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6,008자)

지난 삶에 운 대 보기 — 임진년의 장수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선고가 나고 열흘 뒤, 마을회관 평상에서 그 말이 나왔다.

“영수 그놈은 원래 그럴 팔자였어.”

평상에 앉은 노인 셋 가운데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이었다. 읍내 장에 다녀오는 길에 미연이 회관 앞을 지나는데, 그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미연은 걸음을 멈췄다.

“庚子라며. 쇠가 차가운 물에 잠겨 있으니 녹이 안 슬고 배겨? 도해 원장이 그랬다던데.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어.”

“도해가 언제는 귀한 사주라고 했다며.”

“그건 그때고.”

노인 셋이 웃었다. 미연은 돌아섰다. 장바구니 손잡이가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어르신, 그때는 귀한 사주였고 지금은 원래 그럴 팔자예요? 같은 庚子가요?”

노인들이 미연을 보았다. 목소리 큰 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산에서 공부하는 처자. 순례네 사는.”

“네.”

“그럼 처자가 말해 봐. 그놈은 원래 그런 놈이야, 아니야?”

미연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원래 그런 놈. 원래 그럴 팔자. 두 말은 같은 말이었다. 아니라고 하면 영수를 감싸는 말이 되고, 그렇다고 하면 팔자가 한 일이 되었다.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이 평상 위에서는 이름이 하나 더 붙을 뿐이었다.

“아저씨가 한 일은 법정에서 다 나왔어요. 밀었고, 전화 끊었고, 떠났고, 도장 새겼고. 그건 아저씨가 한 거예요. 팔자는 거기 한 줄도 안 나왔어요.”

“팔자에 안 나오는 게 어딨어.”

“그럼 어르신 팔자에는 오늘 저랑 여기서 말다툼하는 게 나와요?”

다른 노인 하나가 푸하고 웃었다. 목소리 큰 노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미연은 장바구니를 고쳐 들고 걸었다. 등 뒤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요즘 젊은 것들은. 미연은 이번에는 돌아서지 않았다. 돌아서서 한마디 더 하면 이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기는 말은 대개 이름 하나를 더 붙이는 말이었다. 미연은 장바구니의 대파가 꺾이지 않게 손잡이를 고쳐 쥐고 할머니 집까지 걸었다.

*

그날 밤 사랑방에서 승수가 낡은 연표 한 장을 꺼냈다. 1545년부터 1598년까지, 연도마다 간지가 적혀 있었다.

“오늘은 지난 삶에 운을 대 보는 수업이에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고, 제일 많이 틀리는 거.”

“평상 어르신들이 오늘 하던 거요?”

“그거예요. 그래서 오늘 해요. 미연 씨가 처음에 십성 달았던 명식, 기억나요?”

미연은 공책 앞쪽을 펼쳤다. 경찰이 낫을 가져가던 날, 오 형사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펼쳤던 두 줄 가운데 위의 것이었다. 乙巳, 庚辰, 庚午, 丙子. 이순신.

“庚 일간. 1592년이 임진년이니까 세운은 壬辰이에요. 庚한테 壬은 식신. 내가 낳는 것, 펼치는 것.”

“대운은?”

미연은 계산했다. 남자, 연간 乙은 음. 역행이었다. 월주 庚辰에서 뒤로 한 칸씩, 己卯, 戊寅, 丁丑, 丙子, 乙亥. 대운수는 일곱 해 남짓, 그래서 마흔여덟 살 무렵부터 乙亥 대운이었다.

“1592년이면 마흔여덟 살. 乙亥 대운이 막 시작된 해예요. 乙은 庚한테 정재고, 乙庚합이에요. 亥는 식신. 대운에도 식신, 세운에도 식신.”

“이제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요.”

“전쟁이 났어요. 왜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왔고,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이 옥포, 한산도에서 이겼어요.”

“식신이 둘 겹친 해에, 재능을 펼쳐서 이겼다. 어때요?”

“딱 맞아요.”

미연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스스로 멈칫했다. 딱 맞았다. 너무 딱 맞았다.

“다음은 1597년.”

“정유년. 丁酉. 庚한테 丁은 정관이에요. 酉는…… 庚의 양인. 칼. 그리고 겁재.”

“그 해에는?”

미연은 이번에는 빨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 해를 알고 있었다. 승수가 미연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해 봄에 파직당했어요. 임금 명령을 안 따랐다는 모함을 받아서 한양으로 끌려가 감옥에 갇혔고, 고문을 받았어요. 풀려나서는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다니는 백의종군을 했고요. 그러다 여름에 원균이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거의 다 잃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됐어요. 그리고 가을에 남은 배 열세 척으로 명량에서 이겼어요.”

“정관의 해에.”

“정관은 관직이라고들 하잖아요. 근데 그해에 관직을 잃었어요. 그럼 안 맞는 거예요?”

“다르게 대 봐요.”

미연은 연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관이 나를 친다. 정관이 일간을 누르는 글자니까, 그해에 나라가, 임금이 이순신을 쳤다. 그러면 맞아요. 아니면, 정관의 해에 결국 다시 통제사가 됐다. 관직을 되찾았다. 그것도 맞아요. 양인이 들었으니 칼을 들고 싸웠다, 그것도 맞고. 겁재가 들었으니 원균 같은 경쟁자가 일을 그르쳤다, 그것도 맞고.”

미연의 펜이 멈췄다.

“다 맞아요. 어떻게 대도 다 맞아요.”

“그게 지난 삶에 운을 대 보는 일이에요. 이미 일어난 일을 알면, 글자는 무엇이든 설명해 줘요. 관을 잃어도 맞고 관을 얻어도 맞아요. 이겨도 맞고 져도 맞고. 맞는 말이 너무 많으면, 그건 아무 말도 안 한 거예요.”

승수가 연표의 마지막 줄을 짚었다. 1598년, 戊戌.

“이 해는?”

“노량에서 돌아가셨어요. 마지막 싸움에서. 戊는 庚한테 편인, 戌도 편인.”

“편인의 해에 죽었다. 이걸 맞추려면 어떻게 하지요?”

미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었다. 편인은 도식이라고, 밥그릇을 엎는 글자라고, 옛 책에 그런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갖다 붙이면 1598년도 맞을 것이다. 미연은 그 말을 삼켰다.

“안 맞출래요. 이순신이 그해 죽은 건 왜군이 철수하는 길을 끝까지 막으러 나갔기 때문이에요. 편인이 한 게 아니라.”

승수가 연표를 접었다.

“그럼 이걸 왜 배우는지 알겠지요.”

“평상 어르신들 같은 말을 안 하려고요. 영수 아저씨가 원래 그럴 팔자였다, 그거 지난 일 알고 나서 대 보는 거잖아요. 일 터지기 전에는 같은 사람이 귀한 사주랬어요.”

“그리고 하나 더. 지난 삶에 운을 대 보는 게 쓸모가 있다면, 그건 맞히려고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 계절을 어떻게 지났는지를 보려고예요. 이순신은 정관의 해에 관을 잃었어요. 그런데 그 해에 무엇을 했지요?”

“백의종군. 벼슬 없이 따라다니다가, 다시 불렀을 때 갔어요. 열세 척 데리고.”

“글자는 그 해가 어떤 계절이었는지만 말해요. 그 계절에 감옥에서 나와 다시 바다로 간 건 그 사람이에요.”

승수가 일어나 아궁이에 장작을 넣으러 나간 사이, 미연은 공책 뒤쪽에서 영수의 명식을 펼쳤다. 壬子, 庚戌, 庚子, 己卯. 그리고 해본 적 없는 일을 해 보았다. 평상의 어르신들이 할 이야기를 미연이 대신 써 보는 것이었다.

2023년부터 丙辰 대운, 庚에게 편관. 2026년 丙午, 다시 편관에 午는 정관. 칠살 대운에 칠살 세운이 겹쳤다. 관이 일간을 거듭 친 해에 사람을 밀고 법정에 섰다. 그 문장은 오 분 만에 완성됐다. 매끄러웠다.

미연은 그 아래에 다른 이야기를 써 보았다. 도해가 한정식집에서 했을 이야기였다. 庚子 일주에 子가 둘, 연주에 壬. 쇠가 희고 물이 맑은 금백수청. 연간 기준 천을귀인이 시지 卯에. 2026년 丙午는 관이 들어와 귀한 사주를 빛나게 하는 해, 땅 문서가 움직이는 해. 이것도 오 분이 안 걸렸다.

같은 여덟 글자, 같은 해였다. 미연은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다가 둘 다에 크게 엑스를 그었다. 엑스 두 개가 공책 한 장을 꽉 채웠다. 승수가 장작 냄새를 묻히고 돌아와 그 장을 넘겨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연은 공책에 적었다. 지난 삶에 대 보면 다 맞는다. 다 맞으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한 줄. 그 계절에 무엇을 했는지는 그 사람의 것.

*

다음 날 아침, 할머니가 정우와 미연을 읍내 법무사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정숙자가 준 마을버스 시간표를 정우에게 들려 보냈고, 정우는 첫차 일곱 시 십 분을 정확히 맞춰 정류장에 나갔다.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버스는 십 분 늦게 왔다.

법무사 사무실 책상 위에 서류 한 묶음이 놓여 있었다. 증여 계약서. 박순례가 김정우에게, 산 아래 마을 밭 이천 평.

정우는 서류 첫 장을 보자마자 의자를 뒤로 밀었다.

“할머니, 이거 안 받아요.”

“받아.”

“이 밭 때문에 아버지가 도장 새기고, 이장님이 돌아가시고, 저는 두 달 넘게 갇혀 있었어요. 이 밭 때문에요. 저 이거 받으면 매일 아침 이 밭 보면서 그 생각 할 거예요.”

“그러니까 받아.”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았다. 법무사가 펜을 내려놓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네 아버지가 이 밭 팔려고 한 건 이 밭이 돈인 줄 알아서야. 네가 받으면 이 밭은 돈이 아니라 밭이 돼. 그 차이를 아는 놈한테 줘야 해.”

“저는 농사도 모르고…….”

“이번 겨울에 언 흙 뒤집었잖아. 매일. 그거 아는 놈이야.”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핸드백에서 낡은 공책 하나를 꺼냈다. 헛간에서 찾았다던 할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할머니는 종이가 누렇게 바랜 한 장을 펼쳐 정우 앞에 놓았다. 미연은 그 장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비뚤비뚤한 연필 글씨로 적힌 한 줄. 밭은 정우 몫.

“네 할아버지가 너 열세 살 때 쓴 거야. 그해 봄에 네가 방학마다 내려와서 밭고랑에서 개구리 잡는 거 보고.”

정우가 그 줄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법무사 사무실 창으로 봄볕이 들어와 일기장 위에 내려앉았다.

“할아버지 일기가 사주보다 무섭네요.”

“사주는 남이 쓴 거고, 이건 네 할아버지가 쓴 거야.”

정우는 펜을 들었다. 서명란 위에서 펜 끝이 한참 머물렀다. 미연은 그 손을 보았다. 손톱 밑에 지난겨울 내내 낀 흙이 아직 남아 있었다. 정우가 서명했다. 글씨가 할아버지 것만큼 비뚤었다.

돌아오는 마을버스 안에서 정우는 창밖만 보았다. 증여 계약서 사본이 든 봉투를 무릎 위에 두 손으로 얹고 있었다. 버스가 회관 앞을 지날 때 정우가 입을 열었다.

“미연 씨, 아버지한테 편지 쓸까요? 밭 받았다고.”

“쓰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쓰면 아버지가 미안해할 거고, 안 쓰면 아버지가 모를 거고.” 정우가 봉투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아버지가 이 밭 팔려다가 그렇게 됐는데, 그 밭을 제가 받았다고 하면 그게 위로예요, 벌이에요?”

미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위로일 수도 있고 벌일 수도 있었다. 둘 다일 수도 있었다. 그건 편지를 받는 사람이 정할 일이었다.

“그냥 감자 심었다고 써요. 밭 얘기 말고. 감자 얘기만.”

정우가 미연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주 토요일, 정우는 밭에 첫 감자를 심었다. 할머니가 밭둑 평상에 앉아 지시했고, 미연은 씨감자를 반으로 잘라 재를 묻혔다. 자른 면에 재를 묻혀야 썩지 않는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승수도 밭에 와 있었는데, 씨감자를 놓으려고 쪼그려 앉다가 오른쪽 무릎이 꺾여 밭고랑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할머니가 평상에서 혀를 찼다.

“그 양반은 거기 그냥 앉아 있어. 앉은 김에 감자나 세.”

승수는 정말로 앉은 채 씨감자를 셌다. 하나, 둘. 서른까지 세다가 정우가 지나가며 고랑에 흙을 덮는 바람에 몇 개인지 놓쳤다. 승수는 처음부터 다시 세지 않고 서른하나부터 셌다. 미연은 그 모습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마흔둘까지 세다 돌멩이 탓을 하던 첫날의 승수였다.

정우가 고랑을 파다 말고 허리를 폈다. 마을 쪽 길로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 네 번 다니는 버스였다.

“미연 씨, 저 감자 언제 캐요?”

“몰라요. 할머니한테 물어봐요.”

“미연 씨 사주 배우잖아요. 감자 캐는 날 정도는 알 거 아니에요.”

“감자는 사주가 없어요.”

평상에서 할머니가 웃었다. 크게 웃었다. 선고 날 법원 계단에서 반으로 접혔던 허리가 웃음에 들썩였다.

“하지 무렵에 캐. 하지 감자라고 하잖아. 그건 칠십 년 근거야.”

정우가 다시 고랑을 팠다. 미연은 재 묻은 씨감자를 고랑에 하나씩 놓았다. 손이 까맣게 물들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던 해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감자를 심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세운도 丁酉였을 것이고, 그 사람은 그해를 전쟁이 아니라 감자로 기억했을 것이다. 감자가 몇 알 달렸는지로, 그해 봄비가 언제 왔는지로.

미연은 그 생각을 공책에 적지 않았다. 적으면 또 무언가에 맞춰 붙이고 싶어질 것 같았다. 대신 씨감자를 하나 더 놓고, 흙을 덮고,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3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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