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6,019자)

귀인과 흉살 — 귀인이라는 말, 살이라는 말

소설로 배우는 사주팔자 · 이수

윤지호가 녹음 파일을 들고 온 건 조정이 깨지고 나흘 뒤였다.

카페 「쉼표」는 이제 문 앞 입간판에 밤라테 대신 「오늘의 반찬」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결은 가게를 접는 대신 진열장 절반을 비워 반찬을 팔기 시작했는데, 첫 주 반찬의 절반은 미연 엄마가 택배로 보낸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장조림이 제일 잘 나갔다. 한결은 그 사실을 미연 엄마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로열티를 달라고 할 것 같다고.

윤지호는 창가 자리에 노트북을 펴 놓고 미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 신문 「충청새벽」의 기자, 서른 초반. 그날 카페에서 테드 번디 이야기를 수첩에 받아 적던 사람이었다. 사건이 이어지는 동안 그 수첩은 세 권째가 되어 있었다.

“시행사 쪽 직원이 줬어요. 김영수 씨 구속되고 나서 겁이 났나 봐요. 작년 7월, 대전의 한 한정식집. 시행사 이사, 이장님, 김영수 씨, 그리고 도해 원장.”

윤지호가 이어폰 한쪽을 미연에게 건넸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도해였다. 술기운이 섞여 있었다.

김 사장 사주는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 천을귀인을 끼고 앉은 금백수청이야. 쇠가 희고 물이 맑다, 귀한 사주. 올해 땅 문서 움직이면 귀인이 붙어. 망설일 거 없어. 어머님은 내가 잘 말씀드려 볼게.

그다음은 영수의 웃음소리였다. 미연은 이어폰을 뺐다. 귓바퀴가 차가웠다.

“이 자리 다음 달에 위조 위임장이 만들어졌어요.” 윤지호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기사 초안이었다. 제목이 맨 위에 굵게 박혀 있었다.

‘귀인 사주’가 부른 비극 — 역술인의 한마디에 시작된 계룡산 살인

미연은 제목을 오래 보았다.

“이거 내보낼 거예요?”

“데스크가 좋아해요. 사주로 사람 잡던 원장이 실은 범인한테 사주로 바람을 넣었다. 이야기가 딱 떨어지잖아요.”

“딱 떨어지니까 문제예요.”

윤지호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미연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정우 씨한테 피 볼 팔자라고 한 거랑, 영수 아저씨한테 귀인 사주라고 한 거랑, 똑같은 짓이에요. 하나는 나쁜 이름이고 하나는 좋은 이름일 뿐이에요. 이 제목은 귀인 사주가 비극을 불렀다고 해요. 그럼 사주가 한 거잖아요. 아저씨가 한 게 아니라.”

“아니, 제목이 그렇다는 거지 기사 본문은…….”

“사람들은 제목만 읽어요. 단톡방에 피 볼 팔자만 돌았던 것처럼요.”

윤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결이 반찬 진열장 너머에서 이쪽을 힐끔거렸다. 두 사람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한결이 작은 접시 두 개를 들고 왔다. 장조림이 한 숟가락씩 담겨 있었다.

“시식이요. 싸우시는 건 좋은데 손님들이 쳐다봐서요. 드시면서 싸우세요.”

윤지호가 얼떨결에 젓가락을 들었다. 미연도 들었다. 짭짤했다. 엄마 맛이었다. 미연은 그게 엄마 레시피라는 말을 삼켰다.

윤지호가 장조림을 씹다가 한숨을 쉬었다.

“미연 씨, 나도 알아요. 근데 우리 신문 구독자가 작년보다 삼분의 일이 줄었어요. 이 사건 기사만 조회 수가 나와요. 데스크는 사주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가야 사람들이 누른대요. 나도 그 말을 넣고 싶어서 넣은 게 아니에요.”

“그럼 원장이랑 같은 거네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름을 붙이는 거.”

윤지호의 젓가락이 멈췄다. 미연은 말해 놓고 너무 셌다는 걸 알았다. 날이 선 말이 칼집도 없이 튀어나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윤지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접시를 내려다보며 한참 장조림을 굴렸다.

“그럼 미연 씨는 이 녹음이 아무 의미 없다는 거예요?”

“의미 있어요. 원장이 사람들한테 뭘 팔았는지 보여 주잖아요. 근데 그 귀인이라는 말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죠. 맞는 말이었으면 원장은 틀린 게 아니라 운 나쁜 사람이 되고, 틀린 말이었으면 거짓말한 사람이 되잖아요.”

윤지호가 미연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미연 쪽으로 밀었다.

“확인해 줄 수 있어요?”

*

그날 저녁 사랑방에서 미연은 승수에게 녹음 이야기를 했다. 승수는 아랫목에 앉아 들었고, 듣는 동안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귀인부터 배워야겠네요.”

“신살이랑 같은 거예요?”

“같은 집안이에요. 신살 가운데 좋은 이름이 붙은 걸 흔히 귀인이라고 불러요. 제일 많이 말하는 게 천을귀인이에요. 하늘의 귀한 사람이 돕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기준은 대개 일간이에요. 일간 글자에 따라 귀인이 되는 지지가 정해져 있어요. 옛사람들은 그걸 노래로 외웠어요.”

승수가 낮게 읊었다. 甲戊庚은 소와 양, 乙己는 쥐와 원숭이, 丙丁은 돼지와 닭, 壬癸는 토끼와 뱀, 辛은 말과 호랑이.

“甲·戊·庚 일간은 丑과 未, 乙·己는 子와 申, 丙·丁은 亥와 酉, 壬·癸는 卯와 巳, 辛은 午와 寅이에요.”

미연은 받아 적고 나서 곧바로 영수의 명식을 펼쳤다. 사건이 이어지는 동안 일부러 읽지 않던 명식이었다. 壬子, 庚戌, 庚子, 己卯.

“일간 庚. 庚은 丑이랑 未.” 미연의 손가락이 지지 네 개를 차례로 짚었다. 子, 戌, 子, 卯. “없어요. 丑도 未도 없어요.”

“일간 기준으로는 없지요.”

“그럼 원장은 어디서 귀인을 찾은 거예요?”

“태어난 해의 천간, 연간을 기준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김영수 씨 연간은 壬이지요. 壬이면?”

“卯랑 巳. 시지가 卯예요.” 미연은 펜을 내려놓았다. “또 기준 바꿨네요. 정우 씨한테는 일지 기준으로 망신살 찾고, 영수 아저씨한테는 연간 기준으로 귀인 찾고.”

“좋은 걸 찾을 땐 좋은 쪽 기준, 나쁜 걸 찾을 땐 나쁜 쪽 기준. 고르고 있는 거지요.”

미연은 공책에 줄을 그어 두 칸을 만들었다. 정우와 영수. 그리고 정우 쪽 칸에 정우의 일간을 적었다. 壬.

“정우 씨는 壬 일간이니까 卯랑 巳가 천을귀인이에요. 정우 씨 연지가…….”

미연은 거기서 손을 멈췄다. 辛巳. 연지가 巳였다.

“있어요. 정우 씨한테 천을귀인이 있어요. 일간 기준으로요. 원장이 영수 아저씨한테 쓴 거보다 더 원래 기준으로요.”

승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연은 그 침묵이 뭘 뜻하는지 알았다. 이것도 이름이다. 피 볼 팔자가 이름이었던 것처럼.

*

승수는 그 밤 귀인과 흉살의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 주었다. 미연은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아는 사람의 명식에서 찾아보았다. 그건 거의 놀이가 되었다.

문창귀인은 글과 배움의 별이라고 했다. 癸 일간은 卯가 문창이었다. 승수의 시지가 卯였다.

“선생님 卯에 천을귀인이랑 문창이 둘 다 앉아 있어요. 癸는 천을도 卯랑 巳잖아요.”

“그러네요.”

“그래서 공부 가르치시는 거예요?”

“그래서 미연 씨가 지금 뛰고 있는 거고요.”

미연은 웃으며 내가 뛴 것 목록에 한 줄을 보탰다. 문창이라서 선생. 그 아래 칸이 거의 다 찼다.

월덕귀인은 태어난 달의 지지를 기준으로 했다. 寅·午·戌월에 태어나면 丙이 월덕이었다. 할머니는 寅월생이었고, 일간이 丙이었다.

“할머니 일간 자체가 월덕이에요.”

“할머니한테 말씀드리지 말아요. 품삯 올려 달라고 하실 테니까.”

양인은 칼의 이름이었다. 양의 일간마다 칼이 되는 자리가 있었다. 壬 일간은 子.

미연은 자기 명식을 보았다. 일지가 子였다.

“저 칼 있어요?”

“일지에 하나 차고 있네요.”

“그래서 원장 앞에서 말이 그렇게 나왔나 봐요.”

“칼은 칼집에 넣고 다니면 연장이에요. 오늘 미연 씨가 윤 기자님한테 한 말은 칼집에 들어 있었어요. 제목을 베었지 사람을 베지 않았으니까.”

도화는 태어난 해의 지지가 속한 삼합 무리에서 정해졌다. 申子辰 무리에서는 酉. 미연은 연지가 申이었고 월지가 酉였다.

“도화도 있어요. 연애 많이 한대요, 이거 있으면.”

“해 봤어요?”

“…… 안 해 봤어요.”

“그럼 근거 안 보임이네요.”

미연은 베개를 집어 던질 뻔했다. 승수가 담요로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아였다. 퇴사한 지 보름째, 수아는 요즘 밤마다 전화를 걸어 왔다.

“미연아, 나 역마살 있대.”

“누가?”

“유튜브에서. 생일 넣으면 신살 나오는 거 있잖아. 역마살이라서 한 군데 못 붙어 있는 팔자래. 그래서 회사 나왔나 봐. 나 원래 그런 애인가 봐.”

미연은 수화기를 어깨에 끼우고 공책을 넘겼다. 수아의 생일은 오래전에 받아 적어 두었다. 이야기 없이 생일만. 甲申, 己巳, 丙午, 壬辰.

“그 유튜브, 뭐 기준으로 했대?”

“기준? 그런 게 있어?”

“역마는 보통 태어난 해 지지로 봐. 네 연지는 申이야. 申子辰 무리면 역마가 寅이야. 네 표에 寅 없어.”

“……없어?”

“없어. 일지 午로 보면 寅午戌 무리라서 申이 역마고, 그럼 연지 申이 걸리긴 해. 근데 그 유튜브가 어느 쪽으로 봤는지 안 밝혔으면 고른 거야.”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가, 수아가 터지듯 웃었다.

“그럼 나 그냥 회사가 싫었던 거네.”

“응. 그건 근거 있어. 네가 사흘 동안 숨을 못 쉬었다며.”

수아는 한참 웃다가, 웃음 끝에 작게 고맙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미연은 수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되짚었다. 역마가 있다 없다를 말한 게 아니었다. 수아가 자기한테 붙이려던 이름 하나를 떼어 낸 거였다. 승수가 아랫목에서 그 통화를 다 듣고도 모른 척 귤을 까고 있었다. 이번엔 꽤 능숙하게 모른 척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할머니가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고구마 소쿠리를 들고 있었다.

“어젯밤에 내 얘기 하더라. 월덕이 뭐야.”

미연과 승수가 서로를 보았다. 아궁이 옆방이라 벽이 얇았다.

“귀한 별 이름이에요. 할머니 일간 자리에 하나 있어요.”

“그럼 오늘부터 품삯이 고구마 두 개에서 세 개야. 귀한 사람이 주는 거니까.”

할머니는 소쿠리를 내려놓고 나갔다. 미연은 고구마를 세어 보았다. 네 개였다. 하나는 승수 몫이었다.

마지막으로 승수는 괴강과 백호를 다시 짚었다. 정우의 壬戌은 두 표에 다 들어 있었다. 할머니의 丙戌은 백호 표에 있었다. 니체의 戊辰도 백호 표에 있었고, 괴강 표에 넣는 사람도 있었다.

“백호는 호랑이에 물려 피를 본다는 옛말에서 왔다고들 해요. 그런데 백호 표에 든 일주로 태어난 사람이 육십 명 가운데 일곱 꼴이에요. 그 사람들이 다 호랑이를 만났을까요?”

“우리나라 호랑이 멸종했잖아요.”

“그러니까요.”

*

다음 날 아침 미연은 윤지호에게 정리한 걸 보냈다. 기준 셋과 결과 셋. 일간 기준으로 김영수 씨에게 천을귀인 없음. 연간 기준으로는 시지 卯에 있음. 같은 사람이 정우 씨에게는 일지 기준 신살만 말함. 일간 기준으로 정우 씨에게는 천을귀인이 있음. 그리고 맨 끝에 한 줄을 붙였다. 귀인이든 살이든, 그 이름이 김영수 씨에게 위임장을 위조하게 하지 않았음.

윤지호의 답은 점심때 왔다. 제목 바꿨어요. 그 아래 새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귀한 사주’라는 말이 한 일 — 같은 원장, 두 개의 기준

그리고 한 줄이 더 왔다. 확인해 준 내용은 기사 끝에 ‘확인: 독자 제보’로 넣을게요. 이름 넣어도 돼요?

미연은 휴대전화를 들고 한참 망설였다. 이름이 붙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지, 지난 석 달 동안 배운 게 그거였다. 미연은 답을 보냈다. 이름은 빼 주세요. 대신 기준은 다 넣어 주세요.

오후에 정우가 사랑방 문을 두드렸다. 손에 언 흙이 묻은 장갑을 든 채였다.

“미연 씨, 기자님한테 들었어요. 저한테 천을귀인 있다면서요.”

“일간 기준이면요.”

정우가 문턱에 걸터앉았다. 웃었는데, 이번 웃음은 반쯤 쓴 쪽이었다.

“피 볼 놈한테 귀인이래. 웃기네요. 두 달 넘게 어디 있었대요, 그 귀인은.”

미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그게 뛰는 거라는 걸 알아서였다. 승수가 대신 말했다.

“귀인이 누군지는 명식에 이름이 안 적혀 있어요. 卯나 巳라고만 적혀 있지요.”

정우는 장갑을 무릎에 털다가 마당 쪽을 보았다. 할머니가 장독대 앞에 쪼그려 앉아 언 김칫독 뚜껑을 행주로 닦고 있었다. 정우가 구치소에 있던 두 달 넘는 동안, 매일 아침 면회 신청서를 쓰던 손이었다.

정우는 한참 그쪽을 보다가 일어섰다. 아무 말 없이 마당으로 내려가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뚜껑 하나를 받아 들었다.

미연은 공책을 펼쳐 정우의 칸에 적었던 천을귀인 옆에 괄호를 쳤다. 그 안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이름을 적는 순간 그건 미연이 붙인 이름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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