰다. 한결의 丙辛합, 성격으로 읽음. 목록은 반년 사이 두 쪽이 되어 있었다. 한결이 그걸 넘겨다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걸 다 적어요?”
“적어야 덜 뛰어요. 처음엔 아인슈타인한테 꽃집을 차려 줬어요.”
한결은 웃다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진열대 쪽을 돌아보았다.
“흙이요. 아까 흙 얘기.”
“네.”
“반찬 만들 때요. 무말랭이 불리고, 멸치 다듬고, 장조림 고기 결대로 찢고 있으면요, 이상하게 점수 생각이 안 나요. 손이 바빠서 그런가 했어요. 매출은 커피 팔 때보다 조금 나아진 정도예요. 그런데 이번 달은 밤에 잠이 와요.”
미연은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근거로 쓸 수 없는 말이었다. 한결의 삶이었다.
“그건 글자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서, 제가 덧붙일 게 없어요.”
“그럼 오늘 뭐가 남아요? 반년 기다려서 왔는데.”
승수가 대신 대답했다.
“두 가지요. 하나는 한결 씨가 이 명식에서 무엇을 볼지 이제 알게 됐다는 거. 누르는 힘, 그 힘을 받는 흙, 식혀 주는 물. 그 셋을 한결 씨가 자기 생활에서 찾아보면 돼요. 다른 하나는.”
승수가 미연의 공책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올해 丁未가 불을 하나 더 가져온다는 거. 미연 씨가 그걸 어떻게 말로 옮길지 아직 안 들었어요.”
미연은 다시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오래 걸렸다. 쓰고, 지우고, 또 썼다. 한결은 그동안 일어나 커피 두 잔을 내려 왔다. 커피는 여전히 조금 탔다.
“올해는 누르는 힘이 하나 더 오는 해로 볼 수 있어요. 일이 늘거나, 요구가 늘거나, 점수가 다시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같은 해에 흙도 와요. 未는 午랑 묶이는 글자라서, 뜨거운 자리를 조금 다른 데로 옮겨 놓을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일로 올지는 몰라요. 다만 바쁜 달이 오면, 손으로 다듬는 시간을 먼저 지켜 보세요. 이건 처방이 아니라, 한결 씨가 방금 한 말이랑 글자가 같은 쪽을 가리켜서 드리는 말이에요.”
다 읽고 나서 미연은 승수를 보았다. 승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근거는?”
“丁은 칠살, 未는 편인, 午未합. 그리고 마지막 줄은 근거가 한결 씨예요. 그래서 처방 아니라고 붙였어요.”
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였다. 미연은 그 끄덕임 하나 받으려고 반년을 걸어 올라왔다는 걸 알았다.
한결은 미연이 쓴 종이를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반으로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계산대 밑에서 반찬통 두 개를 꺼내 비닐봉지에 담아 미연에게 내밀었다.
“통변비요.”
“돈 안 받는데요.”
“돈 아니에요. 장조림이에요. 짠 거.”
“짠 걸 주세요?”
“어머님한테 갖다 드려요. 검사받게.”
미연은 웃으면서 봉지를 받았다. 봉지가 손가락에 줄을 그었다. 할머니가 품삯이라며 안겨 주던 무 두 개의 무게가 떠올랐다. 반년 사이 미연은 남한테서 음식으로 받는 값이 이상하게 무겁다는 걸 배웠다.
가게를 나서는 길에 미연은 나무판의 비뚤어진 받침을 다시 보았다. 팜니다. 한결이 문을 잠그다 말고 그 시선을 따라 보았다.
“그거 고칠까요?”
“두세요. 사람들이 한 번씩 더 봐요.”
한결은 그 말을 근거로 쳐 주기로 한 얼굴이었다. 등산로 쪽에서 내려오던 바람이 가게 앞 풍경을 한 번 흔들고 지나갔다. 미연은 봉지를 고쳐 들고 할머니 집 쪽으로 걸었다. 건넌방에 들어가기 전에 이 장조림을 엄마한테 사진으로 보낼지 말지는 걸으면서 정하기로 했다. 공책 일곱째 줄에 오늘 처음으로 지우지 않은 문장이 다섯 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